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그렇게 이어졌다(2)
* * *
아라의 꼬리를 쓰다듬던 하벨의 손이 멈췄다.
자신은 어떻게 류아가 살아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류아가 살아 있기에 옛 대신들 역시 살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웃기네. 진짜.'
하벨은 갑자기 모든 게 우스워졌다. 자신은 죽었기에 저들 역시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 내 말이 믿을 수 없다는 건 안단다."
룬델은 살짝 얼어붙은 하벨의 표정에 일단 그를 달랬다.
틈의 세계에서 사람과 닮은 존재가 나왔고, 그들이 '비늘'을 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이기 얼마나 어려운가.
"아뇨.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하벨은 일단 불안정한 사실은 집어넣고 룬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도 알다시피 놈들은 죽지 않아."
"예. 죽지 않습니다."
"십여 년 전. 그때는 내 평생, 최악이라 할 만큼 끔찍한 날이었단다."
룬델은 다시 조용히 기억을 더듬어갔다.
날이 아주 좋았다. 따스한 햇살이 마차 안으로 스며드는 그런 날이었다.
"모처럼 여행이라 들떴단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느꼈던 온기와 잔잔히 퍼져가는 웃음소리가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이름이 모든 걸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알기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룬델은 숨이 막히는 기분에 휩싸였다.
"…티에라 가문이라는 이름에 나는 자만하고 있었지. 내가… 내가 오만했단다. 나는 틈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말을 하면 할수록 룬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숨소리가 섞이고,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물거품이 이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하벨은 룬델의 손을 잡아주며 그의 자책을 부정했다.
틈의 세계에서 나온 이들은 모두 죽지 않는 자였다.
"누구나 틈의 세계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특히나 지켜야 할 이들이 많았잖습니까."
무려 십여 년 전인 데다가 그 일은 갑작스러운 습격이었으며, 낯선 존재까지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이를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죽지 않는 괴물을 상대할 방법은 적을 얼리는 방법뿐이었단다."
"…가주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까?"
물의 힘이 강한 정령과 그 물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정령사는 흔치 않았다.
이는 물이 오염됐기에 발생하는 하나의 부작용이었다.
룬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밖에… 없었단다."
룬델은 벌써 그날 느꼈던 피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넬시아가 라르웬을 지켰고, 아내가 막내를 지켰고, 물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자신이 모두를 지켜야 했다.
룬델은 하벨에게 전투가 벌어졌음을 말하며 기억을 끌어올렸다.
입안에 피 맛이 맴돌 정도로 물의 힘을 끌어 올리고 적들을 얼려버렸다.
숨을 쉴 때마다 새어 나온 차가운 입김을 아직도 기억했다.
분명 도망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
새로운 틈의 세계가 열리기 전까지.
"그런데 적들을 얼리던 와중에 틈의 세계가 또 열려버렸단다."
"…또요? 또 열렸다고요? 그 상황에서……."
하벨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동시에 두 개가 열렸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벨은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바로 자신의 앞에 절망으로 휩싸인 룬델이 보였다.
"적들은… 막내를 노렸단다. 모두."
처음 열린 틈의 세계에서 나온 사람을 닮은 괴물과 새롭게 등장한 틈의 세계에서 나온 괴물들 모두 아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모두가 적인 상황에 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괴물들끼리 싸우더구나. 서로의 틈의 세계로 향하기도 했고.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괴물 모두 막내를 노렸고, 두 괴물 모두 서로를 공격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무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벨의 위로가 룬델의 감정을 찔렀을까.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래. …내가."
룬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단다."
상황이 엉망이더라도 룬델 자신은 무엇이 맞았는지 판단했어야 했다.
적이란 적은 죄다 얼리던 와중에 자신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다.
―하벨아! 하벨아……!
그건 분명 아내의 소리였다.
무언가 엉망이 됐다는 걸 짐작하고서야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사람을 닮은 괴물을 피해 도망치는 한 아이를 보고 말았다.
자기 아들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막내가 도망치고 있었단다. 분명 아내와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을 막내가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었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겠더냐?"
