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부메랑(3)
* * *
"자자, 일단 다들 물러나세요."
하벨이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펼쳤던 물을 움직였다.
일부는 정령들을 향해, 일부는 범위를 좁혀 나갔다.
"너는 찍고 있고."
셴을 가리키는 하벨의 손가락이 매서웠기에 셴은 고개를 끄덕였다.
훗일을 위해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벌어진 이 참상을 모두가 기록해야만 했다.
"라탄."
하벨은 라탄을 불렀다.
라탄은 하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켜봐."
무엇을?
라탄은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너는."
하벨의 시선과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오미너스를 향했다.
"가만히 있거라."
날카로운 손끝과 함께 번져가는 하벨의 말이 힘이 되어 오미너스를 집어삼키고, 휩쓸었다.
쿠우웅.
―이, 이거, 왜 이래?
오미너스는 그대로 바짝 굳어져서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물이 닿아 몸이 녹아내림에도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가까웠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게 저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왜겠어, 이 멍청아!
―그래 이 바보야! 네가 용왕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물이 코웃음을 치자 정령들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 말을 걸어도 쳐다도 보지 않던 물이 저 인간을 '용왕'이라 부르며 감싸주는 것도 모자라 존칭마저 사용하다니.
정령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벨로 향했다.
하벨은 움직이지 못하게 된 오미너스를 잠깐 물로 감싸고, 헤스트리아 왕국을 덮었던 물의 범위를 좁히며 돔 형식으로 만들어나갔다.
"너 뭐 하는 거야?"
라르웬이 언성을 올리며 물었다.
범위를 좁히는 건 좋았지만, 물이 자신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오미너스와 하벨, 이 둘의 무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이거 당장 안 치워?"
"너무 화내지 마요. 여긴 1차 방어막이에요. 오미너스는 여기 밖에도 있으니까요."
잔잔하게 퍼져가는 하벨의 목소리에 라르웬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알고 있었다.
오미너스를 누가 처리해야 하는 게 옳은지 알아도 저 앞으로 다가갈 수 없는 사실이 비참했다.
하벨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형님. 여기는 내가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다른 부분을 부탁합니다.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겠네요. 이렇게 칠칠치 못하네요."
뒤를 부탁한다는 하벨의 말에 라르웬은 숨을 삼켰다.
저 부탁이 뭐라고. 언제 비참했냐는 듯이 라르웬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 너는 앞만 봐. 네가 하지 못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하벨은 여러 가지로 참 고마웠다.
자신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데는 아라와 칼리우스의 도움이 컸고, 뒤에는 저토록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바쳐주고 있었다.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은 자신의 가족들이 아닌가.
하벨은 힐끔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자리를 잡고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 칼리우스가 해야 하는 게 많기에 꼼짝도 할 수 없을 테지.
자신의 저주를 막으며 에른스트에게 이 사실이 가지 않도록 얇은 실로 된 힘을 막고, 자신의 힘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게 지금 마법까지 두른 상태였다.
얼마나 바쁠지 이해했다.
곧 하벨은 자신의 가슴팍을 쳐다보았다.
칼리우스의 마법이 사용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고맙다, 용용아.'
하벨은 자신의 물을 주입한 정화제가 제 손에서 빙그르르 움직이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물로 가자."
[응응!]
아라의 대답과 함께 물을 주입한 정화제가 물로 모습을 바꾸며 손끝에서부터 춤을 추었다.
"부탁합니다."
오미너스가 도망가지 못하게 바닥까지 물을 둘렀지만, 그래도 이 땅에 있는 모든 오미너스가 모인 건 아니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왜 없겠는가.
"잠깐만! 정말 너 혼자 상대한다고?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넬시아가 하벨이 친 물의 벽을 건들며 말했다.
"톰톰. 저 벽을 좀 치워줘!"
[이, 이건 안 돼. 권한을 넘어버렸어.]
톰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하벨이 부른 저 물은 정령인 자신조차 건들기 어려울 만큼 한층 높이 선 존재에 가까웠다.
본능이, 제 몸에 흐르는 정령수가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위야, 위!]
