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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32화 (332/415)

332화. 탐색(3)

* * *

"……."

카샬과 레디나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미너스가 지금 오고 있다니.

"혹시 농담이야, 도련님?"

칼리우스가 묻자 하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해."

[…으아앗! 그러면 큰일이잖아!]

아라가 허둥지둥거리며 놀랐다.

"진정해, 아라야."

하벨은 키득거리며 아라를 쓰다듬었고, 아라는 꼬리를 잡고는 심호흡하며 출구로 시선을 뒀다.

하벨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카샬이 이를 말렸다.

"도련님? 아직 주사밖에 못 놓았습니다."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오미너스가 오고 있어. 제비뽑기 운도 더럽게 없지."

방금 자신이 사용한 용왕의 힘이 오미너스를 부르는 꼴이 되었다.

그때, 자신은 두 가지를 확인했다.

하나는 오미너스의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공명이었다.

그런데 이 영혼의 공명이 좀 달랐다.

너무도 또렷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내 힘을 사용하고 있나?'

하벨은 긴가민가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화제가 몸에 맴돌아도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헤레스가 준 건 다들 가지고 있지?"

하벨은 헤레스의 마법이 담긴 액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몸이 생각하기에 이름이 너무 길어.]

계속 냄새를 맡고, 귀를 쫑긋거리던 아라가 말을 꺼냈다.

"그건 맞아. 너무 길어. 임시지만,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 음, 헤레스의 분노! 이런 거 말이야."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칼리우스는 싱글벙글하며 다시 하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서 업혀, 도련님."

칼리우스가 자신의 등을 쳤다.

"…진짜 날 업으려고 용용아?"

"응. 도련님이 너무 가벼워서 괜찮아."

[맞아. 대장, 요새 살이 많이 빠졌어. 너무 이상해. 열심히 먹는데. 대장이 기절할 때 말고는 계속 뭘 먹는데.]

슬퍼하는 아라에게 그만큼 기절한 시간이 많았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좋은 생각인데요? 어서 업히세요, 도련님. 지금 달리는 게 많이 힘드시잖아요."

레디나는 발목을 가볍게 풀었다.

이전에 클로저들과 같이 검은 달 간부를 죽였을 때, 하벨이 배에 뚫린 상처를 간과한 채로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헤레스한테 얼마나 혼이 났던가.

속이 후련한 것과 별개로 혼이 나는 하벨의 모습은 어딘가 짠했기에 레디나는 슬쩍 찔렀다.

"또 언니한테 혼나시려고요?"

하벨은 바로 멈칫거렸고, 레디나는 속으로 웃으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아, 언니가 준 그 약은 가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검에다가 바르면 좋지 않을까 해요."

레디나는 헤레스에게 받은 약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레디나! 나 방금 생각이 났어!"

갑자기 칼리우스가 크게 목소리를 내자 레디나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오, 뭐가 생각이 났는데요?"

"레디나가 검에다가 그 약을 바르면 내가 코팅처럼 흐르지 않게 마법으로 잡아줄게. 카샬한테도 해줄게!"

칼리우스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그럼 저 먼저 출발해서 앞이 어떤지 보고 있을게요."

레디나가 어둠에 몸을 숨기자 카샬이 하벨을 재촉했다.

"가시죠, 도련님. 무엇이 효율적인지 아시잖습니까."

하벨은 할 수 없이 칼리우스에게 업혀 움직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렴풋이 빛이 새어 나오는 출구를 보는 순간 아라가 기겁했다.

[으아앗!]

저 너머에 진짜 오미너스가 있는지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기분을 느꼈다.

끼기기긱.

억지로 문을 잡아당기는지 문이 찌그러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정말로 불러들였네요."

카샬이 한숨을 섞어서 꺼내는 말에 하벨은 괜히 머쓱했다.

"봤지? 거짓말이 아니야. 사고 쳤다니까."

"빨리 왔네요?"

레디나가 문에 등을 대며 버티다가 하벨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오미너스가 맞나 봐요."

이제 문을 지킬 이유가 없자, 레디나는 등을 떼며 문을 바라보았다.

작은 틈으로 꿈틀거리는 검은 액체를 본 순간 헤레스에게 받은 액체를 당장 내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쨍그랑!

