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헤스트리아 왕국으로
* * *
"…맞습니다, 도련님."
히끅.
카샬의 대답에 하벨이 놀라며 그대로 딸꾹질했다.
"너, 히끅, 농담하지 마, 카샬."
"농담 같아 보이십니까?"
카샬이 웃자 하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히끅, 말이 되는 소리야?"
티에라 가문이 헤스트리아 왕국에 돈을 대면서 정화제를 가져오다니.
지금까지 그런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그건…….]
라탄은 자신의 입을 가렸고, 하벨의 눈빛이 살짝 매서워졌다.
"이게 진짜였다고?"
요컨대 지금까지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티에라 가문을 이용했다는 소리가 아니고 대체 뭐란 말인가.
"돈은 티에라 가문에서 내고 이미지는 헤스트리아 왕국이 챙긴다라. 진짜 멋지네. 아주 멋져."
하벨은 비웃음을 그렸다가 잠깐 카샬을 바라보았다. 이 사실을 어제오늘 알아버린 모습이 아니었다.
"아코라면 몰라도 카샬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나도 이해가 안 가. 카샬, 대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넬시아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득했다.
그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헤스트리아 왕국과 오래 교류를 쌓았던 자신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티에라 가문이 유일한 정령사 가문이기에 헤스트리아 왕국이 믿고 맡겼다고 지금까지 알고 있었고, 그렇게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니.
실망과 당황함이 섞인 넬시아의 시선에 카샬은 이를 어떻게 하나 망설였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최악의 변명임이 틀림없었다.
힐끔 하벨을 바라보자 그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말해, 말아?
그렇게 묻고 있는 표정이라 카샬은 크게 당황했다.
곧 카샬은 숨을 짧게 내쉬었다. 이미 들킨 건 분명했다.
라탄이 워낙 뻔뻔했기에, 계속 그 사실이 마음을 억눌렀기에 자신도 모르게 나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
지금까지 잘 숨겼다고 생각했고, 굳이 지금도 숨겨야 할까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정령마저 헤스트리아 왕국을 떠날 정도로 망하지 않았던가.
[네가 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그게 뭐가 좋다고 말하는 건데?]
아코가 카샬의 입에 앞발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카샬은 아코의 턱밑을 쓰다듬으며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맞을… 겁니다."
오도독.
하벨은 그제야 멈췄던 쿠키를 날름 먹으며 카샬을 바라보았다.
"도련님이 생각하는 그게 맞을 겁니다."
"잘했어, 카샬. 네 행동은 옳았어."
하벨의 칭찬에 카샬은 눈을 떠서는 그를 바라보았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카샬의 눈동자가 잠깐 일렁거렸다.
스승한테 들었던 칭찬보다 더 기뻤다.
"정말이야. 내가 저딴 나라에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아니, 아예 부숴버렸지. 이름조차 남지 않게 말이야."
"정말로 하실 것만 같아 두렵네요."
카샬이 낄낄 웃었다.
[으음, 지금 이 몸만… 모르는 거야?]
아라가 괜히 시무룩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라 님."
카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그저 헤스트리아 왕국의 높은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높은… 신분이라고?"
넬시아가 차분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오도독.
쿠키를 먹던 하벨은 카샬 대신 말을 던졌다.
"왕자, 라고 하면 더 정확할 거예요."
"뭐, 뭐, 뭐어?"
[우와아아아!]
넬시아가 놀랐고, 아라가 카샬에게 다가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카샬이 왕자님이었어?]
"푸핫!"
'왕자님'이라는 말에 하벨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배를 잡고 낄낄 웃는 모습에 카샬은 통증이라도 오라며 빌다가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아라를 이기지 못하고 차분히 말을 꺼냈다.
"아라 님. 저는 그런… 화려한 말과 거리가 멉니다. 그냥 버려진 존재일 뿐입니다. 그냥 저기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라고……."
아라가 카샬 뺨을 만져주었다.
[떽! 그런 말을 나빠!]
'혼난… 건가?'
