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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83화 (283/415)

283화. 눈을 뜨다(3)

* * *

* * *

[…그래서, 흑, 이 몸이, 어헝헝…….]

아라는 카샬에게 이야기하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다.

에른스트가 검은빛으로 하벨의 복부를 꿰뚫었을 때가 생각이 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벨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하벨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건 무력함과 달랐다.

비참했다.

"…빌어먹을."

카샬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장갑에 묻은 하벨의 피가 얼굴에 고스란히 남았다.

자신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괜찮겠지이? 대장은 괜찮겠지?]

아라가 카샬과 아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카샬은 아라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벨의 상처 부위가 컸다.

아까 하벨이 피를 막고 있음에도 천을 적시는 피의 양이 생각보다 컸다.

'어쩌면 수혈량이 부족할지도 몰라.'

카샬은 여차하면 당장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라 님. 둘째 도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아직 모르겠습니까?"

[이 몸은 계속, 계속 찾고 있어! 찾고 있는데…….]

타다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자 카샬은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넬시아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얼마나 급했으면 제대로 외투도 걸치지 못했다.

"하벨이……. 하벨이 왜?"

"진정하십시오, 아가씨."

카샬은 바닥에 질질 끌린 넬시아의 외투를 주워 가볍게 털고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으어허헝. 넬시아아.]

아라가 넬시아에게 다가갔다.

저 작은 여우의 울음에 넬시아 역시 덩달아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령 기사들의 입단속을 시키고 돌아와 잠깐 밀린 서류를 처리했다.

요새 통 잠을 못 잔 탓에 서류 작업을 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지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정령이었다.

―…넬시아. 그, 하벨이 말이야.

그 정령은 울고 있었다.

―하벨이 다쳤어. 많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치 의식이 끊어진 듯 이렇게 하벨에게 달려왔다.

"하벨이… 다, 다쳤다며. 얼마나 많이 다쳤어? 응? 말해줘."

넬시아는 밀려드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자신에게 매달려 부르르 떠는 아라를 쓰다듬었다.

"배가… 뚫렸습니다."

"허……."

넬시아가 비틀거리자 카샬이 그녀를 붙잡았다.

탁.

갑자기 문이 열렸다.

"카샬! 피를 주세요! 모아뒀던 피가 떨어져 가고 있어요!"

헤레스의 다급한 말에 카샬은 넬시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여기 계셔야 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죠?"

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은 저 너머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피 냄새가 확 올라왔으니까.

카샬이 헤레스에게 걸어가다 잠깐 주춤거렸다.

하벨이 완전히 의식을 놓아버렸다.

그에게 달린 장치가 몇 개이며 바닥에 줄줄 흘렀던 피가 웅덩이를 이뤘다.

카샬은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려 소매를 걷었고, 헤레스는 카샬을 힐끔 바라보며 마법으로 수혈을 시작했다.

"미안해요, 카샬. 많이 어지러울 거예요."

"괜찮습니다. 얼마나 됐든, 뽑으십시오. 저 안 쓰러집니다."

카샬은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헤레스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헤레스는 다시 숨을 참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하벨에게 의식이 있었다.

―…미안해. 더는, 안 되겠네.

그 말을 끝으로 하벨이 눈을 감았다.

콰직.

그리고 칼리우스의 마법이 깨져버렸다.

그 순간, 마치 하벨이 그간 억지로 막고 있던 피가 뚫린 배 밖으로 새어 나와버렸다.

순간, 공황이 덮쳐왔지만, 헤레스는 버텼다.

여기서 자신이 흔들리면 끝이었으니까.

'…왜 피가 안 멈추는 건데?'

헤레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안전하게 봉합했다.

하지만 하벨의 코와 입에서 피가 멈추질 않았다.

이건 배가 뚫린 것과 다른 문제였다.

침식이 하벨을 잡아먹고 있었다.

'제기랄…….'

헤레스는 하벨을 보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제발, 제발, 버텨주세요.'

엘라힘이 올 때까지.

제발.

* * *

카샬이 들어간 뒤에 아라는 연거푸 엘라힘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했지만, 다급함과 초조함에 잘되지 않았다.

