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저는 참는 거 모르는데요?
* * *
"으아악!"
암살자가 비명을 지르자 카샬이 고민도 없이 놈을 기절시켰다.
"도련……."
카샬은 말을 멈추고 바로 문 쪽으로 뛰어갔다.
열린 문을 향해 카샬이 검을 휘두르다 멈추고는 고개를 숙였다.
"막내는?"
[문은 닫아야지, 라르웬!]
루룸이 라르웬을 대신해 문을 닫았다.
"무사하십니다."
"…미친."
라르웬은 카샬의 대답에도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기절한 암살자와 저 시체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안녕, 루룸, 라르웬!]
아라가 하벨의 품에서 앞발을 들며 말했다.
"왔어요, 형님? 엄청 빨리 오셨네요?"
하벨 역시 아라처럼 해맑았다.
"'왔어요'가 아니라 왕실에, 이건 거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왕실에서?"
라르웬은 금이 간 벽과 깨진 창문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왕실 기사들은 뭐 하는 건데? 애초에 이럴 거였으면 우리 기사들을 끌고 오게 허락했으면 됐잖아!"
라르웬의 언성이 절로 올라갔다.
넬시아가 왕과 계약서를 체결하는 동안 자신은 귀찮은 귀족들에게 잡혀버렸다.
조금 전 하벨이 바안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밝혔기에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하벨을 대신해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아직도 먹잇감을 탐하는 더럽고, 역겨운 귀족들의 오물 냄새가 흐르는 듯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둘째 도련님. 이건 코스모피안 왕국이 엄청 잘못한 거야."
하벨의 침식이 괜찮은가 살핀 후에야 칼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곧 아라를 쓰다듬었다.
"아라야, 엄청 잘했어. 네 덕분에 도련님의 침식은 진행되지 않았어."
[헤헤헤.]
아라가 꼬리를 흔들었고, '침식'이라는 말에 라르웬은 입이 간지러웠지만, 여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 놈 잡았습니다."
하벨은 자랑스럽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샬은 그를 말렸다.
"왜 일어나십니까?"
"아, 혹시 검은 달인가 싶어서 그러지."
"놈들은 그리 생각 없는 자들이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카샬은 말을 하며 직접 놈들의 장갑을 슬쩍 바라보았다.
"검은 달은 아닙니다. 손등에 어떤 반응도 없습니다."
"그럼, 레바놈 코스모피안, 그놈 짓이려나."
코스모피안 왕국의 첫째 왕자.
하벨이 싱긋 웃었다.
이번 습격은 왕실 내부를 아주 잘 아는 자의 소행이었다.
짐작 가는 놈이라고는 여기서 레바놈 이외에 누가 있을까 싶었다.
푸렐 텔르나 역시 한 몸인 것을.
"어떻게든 이 악물고 평화를 부서트리려고 하네? 정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어서 손뼉이라도 치고 싶단 말이지."
"손뼉이 아니라 칼로 쳐야지. 감히 널 노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하벨이 묻자 라르웬은 콧바람을 내쉬었다.
"정령들이 날 부르던데? 아주 허겁지겁 말이야."
그제야 창문 밖에 시선을 두자 정령들이 구멍 틈 사이로 귀를 쫑긋거리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벨과 눈을 마주하자 정령들이 배시시 웃었다. 하벨 역시 저 귀여운 모습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났다.
[이 몸이 불렀지. 히히.]
아라가 하벨의 품을 파고들 듯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아주 든든한데?"
하벨은 아라를 꼭 안아주며 키득거렸다.
티에라 가문이 정령사 가문이니 정령들이 많은 게 뭐가 이상할까.
[기사들이 다급히 오고 있어.]
정령이 귀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저놈 빼돌릴 거 맞지? 막내 너라면 반드시 그럴 테니까."
라르웬은 기절한 암살자를 가리켰다.
"네. 이런 일에는 제격인 사람을 시켜야죠."
하벨은 페트리오와 레디나를 떠올렸다.
"그럼 일단 내가 방부터 알아보고 올 테니까, 저놈은 이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저택 거기다 던져둬. 아, 기사들이 오면 적당히 표정 관리해야 하는 거 알지?"