카샬은 당황해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이 몸이 보기에 카샬은 지금도 아주 멋진걸? 정말이야.]
헤헤.
방긋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아라의 모습에 카샬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이곳이 왕자라는 신분만 있는 그곳보다 훨씬 더,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고맙습니다, 아라 님."
"나는, 그, 이게……."
넬시아는 뭔가 머리가 꼬여가자 카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지금 티에라 가문의 집사입니다."
"그렇지. 한 번 집사는 영원한 집사지."
오도독.
하벨이 쿠키를 먹으며 잔망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마 헤스트리아 왕실을 뒤져본다면 제가 출생했다는 흔적은 있을 겁니다. 적어도 태어난 흔적은 지우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 나는 널 믿어! 믿고 있어, 카샬!"
넬시아가 주먹에도 힘을 가득 주며 언성마저 높이자 카샬은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넬시아의 이런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헤스트리아 왕국의 왕족이면서 지금 나한테 이렇게 했다는 거야? 어떻게 나한테…….]
라탄은 방금 아라의 명령 때문에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샬을 향한 라탄의 눈빛은 서늘했다.
"보셨습니까, 아가씨, 도련님? 저는 정령님들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다만, 헤스트리아 왕국에 있는 정령들은 아닙니다."
다 밝혔기에 카샬은 더욱 독하게 말을 꺼냈다.
"오만하고, 잔인하며, 자신들이 왕이라 착각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정령들을 보며 자랐던 정령사는 어떻겠습니까?"
[아주 독하지. 더럽고, 치졸하고, 거지 같아.]
아코 역시 시원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나는 여기가 좋아. 티에라 가문이 너무 좋아. 밖에 있는 정령들이 좋아.]
똑같이 정령들이 모여 있는 곳임에도 두 곳은 확연하게 달랐다.
왜 진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싶을 정도였다.
[나 같으면 헤스트리아 왕국을 도우러 가지 않을 거야. 티에라 가문에 돈은 돈대로 다 받고, 마치 세상을 위하는 척 포장하는 걸 보면 모르겠어? 도와줘도 쟤들은 오히려 티에라 가문을 이용할 거라고. 뭘 뜯어갈지 모를 텐데.]
아코는 한껏 빈정거리며 라탄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진짜야, 라탄?]
저 말에 아라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입니다.]
[너무해. 이건 너무하다구!]
아라가 라탄에게 다가가 화를 냈다. 라탄을 향한 실망감이 너무도 컸다.
"좋아."
하벨은 손가락을 털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결정했어."
하벨의 결정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결정을 묻는 아주 익숙한 시선이었기에 하벨은 여유로웠다.
[도와… 줄 거지? 그렇지?]
라탄이 불안한 시선으로 하벨을 보았고, 그는 라탄을 불렀다.
"라탄."
[그, 그래. 듣고 있어.]
"나는 헤스트리아 왕국에 있는 오미너스를 없애러 갈 거야."
[고마워! 고마워, 하벨!]
라탄이 기뻐하고, 카샬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헤스트리아 왕국은 돕지 않아."
[…어?]
단호하게 나온 하벨의 결정을 라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미너스라는 그 이상한 것들을 없애주는 게 곧 헤스트리아 왕국을 돕는 길이 아닌가.
[그게 무슨 차이야? 결국, 헤스트리아 왕국을 도와주는 거잖아.]
"너, 내가 누구인지 잊었어?"
하벨은 조금 전과 다른 시선으로 라탄을 바라보았다.
라탄은 어쩐지 그 시선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벨… 이지.]
"하벨 티에라. 뒤에 붙은 그 이름이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
[…모르겠어.]
라탄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슬쩍 넬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역시 이전과 달라진 상태였다.
"…이걸 몰라? 정말로 모른다고?"
넬시아는 싸늘한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화가 났다.
이 사실도 모르고,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그제야 카샬은 안심하며 넬시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입니다, 아가씨. 조금 전 제가 저지른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야. 고마워, 카샬. 네 덕에 내가 정신을 차렸어."
