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불길한 틈의 세계(3)
* * *
'…피했다.'
하벨은 적이 라르웬의 번개 공격을 피한 게 눈에 보였다.
딱.
하벨이 손을 튕겼다.
아라가 정령수를 넣자 하벨이 마차 밖에 불꽃을 피어올렸다.
놈이 뒤로 물러나고 마차가 다급히 멈췄다.
다른 마차에서 강렬하게 뛰쳐나온 레디나와 놈의 검이 부딪쳤다.
깡!
"오, 레디나."
놈이 레디나를 보며 짧게 감탄했고, 라르웬이 마차 너머로 몸을 날렸다.
"내가 가!"
'와. 이런 식으로 나왔어?'
하벨은 창문 밖에 서 있는 적을 보며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레디나를 알아봤다는 것부터 무얼 의미하겠는가.
간부였다.
간부가 나타났다.
설마 왕실을 떠나자마자 덮칠 줄이야.
'형님의 흔적을 쫓아왔을 거다. 형님이 클로저라는 건 조금만 조사해도 나올 테니까.'
"하벨."
넬시아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하벨을 붙잡았다.
"오늘 어디로 가는 건지 잊으면 안 돼."
"검은 달의 간부가 나타났습니다."
"일단 앉아 있어. 적어도 밖보다 안이 안전할 테니까."
"누님."
"내가 잡아."
넬시아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꼭 붙은 톰톰을 바라보았다.
"톰톰."
[좋아, 좋아! 이제 단번에 가자고! 오오, 불타오른다!]
언제 쫄아 있었냐는 듯 톰톰은 당장 땅으로 내려와 바닥에 손을 댔다.
창문에 매달린 아라가 눈을 크게 떴다.
[톰톰이 땅한테 부탁하고 있어. …어엇, 왜 갑자기 이 몸한테 물어보는 건데?]
바깥 상황을 보던 아라가 당황했다.
땅이 갑자기 자신한테 허락을 구했다.
[이, 이 몸은 당연히 허락해! 넬시아를 도와주고, 라르웬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깜짝 놀랐지만, 나름 침착하게 대답하는 아라의 말에 하벨은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아라가 정령왕이라면 지금 정령왕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아라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보았다.
하벨은 아라를 쓰다듬어주며 일단 참았다.
말을 꺼내기에는 상황이 그렇게 평화롭지 않았으니.
하벨은 그저 넬시아와 라르웬을 바라보았다.
둘 다 정령사이기에 힘을 어떻게 다루면 좋은지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중간중간 돕는 건 괜찮겠지, 그렇지 아라야?"
[응응!]
아라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대부분 가린 카샬과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잘 안 보이는데…….]
"앗. 미안."
칼리우스가 슬쩍 비키려 하자 카샬이 그의 팔을 잡았다.
"위치 고정해. 창문으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하벨은 카샬과 눈이 맞았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려 조용히 웃었다.
[좋아! 땅에게 허락받았어, 넬시아. 이제 땅은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거야.]
톰톰의 말과 함께 넬시아의 발바닥에 닿는 흙이 살짝 흔들렸다.
'사람인 이상,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지.'
넬시아는 조용히 기다렸다.
파지직!
요란스럽게 울리는 번개의 소리가 왼쪽, 오른쪽 여러 곳에서 울렸다.
'이런 걸 보면 힘이 남아돈다니까.'
넬시아는 라르웬의 머리카락을 꼭 쥐고 즐겁게 매달린 루룸을 보여 웃었다.
[오오! 또 허탕이야, 라르웬!]
"조용히 해!"
라르웬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파지지직.
라르웬 주변에 번개가 뻗어 나가며 땅이 울렸다.
'젠장, 요리조리 진짜 잘 피하네.'
넬시아는 라르웬의 박자를 기억했다.
암살자가 제아무리 어둠 속으로 숨었다고 한들, 다리는 땅을 밟고 있어야 했다.
넬시아는 라르웬의 번개를 피하며 자신에게로 조용히 달려오는 발소리를 느꼈다.
스르르.
넬시아는 검을 뽑아 들었다.
놈이 한 발을 내딛자마자 땅을 움직였다.
땅이 갑작스럽게 위로 치솟자 놈은 뒤로 움직였고, 당연하게도 그곳 역시 땅이 위로 치솟았다.