유리가 깨지며 퍼져나간 내용물에 닿은 검은 물은 그대로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푸르게 물들지 않을 뿐, 마치 물의 저주에 걸린 자의 최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우와.'

레디나가 신기함 반, 징그러움 반 정도의 마음으로 발로 걷어찼다.

파스스.

살짝 닿기만 했을 뿐인데 가루처럼 바스러지고 말았다.

"…효과가 너무 좋은데요?"

레디나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비켜."

카샬이 뒤에서 달리며 레디나를 지나 문을 힘껏 걷어찼다.

콱!

문이 밖으로 튕겨 나가자 그곳에 허벅지에 올까 말까 한 작은 아이가 수줍게 서 있었다.

키득키득.

아이가 웃었다.

"와아아……."

레디나는 손에 헤레스가 준 액체를 꽈악 쥐며 제 눈을 의심했다.

"…이건 진짜 끔찍하네."

하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느낀 오미너스가 바로 저 존재였다.

'대체 얼마나 정령들을 먹은 건지.'

코스모피안 왕국에 있던 오미너스와 달랐다.

검은 물이 기본으로 깔려있을 뿐, 형체가 아이처럼 또렷했다.

"이전보다 더 진화했어."

칼리우스가 차분하게 말하며 하벨 주변으로 방어 마법이 펼쳤다.

[…어떡해. 이 몸은 정령들이 저 속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어.]

아라의 꼬리가 힘없이 쳐졌다.

"아라야, 용용아. 잠깐만."

하벨은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용왕의 힘을 끌어왔다.

자신이 느낀 오미너스가 이 힘이 맞았고, 다른 곳에도 또 느껴지며 동시에 영혼이 제법 가까운 곳에서 공명하는 걸 알았다.

오미너스가 웃음을 멈추고 하벨을 빤히 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오미너스가 마치 어미 새를 발견한 것처럼 다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아라가 그 미소를 보더니 털을 바짝 세웠다. 탐욕이 가득 보였다.

[대장을 노리지 마! 이 몸이 용서 못 해!]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콰악!

눈을 깜박거릴 사이에 오미너스가 칼리우스의 방어막을 향해 들이밀었다.

방어막에 찰싹 붙은 오미너스가 손을 뻗었다.

―그런데 이건 싫어.

투투투투!

물이 요란하게 날을 세우며 손톱을 할퀴듯 방어막을 향해 휘둘렀다.

칼리우스는 마법을 이루는 문양과 글자들이 너무도 쉽게 파괴되는 걸 보며 더욱 튼튼하게 이어붙였다.

[걱정하지 마, 용용아!]

아라가 만든 물이 오미너스를 휩쓸었다.

하지만 오미너스는 오히려 물을 손에 쥐고선 씹어버렸다.

[…이익!]

아라가 만든 물이 부글부글 끓더니 오미너스를 향해 날카로운 날을 드러냈다.

이전과 조금 다른 힘에 오미너스가 잠깐 흔들렸다.

쨍그랑!

그때, 레디나가 액체가 든 병을 던졌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액체가 흠뻑 묻은 칼날을 들이밀며 오미너스를 스윽 스쳤다.

―…어?

오미너스의 행동이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무렵 머리가 도르르 떨어졌다.

머리와 목이 맞닿는 부분이 조금 전처럼 굳어지자 레디나가 눈을 반짝였고, 칼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아!!!

오미너스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저 소리는 하벨의 귀에밖에 닿지 않았다.

―뭔가가 뜯겨나가! 몸이! 몸이 이상해!

'엄청난데?'

하벨은 오미너스가 지르는 비명과 별개로 효과를 다시금 확인하지 않았는가.

'저걸 대량생산할 수 있으면…….'

희망이 하벨의 속에서 꿈틀거렸다.

[카샬. 내가 흐르지 않게 막아줄게.]

레디나를 따라 카샬이 액체를 바른 물을 아코가 멈췄고, 카샬은 하벨을 향해 뻗어오는 물길을 잘라버렸다.

'…진짜 잘리잖아?'

잘리는 느낌이 선명하게 들자 카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러면 무얼 망설이겠는가.

바닥에 기어오는 오미너스를 베어냈다.

