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이거 어쩌나(3)
* * *
"그런가 봅니다."
하벨이 대수롭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뭐 하러 여기 왔다고 그랬지?"
라르웬이 묻자 하벨이 대답했다.
"관광이죠."
"그런데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관광이 되겠어?"
라르웬은 괜히 나올 것만 같은 웃음에 소매를 가리고 재채기를 했다.
―내가 세뇌를 풀어도 에른스트가 바로 반격할 수 없습니다. 신이 되려면 세계에 찍혀서는 안 되는데 여기서 난동을 부리기만 해도 찍힐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일 겁니다. 분명, 물러날 겁니다. 그럼, 물러나면 어딜 가겠습니까?
"나는 좀 기대했는데."
라르웬은 어제 하벨이 꺼낸 말을 되새기며 의미 없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여 하벨 역시 무의미한 말을 꺼냈다.
"마법사의 탑은 사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그래도 조금 크긴 하잖아?"
―틈의 세계입니다. 놈보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유렌을 만나야 합니다. 내 힘 역시 얻어야 하고요. 물론, 놈이 그곳에 가지 못하게 막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르웬은 턱을 괴었다.
저 머릿속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기에 그런 생각들이 마구마구 나오는지.
"안 무서워?"
"뭐가 무섭습니까?"
하벨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곧 틈의 세계가 열릴 겁니다. 형님께서 크로니안을 부르고, 클로저가 나오면 반드시 에른스트와 밀착해 주십시오.
"마법사의 탑이… 너무 높잖아."
"괜찮습니다, 형님. 이미 높은 곳에서 떨어져 봤어요."
하벨은 편안하게 웃었다.
창문 너머로 고개를 돌리니 에른스트가 나오고 있었다.
허탕을 쳤겠지.
'이미 싹 정리했어, 병신아.'
마법사 협회장이 돌아왔겠지만, 오미너스와 관련된 모든 건 이미 에르티안 왕국의 마법사 협회 협회장인 헤일리스 손에 들어갔다.
거길 뒤져봤자 마법사로서 힘차게 연구한 결과물이 전부였다.
그럼 레놀드 왕국에 있는 오미너스는 어떻게 됐느냐.
'정령들이 신이 난 채 없애는 걸 네놈이 봤어야 했는데.'
하벨은 예쁜 포장지를 펼쳐 초콜릿이 듬뿍 발린 쿠키를 손에 쥐었다.
지금 정령들 손에 자신이 만든 반영구 정화제가 있었다.
'저주가 거의 풀려서 나도 참 신이 났지. 반영구 정화제를 엄청 만들었으니.'
민망함보다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라의 정령수가 한층 짙어진 게 느껴졌다.
그 정령수로 수천 개의 반영구 정화제가 나왔으니 각자 하나씩 반영구 정화제를 손에 쥔 정령들은 얼마나 더 신이 났겠는가.
―이 나쁜 오미너스야! 우리가 다 없애줄 거야!
정령들이 신이 나 소리치는 말에 자신도 얼마나 흡족했던가.
'저 표정 봐라, 정말 보기 좋네.'
오도도독.
하벨이 웃으며 쿠키를 먹자 라르웬이 손을 내밀었다.
"초콜릿 안 좋아하잖아요."
"안 좋아하지만 먹어두려고. 골치가 아플 테니까."
"그렇죠. 골치 아플 때는 달콤한 게 최곱니다."
"떨어질 때… 무서웠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 마. 다음에는 생강차 들이밀지도 모르니까."
생강차라는 말에 하벨의 인상이 굳어졌다.
"먹을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제일 치사한 거 모릅니까?"
"난 원래 치사해."
"형님."
"세상에 소중한 사람이 있어도 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며 꺼낸 라르웬의 말에 하벨은 웃음이 터졌다.
"지금 귓불이 빨개진 거 알아요?"
[엄청 뜨거워.]
귓불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루룸도 웃음을 터트리며 동참했다.
"시끄러. 나 지금 마음 다잡았으니 흔들지 마. 안 할 거야?"
