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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40화 (340/415)

340화. 한 놈 더(2)

* * *

'…나왔다.'

하벨은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말로 대신들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

라르웬은 기가 찬 소리를 내며 클로저용 연락용 아이템을 꺼냈지만, 먹통이었다.

망할.

"네. 잘 나오네요. 기가 차서 그런가 모르겠네요."

할 수만 있다면 하벨은 목청을 높여 웃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자신이. 용왕이 돌아왔다고.

"햇님아."

"으, 으응?"

뭔가 수상쩍은 하벨의 목소리에 칼리우스는 괜히 불안해하며 대답했다.

"내가 아까 너한테 여러 가지 부탁했던 거 기억해?"

"응. 기억나. 지금 하면 되는 거야?"

칼리우스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하벨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시작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머릿속에 싹 지워버리고 지금은 내 힘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틈의 세계가 등장했다는 사실 역시 막아줬으면 좋겠어."

"…내, 내가 도움이 되질 못 했어?"

갑작스럽게 바뀐 하벨의 지시에 칼리우스는 그 충격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대로 주저앉아버릴 것처럼 슬픔이 몰아닥쳤기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아까 내가 오미너스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걸 주저했기 때문에…….'

칼리우스의 가면을 향해 물이 튀겼다.

"햇님아. 지금 정령들이 있잖아? 너는 조금 전에 무리도 했고."

"나는 무리한 적……."

"마법을 이중, 삼중으로 겹친 거 다 봤어. 그러니까 지금은 네가 좀 쉬엄쉬엄했으면 해."

[맞아!]

아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대장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리는 건 우리도 할 수 있어.]

에헴.

아라는 리본을 잡아당기며 으쓱거렸다.

기사들을 따라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는 정령들의 숫자도 꽤 많았다.

[그런데 이 몸은 대장이 쉬었…….]

"내가 너를 믿지 않는 일은 절대 없어. 널 믿어, 햇님아."

하벨은 자연스럽게 아라의 말을 자르고 다시금 칼리우스에게 물을 튕겼다.

그토록 작았던 용을, 세상에서 유일한 용을 위해 자신이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제발 너한테 적용하는 게 어때?"

라르웬의 긴 한숨에 하벨은 키득거렸다.

"당연히 제일 먼저 적용하죠."

"이… 거짓말쟁이야."

라르웬은 겨우 언성을 낮췄다. 지금은 하벨이 집중해야 할 순간이었으니까.

"아라야. 얘들아."

하벨은 아라와 정령들을 불렀다.

이제 시작할 차례였다.

[자, 잠깐만. 지금 틈의 세계가 나왔잖아? 저건 괴물이야. 안 죽는다고! 도망쳐야지!]

오미너스를 없앤 하벨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라탄은 하벨과 아라가 걱정되어 그를 말렸다.

[맞아. 저건 진짜 위험해. 도망가. 안에서 어떤 괴물이 기다리는지 모른다고.]

정령들 역시 동의하며 하벨을 말렸다.

"생각한 준 건 고마운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어."

하벨은 투쟁심을 드러내며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계속 틈의 세계에 대신들이 튀어나올 걸 기다리며 준비했다.

[시작할게, 대장!]

아라가 앞발을 앞으로 뻗자 바람이 일어나 주변을 감쌌고, 정령들이 아라를 따라 덩달아 바람을 일으켰다.

[흙아. 일어나줘.]

아라의 부탁과 함께 바람 속에 흙먼지가 뒤섞여 외부에서 안으로 볼 수 없게 시야를 흐렸다.

휘이이이잉!

거친 바람 소리가 칼리우스의 손짓 하에 멈췄다.

"지금 바로 내 주변에서 떨어지고, 말릴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도, 나를 말리지 마십시오."

하벨은 누군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대신들이 에른스트를 위해 이곳에 오미너스를 퍼트렸으니 그 오미너스로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 할 차례였다.

파아아.

하벨을 향해 갑자기 빛이 퍼지자 그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엘라힘이 손을 뻗고 있었다.

"조금 전 전투로 지치셨을 겁니다. 신의 은총으로도 피로가 회복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엘라힘의 말에 하벨은 깜짝 놀랐다.

저들이 믿는 신은 사라졌고, 엘라힘의 힘은 고갈되는 힘이었다.

"이렇게 막 쓰면 안 되잖습니까."

"신관이 이곳에 개입했습니다."

"…예?"

"이곳에 오미너스를 가지고 온 건 지금 달님께서 생각하시는 그자가 아니고, 신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쩌어어억.

허공에서 생긴 틈의 세계가 더욱 벌어졌다.

"신관이 이곳 헤스트리아 왕국에 왔고, 그 후에 오미너스가 나타났습니다."

