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48화 (248/415)

248화. 와그작

* * *

* * *

사르르륵.

건물 내부에 모래가 가득 흘렀다.

살포시,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앞으로 걸어가던 헤일리스는 아직 목숨이 붙은 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모래가 놈을 데려왔고, 천천히 목을 졸랐다.

콱.

"…커, 커헉."

"왜, 하벨 티에라 님을 죽이려는 건가?"

조용히 속삭이는 물음에 검은 달 일원은 대답은커녕 눈빛으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콰득.

헤일리스는 목을 꺾어버렸다.

'…연속해서 허탕이라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지금부터 마법사 협회는 사전에 나눠준 검은 달의 지부로 흩어져 공격 지시를 기다려라.

이틀 전, 페트리오가 자신을 찾아와 하벨의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오늘.

―공격 지시가 떨어졌다. 죽여라. 하나도 남김없이.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마법사들에게 범인은 '검은 달'이라 지목했지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검은 달을 처리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굳이 왜 많은 단체 중에 하필 검은 달이냐고?

하벨이 자신의 물음에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금세 하벨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려졌다.

―검은 달이 날 노리니까.

말을 듣자마자 살의가 끓었다. 하벨은 자신의 은인이었다.

―검은 달이 날 죽이려고 하니까. 더는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하벨 말대로였다. 거기서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헤일리스는 그저 의문을 가졌다.

하벨 티에라를 죽임으로써 검은 달이 가지는 이득이 대체 무엇인지.

이전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이었던 시렌이 하벨 티에라를 공격한 이유는 명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이 아니라 납치에 가깝지만.'

룬델을 협박해 오미너스를 위한 재료인 정령들을 손쉽게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페트리오에게 건네받은 검은 달과 관련된 자료를 보아도 놈들의 이득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검은 달이 위험해질 뿐이었다.

'…내가 직접 봤다.'

정령들이 뭉친다면 그 힘이 얼마나 아득한지. 자신이 부리는 이 마법, 아니, 마법사 협회에 새겨진 강대한 마법들마저 단숨에 사라지게 할 힘을 가졌다.

하물며 티에라 가문은 오죽할까.

그곳이야말로 이 에르티안 왕국에서 정령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일 테니까.

'시렌도 그 위험을 생각했기에 욕심밖에 모르는 귀족들을 이용했지.'

티에라 가문을 둘러싼 네 가문을.

그때 하벨 티에라는 정령들에게 미움을 받았기에 그 작전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탁.

헤일리스는 놈의 숨소리를 단번에 알아채 모래를 이용해 죽은 척하고 있는 암살자의 목을 쥐었다.

"…망할, 레디나."

적이 레디나를 언급했지만, 헤일리스는 관심이 없었다.

"너도 말할 의지가 없지?"

"죽여라. 나는 추하……."

콱.

"그럼. 너희는 추하지 않지. 추한 건 나야."

헤일리스는 땅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보며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될 테니까.

* * *

여러 대의 짐마차가 상단 앞에 멈췄다.

라르모네 상단.

제법 반짝거리는 간판이 클로저들을 환영해주었다.

브란스는 밀려오는 미심쩍음에도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상단주인 것처럼 문을 열고 걸어갔다.

'…여기가 암살자들의 아지트였다니.'

브란스는 속으로 경악했다.

누가 보아도 그냥 평범한, 아니, 돈이 많아 보이는 상단이었다.

엘란이 내통자였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곳이 진짜 암살들의 아지트라는 걸 믿지 않았겠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접수대에 있는 직원이 브란스와 클로저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혹시 상단 의뢰를 받으시려면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아뇨. 의뢰를 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

브란스는 입을 열었다.

찌릿.

피부가 저렸다.

자신이 일반인이었다면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한 살의가 계속 자신을 찔러왔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한 그 미묘한 살의가 이곳이 암살자 단체, 검은 달의 지부라는 걸 서서히 인지하게 했다.

"그럼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브란스는 직원으로 둔갑한 암살자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클로저가 해야 할 업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틈의 세계를 닫는 거라면 그 외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행동이 바로 사람들의 대피였다.

저렇게 일반인으로 위장을 한 암살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적이라니.

그 사실에 브란스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치는 검은 달의 지부는 수많은 지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무수히 많죠. 이 나라를 너머 다른 나라까지 뻗어 있습니다, 브란스 씨.

그때, 달님이 비록 가면을 썼지만, 가면 너머로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다.

―당신들은 그런 놈들과 적이 된 겁니다.