"알고 있죠. 눈물 좀 흘리면 되겠습니까?"
하벨은 싱글벙글하며 여하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보시오?"
여하는 눈을 깜박거렸고, 카샬은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집사가 이 일을 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물론, 진짜 네가 하기도 했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맷집이 얼마나 좋은지 궁금하긴 하네."
자신 옆에 호위 기사는 없었다.
카샬과 헤레스, 레디나, 칼리우스는 각자의 역할 때문에 호위 기사가 될 수 없었다.
"형식적인 호위 기사 어때?"
하벨이 묻자 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괜찮소. 지금 할 일 없이 구는 것도 싫은데 잘됐소."
"잘된 게 아니라 너는……."
카샬이 입을 열었지만, 라르웬이 말렸다.
하벨이 여하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라르웬 자신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벨한테 굴러보면 진짜 모습을 알겠지.
[그럼, 이 몸이 길을 열게!]
아라가 하벨의 품에서 나와 앞발을 흔들었다.
"용용아."
하벨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응?"
"뭔가 좀 심심하지 않아?"
"심심해? 그럼 나랑 색칠 놀이할까?"
"색칠 놀이 말고, 좀 더 격렬한 걸 해볼래?"
하벨은 주변을 가리켰다.
고작해서 창문이 부서지고, 방이 헝클어지는 모습은 습격받았다고 하기에 아쉽지 않은가.
뭔가 부서져야 그럴듯하지 않을까.
"…하."
숨을 돌리는 소리에 하벨은 깜짝 놀랐다.
깨진 창문 쪽에서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레디나가 있었다.
거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
콰직!
태연하게 창문을 더 깨부수고는 안으로 들어온 레디나가 바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곳은 없어요? 제가, 제가 진짜 빨리 왔는데요. 많이 늦었어요?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 그 개새끼들은 어디에 있어요?"
"레디나. 숨 좀 돌려 봐."
"크라마가 새를 보냈는데 받았어요?"
"실시간이더라고. 받고 바로 왔어. 푸렐 텔르나 짓이야?"
"네! 제가……."
레디나가 씩 웃으며 종이를 내밀었다.
"암살자를 고용한 증거를 딱 잡아 왔어요! 이건 고용 증명서고요."
레디나는 이어 사진과 종이를 하나 더 꺼내 흔들었다.
"푸렐이 레바놈한테 돈을 받은 장면이 찍힌 사진이랑, 이를 증명하는 쓴 장부예요. 인장도 찍혀 있어요. 충분하죠?"
"완벽한데?"
하벨이 웃자 레디나는 다른 의미로 살벌하게 웃었다.
"감히, 도련님을 건드렸네요?"
"아니, 나는 멀쩡해."
"지금 그냥 있을 수 없겠어요."
"아니, 레디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아뇨. 도련님을 죽이는 것도 나예요."
하벨은 그 말에 움찔거렸다.
"아니, 레디나. 그 말은……."
"이건 선을 넘었죠. 저는 다시 페트리오 씨를 도우러 갈게요."
레디나는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지금 당장 그 패거리와 관련된 놈들의 피를 손에 가득 묻히고 싶었다.
"피의 축제를… 벌이고 싶네요."
레디나의 눈이 휘었다.
* * *
탁!
문이 열리고 코스모피안 왕국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안이 생각보다 더 엉망이자 다급히 하벨을 찾았다.
"괜찮으십니까, 하벨 티에라 님?"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카샬이 언성을 높였지만, 왕실 기사들은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습격이 있었고, 늦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벽이 통째로 날아간 광경이었다.
대체 얼마나 큰 습격이 있었는지 몰라도 징계가 걱정될 정도였다.
"내가 죽은 뒤에 오려고 했습니까?"
하벨은 멀쩡했고, 사납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참에 코스모피안 왕국에게 빚을 질 셈이기에 목소리 역시 삐딱했다.
아들의 잘못이 무조건 아버지의 잘못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이건 드란트가 잘못한 게 맞았다.
손님을 누가 이런 식으로 방치를 하는지.
"그게 아닙니다. 오해… 십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이제 왔는지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하벨의 손가락이 벽을 가리켰다.
왕실 기사들은 입이 딱 붙어버렸다.