"해야죠."
하벨은 점점 다가오는 에른스트를 곁눈질로 보다가 목소리를 꺼냈다.
"류아야."
자신이 바닷속에 있을 때, 류아네에게 레놀드 왕국에 틈의 세계를 열어 달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류아는 카샬을 목격하고 그에게 슬쩍 말했다고 했다.
―류아 씨가 제게 지켜보고 있으니 '류아'라는 이름을 부른다면 얼마든지 틈의 세계를 열겠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패가 손에 들어온 셈이었다.
이는 유렌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였으며 그 역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아닌가.
'역겹네.'
하벨은 유렌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적의 적이 있는 이상 동맹이 체결되는 일은 무척 흔했다.
어차피 잠깐뿐이었다.
똑똑.
에른스트가 마차 문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에른스트보다 더 역겨운 건 없었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에른스트의 말에 하벨이 태연하게 물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하벨의 시선에 에른스트는 살짝 곤란함을 드러냈다.
"뭔가… 오해가 생긴 모양입니다."
"오해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니 당황하지 않으셔도 돼요."
에른스트는 싱긋 웃었다.
'당황은 내가 아니라 네놈이 한 모양인데.'
하벨은 찔러볼까 말까 고민하다 입이 너무도 간지러워 버틸 수가 없었다.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속에서 역한 것들이 치밀어 올랐지만, 하벨은 정말 신뢰가 가득한 눈빛으로 에른스트를 보았다.
믿는다.
널 믿는다.
신이었던 자였기에 믿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에게 믿음이 곧 힘일 테니까.
"물론입니다. 절대로 실망을 안겨주지 않겠습니다."
에른스트의 웃음이 달라졌다.
그저 꾸며진 웃음이 아닌, 기쁨이 보였다.
'…아쉽네.'
에른스트는 등을 돌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벨 티에라가 생각보다 잘 속아줘서 다행이긴 한데 아까운 자였다.
침착하고, 영리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신이 되면 옆에 대리자로서 두고 싶을 정도였다.
'미안하다. 내 속인 대가는 나중에 갚지.'
에른스트는 신뢰가 가득한 하벨의 눈빛에 조금은 마음이 쓰라렸다.
자신에게도 감정이 있기에 미안함을 느낀 적이 얼마나 많던가.
에른스트는 마차에서 벗어나자 표정이 바뀌었다.
'감히 날 배신해?'
마법사의 탑을 바라보는 에른스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없습니다. 그 끔찍한 걸 제가 손에 쥐고 있다면 분명히 버려질 거라 생각했죠. 아니나 다를까, 절 죽이러 오셨습니까? 죽여보세요. 어떻게 되는가. 제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까? 오미너스로 뭘 했을까요?
조금 전 마법사 협회장을 만나면서 들었던 말이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온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배신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시렌인가?'
자신을 극도로 따랐던 에른티안 왕국의 마법사 협회장인 시렌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좀 됐다.
―실망했습니다.
그 쪽지를 마지막으로 정말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놈하고 시렌이 뭔가를 꾸미는 건가.'
에른스트는 일단 하벨을 진정시키는 걸 먼저로 생각했기에 도중에 잠깐 나왔다.
'괜찮다. 말을 듣지 않는 개는 교육하면 그뿐인 것을.'
에른스트는 다시 마법사의 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협회장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만 물러가십시오."
"비키거라."
에른스트는 자신을 막는 저놈들이 너무도 짜증 났다.
'…아. 정말 죽이고 싶구나.'
대체 저놈들이 뭐라고 자신의 앞길을 막다니.
"여기는 마법사 협회입니다. 마법사 협회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 단체로서 아무리 저하이시더라도 이런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다……?"
에른스트는 비웃음을 꺼냈다.
감히.
감히 신이었던 자신의 앞에서 옳고 그름을 정하다니.
저놈들의 모가지를 다 베어버리고 싶었다.
에른스트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다 그대로 멈췄다.
고개가 저절로 움직였다.
소름이 돋아났다.