"구하러 가셨겠죠. 반드시 그랬을 겁니다."
"그래. 나는 달려갔단다. 정말 마지막 힘을 짜내어 세렌에게 도움을 받고 물의 길을 열어 괴물들 앞에 섰지."
괴물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감히 자기 아들을.
이토록 어린 막내를.
적들을 얼리고, 막내를 품에 안았을 때 자신은 알아챘다.
"…막내가 아니었단다."
룬델의 눈이 커졌다.
그때의 허망함이 보였기에 하벨 역시 당황했다.
"……네?"
"내 아들이… 아니었어."
절망이 깊게 자리 잡은 룬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 아이를 안고 넋을 잃고 말았단다. …두 번째에 열린 틈의 세계에도 사람을 닮은 괴물이 나올 때까지."
―뭐해! 도망치라고!
그 날카로운 소리에 자신은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금… 두 번째에 열린 틈의 세계에서 나온 누군가가 가주님을 도와줬다고요?"
"그래. 사실 아직도 믿기진 않는구나."
룬델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마지막으로 향하는 기억의 끝을 따라 다시 걸었다.
왜 괴물이 자신을 도와주는 건지, 처음 등장한 틈의 세계와 두 번째 나온 틈의 세계에서 나온 놈들이 싸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째서 막내를 노리는 건지 몰랐지만, 자신은 달려갔다.
"그 아이를 안고 아내에게 갔을 때."
룬델은 말을 끝내자마자 숨을 삼켰다.
세상에서 제일 길었던 몇 걸음이었다.
"기사들이 죽었고, 아내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고, 막내가……."
룬델은 목구멍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더는 꺼낼 수가 없었다.
분명 지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한 번이 부족하고 말았다.
아내가 만든, 흙으로 된 벽이 무너졌고 괴물이, 사람을 닮은 괴물이 울고 있었다.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이 방법밖에 없다는 듯 괴로워하며 누군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 끝에 막내가 있었다.
엉엉 울고 있는 막내를 손에 쥐고.
―하벨아……!
넬시아의 간절한 손길을 짓누른 채로 그놈이 막내의 목을 꺾어버렸다.
투둑.
그 잔인한 소리와 함께 놈은 조심스레 막내를 내려놓았다.
―…나를, 원망하십시오.
미안함이 가득 담긴 말과 눈빛을 남긴 채 처음 열렸던 틈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그렇게 놈은 처음 열렸던 틈의 세계로 도망쳤단다."
룬델은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허망함.
그 절망감.
씻을 수 없는 슬픔이 다시금 거품처럼 솟구쳤다.
―……여보.
아내가 자신을 불렀을 때, 자신은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손에 쥔 그 아이를 보며 아내는 활짝 웃었다.
"아내가… 그 아이를 보며 마지막으로 웃더구나."
―다… 행이에요. 하벨이, 하벨이 무사해서.
"그 아이보고 '하벨'이라고 부르더구나."
룬델은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지금 …하벨이라고……."
룬델의 눈물을 닦아주려던 하벨은 그대로 솟구치는 감정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벨이라고… 하셨…… 습니까?"
"……그래."
룬델의 시선이 하벨의 손목에 찬 팔찌에 달린 랜턴을 향했다.
"내가 막내라고 착각했던 그 아이가 지금 셋째란다."
―부탁해… 요, 여보.
아내가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불쌍하게 죽은, 막내하고 너무도 똑같았던, 그 아이가 셋째인, 하벨 티에라란다."
"……하."
하벨은 숨을 다급히 내쉬었다.
이제야 알았다.
왜 라르웬이 칼피오가 틈의 세계와 관련된 무용담을 자랑했을 때 말렸는지.
넬시아와 라르웬이 틈의 세계에 왜 이렇게 예민했는지.
랜턴이 눈물을 흘리듯 반짝반짝했다.
"라르웬하고, 넬시아가 보고 말았단다. 어렸던 라르웬과 달리 넬시아는… 또렷이 기억했지."