'일정한 박자대로.'
넬시아는 땅을 움직여 놈의 움직임을 지휘했다.
'그리고 익숙해질 때쯤.'
놈이 당연히 올 거라 예상하고 발을 떼었을 때, 넬시아는 검을 들었다.
넬시아의 검 끝이 놈을 향하자 땅이 모든 방향에서 일어나 놈을 휩쓸었다.
'덮친다!'
놈을 삼킨 흙더미가 둥글게 발렸고,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탁탁.
발소리가 그 안에 들려왔다.
'붙잡혔네.'
넬시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손을 들어 쥐었다.
놈을 감싼 둥근 흙더미가 줄어들었다.
'다시 한번.'
흙더미를 좁히고 더 좁히며 압박하는 과정에 넬시아는 꿀렁거리는 흙을 타고서는 검 끝에 불을 붙였다.
화륵.
검이 잘 달구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속도를 붙여 찔렀다.
푸욱!
검 끝에 감각이 있자 넬시아는 검을 그대로 뒤틀어버렸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일어났다.
넬시아의 시선이 레디나를 향했다.
'쟤는… 하벨의 시녀?'
"죽어어. 죽어버려어!"
언제 왔는지 몰라도 바람을 가득 실은 레디나의 단검이 흙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푸우욱!
흙더미가 바람에 무너지자마자 손 하나가 튀어나와 레디나의 멱살을 잡고 땅으로 내리찍었다.
콰악.
"설마, 네가 우리를 배신할 줄이야."
간부의 어깨에 피가 흘러내렸다.
곧 놈은 모습을 감추고, 그 자리에 라르웬이 쏜 불꽃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제기랄."
레디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고개를 다급히 들었다.
마차 쪽에 일렁거렸다.
"카샬!"
레디나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카샬이 칼리우스의 도움으로 마차 위로 올라가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놈이 하벨을 노리며 찌르려던 장검이 카샬에게 막혔다.
쿵쿵.
"위가 소란스럽네."
하벨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왔으니 환영해줘야겠지.
[여기에 있어! 이렇게 던지면 돼.]
아라가 앞발을 움직이며 방향을 알려줬다.
"좋은데?"
하벨은 압축한 물을 튕겼다.
마차 천장을 뚫은 물이 고스란히 놈의 어깨를 때렸다.
투툭.
피 한 방울이 하벨의 바지에 떨어졌다.
"오. 우리가 해냈는데, 아라야?"
쿵!
천장을 밟는 소리와 함께 검이 휘두르는 소리가 그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카샬이었다.
하지만 소리가 비어있었다.
'허탕이네, 카샬.'
하벨은 소리로 대충 예상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차 창문으로 향했다.
막 땅으로 내려온 간부를 노리려 라르웬이 휘두른 창이 땅에 박혔고, 간부는 그 옆에 서 있었다.
퍼엉!
창은 곧 터져나가며 주변에 번개가 튀자 간부의 발이 바빠졌다.
검으로 막아봤자 저 전기가 통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간부의 눈동자가 순간 움직였고, 놈의 손이 오른쪽 바깥쪽으로 휘둘러졌다.
까앙!
레디나가 조용히 들짐승처럼 달려들었기에 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잘못된 정보가 많아. 그중에서도 특히 네 배신이 뼈가 아픈데, 레디나?"
"나만큼 충격적일까? 네가 간부라고? 네놈이?"
레디나는 저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란덴.
엄마의 측근.
"이 썩을 개자시이익!"
레디나의 눈동자에 핏줄이 가득 솟아올랐다.
"레디나. 네가 이해 못 하는 건 알아."
"이해해? 이해?"
"그땐 네가 어렸으니까. 세상이 돌아가는 걸 네가 몰랐을 뿐이지. 지금."
그란덴의 말이 잠깐 멈추고 레디나가 다른 손으로 치밀고 들어오는 단검을 잡았다.
"지금 수장께서 전 수장을 치지 않았으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야."
"돈!"
레디나가 이를 갈았다.
"망할 그 돈 때문에 죽였잖아!"
"망할 돈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이 변해버렸다고, 레디나! 수장님께서 널 살려주신 이유를 모르겠어?"
그란덴은 레디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란덴과 레디나의 손이 부들거렸다.
레디나는 한쪽 입꼬리를 뒤틀었다.