에른스트의 발끝이 왼쪽으로 틀어졌다.
'왜……?'
의문이 맴돌았다.
'이건 또 왜?'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이상했다.
에른스트는 다급한 걸음으로 창문가에 다가갔다.
허공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 균열 너머로 거대한 손이 뻗어왔다.
"…트, 트, 틈의 세계다!"
누군가 내지르는 소리에도 에른스트는 그대로 밖을 쳐다보았다.
'틈의 세계가 왜 또 열리는 거지?'
에른스트는 귓가에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였던 이오르틴.
그 세계에서 쫓겨나기 전에 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는 끔찍한 소리였다.
'…대체 무엇이?'
에른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무너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숨을 참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저 망할 괴물들이 하벨 티에라가 있는 마차로 향하질 않는가.
'안 돼! 거긴 안 돼!'
에른스트는 급하게 달렸다.
망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고,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끔찍한 상황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
하벨 티에라 뒤에 열린 틈의 세계가 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라르웬 티에라가 눈치를 채고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늦었다.
1초, 아니, 많아봤자 2초 차이 정도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틈의 세계는 이미 하벨 티에라를 삼켜버렸다.
"…안 돼에에!"
에른스트가 소리를 질렀다.
절망감이 그의 눈동자에 드리웠다.
'…누구야! 누구냐고!'
에른스트는 상황을 알아봐야만 했다.
대체 누가 멋대로 틈의 세계를 열고 하벨 티에라를 데려간 건지.
그래서 찾아와야 했다.
'찾아야 한다. 찾…….'
잠깐 에른스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하벨 티에라가 밖으로 나온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겠는가.
지금까지 틈의 세계에 삼켜지고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이 있던가.
없기에 더 값진 게 아니겠는가.
'버티거라, 하벨 티에라.'
에른스트는 속으로 흡족함을 드러내며 하벨 티에라를 구하기 위해 슬쩍 빠지고자 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따라온 저 쓸모없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에른스트는 말문을 열었다.
"다들 듣거라. 지금 틈의 세계가 나와 당황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부터……."
"…저하!"
뒤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에른스트는 고개를 돌렸다.
'…클로저?'
에른스트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어떻게 이렇게 금방.
"저와 클로저가 제가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저하."
재수 없는 크로니안이 자신에게 다가와 싱긋 웃었다.
* * *
"…읍읍."
하벨이 손바닥을 두드리자 그를 납치한 자가 그제야 손을 뗐다.
"아, 너무 몰입했어요."
해연이 웃었다.
"아니. 아주 좋았는데?"
하벨은 해연을 칭찬하며 활짝 웃었다.
곧 하벨은 시선을 돌렸다.
그저 까만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다 하벨은 깜짝 놀랐다.
"…여기에 물이 있어?"
"예. 여기도 물이 있어요. 아주 조금이지만요. 저희가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용왕님이 이곳에 있을 때, 물이 더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에요."
해연은 씁쓸함을 드러냈다.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싶어 당장 생각하는 부분을 언급했다.
"원래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세계의 틈에 있기에 빛이 닿지 않지만, 물이 있기에 여러 가지가 태어났죠. 생명의 신비를 직접 봤어요."
해연은 세월 속에 묻어뒀던 감정을 조금씩 꺼내보았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이곳을 버틸 수 있게 해주던 것이었는데, 물이 사라지자 모든 게 죽어버리고 사라졌다.
"이제는 괜찮아요. 전부 다요. 이제 저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 아버지를 보러 가요."
자신의 아버지, 유렌을.
"아니야, 해연아."
하벨은 해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하벨이 건넨 손을 보며 왠지 두려움에 휩싸였다.
"뭐가… 아니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희망을 품어도 돼."
아.
해연은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이해했다.
"저는… 희망이 두려워요. 정말 많은 희망을 품었어요. 이 고통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해연은 욱하고 올라온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제 무슨 짓인지.
하벨을 도우러 왔는데 하소연이나 하고. 진짜 꼴불견이었다.
"해연아."