[…이익! 왜 안 되는 거야!]

넬시아는 울면서 화를 내는 아라를 계속 다독였다.

"…진정해, 아라야. 네가, 네가 할 수 있어. 아니, 네가 해야 해."

레디나를 보냈다고 해도 아라가 사용하는 물의 길이 훨씬 빨랐다.

지금 공간을 뛰어넘을 힘을 가진 정령은 아라뿐이었고.

[그게… 이 몸이 계속하고 있는데, 정령이 너무 많아. 어떤 마차인지 모르겠어. 막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구, 어려워. 이 몸은…….]

[루룸은 번개야!]

톰톰이 답답해하며 소리쳤다.

[버… 번개?]

[그래! 번개를 찾아! 파직하는 느낌을 찾으라고.]

[파직이라니? 이 몸은 전혀, 전혀 모르겠어.]

[그리고 루룸한테 말을 걸어. 세렌이 그렇게 사용한다고 했어. 나도 길을 열 수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세렌이 잘난 척하면서 꺼낸 말이니까 사실일 거야!]

[응……!]

아라는 눈을 감았다. 파직 소리를 찾아야 했다.

'루룸! 루룸!'

그리고 루룸을 간절히 부르며 아라는 귀를 쫑긋 세웠다.

바람 소리, 불 소리, 땅이 울리는 소리 등 수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파직.

아니었다. 이 소리가 아니었다. 루룸은 더더 컸다.

'제발, 루룸! 이 몸의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해줘.'

아라가 간절히 빌었다.

파지지직.

그때, 날카로운 소리에 아라는 눈을 크게 떴다.

[루, 루룸이다! 이 몸이 찾았어!]

아라가 소리치자 넬시아는 눈물을 닦았다.

"길을 열어줘!"

[으으응!]

아라는 루룸이 있는 위치를 통해 엘라힘이 있는 장소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람이 엘라힘이 왔다며 말하는 게 점점 들렸다.

천천히 부는 바람에 넬시아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아라는 바람의 길을 열었다.

[여기야, 넬시아!]

아라가 앞으로 손을 뻗자 넬시아가 주저 없이 손을 뻗었다.

세렌의 도움으로 물의 길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것과 다른 감각이 전신을 훑고 갔다.

좀 더 서늘하면서 웅장한 느낌이.

넬시아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앞으로 달렸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몰아치며 그 끝에 마차에 앉아 있던 엘라힘이 보였다.

그 옆에 라르웬이 있었고.

"누님……?"

"누님이요?"

"미안해요. 지금 급해서요. 저는 넬시아 티에라입니다."

넬시아가 엘라힘의 팔을 잡고 당겼다.

"자, 잠깐만!"

라르웬의 목소리가 차차 지워졌다.

휘이이이잉.

다시 몰아친 바람과 함께 자신이 원래 서 있던 그곳이 나타났다.

"……?"

엘라힘의 눈이 커졌다.

얼이 빠진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말고 바로 문을 바라보았다.

검은 연기가 그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엘라힘은 놀라며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넬시아를 바라보았다.

넬시아는 대답보다 문을 가리켰다.

간절한 그 손길에 엘라힘은 당장 문을 열었다.

최근에 이런 힘을 보았으며 신의 은총으로 억누르지 않았던가.

하벨을 구해주세요.

뒤에 들려오는 그 간절함에 엘라힘은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하벨 공!"

엘라힘이 하벨의 이름을 부르자 낯선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

무언가가 멈추는 소리 같았다.

마치 심장이.

"…신관님."

연거푸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던 헤레스가 넋을 잃은 카샬의 목소리에 간절히 소리쳤다.

"신관님! 제발, 제발 어서 신의 은총을 쏟아주세요! 제발요!"

엘라힘은 저 애절한 목소리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검은 연기가 하벨을 갉아먹으며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으니.

"신관님, 부탁입니다!"

카샬까지 소리치자 엘라힘은 원래 해야 할 간단한 절차를 생략하며 숨통을 틀어막은 검은 연기부터 없앴다.

"……크윽."

바로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엘라힘은 멈추지 않았다.

