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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30화 (330/415)

330화. 탐색

* * *

하벨의 질문에 라탄은 벌써 주눅이 들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라탄은 웅얼거리며 말했다.

[…맞아. 겉으로 보면 모르겠지만, 안에는 정말로 오미너스가 있어. 그건 정말이야. 내 말을 믿어줘.]

"라탄. 너에게 화가 난 건 맞아.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만약 그랬다면 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왜… 헤스트리아 왕국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내가… 티에라 가문으로 먼저 찾아와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탄은 원망이 아니라 묻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번에 나눴던 말로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니. 그 이유만이 아니야."

하벨은 복잡한 상황을 일단 제외하고 핵심적인 말만 전해주었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 저 안에 오미너스로 가득하다면, 헤스트리아 왕국은 더는 유지될 수 없을 거야. 정령인 네가 탈출했다는 게 바로 그 이유니까."

라탄은 하벨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헤스트리아 왕국을 탈출해야 살 수 있었기에 도망친 건 사실이었다.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 헤스트리아 왕국은 유지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정령사 왕국으로서 제 기능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너를 포함해 다른 정령들까지 맡은 역할을 외면한 게 맞잖아?"

정령들이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령왕 이안이 잠깐 사라진 상태라고 해도 저들은 자발적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했으니까.

[밖에는… 헤스트리아 왕국 밖에 있는 정령사들은 우리한테 상처만 줬어! 헤스트리아 왕국에 있는 정령들은 인간한테 상처받은 존재라고.]

"가엾네."

하벨은 라탄을 딱하게 바라보고는 말았다.

"이제 네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헤스트리아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어딘지 말해 봐봐.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아."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단지 가엾다는 말로 끝날 수가 있는 거야?]

라탄의 눈빛이 매서워지자 아라가 앞발을 꼼지락거리며 언제 끼어들어야 하나 주시했다.

"그럼. 그렇게 끝났을 수 있지. 너희는 현실에서 도망쳤고, 예쁜 동화 속 세상에서 살았잖아?"

마치 왜 당연한 걸 묻냐는 하벨의 태도에 라탄은 부들거렸지만, 하벨은 라탄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속에 어떤 차별과 슬픔과 불행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살았잖아. 나는 말이야. 너희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람들하고 너희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 똑같잖아?"

하벨은 씩 웃었다.

헤스트리아 왕국의 주인이 정령들이라면 그 나라를 망친 원인 역시 정령들이었다.

카샬은 왕자라는 신분이 있었음에도 그가 나라를 버리고 어쩌다 만난 그의 스승인 도멘의 손을 잡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왕자가 나라를 버릴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티에라 가문은, 룬델은 세상을 위해서 저들에게 얼마나 굽혔던 걸까.

이미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저 규모가 큰 마을일 뿐이었다.

"라탄. 너희가 저기 커다란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관심 없어."

하벨은 앞으로 걸어가며 헤스트리아 왕국을 '집'이라고 표현하며 내리깎았다.

"하지만 여기는 밖이야, 라탄아."

카샬이 했던 그 말.

하지만 이번에는 더 크게 들려와 라탄의 눈동자가 너무도 요란하게 흔들렸다.

"저기에서 너희가 강했다면 여기에서는 우리가 강한 것뿐이야. 이게, 지배자였던 너라면 어떤 의미인지 알겠지?"

가면을 넘어 라탄을 향한 하벨의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심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너를 지배할 생각은 없으니까. 소꿉놀이하기에는 너무 커버려서 말이지."

라탄이, 나아가 헤스트리아 왕국의 정령들이 한 행동들을 소꿉놀이라는 어린아이가 할 행동이라 치부하며 하벨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헤스트리아 왕국을 향한 완전한 부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안내해. 정령들을 구하고 싶은 그 마음은 진짜잖아?"

속삭이듯 들려오는 하벨의 말에 라탄은 복잡하게 맴돌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하벨이 헤스트리아 왕국은 돕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하지만, 정령들을 돕는다니.

[정령들을, 우리를 정말로 도와줄 거야?]

라탄이 그제야 헤스트리아 왕국과 정령들을 따로 두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였다.

헤스트리아 왕국이 곧 정령들로 이어지는 생각을 막아야 저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헤스트리아 왕국이 필요가 없을 뿐, 정령들은 달랐다.

아라를 위해서라도, 룬델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있어야 했으니까.

진실을 외면한 헤스트리아 왕국의 정령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정령들을 앞세워 실질적인 이득을 누려온 자들은 우습게도 사람이 아닌가.

"당연하지. 우린 세상에 유일한 정령사 가문인 티에라니까. 우리가 너희를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어? 이제 안내해줄래?"

하벨은 잠깐 가면을 벗어 활짝 웃었다.

처음 보는 그의 환하디환한 미소에 라탄은 울컥하며 잠깐 눈물을 내보였다.

이게 티에라 가문이구나.

[그럴게! 안내해 줄게!]

라탄은 눈물을 닦으며 얼른 앞으로 날아갔다.