일단, 이렇게 큰 습격이 왔을 거라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소리가 크지 않았다.
솔직히 하벨 티에라를 향해, 아니, 에르티안 왕국을 향한 아니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이 선을 넘은 게 맞았다.
"내 호위 기사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벨은 드란트에게 빚을 지게 함과 동시에 기사들을 금지한 그의 방침을 아예 바꿀 셈이었다.
하여 꾸짖었다.
"그대들의 늦장 대응에 내 목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사실이었다.
"내 목이 날아갔다면 그 순간 전쟁입니다."
그 역시 사실이었다.
지금 하벨 티에라가 바안 에르티안의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이 소문을 통해 넓게 퍼졌으니까.
"그대들은 이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맞는 소리에 왕실 기사들은 여전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처리해야 할 적은 이미 죽었고, 사건이 끝난 뒤였기에 잘못을 비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펼쳐질 일들 역시 머릿속에서 헤집어야 할 테고.
"하지만."
하벨의 목소리와 말이 갑자기 달라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왕실 기사들이 슬쩍 눈을 위로 떴다.
"범인을 쫓는다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하벨은 왕실 기사들을 긁었다.
너희가 살 방법은 범인을 쫓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 암살자들이 있습니다. 마음껏 조사하셔도 됩… 콜록, 콜록!"
하벨은 말을 이어가다 말고 갑자기 기침했다.
잠깐 목에 침이 걸렸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카샬이 하벨은 붙잡았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야!"
라르웬이 기사들을 뚫고 달려왔다.
"빨리, 카샬. 내가 새로운 방을 허락받았으니까."
뭔가 다급한 상황에 왕실 기사들은 감히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중 계급이 높은 자가 입을 열었다.
"저어, 괜찮으시다면……."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무시하게. 그대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라르웬의 차가운 반응에 왕실 기사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이제 얌전히 누워 계십시오, 도련님. 저는 일단 뒤처리를 하고 오겠습니다."
새로 바뀐 방을 확인한 카샬은 침대에 누운 하벨을 바라보았다.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카샬은 태연하게 밖을 가리켰다.
"비가 옵니다."
"여긴 안 와. 이번만 잠깐 그렇게 했어."
에르티안 왕국에서 했던 것처럼 힘 일부를 남겨놓았다.
동시에 이번에는 물에게 부탁해 비의 방향을 틀었다.
[오오. 그건 맞아! 대장이 비의 방향을 바꿨어.]
"하지만 비는 내리고, 도련님한테 영향이 있는걸?"
아라의 말에 칼리우스가 여러 가지 문장과 문양을 그린 종이에서 잠깐 눈길을 돌렸다.
"저게 맞습니다. 도련님의 몸이 실제로 좋지 않잖습니까."
카샬은 하벨의 배를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몰라 불안 불안한 건 자신뿐인지, 하벨은 뭔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더 재미있을 텐데. 이걸 놓칠 수는 없지."
일단 왕실에서 습격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왕실 기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암살자 시체까지 있고, 흔적도 남아 있으니 얼마나 움직일까.
"범인은 못 찾아. 대신, 왕실 기사들이 움직이는 만큼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질 테니 이걸 숨기기는 어렵겠지? 드란트도 레바놈도 둘 다 초조할 거야."
하벨은 실실거리며 웃었다.
드란트는 혹여나 이번 일이 코스모피안 왕국의 평판에 어떤 악영향으로 다가올지를 걱정할 테고, 레바놈은 계획이 실패한 것도 모자라 수색이 대대로 펼쳐지니 얼마나 초조할까.
"나중에 봐봐. 조만간 왕이 날 부를 테니까. 아, 레바놈도 찾아올 수 있겠네. 날 떠보려고."
"아가씨와 둘째 도련님께서 이미 전하를 뵈러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사람을 불러서 날 찾아올걸? 결국, 내 의사가 중요한 걸 알 테니까."
"그럼 그때까지 쉬십시오. 정화 장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조금 뒤에 헤레스 씨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카샬은 슬쩍 하벨의 정화 장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힘을 썼음에도 피는 토하지 않았지만, 완전히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정말, 엄청 좋아졌기에 자신도 이렇게 안도할 수 있었다.