하지만 하벨은 옛날과 똑같은 얼굴로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해연은 그 손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제 손을 많이 잡아주셨잖아요."
"그럼."
"저 꽉 잡아주세요."
해연은 하벨의 손을 붙잡았다.
이 손을 잡고 유렌에게 수없이 많이 갔었다.
지금은 다른 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희망이 두렵다고 했잖아요?"
해연은 천천히 그때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말했어."
"그래도 믿었어요. 그래도 희망을 품었어요. 꼭 용왕님만은 지킬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거든요."
해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왠지 두려움이 차차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됐네요? 제 옆에 희망이 같이 손을 잡고 걷고 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해연아. 날 믿고 희망 하나만 더 품어볼래?"
"어떤 희망이요?"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요?"
해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벨의 손을 잡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믿을게요. …꼭이요. 꼭 믿을게요."
누구 말인데 믿지 않을까.
자신을 수족에게서 구해준, 자신의 영웅이 믿어달라고 하는데 믿어야지.
"용왕님."
"응?"
"아버지 말이에요."
"…미안해, 해연아."
하벨의 고개가 살짝 숙어지자 해연은 하벨 앞에 섰다.
"제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전 이미 각오했어요. 오래전부터요."
해연의 손가락이 하벨의 손등을 쓸었다.
예전에는 이 손이 아주 컸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훨씬 작았다.
"어정쩡한 각오였다면 애초에 아버지와 척을 지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아버지도 좋고, 용왕님도 너무 좋아요. 하지만 틀린 건 틀린 거예요. 이걸 알려준 건 아버지니까 제가 지킬 겁니다."
해연의 강직한 눈빛에 하벨은 자신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내가 자안을 만나서 여러 가지를 들었어."
"네."
해연은 하벨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세뇌를… 당했다고 그러더라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없다고."
하벨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금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에른스트가 레놀드 왕국을 세뇌했다는 걸 알아버렸어. 한 왕국 전체를 세뇌할 수 있는데 내 사람들한테 세뇌를 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
세뇌를 당한 거라면 그들 역시 피해자가 아닌가.
불안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흔들렸어."
하벨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흔들리고 있어."
"용왕님. 저는 일단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먼저니까요."
"넌 만났어?"
하벨이 해연에게 물었다.
"아뇨. 저도 아직 못 만났어요. 하지만 류아가 이걸 줬어요."
해연이 품에서 부적을 꺼냈다.
허공을 향해 날리자 나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 몸통을 부딪쳤다.
"여기네요."
해연이 커튼을 걷듯 검은 부분을 걷자 안에서 빛이 쏟아졌다.
"밖이에요. 저흰 이렇게 이동하거든요."
"진짜 신기한데?"
하벨의 눈동자에 빛이 어리자 더 환하게 반짝거렸다.
"이곳에는 밖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엄청 빠르죠. 속도를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냥 나가면 되는 거야?"
"네. 그냥 나가시면 돼요."
해연의 말에 하벨은 호기심을 느끼며 발을 내디뎠다.
밖이었다.
다 낡아 버린 오두막 앞에 놓인 나무로 만든 탁자 앞에 류아도, 그리고 유렌도 보였다.
주변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하벨이 그대로 멈췄다.
마음이 복잡했다.
"용왕님."
해연이 하벨을 불렀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물이 뽀글뽀글하며 땅 위로 새어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아직 분노하기에 이릅니다."
"그렇지? 내가 성급했지?"
하벨은 싱긋 웃었다.
한 걸음.
손아귀에 물이 스며들었다.
두 걸음.
발밑에 물이 가득 올라온 걸 느껴졌다.
세 걸음.
하벨은 물을 타고는 그대로 유렌 앞에 돌진해 주먹을 휘둘렀다.
손가락에 짜릿한 맛이 돌았다.
우당탕!
탁자고, 뒤에 있는 나무고 뭐고 간에 부서지고 부러지면서 뿌연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하벨은 활짝 웃었다.
너무 해맑았다.
"네놈한테 뚫린 자리가 욱신거려서 견딜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