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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402화 (402/415)

402화. 꽃비가 내린다

* * *

"멍청한 망자여."

하지만 에른스트는 자신만만하게 꺼낸 하벨의 말에 빈정거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에른스트가 녹고 있었다.

치이익.

"보거라."

오히려 에른스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펼쳤다.

"신이 무엇인지.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네 눈으로 보거라."

"거짓말을 잘하는 거 하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확실히 보이는데? 쫓겨난 주제에 또 신이라 지칭하다니."

에른스트를 도발하는 말을 꺼내며 하벨은 주변으로 시선을 더 펼쳐나갔다.

만약에 에른스트의 힘이 자신이 둘러싼 벽 너머에서도 가능하다면 어디로 향하겠는가.

어딜 노리는 게 맞는 것일까.

왼쪽.

하벨은 물이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봐. 물의 오염을 내가 왜 퍼트렸는지 아직 모르고 있잖아?"

에른스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할퀴듯 다가온 놈의 손톱이 허공을 쓸었다.

지독한 독 냄새가 풍겼다. 검은 연기가 뒤이어 휩쓸었다.

하벨은 놈을 물로 밀었다.

"바다에 깃든 내 힘을 지워버려 우쭐거렸는가?"

파지지직!

자신의 물과 뒤섞은 번개의 힘이 에른스트의 발끝에서 시작해 올라왔다.

"오미너스를 없애 우위에 섰다 생각하는가?"

불꽃이 몸에 붙었지만, 에른스트는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계속 키득거렸다.

"오염된 물을 정말 네놈이 지웠다고 생각하고 있고?"

탄 냄새가 풍기고, 코를 찌르고, 연기가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에른스트는 움직였다.

모든 걸 잡아먹을 기세로 검은 연기를 뿌려댔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걸 감내하고 인내했는지 알고 있는가."

"네가?"

하벨은 에른스트를 비웃었다.

"네가 뭘 감내하고 인내한다는 건데?"

"내가 신이 되지 못한다면."

에른스트의 눈동자에 어린 검은 빛이 쳐다보기만 해도 베일 정도로 날이 섰다.

"내가 다. 전부. 이 모든 걸 집어삼킬 걸 알고 있었나?"

"너는 정말로, 신이 될 자격이 없다."

그 말에 하벨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신이 되지 못했다는 그 이유 하나로 세상을 부수겠다니. 철없는 어린아이가 할 소리를 신이 내뱉을 줄이야."

"여긴 내 세상이니까."

에른스트의 눈빛에 오직 당연함만 깃들었다.

"네가 부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목숨이었다는 걸 기억해라."

딱!

에른스트가 히쭉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커헉!"

하벨은 몸을 찌르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무릎이 휘청거릴 뻔했다.

입가에 금세 흐르는 건 피였다.

"뭐야?"

낄낄.

에른스트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도, 물의 저주에 걸렸다고? 네가?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였던 네놈이 오염된 물에 내성이 없어?"

놈의 웃음이 점점 높아져 고막을 때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비웃든 말든 하벨은 제 몸에 남아 있던 푸른 돌이 마치 오염된 물 옆에 있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물의 저주로 나타난 저 푸른 돌을 지우지 못했던 건, 에른스트가 건 저주 때문이었다.

그때는 영혼조차 쪼개진 상태로 저 푸른 돌을 지워도 오염된 물이 있으면 나타났고, 그 여파로 저주가 커져 오히려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지경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영혼을 다 모은 뒤에는 분명 싹 사라졌을 텐데.

이걸 알았기에 마법사들과 합류하겠다는 헤레스의 부탁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우선, 하벨은 저 푸른 돌을 지우고자 자신의 물을 끌어 올렸다.

곧 하벨은 분노를 피웠다.

"…에른스트."

자신의 몸에 아주 작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 끔찍한 게 자신의 몸에 있는 정령수를 먹으면서 커지고 있었다.

"아, 사라졌네."

아쉬움을 담은 에른스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벨은 분노를 삼키고 주변을 살폈다.

'검은 연기가.'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휘몰아치는 게 보였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그 중심에 사람이 있었다.

'…피어올랐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벨이 숨을 멈추고, 에른스트의 눈이 휘었다.

"방금 네 꼴이 잠깐 우스워서 좋았는데, 역시 용왕이라는 건가. 내가 남긴 저주는 아직 있는데? 이상……."

"에른스트!"