칼리우스의 손끝에 마법이 걸리자 하벨은 시선을 옮겼다.

하나, 둘, 셋.

무언가를 하려는지 몰라도 점점 늘어나는 마법이 하벨의 눈에 보였다.

칼리우스가 손을 뻗었다.

오미너스의 몸이 뒤틀리며 속에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오려고 하던 차에 칼리우스가 흠칫거리며 멈췄다.

마법이 사라졌다.

'왜?'

하벨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싫어. 아파. 뭔가 이상해. 이게 왜 아픈 거지? 아플 리가 없는데.

오미너스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굳어진 부분을 과감하게 버리며 물이 된 것처럼 녹아내렸다.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려고 했지만, 하벨의 눈동자가 푸르게 변했다.

"너는 땅으로 스며들 수 없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오미너스의 몸이 부르르 떨리자 카샬이 날린 검이 오미너스의 몸을 파고들었다.

팍!

검의 중심에서부터 헤레스가 만든 액체가 퍼져나가자 굳어버렸다.

"아라야."

하벨은 아라를 부르며 물을 불러일으켰고, 오미너스를 물로 덮쳐버렸다.

콰악!

거대한 짐승이 오미너스를 덮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 마.

치이이익.

오미너스가 녹아내렸고, 하벨은 물살을 일으켰다.

―그러지 마.

"아니."

―제발.

하벨은 오미너스의 간절함을 흘리며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는 비릿함을 삼켰다.

"사라져라."

소용돌이가 일어난 듯 거센 물살에 오미너스가 삼켜버렸다.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은 하벨은 입을 꾹 누르며 용왕의 힘을 멈췄다.

"…하아."

물의 저주와 에른스트가 남긴 저주가 같이 작동해서는 자신의 숨을 틀어막는 것만 같았다.

"괘, 괜찮아, 도련님?"

"괜찮으세요?"

칼리우스와 레디나의 물음에 하벨은 대답할 힘이 없어 칼리우스에게 기댔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괜찮을 리가 없지."

카샬은 주머니를 뒤졌다.

[이 몸이 물을 줄게.]

아라가 하벨에게 물을 주입하며 저주를 쫓아냈고, 카샬이 정화제를 투입했다.

"그런데요, 도련님."

레디나가 하벨의 땀을 닦아주며 말문을 열었다.

"오미너스가 사라진 거 맞아요? 언니가 만든 게 효과가 되게 좋긴 한데요.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리고… 정령들이 나타났다는 반응도 없고요."

레디나가 묻자 하벨이 그녀를 칭찬했다.

"잘 봤어, 레디나. 이건 이곳에 나타난 오미너스의 일부분이야. 아직 더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어."

영혼이 있는 방향은 확실히 알았으니 하벨은 되도록 용왕의 힘을 아낄 생각이었다.

"그럼 일단 여길 나갈까요?"

레디나가 비밀 통로 밖을 가리켰다.

이유야 어쨌건 오미너스 때문에 막혔던 출구가 뚫리지 않았던가.

* * *

"…하. 제가 다시 여기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카샬은 왕실 내부에 일어난 전투의 흔적을 치우며 구시렁거렸다.

"혹시 속이 울렁거리거나, 기분 나쁜 건 없어?"

하벨이 묻자 카샬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저 말고 제발 도련님부터 걱정해주십시오. 저는 지금 왕을 본다면 당장 목을 베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카샬은 왕, 즉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건 잘 생각해, 카샬. 그래도 왕국이니까. 왕을 죽이면 큰일이 날 거야."

"그 정도의 각오라고 생각해주십시오. 그저 지금은 좀 역겹고 불만이 많을 뿐 괜찮습니다. 도련님께서는… 건강에 신경 써 주세요."

카샬은 뒷말을 삼켰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었으니.

하벨에게는 세상을 향한 애정이라도 남아 있기에 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환상이… 보여.

하벨이 처음 그 말을 했을 때 밀려오는 감정이 너무도 컸다.

대체 얼마나 속이 썩어버린 건지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헤레스는 몰라. 내가 말을 안 했거든. 괜히 헤레스를 흔들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저번에도… 환상에 사로잡혀서 그랬고.

