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95화 (395/415)

395화. 유렌(3)

* * *

―임무 90% 돌파. 가면단과 합류 후 바퀴벌레들이 빠르게 처리되고 있음. 추신. 곧 끝낼게요. 기다리고 있으세요.

화르륵.

하벨은 불로 쪽지를 태웠다.

"좋은 소식입니까?"

다시 하벨의 옷에 장식을 달던 카샬이 묻자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자가 거의 다 썰렸대. 아주 좋은 소식이지."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페트리오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벨은 살짝 흠칫거리긴 했지만, 곧 싱글거렸다.

"도련님."

"방금 크라마가 소식을 전해줬어. 너도 들었어?"

하벨이 웃으며 묻자 페트리오는 고개를 숙인 뒤에 대답했다.

"예. 저도 막 들었습니다."

"나, 에르티안 왕국으로 돌아와서 되게 기뻐. 진짜 고향 같다니까."

하벨은 잠깐 시선을 내렸다.

자신은 지금 에르티안 왕국에 있었다.

마지막을 위해 회의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온 기분이었다.

하벨은 고개를 올려 페트리오를 보았다.

"그래서 어떤 소식을 들고 왔어?"

"헤일리스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남은 오미너스가 움직이는 걸 봤다고 합니다."

"에른스트가 지시를 내린 모양이네. 우선, 오미너스를 없애는 방향으로 하고 에르티안에 모이라고 말해줘. 모두."

하벨은 잠깐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레놀드 왕국의 결계를 풀고,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에른스트는 반드시 여기로 올 거니까. 보름달은 어때?"

"준비 완료입니다. 이미 모두 배치된 상태입니다. 여분 역시 충분히 만들고 있고 비축한 상태입니다."

"에르티안 왕국이 결정지가 되어 많이 미안하지만, 너희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게."

특히 바안에게 너무도 미안하던 차였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제발 도련님의 몸부터 걱정하십시오. 아직 푸른 기가 보입니다."

듣고 있던 카샬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도 걱정하지 마. 곧 사라질 테니까."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 또한 사라질 테니까.

다른 이들도 아니고 용왕이 오염된 물에 영향이 있는 게 우습지 않은가.

"카샬, 그리고 페트리오. 다들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하벨이 손을 벌리자 카샬과 페트리오가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징그럽게 왜 이러십니까?"

카샬이 장식을 달다 말고 뒷걸음질 쳤고, 페트리오는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을 꾸욱 참았다.

하지만 마치 눈으로 욕을 하는 것처럼 제법 사나웠다.

"과했어?"

하벨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과했습니다."

페트리오가 얼른 대답했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내 마음은 진심이야."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카샬이 딱 잘라 말하자 페트리오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좀 그렇지만,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인사는 다 끝나고 나누겠습니다. 그럼 저는 아라 님이 기다리고 있어 시엘느에 다녀오겠습니다."

"진짜 너무들 한다."

하벨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벨 티에라도 그렇고 어떻게 포옹을 거부할 수 있는지.

"나 때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렇게 말을 나누는 게 기본이었는데."

"예, 예. 그 귀중한 입은 아껴두시죠. 곧 회의장에서 써야 하잖습니까."

카샬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하벨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평화로워 보이나, 어쩌면 평소처럼 보이나 하벨은 불안함이라는 감정으로 균열이 난 상황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이럴수록 힘을 가득 줘야 하지 않겠는가.

"페트리오."

하벨이 이름을 부르자 밖으로 나가려던 페트리오가 흠칫 놀라다 곧 어깨를 늘어트렸다. 피했다 생각했는데 피할 수 없었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저는 마지막을 고하는 건 딱 질색입니다. 그게 도련님이라면 더더욱 싫습니다. 그러니 듣지 않겠다고 한 건데 이렇게 말씀해버리면 제가 뭐가……."

"아니, 이거 가져가라고."

하벨은 레놀드 왕국의 왕, 샤르비에에게 넘긴 자신의 힘 일부를 페트리오에게도 주었다.

"아라도 쉬어야 해. 너무 많이 이동했을 테니까, 신관들을 부르려면 내 힘을 써. 아라가 거부해도 꼭 내 힘을 써. 이거 안 지키면 금화 압수라고 전해주고."

"진짜… 도련님은 악마입니까?"

갑자기 카샬이 발끈했다.

"아라 님에게 금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내 힘을 써야지. 아라가 지친 게 보인단 말이야."

사실 페트리오가 자신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물이 자신에게 소곤소곤해주니까.

―용용이가 에른스트를 마차에 가뒀어요.

―엄청, 엄청, 엄청 꼴 좋았어요! 진짜 최고였어요.

―마법사들이 용용이랑 함께 결계를 만들었어요. 샤르비에의 지시로 결계 근처에 왕실 기사들이 대거 지키고 있어요. 이대로 두실 거예요.

'그럴 리가 있겠어?'

솔직히 결계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에른스트가 가진 힘은 다른 힘을 먹고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종류라 어차피 풀리게 되어 있었다.

득이냐 실이냐 따지자면 에른스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회의를 이끌어나갈 시간이.

"좀도둑."