왜 달님이 자신한테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검은 달을 완전히 적으로 돌린다는 말은 곧 클로저로서 가장 큰 약점을 저들에게 찔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우연히 틈의 세계에 나타난 그곳에 검은 달의 일원이 있다면. 그들이 일반인인 척 클로저를 공격한다면.

누가 일반인인지, 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자신들은 깊은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브란스의 눈동자에 단호함이 깃들었다.

'먼저 우리를 공격한 건 너희다.'

브란스는 입을 열었다.

"일전에 이곳에 신세를 졌습니다. 하여 갚으러 왔습니다."

"신세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직원의 그 눈빛에 브란스는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우리를 습격한 빚을 갚으러 왔다, 검은 달."

검은 달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직원의 손아귀가 움직였다.

일반인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속도.

하지만 브란스는 그 손을 붙잡고는 옆에 찬 검을 뽑아내며 목을 베어냈다.

스윽!

브란스의 얼굴에 피가 튀었고, 클로저들이 무기를 들었다.

―겁먹지 마세요, 브란스 씨.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하벨이 꺼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브란스는 검에 오러를 피어 올렸다.

―제가 책임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전부 검은 달입니다. 그냥 죽이세요. 애꿎은 클로저들을 죽이기 싫다면 말입니다.

"전원!"

브란스는 클로저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냈다.

"눈앞의 적을 섬멸하라!"

브란스의 지시는 간단했다.

전부 죽이란 말이었다.

클로저들이 움직이자, 땅이 울려왔다.

* * *

"…이야, 이게 다 얼마야?"

후문 쪽으로 침입한 하벨은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감탄을 연신 흘렸다.

생각보다 상단의 크기나 규모가 컸다.

'암살자에서 은퇴하고 나면 진짜 상단이라도 꾸리려고 했나? …아니, 그러고 보니까.'

상단을 직접 보니 문득 정령들이 엘라힘을 미행해 알아낸 정보가 떠올랐다.

―엘라힘이라면 사람들하고 모여서 큰 건물로 들어갔어. 거기에 사람들도 엄청 많았어. 뭐더라, 상점? 상단? 뭐 그런 걸로 보였어.

거기도 상점이나 상단처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에이, 설마.'

화르르륵.

하벨은 여전히 타오르는 랜턴의 검은 불꽃을 바라보며 즐겁게 발을 놀렸다.

팅!

하벨은 자신의 앞에서 가면단으로 위장한 마법사들의 보호막이 나타나는 걸 보며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컥!"

칼리우스의 손짓에 검은 달 일원들이 동시에 바닥과 입을 맞췄다.

쾅!

마법사들은 깜짝 놀라며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마법의 질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분명히 말하지. 너희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않았으며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다.

임무에 들어가기 전에 페트리오가 연락용 아이템으로 조용히 꺼낸 그 경고가 떠올랐다.

마법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곳에서 만난 달님이라는 자는 페트리오, 아니, 가면단의 실질적 주인일까.

하지만 마법사들은 페트리오의 경고를 떠올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진짜 이름을 바친 후였다.

"왜 가만히 있어? 일하러 온 거 아니야?"

툭 꺼내는 하벨의 말에 마법사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잖아. 그렇게 오고 싶었다며?"

마음을 살살 긁는 목소리에 마법사들은 그제야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이곳이 어디인지를 인지했다.

바로 자신들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증오스러운 검은 달의 지부가 아닌가.

"…실례했습니다."

마법사들은 하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맡은 임무는 간단했다.

바로 저 달님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마법사들에게 의지가 도는 걸 느낀 하벨은 시선을 돌려 후문 쪽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이상하게 얌전한 레디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레디나는 해맑게 물었다.

"왜 안 죽이냐고요?"

"맞아. 손이 근질근질하지 않아?"

"근질거리죠. 근질거려 죽겠어요."

"그런데 왜 안 나가?"

"오늘은 참으려고요."

순간, 침묵이 몰려왔다.

다들 눈길을 돌려 레디나를 바라보았다.

"…꽃님아. 온도계 좀 줘봐. 어우. 네가 왜 온도계를 찾는지 알겠네."

하벨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카샬에게 다급히 손을 뻗었다.

[이, 이 몸도 알겠어.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이곳 지부장을 찾으러 떠난 정령들의 기척을 느끼려 귀를 높이 세우다 말고 아라는 다급히 레디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이해하셨다니.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카샬은 태연하게 온도계를 꺼내자 레디나가 손을 다급히 저었다.

"아니. 왜들 그래요? 저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럼 오늘, 음, 왜 그러는 건데?"

"…한눈 안 팔려고요. 달님은 시선만 떼면 사고를 치시잖아요."

레디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

카샬은 단번에 이해하며 다시 온도계를 집어넣었다.

