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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55화 (255/415)

255화. 긴장을 풀고(2)

* * *

《"형……."

콰앙!

형님의 방에서 일어난 소리에 나는 숨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다시금 말을 꺼내던 차, 형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진정하라고? 지금 내가 진정할 수 있겠어?"

필시 '루룸'이라는 형님을 좋아하는 정령과 이야기하는 게 틀림없었다.

엿듣는 건 좋지 않으니 발을 떼려던 순간, 형님의 말이 발목을 붙잡았다.

"…죽어버렸다고."

죽어?

누가?

죽음이라는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 신관이, 그것도 추기경이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허업!"

순간 너무 놀라 숨이 크게 들이마셨다.

추기경이 죽었다니.

애초에 추기경이 왜 이곳 에르티안 왕국에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탁.

문이 다급히 열리고, 형님이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라르웬은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왔으면 문을 두드렸어야지."

"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들어와."

형님은 바로 등을 돌려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까지 들었어?"

자리에 앉자 형님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왠지 모를 압박감에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추기경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그래, 그래. 내가 집이라고 안일했어. 됐어?"

형님의 시선은 내가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추기경이 죽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큰일이 아닌가.

그것도 형님이 얽혀 있으니 너무 걱정됐다.

"아니. 네가 알기에 너무 복잡한 일이야. 뭘 들었든 잊어, 하벨아."

형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하지만 저는 형님이 걱정스럽습니다."

"때론 몰라도 되는 일이 있어. 이게 바로 그 일이고. 얽혀봤자, 너한테 도움이 될 일이 아니야."

또, 그 선이 보였다.

형님은 다정하지만, 선을 넘으면 너무도 무서웠다.

내가 진짜 동생이 아니라서 그럴까.

하지만 허울뿐인 이 느낌을 언제까지 가지고 싶지 않기에 나는 용기를 내 그 선을 살짝 넘어보았다.

"같이… 고민할 수는 있잖아요."

형님이 잠깐 흔들리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어떤 감정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제발 원망만은 아니길.

설령 내가 티에라 가문에 진짜 막내의 대용품이라고 해도 형님도 누님처럼 나를 싫어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하벨아."

형님이 숨을 섞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형님마저 날 싫어하면 나는 진짜 머물 곳이 없는데.

"…네."

"너는 안 돼. 왜 안 되는지 알고 있지?"

약하니까.

그저 콜록거리거나, 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네."

마음이 또 아팠다.

대체 언제 이 아픔을 잊을 수 있을까.

"마음만 받을 테니까, 여기서 손 떼. 관심도 주지 마. 아예 잊어버려."

형님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오늘 이곳에서 나와 너는 대화도 하지 않은 거야. 알겠어, 하벨아?"

탁.

그 소리가 선을 넘은 경고처럼 들려와 나는 옷자락을 잡은 손을 벌벌 떨었다.

나를… 미워하지 말아줘요, 형님.

그 말이 목구멍에 탁 걸려 눈가가 욱신거렸다.

* * *

얼마나 흘렀을까, 그날의 기억이 잊힐 때쯤, 신성 국가 시엘느에서 모든 나라에 충격적인 발언을 선포하고 말았다.

―클로저가 추기경인 엘라힘을 죽였으며 나아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손댄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신의 이름을 걸고, 도리를 저버린 클로저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 오늘, 시엘느에서 신관들이 찾아왔다.

그들의 눈빛은 싸늘했다.

"라르웬 티에라 님. 협조해주셔야 할 겁니다."

형님이 클로저 일을 하는 동안 일반인을 죽였는지 아닌지에 관한 조사가 이루어질 모양이었다.

형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

"네 방으로 돌아가 있거라."

아버지가 나를 말렸다.

"하지만."

"돌아가 있어, 하벨아. 카샬. 뭐해?"

형님이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슬쩍 웃고는 신관들을 따라갔다.

무슨 의미일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아. 또 어지럽기 시작했다.》

"놀라지 말……."

카샬은 되물으려다 어서 손수건들 꺼내 하벨의 입가 근처에 가져댔다.

"…쿨럭!"