심장을 멈춘 일이 환상 때문이라고 하벨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벨은 자신의 가면을 톡톡 건드렸다. 이제 다 얼굴을 숨겨야만 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오미너스가 내 쪽으로 와서.'

하벨은 속으로 생각하며 주변 상황을 눈에 담았다.

'헤스트리아 왕국이 오미너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했어.'

오미너스라는 미지의 생물을 마주하며 생긴 공황과 정령에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상성 때문에 이렇게 됐을지도 몰랐다.

뚫린 벽 사이로 밀려오는 바람이 갑자기 거세지자 아라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대장. 대장!]

아라가 바람을 막으며 즐겁게 목소리를 냈다.

"그래, 아라야."

[바람이 그러는데 주변에 정령들이 있대.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그래! 다들 무사했어! 이 몸의 기분은 지금 우와아아야!]

아라의 눈동자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안내해줘."

[응! 이 몸만 따라와!]

아라가 앞서 나갔고, 칼리우스가 뒤를 따랐다.

"아, 용용아."

하벨은 움직이던 와중에 칼리우스를 조용히 불렀다.

아무래도 조금 전 일이 무척 신경 쓰였다.

"응?"

"혹시 조금 전에 마법을 멈춘 이유가 헤레스가 만든 마법보다 더 뛰어난 걸 만들까 봐 그런 거야?"

하벨은 칼리우스만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더 낮췄다.

오미너스는 오염된 물을 정령으로 만들고자 인위적으로 마법과 조합한 결과물이었다.

헤레스가 저 마법을 파악한 후에 해결법까지 알아내지 않았던가.

당연히 칼리우스 역시 그 해결법을 들었을 테고, 헤레스보다 더 빠르게, 더 쉽게 방법을 찾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방금 칼리우스가 주저했다.

"…헤레스가 날 미워하면 어떡해? 헤레스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는데. 내가 빼앗는 것 같잖아."

칼리우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사라지자 앞서나가던 아라가 앞발로 칼리우스의 볼을 꾸욱 눌렀다.

[아니야, 용용아. 이 몸이 아는 헤레스는 그렇지 않아. 헤레스는 용용이를 엄청 좋아한다구.]

"그래. 오히려 더 고마워할 거야. 헤레스는 널 존경하고 있으니까."

하벨 역시 칼리우스의 말을 부정했다.

헤레스가 바라는 건 오미너스의 종식이었고, 누구든 돕길 바라고 있었다.

"나를? 헤레스가 나를… 존경한다고? 왜?"

칼리우스는 크게 당황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너는 모든 마나의 정점에 있으니까. 마법사로서 너를 존경하는 건 당연하잖아?"

칼리우스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왜 저런 마음을 먹었는지 하벨은 이해했다.

하지만 칼리우스는 이제부터 달라져야 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나의 축복을 받은 용으로써 칼리우스가 마법사를 이끌 의무가 있었다.

"용용아. 네가 아는 헤레스는 이런 일로 정말로 널 싫어할까?"

"…아니. 헤레스는 그러지 않아."

칼리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나 마법이 예쁘다고, 더 큰 마법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준 건 헤레스였다.

"그러면 내가 내식대로 바꾼 마법을 써도 될까?"

칼리우스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지금 헤레스한테 도움이 필요해. 아주 많이. 네가 도와주면 정말로 기뻐할 거야."

"그러면 다음에는 멈추지 않을게. 나는 헤레스가 기뻐하면 좋겠으니까. 내 마법이 예쁘다고 해준 건 헤레스가 처음이야."

칼리우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하벨을 바라보았다.

유약함보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아주 좋은데?"

하벨이 씩 웃자 카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예. 다 좋다고 생각할 테니까, 도련님께서는 제발 입 좀 가만히 두면 안 되겠습니까?"

"도련님의 입은 아무도 막을 수가……."

레디나가 키득거리다가 웃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용용아. 잠깐 멈춰봐."

하벨이 다급한 손길로 칼리우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

앞을 지그시 바라보던 하벨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자 아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대장?]

"저 앞에 정령들이 있지?"

[오오, 맞아!]

"아주 깜찍한 짓을 했네?"

하벨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살짝 찔렀다가 빼내자 물결이 일어나듯 벽이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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