"다행히 정상이네요. 안심하셔도 되겠습니다."

[…하. 이 몸은 진짜 놀랐어. 아프면 안 돼, 레디나.]

아라가 레디나를 안아주자 그녀는 실실 웃었다.

"자, 잠깐만.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하벨은 카샬과 아라가 태연하게 꺼낸 말에 당황했다.

"뭐긴 뭐겠습니까? 달님이 그간 갈고 닦은 행동들의 결과죠."

카샬이 후련한 목소리를 냈다. 가득 쌓였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역시 헤레스 씨가 따라왔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도련님께서는 여길 밟지도 못하셨겠지.'

마법사 협회 일은 하벨이 반드시 헤레스가 따라가야 한다고 우겨 그 감당을 온전히 바안이 해주었다.

하지만 하벨의 주치의로 알려진 헤레스가 계속 자리를 비우는 건 의심을 살 수 있고, 이 이상 바안에게만 기대는 건 폐가 될 수 있다며 헤레스는 왕실에 남기로 했다.

하벨은 여전히 멍하니 있다가 뒤를 바라보았다.

물이 또 '소곤소곤'거렸다.

하벨이 적을 쳐다보았고, 레디나의 단검이 적의 단검과 부딪혔다.

까아앙!

[으아아앗!]

아라가 너무 놀라 털을 바짝 세우자 하벨은 아라를 쥐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곳은 레디나의 무대였으니.

레디나의 머리카락이 세게 흔들리며 적의 공격에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녀는 수면을 밟은 듯 딱 한 걸음 부드럽게 나아가 단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너는……?"

단검에 일어난 바람에 놈은 레디나인 걸 눈치챘지만, 그녀의 손짓은 멈추질 않았다.

바람에 바짝 날이 선 레디나의 단검이 놈이 쥔 검을 파고들었다.

뚝.

깔끔하게 잘린 검이 바닥에 닿기 전에 레디나의 단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분명 목이 잘릴 거라 생각한 그때, 레디나가 키득거렸다.

웃음소리가 번져나갔다.

심장을 때리는 듯한 웃음소리처럼 들려와 놈이 질겁했다.

역시 레디나가 맞았다.

목소리랑 머리 색이 달라졌지만, 저 광기는 레디나가 맞았다니.

"…쉿. 그건 우리끼리 비밀이잖아."

레디나가 단검의 방향을 바꿔 놈의 손목 위를 부드럽게 쓸었다.

피가 레디나 자신에게 쏟아지기 전에 가볍게 발을 움직이며 놈의 뒤쪽에 가서는 목을 뚫어버렸다.

푸우욱!

"감히 도련님에게 겨눈 나쁜 손이라서 베어냈어. 진짜 안녕."

레디나는 놈의 등을 디딤돌 삼아 걷어차며 단검을 빼내서는 몇 번 흔들었다.

손가락 끝부터 밀려오는 짜릿함에 레디나의 미소가 번져갔다.

"이러니까, 못 떠나는 거예요. 보셨죠?"

"그럼. 이해했어."

하벨은 레디나가 기뻐하는 모습에 그저 아라의 눈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하지 않았다.

이곳이 암살자 단체의 지부라는 것 역시 머릿속에 계속 새기고 있었고, 방금 튀어나온 적도 보았다.

"꽃님이가 늦은 게 아니에요. 알고 있죠?"

레디나는 검을 꽉 쥔 카샬을 보며 그를 다독였다.

암살들이 왜 암살자들이겠는가.

검은 달이 소속된 암살자들은 특히나 실력이 확연히 달랐다.

수많은 암살자 집단의 에이스들이 이곳에는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곳이니.

"아무 말도 안 했어."

카샬은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먼저 뛰어가지 못한 건 확실히 불만이긴 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장소 자체가 기존의 공간과 달랐다.

방 안에 가득한 향기가 짙어 바람이 어디 쪽에서 움직이는지 누군가 다가오는지 자체를 알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바람과 냄새는 안 돼요. 흔들림을 보시면 돼요. 보통 어둠 속에 숨어 있어서 덮치려는 순간, 미묘하게 흔들리거든요."

"고맙다."

카샬은 레디나의 충고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뭘요. 저는 꽃님이도 죽지 않았으면……."

레디나가 다급히 카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로 하벨 근처로 나타난 순간, 하벨이 우산으로 바닥을 찍었다.

콰앙!

"…아아아악!"

비명이 터져나가고 하벨이 실실거렸다.

"이렇게 맞아, 구름아?"

"맞아요. 아주 훌륭하신데요?"

레디나는 그제야 몸에 긴장을 풀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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