엘라힘의 말을 이어 넬시아가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그놈들이 나타났다고 했어. 지금 알려줘서 미안해. 시간이 부족했어."

오미너스를 없애야만 했기에 알려줄 틈이 나질 않았다.

넬시아는 잠깐 굳어진 하벨을 향해 다가가려다 그의 목소리에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물러나십시오. 이게 조절이 안 돼서 휘말릴 수 있습니다."

어느새 하벨의 손에는 물이 가득했다.

"아라야.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겠지?"

[응응! 이전에 한 번 해봤어!]

하벨의 어깨에 올라선 아라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라 역시 집중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물의 온도를 빼앗아 물을 얼려야 했다.

하벨은 틈의 세계에서 천천히 등장하는 대신을 기다리지 못하고, 물을 밧줄처럼 던져서는 팔을 묶었다.

"…저런."

팔에 휘감겨도 대신은 그저 무덤덤했다.

"이렇게 당돌한 자는 처음 보는구나."

하벨이 물로 된 밧줄을 당겼음에도 대신은 저항 없이 당해주며 땅에 떨어졌다.

강한 흥미만 느끼던 대신은 태연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흙먼지가 주변을 휩쓸고 있지 않던가.

"이상하구나."

대신은 혼잣말을 모두가 들릴 수 있게 내뱉었다.

"왜 나를 기다린 것처럼 보이지?"

물이 대신을 휘감자 그는 하벨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가면이라. 왜 하필 물을 쓰는지. 불쾌하네."

대신은 손을 뻗었다.

촤르르륵.

불길함이 감도는 철퇴가 대신의 손에 쥐어진 순간 하벨이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딱딱!

[하압!]

아라의 기합과 함께 온도를 뺏긴 물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파사사사사.

대신은 누운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어서는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나."

이렇게까지 자신을 보고도 겁 하나 내지 않고, 오히려 당돌한 저 모습에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하벨이 대신에게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손끝에 물이 맴돌았다.

발로 대신의 복부를 밟고 손에서 한껏 끌어올린 용왕의 힘이 하벨의 손아귀에서 뻗어 나왔다.

스르르 만들어지는 물의 검에 대신은 표정이 굳어져 갔다.

뭔가 이상했다.

기분이, 일렁거리는 가슴이, 어쩐지 서늘하게 다가오는 느낌마저 다 이상했다.

하지만 대신은 그 감각이 무엇인지 알기엔 너무도 긴 시간을 흘려보냈기에 천천히 생각해야만 했다.

"서황도 이렇게 죽었어."

하벨이 서황을 언급하며 대신의 목에 검을 겨눴다.

순식간에 대신의 표정이 흘러내렸다.

"자안아."

하벨은 가면을 벗고는 빙그레 웃었다.

깊게 감았던 눈을 뜨자 푸르게 물든 눈동자가 보였다.

눈알이 튀어날 것처럼 점점 커진 자안의 눈동자 속에 현실을 부정하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럴 리가."

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른 눈동자 속에 여러 푸른색이 맴도는, 혹여나, 꿈에서라도 볼까 두려웠던 눈동자 색이 보였다.

"…그럴 리가."

자안은 다시 현실을 부정했다.

가슴 속에 또 이질적인 감정이 흘렀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기란 어려웠다.

이제야 메말라버린 감정에 비가 내려와 하나씩 느끼던 중이었다.

자꾸만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머리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럴 리가 있냐고?"

속닥거리는 말임에도 하벨의 목소리가 자안의 귀에 닿았다.

"그럼 알려줄게."

하벨이 검을 겨누지 않은 손으로 하늘에 뻗었다. 허공에서 나타난 물이 창이 되어 자안의 두 팔과 다리를 찍어버렸다.

콰악!

"…끄아아악!"

자안은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비명을 질렀다는 사실에 놀라며 자안은 얼굴에 핏대가 가득 올라온 상태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현실 같아?"

"…왜에, 으으윽!"

"왜 아프냐고? 이상하네. 내가 더 아팠는데."

하벨은 손을 들고 자신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 내 가슴을 뚫었잖아."

"…허어."

자안은 숨을 삼켰다.

부정하고 부정해봤지만, 더는 올라오는 사실을 삼킬 수가 없었다.

"바로 네가."

자신을 보며 장난스레 웃는 얼굴이 너무도 닮지 않았는가.

비록 푸른 기가 가득 돌고 있으나, 저 머리카락 색 하며 눈동자며,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용왕이시여."

자안의 머릿속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제야 목을 겨눈 검이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그래.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하벨이 활짝 웃었다.

저 미소를 보자 피부로 와닿는 건 공포였고, 온몸을 휘감고 있는 건 절망감이자 섬뜩함이었다.

"요, 요, 용왕님."

"그래, 자안아."