하벨이 에른스트의 이름을 거칠게 불렀다.

애초에 물의 오염은 에른스트의 몸뚱어리에서 피어나던 힘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힘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럼에도 이를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이 걸리는 병을 '물의 저주'라고 불렀다.

그럼 에른스트의 힘을 저항하지 못한 이들의 몸속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물의 저주가."

방금 자신이 녹인 그건.

"네놈이 만든 물의 저주가 네놈의 더러운 몸뚱어리 일부 때문에 생겨난 거라니!"

고작 점보다 조금 큰 정도였지만, 에른스트의 몸뚱어리 일부였다.

이 얼마나 끔찍한가.

역겹고, 매스꺼워 속에서 토악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화낼 시간에 움직여야지. 그렇지 않아? 네가 올바름이라 자처했다면 지켜야지. 응?"

하벨은 에른스트가 무얼 바라고 있는지 보였다.

아직도 신이 되고자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벨 자신이 물의 저주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가.

아마 지금 에른스트의 머릿속에 악과 선의 구도를 만들고자 할 테지.

이 모든 게 집착인 줄도 모르고.

"이 세계도, 저들의 목숨도."

불타오르던 에른스트의 몸이 다시 회복되었다.

사방에 퍼진 놈의 검은 연기가 생명을 빼앗고, 에른스트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내 힘이 하나씩 퍼져가는 게 보이잖아. 자, 어서 구해. 입으로 잘난 척 떠들지 말고 움직이라고. 어서, 착하지?"

명령하듯 꺼내는 말에도 하벨은 움직여야 했다.

아직 가면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에른스트가 자신의 소중한 존재를 모를 뿐이었다.

만약에 이 가면이 벗겨진다면, 어딜 향할지 뻔했다.

―저 망할 새끼.

―진짜 짜증 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덮을게요. 없앨게요!

물은 하벨을 달래며 그가 준 힘을 받아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에른스트의 힘은 독처럼 세상에 퍼져 생명을 앗아갔다.

"망자여."

에른스트는 세상을 좀먹는 자신의 힘을 느꼈다.

이렇게도 상쾌한데 왜 이걸 참았나 싶었다.

잠깐 내려갔던 세계의 간섭 수치가 다시 가파르게 올라갔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버틸 수 있었다.

"왜 과거에도 지금도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거지, 망자여?"

물의 저주에 먹혔다는 건 용왕은 과거의 용왕이 아니란 소리며 이는 곧 놈은 과거보다 더 약해졌다는 소리가 아니고 뭘까.

"너는 나한테 안 돼. 그러니 포기하렴."

열쇠마저 잃어버린 용왕이 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세계에 퍼트린 힘이 세상을 먹어간 만큼 절망감이 점차 점차 오르는 게 보였다.

조금 전 요란했던 행동이 절망감을 올리는 데 큰 공헌을 할 줄이야.

"듣거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이여."

에른스트는 용왕이 자신의 힘을 꺼트리기 전에 공기를 통해 제힘에 목소리를 실었다.

세계의 간섭 수치가 가파르게 올랐다.

96.

꺼졌던 경고가 켜졌지만, 에른스트는 딱 한마디만 더 이어갔다.

"너희를 죽이러 가마."

절망감이 단번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족했다. 고작 목표량에 반밖에 차질 않았다.

그럼, 이 절망감을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른스트가 히쭉 웃었다.

'…용왕이 있었네?'

모든 물의 어버이인 용왕이야말로 절망감을 채우기에 제격이었다.

어쩜 이렇게나 사랑스러울까.

에른스트의 눈마저 휘었다.

생각해보니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이렇게 도움을 주니 예뻐해 주어야지.

치이이이익.

녹아 내려가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에른스트의 몸은 무너져내리지 않았다.

그만큼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말이었다.

"지켜야 할 게 많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라 생각해. 뭘 그렇게 다 꽁꽁 짊어지는지."

하나씩 자신의 힘이 꺼지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에른스트는 오히려 보란듯이 검은 연기를 퍼트렸다.

이미 밖으로 나온 그 힘은 오미너스처럼 모든 걸 씹어 삼킬 뿐이니까.

"하지만 이게 좋으면 지켜. 이 모든 걸. 이 모든 세상을!"

에른스트는 하벨을 비웃으며 손을 뻗었다.

검은 연기가 하벨 바로 왼쪽에서 나타났다.

뽀글뽀글.

반사적으로 물보라가 일어났다.