빛이 하벨을 어루만졌다. 그의 목을 틀어막은 검은 연기를 없애자 '삐이'하고 울리던 소리가 멈췄다.

"…하."

헤레스가 그대로 손을 올려 숨을 깊이 내쉬었다.

"하아……."

멈췄던 하벨의 심장이 뛰자 헤레스는 또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꾹 참았다.

엘라힘은 멈추질 않았다.

신의 은총을 사용해 연기가 새어 나오는 복부에 손을 댔다.

"대, 대체… 하벨 공께서 누굴 만난 겁니까?"

엘라힘은 손 전체가 저리다 못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욱신거려왔다.

이런 불길함이 가득한 힘은 난생처음이었다.

"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치료에 집중해야 합니다. 도련님께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습니다."

헤레스는 하벨의 피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울먹거리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엘라힘은 이전보다 더 집중하며 남은 검은 연기부터 지워나갔다.

찬란한 빛에 검은 연기가 흐릿해지다 하얗게 변하며 사라졌다.

엘라힘은 잠깐 헤레스를 바라보았다. 저 검은 연기에 영향이 없지 않았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헤레스의 입가가 푸르게 변해 있었다.

엘라힘은 하벨의 상처 부위에 남아 있는 검고 진득한 것들을 지워나가며 다른 손으로 헤레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 말고 도련님부터……."

"당신이 쓰러지면 지금 하벨 공께서 위험한 게 아닙니까? 이 불길함에 영향을 받으셨습니다."

"고맙… 습니다."

헤레스는 그제야 마나를 잠깐 멈췄다.

하벨의 피가 돌도록 마나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엘라힘의 힘이 들어오자 바로 알아서 제자리를 잡아갔다.

'이게… 신의 힘이구나.'

헤레스는 감탄하며 일단 수혈을 멈췄다.

아직 하벨의 가슴팍에 있는 저 검은 실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헤레스는 카샬의 상태도 살피며 엘라힘을 곁눈질로 살폈다.

신의 은총을 사용하는 게 버거운지 점점 엘라힘의 얼굴에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몰라도 저 검은 선이 옅어지질 않았다.

왜.

왜 사라지지 않는 건지.

의문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자신을 콕콕 쑤셔올 때쯤, 엘라힘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레스 씨."

엘라힘이 숨을 섞으며 헤레스를 불렀다.

헤레스는 왜인지 몰라도 뭔가 불안해졌다. 아주 많이.

"혹시 하벨 공의 가슴팍 쪽에 마법이든 뭐든 무슨 힘이 들어갔습니까?"

"힘… 이요?"

"이전과 다릅니다. 상처 부위에 있는 검은 것들은 없애도 하벨 공의 가슴팍에 검은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게 사라지질 않아요."

'…칼리우스 님.'

헤레스는 칼리우스를 단번에 떠올렸다.

저 침식은 아직 없앨 수가 없고 칼리우스가 마법으로 억눌렀다고 했다.

저곳에 하벨을 괴롭히는 그 저주가 걸려 있었다.

'이건 마법으로 된 저주가 기본 토대이기에 신의 은총으로는 저 저주를 뚫을 수 없다는 건가?'

대체 얼마나 강한 저주이기에. 헤레스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지금 칼리우스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아니, 언제 깨어날지도 몰랐다.

"이 힘부터 억눌러야 합니다. 누가 억눌렀는지 몰라도 그분을 당장 모셔야 합니다. 신의 은총은 하벨 공의 재생력을 미리 당겨와 쓰는 겁니다. 서둘러 이 힘을 누르지 않으면 오히려 신의 은총이 하벨 공의 생명을 갉아먹을지도 모릅니다!"

엘라힘은 땀을 닦으며 헤레스에게 강하게 주장했다.

헤레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단,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카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코가 털을 바짝 세웠다.

[너, 미쳤어? 네가 피를 얼마나 뽑았는데?]

"잠깐만요, 카샬 씨. 그렇게 움직이면……."

헤레스는 말을 하다 말고 뒤를 쳐다보았다.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정령들이 물의 길을 연 것처럼 작은 포탈이 열렸다.