하벨의 몸이 무너지면서 다급히 올린 가면 틈으로 피가 쏟아졌다.

정적이 일어나자 하벨은 필사적으로 손바닥을 올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때렸는지 의식이 빠르게 흐려졌다.

'…아직, 보고할 게 많은데.'

룬델.

라르웬.

페트리오.

바안.

엘라힘까지.

'이거 꼭 혼날 목록 같은…….'

* * *

[대장! 정신이 들어?]

살짝 눈을 뜨자 아라의 목소리가 밀려들었다.

이상하게도 아라가 소곤소곤 말했다.

[여기 왕실이다?]

아라의 말랑한 앞발이 자신의 볼을 누르는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몸은 대장만 보고 있었어. 대장이 쿨쿨 자고 있을 때, 되게 많은 사람이 왔다 갔어. 어, 라르웬하구, 넬시아하구, 바안하구. 아! 엘라힘도 왔다?]

"……!"

엘라힘이라는 말에 하벨은 쓰러지기 전에 봤던 기억이 떠올라 다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과거에 엘라힘이… 죽었다.'

하벨은 기억에서 본 사실을 주목했다.

엘라힘은 원래 검은 달의 지부에서 죽을 운명이었고, 이 일이 아무래도 신성 국가 시엘느와 클로저의 싸움으로 번진 모양이었다.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일이 클로저가 가진 신뢰를 단숨에 박살 내는데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칼피오가 클로저를 감시하는 조직을 만든다고 하자 검은 불꽃이 줄어들었다는 건가.'

미래에, 자신이 개입하기 전에 미래에서 클로저가 무너진 게 아닐까.

그 말은 즉, 틈의 세계가 전역으로 퍼져나간다는 것과 똑같은 말일 테지.

[대장……?]

아라가 굳은 표정으로 하벨을 조심스레 불렀다.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아라의 시선에 하벨은 아라의 볼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활짝 웃었다.

그제야 링거 줄이 덩달아 흔들리며 잠깐 링거를 바라보았다.

오염된 비 때문에 달아놨겠거니 생각했다.

"아, 잠깐 꿈 내용이 생각이 나서 그랬어. 되게 오래 잔 기분이네."

[맞아. 대장이 무려 3일이나 자버렸어.]

아라가 아랫입술을 꽉 올리며 투덜거리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벨 역시 고개를 돌리니 침대에 엎드린 채 자는 칼리우스가 보였다.

[쉬잇. 용용이도 조금 전에 잠들었어.]

'그래서 목소리를 낮췄구나.'

하벨은 손을 뻗어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대장. 대장이 자꾸 잠만 자는 일이 늘어나니까 이 몸이 힘을 사용하지 말라구 그렇게 말했는데, 대장은 맨날 이 몸이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아!]

힘주어 말하는 모습이 여간 카샬과 닮아있었다.

"…아라야."

[이 몸은 지금 화났어. 대장이 이 몸의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대장은… 흥.]

"지금 엄청 잘 듣고 있는데, 혹시, 카샬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거 아니지? 되게 닮았다."

[이, 이 몸은 카샬이랑 닮지 않았어! 이 몸은 대장이랑 닮을 거야. 대장이랑 닮을 거라구…….]

아라가 갑자기 울먹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하벨이 아라의 볼을 쿡쿡 누르며 물었다.

"카샬이 그렇게 싫어?"

[아, 아니이! 이 몸은 카샬이 좋아! 이 몸은 카샬을 싫어한 적이 없어!]

혹여나 카샬이 올까, 아라의 고개가 홱홱 돌아갔다.

"그럼 왜 날 닮겠다는 거야?"

하벨은 저 말만큼은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그 물음에 아라가 금세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서는 활짝 웃었다.

[대장이 좋으니까! 대장은 멋지니까!]

하벨은 그 말에 무릎을 올려 턱을 살짝 괬다.

"내가 실패를 되게 많이많이 했는데?"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어. 이 몸도 엄청, 엄청 실패했는데? 하지만 봐봐. 이 몸은 실패했지만, 점점 달라지고 있어. 대장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게 됐는데?]