'…넘어갔네.'

카샬은 다시 주섬주섬 가면을 쓰는 하벨을 바라보았다.

하벨 역시 자신을 보는지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련님께서 이유 없이 라탄에게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테지.'

카샬은 비로소 십여 년 만에 돌아온 헤스트리아 왕국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바로 저곳에, 죽어서도 감히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성벽에 어머니의 목이 걸려 있었다.

나가지도 못하고, 설령 나갔더라도 다시 들어올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이 기억이 났다.

그때도 아득히 높아 보였던 벽은 여전히 높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큰 감옥처럼 보였기에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나오지 못했으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랐을 테니까.

'아마 도련님께서는 저 정령들을 이용해 아예 헤스트리아 왕국을 패망하게 만들 셈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라탄에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이미 헤스트리아 왕국의 힘은 정령들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꼴 좋다.'

카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여기야.]

라탄은 뒷길을 가리켰다.

이전보다 더 생기가 넘쳐흘렀다.

[여기 구멍으로 들어가면 헤스트리아 왕실로 갈 수 있어.]

뒷길은 호수 바닥에 숨겨져 있었다.

물길을 막을 장치가 있어 물이 빠지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모래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우오오오옵!]

아라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신기함에 앞발을 흔들었다.

[물이 빠졌어! 이 몸이 한 것도 아니구, 대장이 한 것도 아니구, 용용이가 한 것도 아닌데에!]

"여기에… 이런 구멍이 있을 줄이야."

넬시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쪽으로 자주 왔어?"

라르웬이 묻자 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트리아 왕국으로 가려면 무조건 저 다리를 지나야 해."

넬시아는 호수를 건너 헤스트리아 왕국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다리를 가리켰다.

"이 호수가 정령들이 정화한 호수라고 하지만, 정화되는 때가 있었어."

[맞아. 헤스트리아 왕국으로 누군가 오기로 약속하면 우리가 저기 호수를 정화시켰어.]

라탄이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여기에 진짜 비밀 통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넬시아는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상은 안 해보셨습니까? 왕국 앞에 바로 있는 호수라니. 되게 수상하잖아요."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하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상이야 해봤지. 이 호수를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하벨. 너는 여기에 올 수 없겠는데?"

넬시아는 정화가 멈춰 한껏 오염된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오염된 눈이 내렸고, 그 눈이 호수에 떨어져 독에 가까운 수준으로 오염됐기에 이 밑으로 하벨이 들어간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맞습니다. 이 밑으로는 무조건 가면 안 됩니다."

헤레스 역시 딱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하벨. 그대의 힘으로 이 물을 걷어내면 되는 거 아니오?"

여하가 묻자 칼리우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련님이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한 번 발동된 저주가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저기 안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 함부로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

"제 생각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미 하벨 공의 가슴팍에서 검은 연기가 꿈틀거리는 게 보이니까요."

머뭇거리던 엘라힘이 말문을 열었다.

"거, 검은 연기요?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헤레스가 놀라 묻자 엘라힘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부터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막내야!"

라르웬이 하벨을 쳐다보며 날을 세웠다.

"놀랄 거 없어요. 오미너스에 에른스트의 힘이 섞여 있고, 여기에 내린 눈에도 그럴 테니 저주가 반응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하벨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려왔다.

"그럼 칼리우스, 그대가 하면 되는 거 아니오?"

여하는 칼리우스의 힘을 알기에 물었다.

"아앗……! 맞아! 내가 할 수 있었어! 여하는 정말 똑똑해!"

도중에 깜짝 놀란 칼리우스가 눈에 힘을 가득 주었다.

"아니. 그건 안 돼."

하벨이 칼리우스를 말렸다.

"나 할 수 있어. 믿어줘, 도련님."

"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지금 잠입 중이라고. 날뛰어도 저 안에서 날뛰어야지. 그리고 용용이 네가 저 물을 치워도… 내가 괜찮을 것 같진 않아. 그렇지, 헤레스?"

"예. 맞습니다. 오염된 물을 치우더라도 이미 모래에 들어간 오염을 거둬내지 않는 이상은 계속 도련님을 공격할 겁니다."

"라탄. 다른 장소는 없어?"

라르웬이 목소리를 내자 모두의 시선이 라탄에게 쏠렸다.

라탄은 순간 당황했다.

"비밀 통로는 하나 더 있습니다."

그때 카샬이 말문을 열었다.

"그럼 쪼개져야겠네."

하벨이 꺼낸 말에 갑자기 조용해졌고, 아라가 하벨의 옷자락을 꼬옥 붙잡았다.

"일단 레디나는 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

넬시아가 레디나를 언급하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벨 옆에 다가가 방긋 웃었다.

"제 내성이 여기서 도련님 다음으로 약한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는데요?"

상대적이긴 하나, 레디나는 이번만큼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럼, 용용이하고 카샬, 레디나, 아라 이렇게 함께 갈게요."