"예, 도련님."

"헤레스한테 서두를 필요 없다고 말해줘."

하벨은 싱긋 웃었다.

―제가… 마법사 협회로 가도 되겠습니까? 생산량을 지금보다 더 늘리려면 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마법이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자신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헤레스의 심정을 이해했다.

의사인 헤레스가 자신의 옆을 비우고 가는 건 말도 안 될 테니까.

하지만 헤레스의 힘은 공기든 무엇이든 이동시키는 힘이었다.

헤레스가 있고, 없고의 효율이 다른 건 분명했다.

현대식으로 따지자면 수동과 자동의 차이일 테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곧 다시 찾아뵀겠습니다."

페트리오 역시 옅은 미소를 내보인 채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말해도 돼, 좀도둑. 아니, 말해야 해. 그런 게 다 후회로 남으니까."

페트리오는 하벨의 재촉에 말을 꺼내려다가 주저했다.

한 걸음 또 걷다가 주저했다.

그러다가 다시 숨을 삼켰다.

"저를……."

페트리오는 그날을 떠올렸다. 하벨을 처음 만났던 그 날을.

잠깐 침묵한 페트리오의 등에 수많은 감정이 보였다.

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저를, 구원해주신 그날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버렸던 저를 믿어주셔서, 새로운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트리오의 눈동자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몇 번을 말해도 영원토록 닳지 않을 정도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자신이 가진 마법을 믿고 이 나라 에르티안 왕국을 휘두르려다 도리어 귀족에게 뒤통수를 맞고 개로서 전락하지 않았는가.

무얼 잘못했는지, 무얼 실수했는지 후회로 반복되는 삶을 살던 그때 티에라 가문의 정화제를 훔친 좀도둑으로서 하벨 티에라와 만났다.

그는 자신에게 잘못을 알려줬고, 또 새로운 삶과 기회를 주었다.

"페트리오."

하벨이 부드러이 목소리를 냈다.

"예… 도련님."

"내가 한 거라고는 너한테 다시 기회를 준 것뿐이야. 네가 해낸 거야. 네가 다시 손에 쥔 거야."

페트리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믿어주고, 밀어주고, 힘을 주고, 길을 알려줬음에도 자신에게 또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있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디… 무사하셔야 합니다. 제발요."

기대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해놓고 하벨은 어느덧 자신의 마음에 기둥으로 자리 잡고야 말았다.

이러니 하벨에게 무언가 일이 생기는 게 무서웠다.

"걱정하지 마. 나는 너희를 울릴 생각이 없으니까. 조심히 다녀와. 너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없어."

하벨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니요.'

페트리오는 속으로 부정했다.

'아니요. 절대로 아닙니다.'

또 부정하며 페트리오는 방긋 웃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손을 맞잡은 뒤 페트리오는 돌아섰다.

"조심해."

툭 하고 던진 카샬의 말에 페트리오는 대충 손을 흔들었다.

"너도."

문이 닫힐 무렵 하벨이 웃음을 터트렸다.

참 어색하지 않은가.

"가만히 계십시오. 아직 장신구를 덜 달았습니다."

카샬은 대충 고정만 시킨 장신구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바라보았다.

"…어헛."

희미하지만, 숨을 삼키는 페트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카샬이 고개를 돌렸고, 하벨은 살짝 긴장했다.

―바안이에요.

―용왕님이 지금 되게 미안해하는 왕 말이에요.

대체 뭐가 즐거운지 몰라도 물이 키득거렸다.

"장신구 다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잠깐 들어가겠습니다."

바안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저, 전하."

하벨이 긴장하자 바안의 눈웃음이 길어졌다.

잘못한 건 아나 봅니다.

딱 그 눈빛이었다.

"하벨 공한테 들어야 할 말도 있고요."

"전하를 뵙습니다."

카샬이 고개를 숙였다.

"잠깐만 비켜줄래요?"

"물론입니다, 전하."

바안의 제안에 카샬은 조용히 나가다 잠깐 뒤를 돌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자신이 혼날 걸 생각하면 즐거운 모양이었다.

'…치사하게. 진짜 치사하게.'

하벨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자, 하벨 공."

바안이 싱긋 웃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그, 허락… 하셨잖습니까. 이렇게 나오면 치사한 겁니다."

"허락했죠. 그런데 허락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급하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해야 했습니까? 안 된다고 말해야 했습니까?"

바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전하. 에르티안 왕국에 회의를 열어도 되겠습니까? 꼭 그래야만 합니다. 급하니, 바로 대답해주세요.

하벨이 처음으로 급하다는 소리를 자신에게 꺼내자 자신 역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도 하벨이 급하다는데 어쩌겠는가.

"…설명했잖습니까아."

하벨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네. 설명해줬죠. 이 땅이 곧 전쟁터가 될 테니, 나보고 각오하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에른스트와 싸워야 할 결전지가 여기가 될지도 모르니, 최대한 피해가 되지 않게……."

"나는 잘하고 있었으니 이제 공께서 대체 뭘 하다 온 건지 알려주세요. 약속하셨잖습니까."

바안이 던진 말에 하벨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속하긴 했는데.'

