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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92화 (292/415)

292화. 속마음 한 번(3)

* * *

"아닙니다!"

카샬이 당장 언성을 높였다.

"얼마 전까지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십니까?"

"카샬. 내가 바보야? 그것도 모르게?"

하벨이 도리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하자 카샬은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붙잡았다.

"가면단으로 위장한 마법사 중에 헤일리스도 따라왔다는 걸 아시는 분이 코스모피안 왕국의 마법사 협회에 가셔서 탑을 부수겠다고 하시고, 이제는 오미너스와 마주하시겠다고요?"

직접 말을 하니 너무도 기가 차는지 카샬은 도중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탑을 부수는 것까지는 인내심을 최대한 끌어모아서 이해한다고 하지만, 오미너스는 다르지 않은가.

가뜩이나 오염된 물에 노출되면 힘도 못 쓰는데 직접 찾으러 간다니.

"도련님. 정말 이러실 겁니까?"

아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꼭 싸움하기 전 모습 같지 않은가.

[어엇. 이 몸은… 싸우는 거 싫은데.]

"그런 거 아니야, 아라야."

하벨은 아라를 안심시키고 난 뒤에 다시 카샬을 보았다.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건 아는데,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하벨은 침대에 놓인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몸뚱어리에 줄줄이 이어진 병, 저주,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여 자신은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몸이 멀쩡했어도 '백성들'이라는 인질에 손과 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살아 있다고 느끼니까.

"그리고 지금 날 대신해서 다들 움직이고 있잖아?"

아주 사랑스러운 이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명령하고, 확인하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던 그때보다 평온했다.

"좀도둑은 나랑 따로 움직여서 지금 왕자의 뒤를 캐고 있을 게 뻔하고. 그렇지?"

이미 레놀드 왕국과 결탁한 증거를 알아냈지만, 증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레놀드 왕국의 누구와 결탁한 건지 알아야 더 좋을 거라 생각한 페트리오가 가만히 있을 사람도 아니었다.

"일부로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도련님."

카샬은 급히 온순해졌다.

"그저 페트리오 그놈이 일이 확실해질 때까지 보고는 올리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카샬 네가 순순히 부탁을 들어줬다고? 와."

"그게 아닙니다!"

카샬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올렸다.

곧 민망한지 헛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그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추적하는 게 타국의 왕자이다 보니까 여러 어려움이 많은 모양입니다. 꼴좋다 싶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아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카샬. 지금은 움직일 때야.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싫어."

투정을 부리듯 하벨은 인상을 살짝 썼다.

"도련님."

헤레스가 목소리를 내자 하벨은 금세 인상을 풀고는 금세 순한 양이 되어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헤레스. 나는 또 움직일 거야."

"도련님. 제가 도련님을 말리지 않을 순 없어요."

"알아. 너는 네 역할이 있으니까."

"맞아요. 하지만 도련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참담함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도련님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딱 하나에요."

말을 끝낸 뒤, 헤레스는 숨을 몰아쉬고는 말을 꺼냈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움직이세요."

"좋아."

하벨은 얼른 헤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바로 우쭐거렸다.

"그럼 출동해야지, 카샬? 아. 용용이도 불러주면 좋고."

저 우쭐거리는 표정에 카샬은 이마를 매만졌다.

"잠깐… 커피 좀 마시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주 독한 커피가 자신을 불렀다.

* * *

"…나를 불렀다 들었소."

여하가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하는지 몰라 살짝 내렸다.

"용건에 앞서서 이건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인어족은 여기보다 더 수직관계야?"

"맞소. 왕이 강한 권력을 쥐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몸에 뱄소. 불쾌했다면 미안하오."

"아니야. 불쾌한 게 아니라 저번에 말을 끝내지 못한 것 같아서 마저 하려고 불렀어. 네가 헤레스를 도와준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돼."

"바다를 되돌려달라는 내 부탁에 답을 해주려는 것이오?"

여하는 그제야 고개를 올려 기대에 찬 눈빛을 지었다.

"그럴 생각이긴 한데, 물이 대체 너한테 뭐라고 했는데?"

[맞아. 이 몸도 엄청 궁금한데.]

아라는 칼리우스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는 여하를 바라보았다.

"용왕님을 찾아가라고 말했소. 나를 도울 수 있다고."

여하의 대답을 들은 하벨은 아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좋아아! 이 몸이 물한테 말해볼게.]

아라는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가슴에 힘을 가득 주었다.

[저 말이 진짜 사실이야? 정말이야?]

―그럼. 우리가 찾아가라고 그랬는데?

[왜?]

―인어족이 죽으면 바다가 정말 끝이 나니까. 반드시 구해야 해.

[대, 대장!]

아라가 물이 알려주는 말에 다급히 하벨을 불렀다.

[인어족이 죽으면 바다가 정말 끝이 난다고 말했어! 인어족을 구해야 한다고 그랬어!]

'왜?'

의문이 맴돌았지만, 하벨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어족은 정령을 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라가 저리 다급하게 꺼내는 말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나한테 이렇게 부탁한다는 말은 인어족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야?"