"그래서 죽은 자를 농락했어? 아무리 우리가 사람의 피를 먹고 살았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개소리……."
레디나의 단검에 바람이 실렸고, 그녀는 그란덴의 목을 노리는 척하며 복부를 걷어찼다.
"지껄이지 마!"
그란덴이 그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서는 뒤로 비틀거렸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그란덴은 레디나를 향해 달려가며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를 농락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레디나 말대로 아무리 암살자라고 해도 해선 안 되는 짓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디나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란덴의 검이 사선을 가를 때쯤, 갑자기 검이 사라졌다.
"……?"
하나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검들이 줄줄이 사라지자 그란덴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검들이 허공을 떠 있었다.
"환자 앞에서 그런 위험한 건 안 되는데요."
헤레스가 그란덴을 노려보며 보란 듯이 검들을 구겨 공으로 만들었다.
"……?"
그란덴이 넋을 놓은 그 한순간의 틈을 칼리우스가 노렸다.
차르르.
그란덴의 팔과 다리에 단숨에 마나로 만든 쇠사슬이 나타나 붙잡았다.
"맞아. 그건 무척 위험한 거라고."
칼리우스 역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법사가 있었다고?"
그제야 그란덴이 깜짝 놀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곧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스르르.
자신의 뒤에서 파도처럼 자라난 땅이 그를 덮쳤다.
콰콰콰콰!
"그건 차차 이야기하렴. 시간은 많으니까."
넬시아가 그란덴을 향해 걸어갔다.
파지지직.
번개가 튀는 소리에 넬시아가 라르웬을 말렸다.
"멈춰, 라르웬."
"아니. 이놈들은 어디 한 곳을 잘라놔야 해. 그래야 아무 탈이 없거든."
라르웬은 신경질이 잔뜩 나 있었다.
커다란 괴물은 대충 아무렇게 휘둘러도 맞을 곳은 많았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무척 짜증이 났다.
딸깍.
마차 문이 열렸다.
"다 끝났어요?"
하벨이 태연하게 물었다.
"들어가시죠, 도련님."
카샬이 바로 얼굴을 구기며 하벨을 말리자 아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장은 이 몸이랑 여기에 있자.]
"하지만 다 끝난 것 같은데? 기습은 실패야."
하벨은 기어코 마차를 내려왔다.
"아쉽게 됐어. 아무래도 형님을 죽이러 온 것 같은데."
하벨의 시선이 그란덴을 향해 있었다.
"정보가 잘못된 걸까. 무모했던 걸까. 아니면 자만심에 가득 찬 걸까?"
그란덴에게 걸어오면서 하벨은 계속 말을 꺼냈다.
"그것도 아니라면… 검은 달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면 되는 거야?"
그란덴은 점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눈앞에 표적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니.
방심한 건 사실이었다. 여기서 레디나를 만나 크게 흔들렸다.
"아하. 이렇게도 할 수가 있네요? 대단한데요, 누님?"
하벨은 잠깐 넬시아가 만든 땅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간부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모래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너희는… 정화제를 독점하고 있다."
그란덴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를 공격했다?"
라르웬이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네가, 아니. 클로저의 거지 같은 실상을 알고 있지.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틈의 세계가 열리는 틈을 타서 사람을 죽여?"
"오."
하벨은 감탄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더 궁금해 자백제를 만들어 놓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레디나."
그란덴이 눈동자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검은 달은 네가 생각한 것만큼 썩지 않았어. 분명 바뀌었지만, 네가 아는 그 검은 달이 맞으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 수장님께서는 그분의 의지를……."
"닥쳐!"
레디나가 이를 갈았다.
"검은 달이 내가 아는 곳이라고? 쓰레기가 된 검은 달이 내가 아는 곳이라고?"
"그렇지. 거긴 쓰레기나 마찬가지인데?"
하벨이 슬쩍 껴들었다.
"방금 네가 지금 몇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 전에 내가 물어볼게. 허락도 받지 않은 시체나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는 게 정상이야 아니야?"
"…아니지. 그건 인간으로서 허용할 수 없어."
"그걸 검은 달이 하고 있는데 이걸 몰랐다는 건, 음, 넌 대체 얼마나 무능한 거야? 간부라는 이름이 아깝네. 그냥 레디나한테 줘. 마침 레디나는 그 이름이 필요하니까."
