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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52화 (252/415)

252화. 아, 그렇게 됐단 말이지?(2)

* * *

"와. 벌써 찾았어?"

하벨은 재빨리 물을 없애며 칼리우스와 아라를 반겼다.

하벨이 슬쩍 아라를 보자 아무래도 자신이 힘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응응! 아라랑 함께 했어!"

[이 몸은 용용이랑 같이 했어.]

칼리우스와 아라가 서로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둘 다 잘했어!"

하벨은 칼리우스와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눈이 포개지던 아라는 갑자기 냄새를 맡았다.

킁킁.

[대장?]

"으응?"

[혹시…….]

"안을 열어봤어? 누가 갇혀있었던 거야?"

하벨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아직 몰라. 안에 누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만 하고 도련님한테 왔어."

[이 몸이 열어보자고 했는데, 용용이가 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이 몸은 확인하고 난 뒤에 대장한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난 뒤에 자리를 뜨면 이상하잖아.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

[그걸 모르니까 이 몸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안을 확인한 뒤에, 보통 사람은 이 몸을 볼 수 없으니까 이 몸만 대장한테 가면 되는 일이잖아?]

갑자기 아라와 칼리우스가 서로를 쳐다보며 각자의 의견을 높이 세웠다.

"그만."

하벨은 자신이 던진 상황에 이렇게 되어버리자 일단 칼리우스와 아라를 말렸다.

일단 둘이 다투는 이 상황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둘이서 같이 중대한 상황을 결정짓는 게 처음이긴 한데, 이렇게 시작부터 삐걱댈 줄이야.'

칼리우스와 아라는 동시에 자신을 보며 어느 쪽이 정답인지 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하벨은 다른 답을 내놓았다.

"어느 쪽도 정답은 없어. 서로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 합의가 될 때까지 의견을 나눴어야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제 와서 싸워봤자 뭘 하겠어? 안 그래?"

하벨은 팔짱을 낀 채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결론은 둘 다 잘못한 거야. 둘 다 합의된 결과를 이끌어가지도 못했고, 어설프게나마 한 합의마저 지키지도 못했어."

"아니, 애들 싸움에 왜 그렇게 진지하십니까?"

카샬은 주눅이 든 칼리우스와 아라를 보며 하벨을 말렸다.

보통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일 텐데, 하벨답지 않게 꽤 진지했다.

"이건 싸움이 아니야, 카샬. 균열이 일어날 뻔한 큰일이지. 원래 갈등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출발하니까. 이번 일이 아라와 용용이한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없어."

하벨은 칼리우스와 아라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만큼 잘 지냈으면 했다.

어떻게 본다면 카샬 말대로 애들 싸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칼리우스와 아라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칼리우스는 마지막 남은 용이었으며 아라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정령왕일지도 모르니까.

하벨은 칼리우스와 아라의 손을 쥐어 화해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을 유도하지 않았다.

조금은 따끔하게 나갈 필요가 있었다.

"이제 서로 합의한 의견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으면 해. 둘 다 나를 부르기로 합의 본 거잖아?"

"응. 그랬어. …미안해, 아라야. 앞으로 내가 네 의견을 더 잘 들을게."

칼리우스가 손을 내밀자 아라는 울상을 지으며 칼리우스의 손을 잡았다.

[아니야. 이 몸이 먼저 불만을 터트리고 말았어.]

"아라 네가 날 얼마나 배려하는지 알고 있어. 오늘도 그랬던 거지?"

[으응. 이 몸은 용용이가 원하는 건 들어주고 싶어. 그래서 꾹 참았어.]

"오늘부터는 나를 너무 배려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아직 의견을 나누는 게 부족하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

"마지막으로 말할게."

하벨은 다시 칼리우스와 아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툼은 상황을 보고 하는 거야. 오늘 같은 전투 상황에서는 절대로 다투면 안 되고, 알겠어?"

둘 다 살짝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벨은 그제야 칼리우스와 아라의 머리를 다시금 쓰다듬으며 그들이 왔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이제 같이 갈까?"

"응응!"

[응! 이 몸이랑 용용이랑 안내할게.]

칼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라는 여전히 그의 손을 잡은 채로 활짝 웃으며 서로 박자를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도련님께서도 아직 어린애이신데."

넌지시 카샬이 하벨을 긁자 그는 고개를 휙 돌렸다.

"잘하셨습니다, 도련님."

카샬은 일부러 가면을 벗어서는 활짝 웃어 보였다.

'…와. 진짜 얄밉네, 카샬.'

하벨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 * *

끼이익.

원래 기름칠을 해놓지 않은 건지, 원래 잘 사용하지 않은 건지는 몰라도 문을 열자마자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오오오.]