"솔직히… 모르오."

"모른다고?"

"내가 지상에 왔고, 한참 뒤에야 바다가 오염된 걸 알았소. 계속 방법을 찾고 있었소. 아무리 내가 오염된 물에 영향이 없다고 한들, 바다는 달랐소."

"오염된 물에 영향이 없다고?"

색연필을 손에 쥔 채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칼리우스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혹시 용인가 싶은 의문이 맴돌았다.

"그렇소. 나는 인어이기에 물의 축복을 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들어가 인어족이 사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소."

"왜? 뭔가 다른 힘이라도 있었어?"

하벨이 묻자 여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다의 색이 더 짙었고, 형용할 수 없는 힘에… 살이 썩어갔소."

그 말에 하벨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 힘은 다릅니다. 제 모든 걸 억누르고, 닿기만 해도 녹여버립니다. 그야말로 모든 걸 집어삼키는 힘입니다.

'이건 분명히 이안이 겪은 일인데?'

이안이 정령왕임에도 꼼짝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지 않던가.

"도련님. 적어도 저는 오염된 물이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건 본 적이 없습니다. 헤레스 씨 옆에서 이것저것 도우면서 배웠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카샬이 콧바람을 세게 내쉬자 하벨은 생각을 잠깐 멈췄다.

―하지만 근본이 그놈 힘이기에 멋대로 내가 만든 오염을 정화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어.

에른스트 그놈이 이안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오염은 에른스트가 만들었다. 그런 왜 바다만 다르지? 왜 달라야 하는가.'

하벨의 미간이 매섭게 꿈틀거렸다.

'…그 속에 뭔가가 있다는 건가. 마치 절대로, 부서져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나 역시 거짓말이 아니오. 맹세코 정말이오. 하여, 바닷속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인어족은 무사한지 모르오."

여하가 억울함을 담아 말하자 하벨은 숨을 짧게 내쉬며 의문을 잠깐 덮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데, 내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나한테 방법이 그것뿐이오."

"그럼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인어족의 모든 것을 넘겨주겠소. 응당 그래야만 하오."

"너한테 그럴 힘이 있다고?"

"무얼 보여줘도 믿지 않겠지만. 날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내겐 이것뿐이오."

여하는 머리에 둘렀던 띠를 풀었다.

[우오오옵…….]

아라가 바로 여하에게 다가갔다.

[이 몸이 봤던 보석 중에 제일 예뻐!]

눈을 닮은 하얗고 하얀 보석이 여하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찬란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아 하벨 역시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뭘 증명한다는 건데?"

하벨이 물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못한 보석이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신분이요."

여하의 눈빛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나는 인어족의 왕자요."

'…와.'

하벨은 속으로 경악했다.

아라도, 카샬도, 칼리우스도 놀랐지만, 하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거 왜 이러지?'

하벨은 참 희한하다 싶었다.

'왕자나 왕이 될 이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잖아?'

아라도, 칼리우스도, 왕이 되기 전 바안도. 지금 여하까지.

하벨은 왜인지 순간 소름이 돋아났다.

'내 오지랖이 그저 넓었을 뿐이겠지.'

아라와 칼리우스, 바안은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지만, 여하는 아니었다.

하지만 물이 직접 말하기도 하고, 이안과 똑같은 일이 벌어져 그냥 흘릴 수는 없었다.

"일단, 알았어. 넌 당분간 감시를 받게 될 거야. 기분 나빠하지 마. 이건 알고 있지?"

"물론이오. 나는 그저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온 것만으로도 이미 기쁠 지경이오."

여하는 웃었다.

평소 무뚝뚝해 보이는 모습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달라 보였다.

"감시든 무엇이든 해도 되오. 옆에 얌전히 있으라면 있겠소.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겠소. 내가 그대에게 해가 없다는 걸 증명할 테니 말이오."

"아니, 얌전히 있는 건 좋은데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물론, 네가 그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하벨이 넌지시 묻자 여하는 주춤거렸다.

"그렇다면 그대의 말을 듣겠소."

"그럼 그럴 자신은 있고? 내가 무얼 시키든 간에 너는 그대로 따라야 해."

"…대체 내게 무얼 시킬 셈이오?"

"겁이 나면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걸 알려주려고 그냥 말해본 거야."

하벨은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내뱉으며 자연스럽게 카샬을 가리켰다.

"정해진 선은 카샬이 말해줄 거야."

"…예. 또 저일 줄 알았습니다."

카샬의 어깨가 한숨과 함께 내려갔다.

여하를 보는 카샬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역시 카샬이 제격이지.'

상대가 용이든 말든 명령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짓누르는 일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단연 카샬이었다.

하벨은 든든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선 안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여. 물론,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것만 기억해."

"개가 된 기분이지만, 알겠소. 따르도록 하겠소. 조금 전보다 훨씬 쉬우니까 말이오."

"그럼 여하, 너는 이제 내 근처에서 물이 말하는 걸 알려줘."

[그건 이 몸이 할 수 있는데?]