하벨은 비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뭐라고?"
그란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자신을 흔들려는 수작일까.
"정신 차려, 멍청아. 너 몰래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하벨은 위를 가리켰다.
"수장 새끼잖아. 방금 네 입으로 인간으로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서 내가 그렇게 지껄인 거니까 너무 열 받지 마."
"너는 그럼 떳떳해? 티에라 너희는 정화제를 독점해서……."
"멍청한 새끼."
넬시아는 그란덴을 딱한 듯이 바라보았다.
"정화제를 만들기 위해선 정령들이 필요하다는 걸 몰라? 현재로서 정령들이 온전히 마음을 여는 사람이 아버지뿐이고, 정령들이 티에라 가문만 믿기에 우리 가문에서 만들어지는 거야. 그걸 독점이라고 하다니."
넬시아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흔히들 티에라 가문을 비난할 때 지껄이는 말 중 하나였다.
"애초에 왜 헤스트리아 왕국을 빼는 거지? 비록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어도 엄연한 정령사 왕국인데?"
"됐어, 누님. 검은 달이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네."
라르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러니까 더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들죠? 그란덴이 멍청하거나, 수장이 간부마저 믿지 못해 정체를 숨겼거나. 둘 중 하나인 걸 보면 답이 나오시죠?"
레디나가 이를 살짝 갈았다.
"그래. 어쩌면 내부에서 이런 믿음을 가진 놈이 꽤 많을지도 몰라. 검은 달이 아직도 세상을 위한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말이야."
줄줄 말을 이어나가던 하벨이 레디나를 바라보았다.
"길게 말했지만, 네 말이 맞다는 거야, 레디나. 원래 이런 놈들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놈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를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그런 위대한 일을 하는데 돈을 버는 게 뭐가 대수냐는 생각도 한다니까?"
"말조심해. 검은 달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야."
그란덴의 말에 하벨은 배를 잡고 웃었다.
놈의 말이 웃긴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일하는'이라는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란덴 본인도 믿지 못하고 있는 게 보여 그게 우스웠다.
'좋은 말이 하나 들어왔네.'
하벨은 저런 놈을 알고 있었다.
충신이자 주인을 배신하며 돌아설 때가 제일 무서운 괴물.
"레디나."
"예, 도련님."
"간부를 죽이면 네가 간부가 될 수 있다고 했지?"
"맞아요."
"지금 바로 간부가 되고 싶어? 아니면 내부가 부서지는 걸 좀 기다리고 싶어?"
"저는……."
쩌어억.
레디나가 말을 꺼내기 전에 허공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미친."
라르웬이 제일 먼저 그 소리를 들어서는 다급히 말했다.
허공에 금이 갔다.
"틈의 세계가 열리고 있어! 물러나! 누님! 마차로 가 있어!"
[어어엇! 트, 틈의 세계가 또 열린다구?]
아라가 깜짝 놀랐다.
틈의 세계가 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열리는 건가.
'아무리 나 때문이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
하벨 역시 눈을 의심했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 다르니까, 조심해야 해, 아라야.]
루룸은 아라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라르웬과 함께 틈의 세계를 얼마나 많이 봤던가.
평소에도 불길했지만, 오늘은 더욱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털썩.
"트, 틈의……."
넬시아가 말도 잇지 못한 채로 그대로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
"제가 아가씨를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진정하세요."
카샬과 헤레스가 서둘러 달려와 넬시아를 일으켰다.
그녀가 틈의 세계에 얼마나 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던가.
"이놈은 일단 기절시킬게요!"
레디나가 일단 그란덴을 기절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무엇이든 선택할 수가 없으니.
하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넬시아는 그란덴의 뒷목을 세게 쳤다.
"레디……."
그란덴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내가 도와줄게."
칼리우스가 그란덴을 번쩍 들어 옮겼다.
카샬과, 레디나, 헤레스, 넬시아가 빠진 그때 하벨이 우뚝 서 있었다.
라르웬이 당장 언성을 높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마차에 올라타서 도망쳐야지!"
"어차피 날 노리잖습니까. 내가 도망가도 소용없습니다."
하벨은 평소 틈의 세계와 달리 주변에 붉은빛이 도는 모습을 사납게 바라보았다.
'저게 류아가 말했던, 진짜 괴물이 나오는 틈의 세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