아라는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에 하벨에게 매달려 안을 바라보았다.

안은 어두웠기에 아라는 하벨이 불을 피우기 전에 먼저 불을 만들어 주변을 밝혔다.

카샬은 검을 쥐었고, 칼리우스는 얇은 보호막을 앞에 만들어 하벨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경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하벨은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과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두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좋았다.

꼭 포근한 이불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앞에 누가 있습니다. 한 명… 으로 보입니다."

카샬은 앞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한 숨소리를 들었다.

오직 숨이 코에서 나온 것처럼 들려왔고, 발을 긁는 소리가 나자 카샬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아무래도 묶여 있나 봅니다."

"거기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그러니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마세요."

하벨은 일단 앞에 있는 사람을 진정시켰고, 최대한 조심스레 걸어왔다.

저 사람과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벨은 자신의 얼굴이 굳어가는 걸 느꼈다.

새하얀 복장이 보였다.

숨소리가 크게 들릴 만큼 가까워지자 불꽃에 일렁거리며 익숙한 형상마저 보였다.

'아니…….'

하벨은 묶인 채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눈동자와 마주하자 기가 찼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건가.'

엘라힘.

그가 기둥에 묶여 있었다.

[…우, 우오오옵!]

아라가 깜짝 놀랐다.

눈을 깜빡거리던 아라가 엘라힘에게 가까이 다가가 앞발을 흔들었다.

이리저리 보아도 엘라힘이었다.

[엘라힘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우, 우리가 구하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이 날뻔한 거 아니야?]

아라 말대로였다.

엘라힘은 일반 신관이 아니었다.

신성 국가 시엘느의 고위 신관이었다.

게다가 지금 초대되어 온 에르티안 왕국의 손님이기도 했다.

그런 신관이 이곳 에르티안 왕국에 죽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내가… 안일했다. 좀 더 파고들었어야 했는데.'

이전에 마법사 협회에서 나온 뒤, 엘라힘을 만났을 때 좀 더 물었어야 했는데.

설마하니 엘라힘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검은 달과 관련된 일일 줄이야.

―엘라힘이라면 사람들하고 모여서 큰 건물로 들어갔어. 거기에 사람들도 엄청 많았어. 뭐더라, 상점? 상단? 뭐 그런 걸로 보였어.

엘라힘을 마을에 데려다준 뒤, 정령들을 붙였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고해준 말을 요약하자면 엘라힘은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들어올 때 어쩐지 싸했는데, 그 상점이든, 상단이든 큰 건물이 여기였다니.'

하벨은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도 기가 차 하벨은 목덜미를 붙잡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카샬이 물었다.

"구해드려야지. 이렇게 묶여 있는데."

하벨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일단 엘라힘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천연덕스럽게 꺼낸 하벨의 말에 엘라힘의 눈이 커졌다.

'왜 놀라는 거지?'

하벨은 미심쩍었다.

처음 보는 사람 때문에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놀라지 마시고요. 저는 달님이에요. 굳이 말하자면 정의의 편? 뭐 그런 거죠. 자, 풀어드릴 테니까, 일단 올라가서 차분히 이야기해 볼까요?"

엘라힘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샬이 입마개와 엘라힘을 기둥에 묶은 쇠사슬을 잘랐다.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엘라힘은 몸이 자유로워지자마자 하벨을 보며 물었다.

"그거야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인데요? 멀쩡한 사람이 왜 이러고 계십니까? 여기 무서운 곳이에요."

"바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벨 공!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

엘라힘은 언성을 높였고, 하벨은 그대로 굳어졌다.

[…드, 들켰다고? 이렇게 빨리?]

아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혹시 제 뒤를 밟았습…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기는 위험한 곳입니다. 어서 나가세요!"

"…와. 어떻게 알았죠?"

하벨은 엘라힘이 자신을 떠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자, 가면을 벗었다.

깜짝 놀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하벨은 웃고 있었다.

"대단한데요, 신관님?"

"아직 하벨 공께 드린 신의 은총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최근에 은총을 드린 분은 하벨 공뿐이니 왜 모르겠습니까?"

"아. 그런 거라면 들킬 수밖에 없겠네요."

하벨은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슬쩍 쓸었다.

"내가 지금 좀 고민이 되네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신께 맹세하겠습니다."

엘라힘은 어쩐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벨의 시선이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일어나지 못한 엘라힘을 위해 하벨이 엘라힘의 시선에 맞춰 쭈그려 앉았다.

"내가 이전부터 궁금했는데요. 그 신께 맹세라는 거 말이에요. 그냥 양심에 맡기는 거예요? 아니면 뭔가 맹세를 어기면 진짜 이상해지는 거예요?"