아라가 눈을 깜박거리다가 왠지 슬퍼 보이는 하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대장도 실패해도 괜찮아. 대장도 점점 달라지고 있잖아?]

잠깐 멍하니 있던 하벨은 곧 눈웃음을 지었다.

저 작은 앞발에 가슴이 떨리도록 큰 위로를 받을 줄이야.

'그래. 나는 이제 실수해도 괜찮다.'

하벨은 아라가 혹여 부서질까, 조심스레 안았다.

"좋은 말이야, 아라야. 고마워."

아라의 꼬리가 흔들려 자신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나온 건지.

보고만 있어도 예뻐 죽겠는데, 이렇게 더 어여쁜 말을 하니 왜 사랑스럽지 않을까.

"……아."

하벨은 도중에 떠오른 생각에 당장 아라를 내려놓고는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연락용 아이템을 꺼냈다.

[어엇!]

처리하지 못한 일부터 처리해야만 했다.

당장 페트리오에게 연락했다.

"좀도둑."

[아아앗!]

<…하아.>

아라가 기겁하는 소리와 페트리오의 한숨 소리가 섞였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도련님.>

"왜?"

<제가 도련님께서 의식이 없다는 소식을 한, 30분 전에 들었습니다.>

"다들 30분 전에 자리를 비웠다는 거네?"

<그걸 추리하시라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럼?"

<그 30분 안에 깨어나셔서 저한테 연락하신 모습을 떠올리니 속이 타서 그럽니다. 아주 불을 지르시네요.>

하벨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페트리오의 목소리에 입꼬리가 어쩐지 간지러웠다.

여기서 웃으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좀도둑이 화날만해. 이 몸도 다시 화가 나는데?]

아라는 다시 아랫입술을 높이 올려서는 하벨을 바라보았다.

볼까지 부풀어 오르자 하벨은 손가락으로 살짝 찔러보았다.

[대자아앙.]

아라가 하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보고할 게 있는데 하지 못해서 그래. 도중에 엘라힘 신관을……."

<그 녀석이 알려줬습니다. 그 녀석이 아무리 재수 없어도 일은 잘합니다. 도련님께서 더 잘 알지 않습니까?>

페트리오는 탐탁지 않게 목소리를 냈지만, 곧 부드럽게 바꿨다.

<지금은 도련님 몸이 먼저입니다. 그게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도둑. 아직 나한테 해줘야 할 말이 있잖아. 그럼 들으면서 누워 있을게. 이 정도는 되잖아?"

<도련님.>

"어차피 곧 즉위식이야. 왕실에서 떠날 생각도 없고. 자, 시렌부터 시작하자. 시렌의 기억을 읽고 뭘 봤어?"

하벨은 토라진 아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물었다.

<…매번 질 수밖에 없네요.>

페트리오는 항복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시렌이 최근 누군가와 거래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거래?"

<일반적인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페트리오의 목소리가 묵직해졌다.

"그럼 뭐였어?"

하벨이 물었음에도 페트리오는 생각을 되짚어가는지 조금 뒤에야 대답했다.

<시체를… 거래했습니다. 거의 죽어가지만, 살아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어쨌든 사람을 거래했습니다.>

"…와아."

하벨은 절로 나오는 감탄사를 숨기지 않았다.

―이곳, 아니, 검은 달이라는 조직에서 죽음이 임박한 자들과 죽은 자들을 옮기고, 그 상황을 신관이 돕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하벨은 진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와아? 대장, 왜 '와아'하는 거야?]

아라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좀도둑, 너 이거 어떻게 참았어? 나 같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미치겠는데?"

<…예?>

페트리오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예'라니? 엘라힘 신관이 검은 달이 시체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옮기고 있다는 걸 봤다고 전했을 거 아니야?"

<이, 이 망할 놈의… 아, 도련님이 아니라 그 녀석을 말하는 겁니다. 재수 없는 카샬 새끼.>

"뭐야. 대체 카샬한테 뭘 들을 거야?"

하벨은 실실 웃으며 물었다.