톰톰의 외침과 함께 넬시아의 고개가 위로 돌아갔다.
분명 하벨이 오미너스를 감쌌거늘, 밖에서도 검은 물이 허공에 떠올랐다.
넬시아의 두 손에 흙으로 된 검이 만들어졌다.
저 안에 있는 오미너스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아라를 따라온 정령들이 밖에 있었다.
하벨이 그들 주변에 물로 보호하고 있어도 무조건 깨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한테 부탁한 거지, 하벨?'
넬시아는 숨을 짧게 내쉬며 헤레스가 준 액체를 두 검에 바르고는 힘껏 휘둘렀다.
찰싹!
소리가 겹쳤고, 더 큰 소리가 안쪽에서부터 들려왔다.
하벨이 물로 된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의 주변에 채찍이 휩쓸 듯 물이 바닥을 긁고, 오미너스의 외관을 쓸었다.
―아파!
"그럼, 얌전히 사라져."
오미너스가 주변으로 퍼지더니 하벨을 향해 고드름처럼 내려왔다.
―싫어. 나를 아프게 하지 마!
하벨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던 물이 검은 물을 꿰뚫었다.
꼭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치이이익!
―아프다고!
녹아내리는 건 오미너스였고, 비명을 지르는 것도 오미너스였다.
하벨은 다른 손에 용왕의 힘으로 된 물을 끌어왔다.
"번개로 가자."
하벨은 발에 바람을 두르며 아라를 슬쩍 건드렸다.
[좋아! 이 몸이 보조해줄게!]
아라가 하벨의 발에 두른 바람을 더 불러왔다.
다시 보석으로 돌아간 정화제가 번개로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파지직.
하벨은 몸을 뒤로 빼서는 왼손에 용왕의 힘으로 만든 물을 채찍처럼 길게 뻗어내 흩어진 오미너스를 휘감았다.
촤르르륵.
[으앗! 너무 움직이면 안 돼! 아파!]
하벨이 움직이자 아라가 기겁했다.
"달님! 안 됩니다!"
벽으로 된 물이 흔들리며 헤레스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려왔다.
"괜찮아, 비야. 진통제 먹었어."
하벨은 물로 휘감긴 오미너스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뒤로 길게 빼서는 창처럼 만들어 오미너스를 향해 던졌다.
몸이 흔들리며 배가 욱신거려왔다.
파지지직!
창이 날아가 오미너스의 몸을 파고들었다. 번개가 퍼지자 펄펄 끓었다.
―이러지 마! 제발. 우웨엑.
오미너스가 무언가를 토해내자마자 하벨은 땅을 일으켜 밖으로 떨어진 그들을 조심스레 감싸 자신의 뒤로 살포시 놓았다.
그건 정령들이었다.
녹아내리면서 오미너스의 크기가 줄어들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불!"
하벨의 목소리와 함께 번개의 모습을 띠었던 정화제가 불로 바꾸며 오미너스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화르르륵!
―뜨거워! 뜨거워!
딱.
하벨은 한 번 더 손을 튕기자 아라가 정령수를 넣고, 정령들이 물의 벽에 매달려 아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환의 길에 정령수가 빙그르르 돌며 하벨의 손에 또 다른 정화제가 튀어나왔다.
―나는 부탁했어. 몇 번이나 그만하라고 부탁했다고!
오미너스가 녹아내리는 부분을 버리며 다시 모습을 바꾸었다.
화가 난 표정.
하벨은 저 모습이 너무나 역겹다고 생각했다.
―이제 안 봐줘.
오미너스가 손을 휘젓자, 밖에서 소리가 났다.
하벨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흩어지고 숨어 있던 오미너스가 한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대, 대장! 앞! 앞!]
―용왕님 앞 좀 봐요!
아라와 물이 기겁하는 소리에 맞춰 하벨은 손을 뻗었다.
하벨의 앞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하벨을 베어낼 기세로 다가오던 오미너스가 본능적인 두려움에 놀라 천장으로 된 물의 벽에 바짝 붙었다.
파도가 사라지자 오미너스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몸을 옆으로 크게 휘두르자 검은 물이 넓게 퍼지며 하벨을 향해 날아왔다.