"헤레스가? 엘라힘도 들렀다가 갔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걸 확인했잖아."
하벨은 엘라힘을 들먹였다.
이미 엘라힘이 더 빨리 자신을 찾아온 후였다.
"게다가 지금 헤레스는 오미너스를 이루는 마법을 해제한다고 정신이 없잖아. 그, 음, 지금 내 저주를 해제하려는 용용이처럼!"
하벨은 칼리우스를 가리켰지만, 그는 들리지 않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봤지? 저렇게나 집중하는데 헤레스도 마찬가지겠지."
[대장. 용용이가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쉬잇.]
아라가 앞발로 하벨의 입술에 가져다 대자 하벨은 실실 웃었다.
"헤레스 씨라고 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습격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너는 어딜 가?"
하벨은 넬시아가 전해주고 온 계약서를 보려다 말고 카샬을 보았다.
"식사하셔야 하잖습니까. 조금 지체됐습니다."
카샬은 칼리우스를 보았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여하를 부르겠습니다. 쓸모가 없진 않더군요."
"맞지? 입도 무겁더라."
"그렇다고 신뢰하기엔 이릅니다. 일단 부르겠습니다. 아라 님도 계시니까요."
"알았어."
하벨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넬시아가 드란트와 체결한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하벨. 이번 일은 나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계약서를 전해주러 온 넬시아의 두 눈에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이 생각이 나 하벨은 잠깐 웃었다.
사락.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에 아라가 눈을 천천히 감겨왔다.
[이 몸은…….]
으함.
아라가 길게 하품했다.
[이 몸은 갑자기 졸려. 왜 이렇게 잠이 오는지 모르겠어.]
"힘을 써서 그래. 조금 자둬."
하벨은 아라의 눈을 억지로 감기자 금세 '도로롱'하는 숨소리와 함께 아라가 축 늘어졌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여하가 들어왔다.
"왔어?"
"나를 불렀다 들었소."
"그냥 카샬이 오기 전까지 내 옆에 있으면 돼. 너는 내 호위 기사가 됐잖아? 물론 임시긴 한데."
하벨은 계약서를 다 읽은 후에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가 제일 안전했으니까.
'임시라도 뭘 준비하긴 해야겠지?'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내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무얼 보는 건지만 빼면."
단호한 그 말에 여하는 하벨이 자신에게 한 첫 번째 명령을 떠올렸다.
―내가 어딜 보고 말하든 묻지 마. 궁금해하지도 말고, 생각하지 마.
"그건 기억하고 있소."
"그래. 계속 기억하고 있어. 그게 너와 나의 약하디약한 신뢰 관계를 이어줄 테니까. 그럼 물어볼 게 있어?"
"…없소."
여하는 입을 다물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무얼 쓰다듬는 것처럼 계속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여하는 다시 궁금증이 솟구쳤다.
"날 계속 잘 관찰해. 잘 지켜보고. 내가 바닷속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어떨지 생각하는 것만큼 나도 널 보고 있으니까."
고개를 올린 하벨과 시선을 마주하자 여하는 괜히 흠칫거렸다.
속내를 다 읽히는 듯 눈빛에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벨은 무언가 다른 게 확실했다.
지금 옆에 있는 물이 잘 좀 하라며 자신을 구박하고 있었으니.
"일단 나하고 일 하나 할래?"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이오?"
"기억력이 좋아?"
"좋소."
여하는 잠깐 뿌듯함을 드러냈다.
"악의를 잘 느껴?"
"그렇소. 그대는 나에게 악의가 없소. 그건 궁금하긴 하오."
"악의를 품을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인어족이요. 그대와 종족이 다르오. 인간은 본디 다름에 강하게 반응하곤 하잖소."
"그런 거라면 됐어. 나한테 말해봤자, 나는 전혀 다른 걸 못 느끼니까. 어쨌든 나 대신해서 돌아다니고 와줄래?"
"그게 무슨 말이오?"
"그냥 카샬이 오면 왕실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어떤 소문이 도는지, 누가 너한테 악의를 품는지만 기억해주면 돼."
"왜 그래야만 하오?"
"열 받잖아."
하벨은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