[둘 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탄은 갑자기 변한 넬시아의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아직도 모르겠어?"
하벨의 미소에 장난기가 어렸다.
여전히 라탄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자, 하벨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티에라 가문의 돈을 먹고도, 그렇게 오래 티에라 가문에 일을 맡겼음에도 둘 사이에 있는 거라고는 금액이 오가고, 정화제가 오간 기록뿐이잖아?"
[그게 왜……? 돈을 주기에 정당한 대가를 치렀을 뿐이잖아.]
"그렇지.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티에라 가문과 헤스트리아 왕국 사이에 오간 거라고는 돈뿐인, 거래 관계이니."
거래 관계라는 게 원래 냉정하다는 걸 하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맞닿기에 생기는 감정은 별개였다.
오랫동안 꾸준히 거래했던 거래처에 당연히 생겨야 할 '신뢰'라는 게 헤스트리아 왕국 쪽에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이 아니라 돈이 나오는 물건이라 취급했다면 그런 감정이 생길 리가 있을까.
그걸 증명하듯 라탄의 입에서 '티에라 가문'이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관계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러니 누님이 화가 나셨지.'
넬시아는 헤스트리아 왕국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왔다.
도와달라고. 헤스트리아 왕국이 걱정된다고.
그간 여러 정이 쌓이며 거래 관계 이상이었다는 의미로서 충분했기에 넬시아가 느낄 감정은 배신이었다.
"그러니 나도 돕지 않겠다는 거야. 거래 관계에 있어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잊었어?"
하벨은 넬시아가 받을 상처를 알기에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도 배신당해 죽었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티에라 가문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떠나 세상을 위하겠다는 룬델의 마음이 헤스트리아 왕국에 짓밟힌 사실이 더 열 받았다.
'…감히 누님을, 아버지를 건드려?'
하벨은 눈가를 살짝 좁혔다.
"돈이야."
[돈……?]
"그래, 라탄아. 우리가 헤스트리아 왕국을 구해주면 얼마나 줄 수 있는데? 지금까지 헤스트리아 왕국이 티에라 가문에게 받았던 것 이상으로 토해낼 수 있어?"
적어도 라탄이 제일 먼저 티에라 가문에 찾아와 도와달라고 빌었다면 자신도 이러진 않았을 테지.
적어도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저 태도를 버렸다면 지금 라탄 옆에 정령들이 붙어 있었겠지.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지금까지 자신이 본 정령들은 서로를 돕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라탄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리는 카샬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너무하잖아.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 돈이 나올 수가 있어? 우리가 죽어가는데!]
"그게 거래 관계라는 거야, 라탄아. 그간 티에라 가문이 준 돈으로 잘 먹고 잘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왜 그래?"
[그게 뭐야? 이상하잖아. 이건 너무 이상해.]
"아니. 이상한 건 없어. 전혀 이상하지 않아. 너희는 처음부터 우리를, 티에라 가문을 우롱했으니까."
넬시아는 라탄을 스쳐 지나가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하벨 옆에 앉았다.
"들었지? 그럼, 돈을 가져와, 라탄. 헤스트리아 왕국을 구하는 대가일 테니 엄청난 돈이 필요하겠지? 그게 없으면 조용히 입이나 다물어."
하벨은 지퍼를 닫는 듯한 흉내를 냈다.
[…이상해! 여기는 이상하다고! 왜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는 거야? 하물며 정령들마저 왜 나를……!]
아라가 라탄의 가슴팍에 앞발을 올리자 라탄은 말문을 닫았다.
그저 억울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아라를 바라보았다.
[헤스트리아 왕국을 망친 건 인간들이에요. 그래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이곳 정령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듣질 않아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걸 망쳤어요? 그건 알고 계시잖아요.]
아라는 라탄의 말이 어렵게 느껴졌다.
오미너스를 만든 건 사람이 맞았다. 이걸 퍼트린 것도 사람이었고, 피해를 본 건 정령들이 맞았다.
[나쁜 사람들이 있어. 그건 이 몸도 알아.]