―절대 안 돼!

물은 용왕을 공격하는 검은 연기를 잘라내며 이어 튀어나오는 손가락 하나마저 용서하지 않았다.

서걱.

손가락이 잘렸다고 생각이 들던 와중에 에른스트는 온몸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하벨은 다급히 손을 뻗었다.

허공에 퍼진 물이 사라지려는 에른스트를 붙잡았다.

물이 날을 세울 때, 마치 잘린 것처럼 보이는 에른스트의 손 하나가 하벨의 뒷덜미를 노려왔다.

물이 움직이기 전에 불로 달궈진, 고드름같이 생긴 바위가 에른스트의 손을 꿰어버렸다.

푸욱!

'…아라야?'

하벨은 이 힘이 아라라는 걸 알았다.

아라는 화가 났다.

무척 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열어."

하지만 에른스트는 아라의 힘을 빨아들여 재로 만든 뒤에 꿰뚫린 손을 하늘로 뻗었다.

쿠우웅!

공기가 떨리는 느낌이 하벨의 몸을 감쌌다.

칼리우스였다.

그가 마나를 멈췄다.

'놈이, 틈의 세계를 부르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상황이 최악으로 흐르려는 그 흐름이 보였다.

하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도 에른스트가 퍼트리는 검은 연기를 없애지만, 늘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이대론 안 돼.'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이 에른스트를 두려워한다는 걸 느꼈다.

지켜야 할 게 있다 보니 그쪽으로 너무 많은 신경이 쏠렸다.

"…후."

하벨은 숨을 몰아쉬었다.

에른스트가 그 장소를 알아버렸기에 우선 하벨은 칼리우스와 그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위해 물보라를 보냈다.

'믿자.'

하벨은 벽을 없앴다.

어차피 이제 에른스트에게 벽은 통하지 않는 걸 알았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하벨에게 향했다. 무언가를 알아버렸다는 눈빛에 하벨은 눈꼬리를 올렸다.

하벨은 발을 굴렀다.

콰드드득!

물이 얼어 에른스트를 붙잡았다.

"이제 두렵구나?"

하.

하벨은 저 소리를 들으며 다시 숨을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맴돌았다.

"내가 두렵구나."

"두려웠지."

하벨은 솔직히 인정했다.

"너는 내게 있어 아주 커다란 상처니까. 네 행동이 내 상처를 들쑤셨거든."

하벨의 가면에 또 푸른빛이 어렸다.

소극적일 필요는 없었다.

놈이 가지고 있는 패는 어차피 몇 개 없다는 걸 보았다.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나였어."

하벨이 양팔을 벌렸다.

쏴아아아!

거친 소나기가 내렸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모든 곳에 비가 내려왔다.

그 비는 에른스트의 힘을 녹여 버렸다.

금세 부들거리는 모습이 보였기에 하벨이 씩 웃었다.

"이렇게 쉽게 쓸리는 걸, 왜 잊어버렸나 모르겠네."

하벨은 우산을 꺼냈다.

애초에 왜 이렇게 소극적이었을까 싶었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건 자신하고 맞지 않는데.

"너한테 세상의 절망이 필요하지? 그런데 이거 어쩌나."

하벨은 바닥에서 나온 물에 올라섰다.

"절망은 네 몫이야. 쳐부숴 주지."

칼리우스의 권능이 얼마나 오르는지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하는 건 하나였다.

재생도 하지 못할 만큼 그냥 부숴버리면 그뿐이었다.

"아라야."

하벨이 아라를 부르며 물보라를 보냈다.

[응응! 이 몸을 불러주길 기다렸어!]

아라가 물보라 속에서 즐겁게 날아왔다. 하벨에게 안기려던 사이에 에른스트가 다가왔다.

검은 연기가 아라에게 닿기도 전에 하벨은 놈의 손을 물로 잡아당겨서는 물로 휘감은 우산을 아래로 휘둘렀다.

콰아앙!

에른스트의 머리부터 땅에 박았다.

콰드드득!

땅이 매섭게 일어나 에른스트를 찔렀다. 온몸이 관통된 그의 피는 하벨에게 튀지 않았다.

푸욱!

그저 우산의 끝을 에른스트의 머리를 박았다.

―물! 물을 끌어와, 아라야!

물의 말과 함께 아라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미 하벨이 물을 왕창 끌어오고 있었기에 아라는 물의 속도를 더 빨리 움직였다.