"식물!"
하벨의 말을 따라 아라가 정화제를 바꿨다.
식물이 자라나 벽을 이뤘고, 하벨은 그제야 뒤를 쳐다보았다.
밖에서 나타난 오미너스는 자신이 상대하는 오미너스보다 작았지만, 방금 하늘을 에워쌌던 모습 그대로 작게 쪼개져 비처럼 내릴 것만 같았다.
그때, 하벨의 눈에 마법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중첩된 마법이.
"여기는 신경 쓰지 마!"
칼리우스가 외쳤다.
"내가 힘내볼게!"
조금 전에 망설였던 그 마법을 칼리우스가 사용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도 보좌하고 있습니다!"
헤레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래."
하벨은 씩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열어!
샥샥샥!
식물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거 열라고!
자신의 몸뚱어리가 녹아내리더라도 식물로 이루어진 벽을 뚫고, 뚫던 오미너스가 기어코 완전히 다 찢어버렸다.
―찢겼다.
오미너스는 하벨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수십 개의 거미 발이 오미너스의 몸에서 나타나서는 까닥거렸다.
[…지, 징그러워.]
아라가 하벨에게 더욱 붙었다.
―찢겼어! 찢겼어! 찢겼어!
환희에 찬 것처럼 긴 미소를 지으며 하벨에게 다가왔다.
그대로 하벨을 꿰뚫려 들이밀던 발바닥마저 작은 짐승의 모습이 되어 하벨을 깨물려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하벨은 태연하게 손바닥을 펼쳤다.
하벨 앞에 물이 펼쳐졌다.
그저 잔 물살이 일어날 뿐, 오미너스는 이 물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아프고 녹아내리는 건 오미너스였다.
―뭐야. 이건 왜! 이건 왜… 안 뚫리는 거야?
"원래 짐승하고는 말을 섞으면 안 되는 거거든."
하벨의 손바닥에서 나타났던 정화제가 하나, 둘, 세 개, 여러 개로 늘어나며 살포시 바닥에 두었다.
"좋아. 마지막은 바람으로 하자."
아라가 바람으로 바꾸자마자 모든 정화제에서 단숨에 바람이 일어나 오미너스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파파파파!
―아파! 아프다고! 너무 아파!
하벨은 숨을 짧게 몰아쉬며 오미너스를 바라보았다.
이미 갈가리 찢긴 게 눈에 보였다.
죽기 전에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짐승 같았다.
가면을 뚫을 정도로 푸르게 물든 하벨의 빛에 오미너스는 그대로 굳어졌다.
―너무해.
하벨은 용왕의 힘을 일으켜 검을 만들었다.
하나, 둘, 셋, 넷, 검이 점점 늘어났다.
―너무해!
바람 뒤에 보이는 하벨의 검들을 보더니 오미너스가 소리쳤다.
―왜 나한테만 그래!
"짐승이여."
하벨의 손이 움직였다.
―나도 너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이제부터 너에게 그 어떤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겠다."
명령이 내려지자 비틀거리던 오미너스가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알 수 없는 힘이 오미너스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치이익.
바닥에도 있던 물에 온몸이 녹아가며 괴로움에 소리치던 오미너스 위로 여러 개의 물로 된 칼날이 내리찍었다.
오미너스가 얼굴을 구기며 눈물을 흘렸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마지막으로 보는 저 아름다운 자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은데.
"이제 사라지거라."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는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치사… 해.
그래도 좋아해.
오미너스가 부글부글 끓다 사라져버렸다.
하벨은 미간을 가득 찌푸렸다.
'겨우 며칠이다.'
오미너스 하나로 나라가 반 이상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고, 정령들이 손 하나 쓰지 못한 채 잡아 먹혔다.
이보다 더 길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아니, 정령들이 더 먹혔으면 어쩔 뻔했는가.
저들에게 지능이 있고, 이곳은 단순히 잡아먹는 학습밖에 되지 못했기에 이 정도에 그쳤을 뿐이었다.
'…티에라 가문도 예외는 아니야. 헤스트리아 왕국이 더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기에 선택했을 뿐이니까.'