"왜 놀라요?"

"화… 안 내십니까?"

"공께서 지금까지 내게 불가능한 것들을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믿는 겁니다."

"그러면……."

"다만, 심술은 나지요. 왕으로서 왜 하필 에르티안 왕국인지 원망도 들지만, 이 사건만 이겨낸다면 에르티안 왕국의 위상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내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만 말해주세요."

"에른스트는 정령의 힘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있는 아라가 정령들의 주인인 정령왕입니다. 이곳에 티에라 가문이 있고요. 제 땅에도 정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

바안은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곧 크게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바안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갔다.

"…와아. 진짜 놀랐습니다. 못 보던 사이에 농담을……."

"저는 왕이었습니다."

"…예?"

바안은 그대로 멈췄다.

"저는 정말로 왕이었습니다, 전하. 모든 물과."

하벨이 손아귀를 펼치자 당장 방을 에워쌀 정도의 물이 나타났다.

"바다의 지배자, 용왕이었습니다."

찰랑.

그 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신의 아들이기도 하지요."

"자, 자, 잠시만요."

"이해하지 마십시오. 이미 이것들은 다 과거가 되었으니까요."

"그… 그러니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겁니까?"

"더 복잡합니다. 이건 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 이 사실로 발목을 붙잡히면 안 되잖습니까."

"이미 충분히, 아니… 정말 많이… 그러니까, 하. 이걸 뭐라고 받아들이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뭐겠습니까? 전하의 백성이자 티에라 가문의 막내인 하벨 티에라입니다. 그 사실만 기억해주세요."

진지함이 가득한 하벨의 눈동자를 보자 바안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모조리 지웠다. 정말로 부끄러웠다.

왕이었든, 용왕이었든 간에 하벨은 그저 하벨이었다.

오히려 그가 자신에게 전해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줬던 것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저하.

하벨이 왕이었기에, 그가 처음에 자신에게 꺼낸 그 사실이 가슴에 와닿았고.

―전하께서는 부디, 부디, 행복한 왕이 되십시오.

도중에 생각을 바꿔 자신에게 부탁하며 꺼낸 그 말이 더 깊어졌다.

이제야 저 말을 할 때 하벨이 흘린 눈물이 이해가 됐다.

자신의 모습에서 과거의 하벨 본인을 기억했는지도 몰랐다.

바안은 모르는 척,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하벨 공, 있잖습니까."

"안 합니다."

하벨은 갑자기 바안의 눈동자에 어린 생각을 바라보자마자 단칼에 거절했다.

욕심이 가득 담겨 있지 않던가.

"왜 안 됩니까? 하벨 공께서 왕이었다면 앞으로 나눠야 할 말이 얼마나 많을 텐데요."

"전하."

하벨이 입꼬리를 올렸다.

"왜 그러십니까?"

유달리 환한 웃음에 바안은 자신이 심했나 싶었다.

"잘하고 계십니다. 제가 절대로 관직에 오르지 않겠지만, 그러셔야 합니다. 끊임없이 인재를 포섭해야 합니다."

"치사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모르는데요?"

"내가 여기 오기까지 나를 이끌어준 분은 하벨 공입니다. 내가 본 가장 최고의 인재는 하벨 공이며 내가 의지하는 사람 역시 하벨 공입니다."

하벨이야말로 자신의 스승이며 조언가이며 친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벨 말에 따르면 가장 포섭해야 할 존재야말로 그가 아닌가.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저는 그때 놀러 갈 겁니다. 놀다가 전하가 문득 생각이 나면 제가 얼마나 즐거운지 알려드릴 겁니다."

하벨이 키득거렸다.

"…놀아요?"

바안의 눈이 커졌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내가 아는 그 논다는 단어가 맞습니까?"

"원래 신나게 즐기려고 그랬는데, 뭔가 좀 꼬였습니다. 이것도 다음에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전하."

"…예."

혼자만 행복하다니. 바안은 뭔가 떨떠름했다.

"행복한 왕이 되십시오, 전하."

하벨의 고개가 숙어졌다.

왕이었음에도 자신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행복한 왕이 되시려면 에른스트가 사라져야 합니다. 제가 방해물을 다 없애 드릴 테니, 부디. 부디, 그 길이 아프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바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꼭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게 치사한 겁니다."

바안은 하벨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숨기고, 또 숨기려고 해도 하벨 앞에 서면 어린아이가 되는 이 기분이 참 싫었다.

"죽으면 안 됩니다, 하벨 공."

왕의 위엄은 어디다 갔다 던져버렸는지 이렇게 떼를 쓰지 않는가.

"이건… 명령입니다."

"명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하벨은 이 우스운 명령에도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바안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다시 왕이 되어 있었다.

"…룬델 공께서 저보다 먼저 왔지만, 먼저 길을 비켜주더군요."

"아버지… 가요?"

"더는 시간을 뺏지 않겠습니다. 회의장에서 뵙죠."

바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하벨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앞으로 가던 바안이 그대로 발을 멈췄다.

"…살살 하시죠."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노력해보죠."

"회의장에 뵙겠습니다, 전하."

고개를 든 하벨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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