―아빠…….
한참을 울부짖던 넬시아가 아내의 말에 고개를 올렸다.
―쟤는 아니에요.
넬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쟤는, 쟤는 내 동생이 아니에요! 쟤는 아니라고요! 쟤가, 저게, 저… 저게 내 동생을 죽게 했어요! 아아아악! 하벨이! 으… 으으, 하벨이!
제 몸을 할퀴며 소리치던 넬시아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까.
소리치며 현실을 부정하던 그 모습에도 자신은 셋째를 데려왔다.
셋째가 하벨이 되어 함께 지내던 어느 날, 넬시아가 셋째를 죽이려 목을 조른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자신은 그 가엾은 아이를 혼내지 못했다.
넬시아는 모든 걸 보았고, 모든 걸 또렷이 기억했으니까.
―…죽이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똑같은… 얼굴로. 하벨이랑, 똑같은 얼굴로 웃고 있다고요. 아빠 나는, 흑, 나는요. 못 보겠어요. 내 동생 하벨은 목이 꺾여… 서 그렇게 죽었는데. 죽었는데! 쟤는 웃고 있잖아요? 웃고 있다고요……!
룬델은 눈을 감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고, 그칠지 모르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누님이 하벨 티에라의 목을 졸랐다니.'
하벨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넬시아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벨 티에라와 마주하면서 느꼈을 그 감정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널 원망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했다고. 나한테 꼭 보물처럼 소중했다고.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널… 죽이려 했던 그 기억 때문에 무서워서 더 다가가지 못했다고.
'그래서 누님이 그때 하벨 티에라한테 그렇게 말했다.'
안쓰러웠다.
안쓰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니 너 때문이 아니란다, 하벨아."
룬델은 긴말을 끝내고 하벨을 다독였다.
자신을 위해 울어주고 있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하벨은 룬델이 안쓰러워서 넬시아와 라르웬이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버텼습니까?"
―으… 으어허헝!
룬델은 셋째의 첫 울음소리를 기억했다.
말도 못 하고.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엉엉 우는 그 아이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셋째는 처음에 말도 못 했단다. 글자도 모르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모든 것들을 알지 못했단다. 그래서인지 독기가 바짝 오른 새끼 고양이 같기도 했지."
그저 처음에는 안쓰러움으로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고, 쓰다듬고, 안아주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에 와 있더구나."
셋째가 우는 그 소리가 꼭 자신처럼 누군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 불안함이 안쓰러워 동정심에 손길이 한 번, 두 번, 그렇게 숫자를 더하면서 이어졌다.
"…사랑하게 되었단다."
룬델은 눈에 하벨 티에라를 담았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는 모습이나, 밥을 먹으며 부풀어 오르는 볼때기나, 자신을 보며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이 막내와 달랐지만, 사랑스러웠다.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단다."
룬델은 부들거리는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눈마저 살포시 감기자, 눈물이 떨어졌다.
"아주, 아주 많이."
눈을 감으면 아직도 '아버지'하고 자신을 부르던 그 목소리가 생각이 났다.
"…많이, 사랑하고 있단다."
하벨은 룬델을 위해 손을 뻗었다.
랜턴의 빛이 점점 거세졌다.
"이 랜턴에 말하면 분명 알아들을 겁니다. 지금도 듣고 있을 테니까요."
천천히 눈을 뜬 룬델은 하벨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직 셋째의 의식이 하벨의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걸.
"셋째야. 혹시… 내 말을 듣고 있더냐?"
랜턴이 흔들렸다.
룬델의 눈동자가 다시금 일렁거렸지만, 그는 감정을 꾹 눌렀다.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는단다."
왜 모르겠는가.
가끔 셋째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미안해하던 눈빛을 왜 모를까.
어딘가 붕 떠버린 느낌을 느끼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항상 미안했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단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더 살폈어야 했다."
랜턴이 고개를 젓듯 흔들렸다.
룬델은 눈물을 닦으며 셋째에게 말하고 싶었던 그 말을 꺼냈다.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한단다."