"대체 어떻게……."

"어떻게 돌아왔냐고? 섭섭하네, 자안아."

하벨은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말을 꺼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돌아왔냐가 아니라 오랜만이라며 반갑다고 해야지."

"그게. 그게……."

―용왕님! 저놈이 수작 부려요!

물이 당장 고자질을 하자 하벨은 검을 들어 복부를 찔렀다.

콰직!

"끄아아아악!"

자안의 비명과 함께 피가 옷에 튀었지만, 하벨의 손짓에 피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쉬이이. 자안아. 나는 지금 이런 장난은 용납하고 싶지 않아. 지금 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하는 게 먼저잖아?"

하벨이 발로 자안의 팔을 밟자 하벨의 발부터 얼음덩어리가 올라왔다.

[대장 혼자… 얼음을 만들었어.]

아라가 깜짝 놀라며 하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공기를 따라 허공에 떠돌던 물이, 땅 밑에 숨어 있던 물이, 이 땅에 숨 쉬듯 놓여 있는 물이 덩달아 분노하는 게 느껴졌다.

하벨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라는 그제야 이해했다.

[지, 진정해, 대장! 지금 화내면 큰일 나. 대장 그러다가 저번처럼 되면 어떡해!]

아라는 놀라며 하벨을 쓰다듬었다.

그때처럼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져버릴 것 같아 무서웠다.

하벨은 아라를 보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왠지 평소와 달리 여전히 날카롭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기다렸어. 물론, 네가 나올 줄은 몰랐지."

하벨은 서황을 만난 후로 내내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있었다.

다음에 대신들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서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 들어본 것처럼 행동하는 그 모습에 답을 알고야 말았다.

'서황을 죽인 사실을 누군가 막았다.'

그게 누구겠는가.

―우리의 생명은, 아니, 틈의 세계에 얽힌 모두가 그자 손에 달려 있어요.

해연이 말한 대로 모든 틈의 세계를 관리하는 지배자는 유렌이었다.

이번에도 유렌이 개입했다.

―저도 유렌이 어떤 마음으로 제게 그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렌이 알려주었습니다.

류아가 말하길 하벨 티에라가 용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유렌이라고 했다.

그리고.

―회귀, 빙의.

자신의 재시작이자 모든 사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그 사건들.

―이 모든 게 유렌이 도왔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것마저도 유렌이 도왔다고 류아가 말했기에 하벨은 잠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아무리 부정해도 자신을 죽인 것도, 살린 것도 전부 유렌이었다.

'…더럽게 비참하다.'

하벨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가까스로 막으며 자안에게 질문했다.

"나를 죽이고, 너희를 영원토록 죽지 못하게 만든 에른스트 말이야."

"…저, 커헉, 저를 죽이면 에른스트가 알아챌 겁니다."

"글쎄. 에른스트가 왜 나라고 알아채는지 모르겠네."

하벨은 머리를 굴리는 자안이 너무도 우스웠다.

"이 와중에 협상이라니. 대단한데? 아직 덜 무서운가 봐?"

"그, 그, 크흑, 그게 아닙니다. 제가, 제가 에른스트와 가장 많이 보기에 사라지면 눈치챌 겁니다."

"왜 그렇게 에른스트와 많이 봤을까?"

하벨은 잠깐만 검을 휘젓자 비명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유렌의 상황을, 으윽, 중간에 알려주는 역할을 바로 제가……."

"자안아."

"예, 예."

"내가 예전에도 말했는지 모르겠네."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안은 숨을 헐떡거리며 하벨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몸에서 빠져나간 피가 다시 차는 기분이 들지 않고, 점점 죽어간다는 느낌이 몰려와 미칠 지경이었다.

"넌 너무 하나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뭐, 그래서 나를 배신했겠지. 영원히 죽지 않는 힘, 그런 거에 이끌렸을 수도 있으니까."

자안의 장점이었고, 곧 단점이기도 했다.

하벨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 기뻤다.

그때와 저들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지식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는 의미이며 저들에게 발전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아직도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까지.

"이럴 때는 말이야. 네가 사라지면 오히려 더 좋아."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보아하니까, 에른스트와 유렌의 사이가 나쁜가 봐. 아니면 서로 견해 차이가 있든지 간에."

"아닙니다……!"

자안이 소리쳤다.

눈동자에 희망을 발견한 듯 반짝거렸다.

"다릅니다. 상황은 용왕님께서 생각하신 것과 달라요."

"다르다고?"

하벨은 자안의 눈에 깃든 탐욕을 읽자마자 검을 비틀었다.

"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고, 하벨은 콧노래를 불렀다.

"자안아."

하벨은 발로 자안의 얼굴을 건드렸다.

"아직도 내가 멍청한 그때의 나로 보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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