카샬이 저 강렬한 반응에 검을 뽑아 그대로 달려가려고 했다.

[검 집어넣어! 적이 아니잖아! 눈 크게 뜨고 보라고!]

아코가 소리를 지르며 카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콰당.

무언가 포탈 너머로 나타나자마자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

헤레스는 놀란 눈을 하며 갑자기 등장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길게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을 밟은 건지, 스르르 일어남에도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몸에 돌돌 감싼 저 이불은 무엇이며.

"카… 칼리우스 님?"

헤레스가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혹시나 하며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헤레스?"

분명 칼리우스가 맞는데 목소리가 한층 굵어졌다.

내민 손 역시 길고 커졌기에 헤레스는 아직도 긴가민가했다.

"푹 자고 일어나니까, 내 마법이 깨져서 당장 놀라서 달려왔는데.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사악.

카샬이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그제야 칼리우스의 얼굴이 보였다.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는 그의 붉은 눈동자는 한층 깊어져 소년과 어른 그 사이처럼 보였다.

카샬은 어지러움에 잠깐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아 말을 꺼냈다.

"지금 도련님이 위험하시다. 빨리 네 마법으로 놈의 힘을 억눌러야 해!"

카샬의 재촉에 칼리우스는 비로소 하벨을 보았다.

"그래서였어……."

칼리우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마법이 가만히 있는데 그냥 깨질 리가 없었다.

―용의 마지막 아이여. 너의 희망이 위험하다네.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눈을 뜨지 못했겠지.

엘라힘이 내던 빛보다 더 밝고 위대한 힘이었다.

"당장 검 빌려줘, 선배!"

카샬이 검을 내밀자 칼리우스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팔목을 그었다.

"칼리우스 님! 지금… 지금……."

헤레스가 놀라자 칼리우스는 움찔거렸다.

"미안해, 헤레스. 내 피가 필요해서 그래."

칼리우스가 어색한 발놀림으로 하벨에게 다가가다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걸 헤레스가 잡았다.

"고… 마워."

칼리우스는 하벨에게 다가갔다.

뭐가 이렇게 주렁주렁 달려 있는지.

새액.

하벨의 숨소리가 너무도 가냘파 눈시울이 시큰거렸고, 목구멍 너머로 뜨거운 게 올라올 것만 같았다.

발바닥에 닿은 하벨의 피가 아직도 뜨거웠다.

대체 하벨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분명 하벨의 다정한 손길이었다.

―지금까지 잘 버텼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아도 놀라지 않고, 그저 따스하게 토닥여주었으니까.

―네가 지키려는 세상은 나도 함께 지킬게. 약속해, 칼리우스.

그 이후로 대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도 칼리우스는 심장이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

투둑.

툭.

칼리우스의 피가 하벨에게 떨어졌다.

카르밀이 남긴 형태가 자신의 마나에 반응했다.

'카르밀, 고마워.'

카르밀이 이 저주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칼리우스는 삼각형 밑에 또 다른 삼각형을 배치해 마름모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모양을 따라 피가 스며들었다.

칼리우스는 더 많은 피를 쥐어 짜냈다.

한 번 깨졌기에 더 많은 피를 대가로 바쳐야 했다.

"…검은 연기가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엘라힘의 말에 응답하듯 하벨의 가슴에 생겨난 마름모 모양의 보랏빛이 '웅웅' 울며 맴돌았다.

그 빛을 보며 엘라힘은 다시 신의 은총을 불어넣었다.

저 길을 따라 새하얀 빛이 스며들었다.

누가 보아도 신의 은총이 하벨에게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게 보여 헤레스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칼리우스가 저주를 뚫고 문을 연 셈이고, 그 사이로 엘라힘의 힘이 스며들었다.

점점 하벨의 가슴팍에 퍼진 검은 실이 옅어졌다.

됐다.

이제 됐다.

헤레스는 하벨의 혈색이 도는 걸 보며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였으니까.

* * *

"…용왕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하벨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지, 왜 자신을 용왕이라고 부르는 건지, 혹여 꿈인지.

그 모든 건 한 남자를 보면서 해결됐다.

자신의 앞에 하벨 티에라가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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