아라는 숨을 잠깐 내쉬며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라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라탄. 사람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야. 사람들은 우리 밑에 있지 않아. 우리랑 함께해야 할 존재야. 그러니까 라탄. 이 몸이 생각하기에 라탄은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라는 앞발을 내리고 하벨에게로 다시 향했다.
"훌륭한데, 아라야? 잘했어!"
하벨은 아라의 결단에 이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고, 아무도 라탄을 보지 않자 라탄은 처음 맞보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비참함.
"환영한다, 라탄."
그때, 카샬의 목소리가 라탄의 귀를 뚫었다.
"여기가 바로 밖이야."
카샬이 입꼬리를 아주 가득 올렸다.
우물 안에 있던 왕들이 드디어 우물 밖을 벗어났으니.
* * *
"…안녕!"
하벨은 그 어떤 순간보다 힘차게 말했다.
다름 아닌 무려 레바놈이 왕실 밖에, 어딘지도 모를 집안에 갇혀 있질 않은가.
이렇게 기쁠 수가.
"읍읍읍!"
입마개를 찬 레바놈이 발악하는 모습에 하벨은 꼴좋다 싶었다.
"입 닥쳐."
페트리오가 가면을 쓴 상태로 레바놈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이 꼴을 바안도 봤어야 했는데.'
하벨은 지금이라도 셴을 데려올까 싶어 머리를 굴렸다.
"있잖아, 카샬."
"안 됩니다."
카샬이 단호하게 말하자 하벨은 심통이 났다.
"아니 어떻게 너는 내 말도 끝까지 안 들어보고 그래?"
"읍읍!"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레바놈. 네놈 때문에 카샬이 지금 심기가 나빠졌다고."
하벨이 레바놈을 향해 싸늘하게 목소리를 내자 그는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 이놈 아직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지?"
하벨의 시선이 칼리우스에게 향했다.
"용용아. 잠깐만 소리 좀 막아줄래?"
"도련님."
"응?"
"나, 한 대만 때려도 돼?"
"용용이… 네가?"
하벨은 당황했다. 폭력을 싫어하는 칼리우스가 먼저 때리겠다고 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배를 때렸잖아. 나는 그게 엄청 화가 나는데?"
[맞아! 카샬을 때렸잖아. 이 몸도 한 대 때리고 싶어!]
레바놈을 계속 째려보던 아라 역시 앞발에 힘을 주었다.
"좋아."
하벨은 기꺼이 자리를 먼저 비켜주었다.
"너도 칠래, 카샬?"
"고민해보겠습니다. 티 안 내고, 부러지지 않고서도 상당한 고통을 주는 방법을 말입니다."
지금은 카샬은 뒤로 물러섰다.
"너는 아주 나쁘다고. 왜 선배를 때려?"
칼리우스는 당장이라도 레바놈의 뼈를 분지를 것처럼 손을 휘두르다가 레바놈의 뺨을 툭 건드렸다.
[얍!]
찹!
아라의 앞발이 레바놈의 볼에 닿았다.
둘이 보여준 행동에 잠깐 침묵이 흐르다 하벨과 카샬의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푸하핫!"
다른 의미로 열이 받는지 레바놈이 묶인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하벨은 칼리우스가 물러서자 성큼성큼 다가가 입마개를 풀어주었다.
"이, 쓰레기……."
짜악!
카샬이 레바놈의 뺨을 후려쳤다.
아주 깔끔한 스윙에 레바놈은 얼이 빠진 듯 카샬을 바라보았다.
"도련님께 그 더러운 말을 담을 가치조차 없어서 말이야."
"네, 네놈이지? 네놈이 내 머리를 쳐서……."
"아."
하벨이 씩 웃었다.
"머리까지 맞았어? 아니. 이 귀한 머리를 누가 때렸어?"
하벨이 레바놈에게 다가가 주먹을 쥔 손을 내밀었다.
따악!
그대로 이마를 쥐어박았다.
"이렇게 내가 때려야 하는데 말이야."
레바놈의 빨개진 이마를 보며 하벨은 장난스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