하벨은 같이 갈 사람을 불렀고, 아라는 이름을 불리자마자 행복함에 하벨을 껴안고는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응응! 이 몸은 대장이랑 함께 가야 해!]

"무슨 소리야? 헤레스도 데려가야지."

라르웬이 이를 반박하자 하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나는 내 목표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서 오미너스와 직접 부딪힐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형님과 누님은 다르잖습니까. 그러니 헤레스와 엘라힘 신관님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헤레스는 이번에 오미너스의 움직임을 빼앗을 수 있는 마법과 이를 담은 액체를 만들지 않았던가.

물론, 아직 완벽이라는 말을 헤레스가 올리지 않았지만, 오미너스를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신의 은총을 가진 엘라힘과 함께 한다면 모자란 부분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테지.

[라탄.]

아라가 라탄을 부르자 라탄은 아라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만약에 정령들을 만나면 라르웬이랑 넬시아의 말을 들어달라고 대신 전해줘.]

[왕의 명령입니까?]

라탄이 묻자 아라는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부탁이라는 말과 명령이 가지는 그 무게감이 너무도 달라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라는 결단을 내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라탄. 이 사실은 정령사한테 알려주면 안 되는 비밀이라고 전해. 은밀히 전해주는 거 잊으면 안 되고."

하벨이 아라가 놓친 부분을 직접 언급하자 아라가 꼬리를 바짝 세웠다.

[아앗! 맞아! 그게 엄청 중요해. 중요한 건데 이 몸은…….]

아라가 주눅이 들자 하벨은 아라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줬다.

"괜찮아, 아라야. 너무 잘했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하겠어? 나는 보자, 몇 명이 죽었더라."

[아, 아앗! 이 몸은 괜찮아! 말해주지 않아도 돼!]

아라가 하벨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

진땀을 흘리는 모습에 하벨은 웃음을 꾸욱 참아서는 넬시아와 라르웬을 바라보았다.

"누님, 형님.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신중해지셔야 합니다. 오미너스는 내가 말했던 모습보다 더 진화된 형태를 띠고 있을 거예요."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만큼 오미너스가 실제로 위험하기도 하고."

넬시아가 활짝 웃으며 오늘을 위해 페트리오가 마련해준 가면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나하고 라르웬을 믿어봐."

―용왕님. 저희를 믿어주세요. 이렇게 해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용왕님께서 바라시는 끝을 피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순간 하벨은 류아의 모습과 넬시아의 모습이 겹쳐 보여와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류아와 무날, 태련, 그리고 모두를 믿었기에 자신은 마지막 남은 수족을 습격하겠다는 그들의 부탁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그 끝이 어땠던가.

"…누님. 나는요, 사실 믿어달라는 말이 제일 무서워요."

하벨은 주먹을 꽉 쥐며 넬시아를 바라보았다.

넬시아는 당장 하벨에게 달려가 그를 안으며 토닥거렸다.

"그래서 하벨 네가 헤레스와 엘라힘 신관님을 데려가라고 한 거였어?"

넬시아가 목소리를 줄이며 물었다.

"…예. 내가 무서워서요."

"고마워, 하벨."

"아니에요, 누님. 무엇이 되었든 헤스트리아 왕국을 돕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니. 이게 날 돕는 길이고, 날 위하는 길이야. 이미 하벨 네가 나한테 다른 길을 제시해줬잖아?"

넬시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하벨의 가면을 쓰다듬어주었다.

"조심해야 해. 오미너스가 우리 쪽이 아니라 어쩌면 너희 쪽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할게요. 나는 걱정하지 말고, 다들 자기 몸만 걱정해주세요."

하벨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 * *

카샬이 안내한 비밀 통로는 숲속에 있었다.

원래라면 그곳까지 가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아라의 힘으로 나무가 모두 길을 비켜주었고, 흙으로 만든 마차가 신이 나게 달려 아주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장. 이 몸이 보기에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너무 조용해.]

혹시 몰라 하벨이 미리 물로 얼굴을 감싸줬지만, 아라는 여전히 귀를 내리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정령들은 없어?"

하벨이 마차에서 내리며 묻자 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주변에 정령들이, …어, 있다! 있는데 진짜 적어. 그런데 저쪽은.]

아라가 앞발을 뻗어 성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는 뭔가 막혀 있는 느낌이라 이 몸은 잘 모르겠어.]

하벨이 성 쪽을 다시 바라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의외였지만, 마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힘이 느껴졌다. 이게 무엇인지는 조금 더 다가가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용용아. 내가 아무리 봐도 마법은 없어 보이는데? 넌 혹시 보여?"

"아니. 대신 다른 힘이 있어. 음."

칼리우스의 시선이 잠깐 하벨에게 향했다.

"내 힘이랑 비슷해?"

"정확히는 모르겠어. 뭔가 일렁일렁해."

"그런 일단 가시죠."

땅을 계속 파고 있던 카샬은 레디나와 함께 나무 밑동을 들며 아래를 가리켰다.

"입구입니다."

아래로 들어가는 구멍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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