이게 티에라 가문의 미래가 될 수 있었다.
하벨은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도와줘서 고마워."
무엇이 되었든 이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직 가슴팍에 마법이 진행되는 걸 보며 아래로 시선을 두었다.
'고맙다, 용용아.'
하벨은 지금 그 마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리려던 차에 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대장. 저기 봐봐.]
아라가 가리키는 자리에 정령들과 저번처럼 반짝거리는 빛이 보였다.
[이 몸이, 이 몸이 할 수 있어.]
아라는 하벨의 옷자락을 흔들다가 그의 발이 잠깐 꼬이자 깜짝 놀랐다.
[미, 미안해, 대장! 이 몸이 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 이 몸의 힘이…….]
아라가 눈을 반짝거렸다.
[이 몸의 힘이 갑자기 강해진 거야?]
"…어, 그냥 잠깐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래. 슬슬 오거든. 느껴지지?"
[응응. 이 몸이… 막을게.]
아라가 부끄러워하며 말하자 하벨은 손을 들고 아라를 쓰다듬었다.
"불편하지?"
[아니야. 이 몸은 괜찮아. 지금은 쉿. 쉿 해야 해.]
아라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지 등이 간지러웠다.
하벨은 아라를 위해 가까이 다가간 뒤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밖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오미너스가 하나씩 바스러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칼리우스와 헤레스의 마법이 거둬지는 걸 보면서 하벨 역시 물을 거뒀다.
"…하."
그제야 하벨은 숨을 돌리고 슬쩍 내민 아라의 앞발을 보며 키득거렸다.
갑자기 그림자가 지자 하벨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
핀잔이 섞인 라르웬의 말에 하벨은 다시금 웃었다.
"힘을 최대한 아꼈어요. 지금은, 음, 충격 같은 거고요."
"일어날 수 있겠어?"
넬시아가 하벨 옆으로 와서는 쪼그려 앉았다.
"내가 부축해줄게."
"다친 곳은 없어요?"
"전혀 없어. 죽을 뻔한 걸 구해준 게 너잖아."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넬시아가 꼭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헤레스와 칼리우스가 달려왔다.
"도……."
칼리우스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헤레스는 당장 무릎으로 슬라이딩을 하는 것처럼 하벨 앞에 도착했다.
바로 하벨의 상태부터 확인하며 헤레스는 말을 아꼈다.
"고생했어."
하벨이 말문을 열자 헤레스는 어깨를 잠깐 올렸다 내렸다.
"햇님아. 진짜 고맙고, 고생 많았어. 잠깐만 쉬고 있어."
하벨은 다른 손을 뻗어 칼리우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이리 와봐."
하벨의 시선이 셴에게 향했다.
"예……."
셴과 그의 뒤에 서 있는 레디나가 함께 움직였다.
"잘 감시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레디나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그곳에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던 기사들이 보였다.
"부디, 도련님의 의도가 잘 들어맞았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머저리들을 죽일지도 모르니까요."
"너, 레디나 같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낄낄거리는 하벨의 웃음에 카샬이 머리를 붙잡으며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아직도 하나가 더 남았다는 것이었다.
카샬은 하벨의 등장과 함께 슬쩍 나왔던 사람들이 자신 쪽으로 한 명씩 걸어 나오는 걸 보았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역겨운지 몰랐다.
쪼르르.
아라가 준 물이 반짝이는 빛에 떨어지자 커다란 꽃봉오리가 솟아났다.
그 꽃봉오리를 보자 정령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라탄 역시 갑자기 나타난 꽃봉오리로 시선을 뒀다.
커다란 꽃잎이 펼쳐지고, 그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령들을 본 순간 라탄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버렸다.
[…으흑.]
새근새근.
잠에 빠졌는지 숨을 쉬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그제야 오미너스로 가득 차 있던 헤스트리아 왕국에 보드라운 향기가 퍼져가는 걸 알았다.
그리움이 가득 담긴 물의 향기였다.
[…고마워.]
라탄은 하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이어 자신들을 구해준 자신의 왕, 아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라탄은 잘못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