<검은 달 지부에서 클로저와 힘을 합쳤고, 거기에서 붙잡힌 엘라힘 신관을 만났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와아. 이럴 줄이야.>

페트리오는 뒤늦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이건, 미쳤지. 신관이 만든 시체나,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배달하던 게 검은 달이었고, 이를 사용한 게 마법사 협회였다니."

[우, 우와아…….]

아라는 혹여나 자신이 소리를 지를까, 앞발로 입을 꾹 눌렀다.

아라의 시선이 움찔거리는 칼리우스를 향하다 그를 토닥거려주었다.

"레디나가 검은 달이 마법사 협회를 습격해 장로를 죽였다고 했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일 거야."

<하지만 이야기만 듣는다면 서로 연결점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 이건 빼도 박도 못하지. 연결점은 있어. 확실히."

이 연결점이 의미하는 건 분명했다.

시엘느 역시 마법사 협회와 같은 자를 모시고 있다는 걸.

마법사 협회의 전 협회장이었던 시렌이 모시던 자가 '검정'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니 이게 사실이면 놈이 다른 나라에도 손을 뻗었다는 추측 역시 현실이 되는 셈이었다.

"다만, 검은 달은 시엘느의 심부름꾼일 확률이 높지. 시엘느가 가진 패가 뭔지 알고 있지?"

<신의 은총입니다. 사실 그 힘 때문에 나라가 유지가 됐었고, 실제로도 여러 나라 귀족들이 그 힘이 의지하기도 했으니까요.>

"그 말은 즉, 검은 달 역시 시엘느가 가진 힘에 의존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엘라힘 신관이 더 중요해졌네요.>

"좀도둑. 혹시 시엘느에서 신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들어본 적 있지만, 이게 실제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불확실한 소문에 휘둘리면 정확한 정보를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아. 사실이 아니라 단지 소문으로 퍼졌을 뿐이고, 장례식장에는 신성 국가 시엘느가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극이었네.'

하벨은 그제야 처음 엘라힘이 신의 은총을 보여줬을 때, 왜 '시엘느가 여전하다'라는 말이 사람들 입을 오갔는지를 이해했다.

"그건 사실이었지. 하지만 신은 다시 돌아왔어. 내가 고위 신관한테 확인했거든."

하벨이 꺼낸 말에 페트리오는 침묵했다.

<…아니, 도련님.>

"왜?"

<왜 이렇게 자꾸 도련님 주변에서 거대한 정보가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거대한 놈이 자꾸 나한테 걸려드네.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러면 다 놔버리면 어떨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늘어지게 자고, 몰래 시장에도 가고! 아, 여행도 떠나고. 어때, 대장?]

<그러면 다 놓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라와 페트리오가 비슷한 말을 꺼냈다.

"아니. 이제 더 재미있어지는데 왜 놓겠어? 날 건드린 놈이 저지른 일을 하나씩 알아가는 게 참 재미있단 말이지. 왜 이 맛을 몰랐는지 몰라."

하벨은 입꼬리를 높이 올렸다.

이전에 하지 못했기에 지금 모든 일이 참 즐겁고, 즐거웠다.

[…으으음. 이 몸은 대장이 즐거우면 됐어. 혹시나 괴로우면 언제든지 그만둬둬 돼. 이 몸이 토닥거려줄게.]

아라는 하벨의 다리로 기어오르며 말을 꺼냈다.

"지금 헤일리스한테 연락해서 시체가 곧 운반될지도 모르니까, 놀라지 말고 잘 보관해달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똑똑.

문을 살짝살짝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자신이 자고 있다는 걸 생각해서 낸 소리 같았다.

"그리고 검은 달 지부는 어떻게 됐어?"

<한, 70%쯤 부숴버렸습니다.>

하벨은 안으로 들어오다가 왈칵 구겨진 카샬의 표정을 보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럼 간부를 조심하라고 전해줘. 언제인지 몰라도 곧 쳐들어오겠지."

"도련님……!"

카샬이 기어코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에 발견하면 죽이지는 말아달라고도 전해주고. 간부를 죽일 사람은 따로 있어."

레디나.

그녀가 간부가 될 차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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