엘라힘은 하벨의 물음에 잠깐 주변을 살폈다.

구름무늬가 가득한 가면을 쓴 여자와 꽃무늬가 가득한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요리할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해무늬가 들어간 남자가 왜인지 제일 안전해 보였다.

"대답해주실래요?"

이어진 하벨의 재촉에 엘라힘은 신중히 대답했다.

"이상해집니다."

"어떻게요?"

"마나와 달리 맹세를 어긴 만큼 신께서 주신 힘이 줄어듭니다. 타의에 의해 부여받은 힘이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 그럼 구체적으로 말해줄래요?"

"그냥 원하시는 걸 말씀해주십시오."

"에이,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그냥 물어만 보는 건데요."

하벨은 평소처럼 웃었다.

그제야 엘라힘이 숨을 토해냈다.

"왜 여기에 온 거예요, 신관님?"

"…저하고 얽히시는 걸 싫어하시잖습니까. 마음이 바뀌셨습니까?"

"아뇨. 마음이 바뀌지 않았지만, 엘라힘 신관님이 검은 달과 얽혀 있는 걸 확인했는데 이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보겠어요?"

"그때도 검은 달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엘라힘이 고개를 떨군 그때, 아라가 뒤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레디나가 왔어!]

"으음. 신관을 암살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을 못 들어봤는데. 그렇지 않아?"

하벨이 뒤를 쓱 보자 레디나가 하벨을 놀라게 하려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라가 알려줬지."

"…앗."

레디나는 그제야 아쉬움을 드러내며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맞아요. 검은 달이 신성 국가 시엘느를 건드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어요."

"놈들은 시엘느를 건드린 게 아닙니다. 그저 절 건드렸을 뿐이죠."

엘라힘이 말을 바꾸며 목소리를 내자 하벨이 도리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에르티안 왕국으로 온 이유는 에르티안 왕국에 벌어진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엘느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게 검은 달이랑 무슨 관계입니까?"

"하벨 공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엘라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내가 판단합니다. 말씀해주시죠. 둘러서 말해도 됩니다. 참고하며 듣겠습니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하벨의 표정에 엘라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역시 신께서 내리신 일이란 말인가.'

이곳에서 하필 마주한 게 하벨 티에라였다니.

"제가… 시엘느에서 그 끔찍함을 마주하고 그 뒷배를 알아냈을 때, 놈은 도망쳤습니다."

"이곳으로 말입니까?"

"예. 우연이라고 하기에 정말 슬프게도 에르티안 왕국에 불행한 일이 일어났지요. 저는 그 슬픔을 이용하고 말았습니다."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시엘느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함부로 시엘느를 떠나면 안 되는 몸."

엘라힘은 공손히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올리며 하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신성 국가 시엘느의 추기경 중 한 명입니다."

"…추기경이 뭐야?"

칼리우스가 물었다.

"시엘느의 왕이신 교황을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엘느에서 저를 포함해 단 다섯밖에 없지요."

엘라힘은 그저 공손히 대답했다.

'…미치인.'

하벨은 그제야 왜 랜턴에 검은 불꽃이 켜졌는지를 이제야 이해했다.

무려 추기경이란 자가 이곳에서 죽었다면, 시엘느에서 에르티안 왕국에 무어라 말하겠는가.

'아니.'

하벨은 문득 드는 생각에 손가락 끝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렸던 마을에 열리는 축제와 틈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엘란, 그 개새끼가 분명 검은 달에게 보고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놈이 단순히 틈의 세계가 열리는 틈을 타 사람들을 죽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엘란이 클로저를 이곳으로 데려오기로 했다면?'

그렇다면 굳이 연락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만약에 엘라힘이 죽었다면 이곳에 온 클로저가 추기경을 죽였다는 오해를 받을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시엘느가 이번 사건을 꼬집으면서 엘란이 벌였던 살인과 혹여나 또 있을 클로저가 벌였던 여러 일이 두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서운 생각이 스며들자, 하벨은 일단 가면을 고쳐 썼다.

하벨 티에라의 기억을 보면 된다고는 하지만, 하벨은 부디 자신이 생각한 게 진실이 아니었으면 했다.

"…어쨌든, 도망치던 자를 뒤쫓다가 도리어 습격을 당했단 말입니까?"

"예. 납치당할 뻔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마차를 모는 소리가 들려와 적들이 당황했고, 저는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하벨 공을 만났고요. 그 마차 소리가 설마하니 하벨 공의 마차일 줄은 몰랐습니다."

'…미친!'

하벨은 퍼즐처럼 하나씩 들어맞아 떨어지는 사실에 속으로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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