아라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이 몸은 이제 물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는데.]

"알아. 알지만, 밖에서는 보는 시선이 많아서 안 된다는 것도 알지? 나는 물 마법사니까."

하벨이 어딘가를 보고 이야기를 하자 여하는 덩달아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에 칼리우스가 있었다. 눈동자가 달라 묘하게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곁에 있으면 이상한 압박감까지 들어 더욱 시선을 뗄 수 없었고.

하지만 저자는 그저 쳐다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여하에게는 더 무겁게 다가왔다.

"혹시, 그대는 지금 어딜 보고 하는 말이오?"

여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일부러 고개를 돌려 하벨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딜 보고 말하든 묻지 마. 궁금해하지도 말고, 생각하지 마. 그게 내가 너한테 처음 하는 명령이야."

"…알겠소."

여하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 우리 어제 만난 거 알고 있지?"

하벨이 싱긋 웃자 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섭섭하지 않으니 됐소."

"잘됐네. 살짝 미안할 뻔했는데. 고마워."

빈정거리는 저 말에 여하는 뭔가 뒤통수가 쓰라린 기분을 느꼈다.

기분이 나쁜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한 쪽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 * *

[…우와아아아! 우와아아! 대장이 지금 너무 반짝반짝 빛이 나!]

귓가에 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곱게 감긴 하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몸이 있지, 저번에 아이들이랑 정령들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기 전에 물이 잠깐 뭘 보여준 적이 있었다?]

쫑알거리는 말에 하벨은 억지로 잠에서 깨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때 하얀 머리카락을 한 아주아주, 예쁜 사람을 봤는데 대장이랑 뭔가 닮았어! 아, 머리카락이랑은 다른데, 뭔가 닮았어!]

하얀 머리카락이라는 말에 하벨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걸……."

하벨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시선 안에 시녀들이 보였으니까.

'아라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물이 이 몸한테 보여줬어. 그런데 진짜 대장이 맞아?]

하벨이 살짝 고갯짓하자 아라는 방방 날뛰었다. 정말 하벨일 줄이야.

[우와아! 이 몸은 옛날 대장을 봤어! 우와아아!]

탁.

거울이 앞에 놓이자 하벨은 시선을 올렸다.

"도련님, 어떠세요?"

자신만만한 레디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 레디나?"

"네?"

레디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나 어제 보았던 여하의 이마에 달린 보석보다 어쩌면 더 환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너무… 과한데?"

하벨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속눈썹 한 가닥, 머리카락 한 올까지 신경 쓴 티가 너무 나 어색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아뇨, 아뇨. 전혀요. 이 정도는 꾸며야죠. 오히려 이전에 너무 꾸미지 않아서 속상했다니까요. 그렇죠?"

레디나가 시녀들의 호응을 바라자 그녀들이 한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맞습니다. 도련님을 꾸밀 수 있게 해주셨으면 했는데 밖으로 돌아다닌 적이 손에 꼽으셔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이렇게나 꾸미게 되어 무척 기쁠 따름입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레디나가 하벨의 머리를 만지는 척 속삭였다.

"제가 이곳으로 오려다가 코스모피안 왕실 내부 분위기가 궁금해 슬쩍 들렸다가 봤는데요. 도련님께서 오신다니까 다 이를 갈았는지 엄청, 살벌하더라고요."

'암. 살벌할 만하지. 내가 물 마법사라서 거절할 수도 없는데, 자국민, 그것도 귀족을 에르티안 왕국에서 억압하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하벨은 레디나의 보고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늘 새벽에 레디나가 급히 도착했다.

―가면단에서 푸렐 텔르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어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소식도 없었고, 지금 도련님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먼저 왔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도련님의 얼굴로 일단 기를 눌러놔야 해요! 무조건이요!"

오늘 새벽에 보이던 즐거움이 여전히 레디나의 얼굴에 가득했다.

"…갑자기?"

하벨은 당황하며 물었다.

[맞아! 이 몸도 찬성이야!]

아라까지 손을 번쩍 드는 것도 모자라 시녀들의 눈빛까지 순간 달라졌다.

하벨은 식은땀이 주룩 났다.

강자, 그 이상의 눈빛이 아닐까 싶었다.

* * *

과거의 위상을 담아내듯 금빛 장식이 가득한 왕궁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티에라 가문의 문장.

다른 건 몰라도 그 문장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물이 오염된 지금,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정화제를 만드는 곳이니 코스모피안 왕국의 왕실 기사들은 그 문양을 보자 살짝 긴장했다.

"왔다. 왔어."

중얼거리는 소리에 왕실 기사단장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긴장 풀지 마라."

정식으로 왔고, 왕실에서도 티에라 가문을 환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사실 명령이 없었더라도 티에라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감히 함부로 하기가 어려웠다.

혹시나 티에라 가문에 찍히기라도 한다면 정화제를 받지 못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대외 활동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기에 그만큼 수수께끼에 휩싸인 가문이기도 했다.

마차 문이 열리자 지나가던 이들의 시선마저 확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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