―아버지. 제가 정령사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기 전에 강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걸 그랬습니다.
셋째가 산에 오르기 전에 자신을 찾아왔었다. 평소 하지 않았던 말을 꺼내 무척 기뻤다.
하지만 그 말은 자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인사였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았다니.
셋째에게는 두 번의 삶이 있었다.
자신은 모르는, 하지만 셋째는 기억하는 첫 번째 삶을 얼마나 애타게 지내왔을까.
세상이 멸망했다면 그 과정을 어떤 심정으로 보았겠는가.
"나는……."
―분명 바뀔 수 있었는데, 제가 힘이 없어서. 제가 약해서 아무것도 바꾸질 못했습니다.
겨우 손에 넣은 두 번째 삶에서도 셋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
협력자였던 '류아'라는 자와 함께 지금 하벨을 불러오는 선택이 최선이라 판단했으니까.
그렇기에 룬델은 더더욱 셋째의 선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산에 올랐는지 이제야 알았다.
"나는 널 계속 믿고 있단다."
―후회… 했습니다.
그 후회가 자신을, 가족을,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였다.
바보 같은 것.
그런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됐는데.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웃던 그 표정이 생각이 났다.
―저는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가 저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이제는 압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저를 믿어주세요.
그 말이 떠오르자 룬델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삶에서 자신이 끝까지, 셋째를 놓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다행이었다.
자신이 끝까지 저 아이를 사랑해줘서.
"다만, 슬프구나. 마음이… 아프구나.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내게 말해주지 그랬니."
그랬다면.
셋째가 그 말을 했다면 자신은 그 손을 놓을 수 있을까.
룬델은 랜턴을 아주 소중히 만지며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역시 내 욕심이겠지.'
하벨은 곧 자신을 바라보는 룬델을 위해 한쪽 팔을 벌렸다.
"이리 오세요."
일렁거리던 룬델의 눈이 살포시 감겨서는 하벨을 안아주었다.
어쩜 저렇게 상냥하고, 다정한지.
룬델은 하벨이 고맙고, 어여뻤다.
[…으으응?]
아라가 뭔가 좁은 상황에 답답해 눈을 슬쩍 떴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아라는 룬델과 하벨을 안아주었다.
[헤헤.]
아라의 웃음소리가 퍼지자 하벨은 크게 웃었다.
룬델 역시 웃었다.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살랑살랑 불던 바람이 거세지자 룬델은 눈물을 훔치며 그제야 하벨을 재촉했다.
"이제 들어가자꾸나. 춥단다. 감기 걸리면 큰일이지 않더냐."
고개를 끄덕이며 하벨이 발을 내디딘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아프더냐? 토, 통증이 느껴지는 거라면 내가……."
"아뇨. 왕실에 힘을 둬야 합니다. 그걸 깜박했네요."
"힘을 두다니?"
"제가 영혼을 흡수하면서 에르티안 왕국의 오염을 유지하던 그 힘을 흡수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놔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까 보니까 왕실에 물길이 보이던데 혹시 가깝거나, 중요한 물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벨은 분명 룬델을 향해 물었지만, 시선이 지그시 아라를 향했다.
[……으응?]
아라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깜박거렸다.
"가자, 아라야."
[어, 으음, 지금 밤인데? 밤에는 이 몸도 대장도 코 자야 해.]
"마침 달이 예쁘게 떴네."
언제 구름 밖으로 튀어나온 건지 몰라도 달이 참 어여뻤다.
"괜찮죠?"
하벨이 고개를 돌려 룬델을 향해 씩 웃자 룬델은 숨을 다급히 들이마셨다.
설마하니 아들의 일탈을 이렇게 바로 볼 줄이야.
"…아버지."
이어지는 말에 룬델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이제 괜찮습니다, 전하."
하벨은 병문안은 온 바안을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예?"
바안은 갑작스러운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석이 부서져서 걱정이시잖습니까. 제가 다 해결했습니다."
당당하면서도 어딘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하벨의 말에 바안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