하벨의 힘과 달리 아라 자신이 가진 물은 에른스트가 흡수할 수 있기에 하벨을 위해 물을 빨리 재촉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잘했어!"

하벨의 칭찬과 함께 허공에서 물이 에른스트만을 향해 떨어졌다.

콰앙!

그 위에 중력이 추가되었다.

칼리우스의 마법이었다.

땅이 꺼질 만큼의 위력이었기에 에른스트가 비명을 토했다.

"네가 아무래도 이 능력을 되게 믿고 있는가 본데."

하벨은 물을 계속 퍼부었다.

땅으로 스며드는 물을 역으로 위로 회전시키며 에른스트를 더 빨리 녹여갔다.

"내 너한테 알려주지. 그 힘은, 곧 사라질 거다."

자신한테 열쇠의 힘이 있으니.

'앞으로 51%.'

하벨은 아공간을 열어 보름달을 쥐었다.

"혹시 봤어?"

―저 봤어요!

―저도요! 뭔가 이상했어요!

[이 몸도!]

아라가 눈치를 보다 슬쩍 앞발을 올렸다.

"좋아, 그럼……."

"푸하핫!"

에른스트가 웃었다. 뭐가 웃긴지 몰라도 하벨은 기분이 이상했다.

"넌 아직 날 몰라."

그가 사라졌다.

아니. 가죽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껍데기를 버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하벨은 아라를 쳐다보았다.

에른스트가 어딜 갔겠는가. 계획을 서두르려 시엘느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전해줘! 놈이 폭주할 테니까!"

[아, 알았어, 대장!]

하벨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라는 시원스레 쏟아붓던 물마저 없어진 곳을 바라보며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이 몸의 권능이 뭔지. 이 몸도 알면 좋을 텐데.'

하벨에게 조심스레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벨은 무언가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아주 멋진 권능이네.

그게 무엇인지 하벨은 알려주지 않았다.

―자연을 더 믿어봐. 물론, 여기에서 아라 널 믿는 게 꼭 포함된 걸 잊으면 안 돼.

그저 힌트를 주며 하벨은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때, 이 몸이 대장한테 권능이 뭔지 들었어야 했어.'

거의 혼자서 에른스트를 상대하는 하벨을 볼 때마다 너무도 분했다.

아마 모두가 같은 생각일 테지.

* * *

"…하."

에른스트는 웃었다.

"하하."

정말로 교황청이 텅 비어있었다.

이 망할 것들의 빛이 오미너스를 없애는 데 도움을 주기에 혹시나 했다.

그런데 사라졌다.

왜 사라졌겠는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었다.

또 배신을.

"에른스트. 이제 이 세계를 놔줘. 여기서 멈춰."

들려오는 하벨의 목소리에 에른스트는 증오를 토했다.

"닥쳐어!"

에른스트는 샤넬리움이 아닌 다른 껍질을 덮어쓴 채로 하벨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주변에 넘실거리는 연기는 지독한 악취를 불러일으켰다.

이건 썩어버린 시체 냄새와 같았다.

"네놈인가……?"

에른스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래. 나다."

"왜에? 왜! 왜에에!"

에른스트가 할퀴듯 연기를 움직였지만, 하벨은 이를 물로 쳐내며 에른스트까지 세차게 후려쳤다.

쾅쾅쾅!

건물의 벽을 몇 개나 뚫었는지 몰랐다.

"왜겠어?"

우산을 빙빙 돌렸다.

"너한테 절망을 안겨주려는 거지."

하벨은 천천히 다가갔다.

푸우욱!

물줄기가 촉수처럼 나와 에른스트의 몸을 꿰뚫었다.

놈이 차지한 몸은 이미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걸 방금 보았다.

그렇다면 놈을 제대로 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뚫어야 했다.

바닷속에 있던 에른스트의 몸뚱어리처럼 헤집고, 그 속에 자신의 힘을 집어넣어야 했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을 기세로 물을 회전시켰다.

"끄아아악!"

에른스트가 고통을 호소하며 더 빨리 녹아내렸다.

이게 답이라는 걸 하벨은 알았다.

하지만 더 좋은 답도 아직 남아 있기에 하벨은 우산을 내밀었다.

스르르륵 밀려가듯 에른스트에게 다가가 그대로 심장을 찔렀다.

콰앙!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충격으로 벽이 무너져내렸지만, 에른스트는 우산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절망했는가?"

하벨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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