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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42화 (242/415)

242화. 술래잡기

* * *

"……."

브란스가 눈을 깜박거렸다.

지금 바로 쫓다니. 이건 사전에 나누지 않았던 말이었다.

이미 하벨한테 그 말을 들은 라르웬은 자연스럽게 놀란 척 연기했다.

[이야, 라르웬. 연기가 정말 많이 늘었다?]

루룸이 손뼉을 치며 당장 빈정거렸다.

참 거슬리는 태도였지만, 라르웬은 집중했다. 자신의 실수로 하벨이 곤란해지길 바라지 않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브란스는 다급히 하벨을 말렸다.

"왜 그러십니까?"

하벨이 태연하게 묻자 브란스는 슬쩍 라르웬을 보았다.

그 역시 놀란 모습에 브란스는 그제야 뒤통수를 맞은 느낌에 미간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달님은 처음부터 아무도 믿지 않았어.'

정말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을 쫓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했다.

이렇게 마지막의 마지막 수단까지 숨길 정도로.

브란스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묘한 신뢰감을 느꼈다.

대체 달님은 얼마나 신중한 건지.

"저기요?"

하벨의 재촉에 브란스는 잠깐 멍하던 정신을 바로 잡았다.

"그러니까, 방금 하신 말씀이 대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설명해주십시오."

"지금 바로 놈들을 쫓는 거 말입니까? 그게 왜요?"

도리어 하벨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하자 브란스는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칼피오가 참다못해 발끈하자 카샬이 기세를 올렸다.

움찔거릴 정도의 기세였기에 칼피오는 괜히 손이 근질거렸다.

"당신 눈에는 제가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 봅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태에 말입니다."

하벨이 오히려 반문하며 따지자 칼피오는 얼굴을 구겼다.

"장난이 아니라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가다뇨?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적에게 보고할 시간은 물론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니면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네요."

"여기에 적이 있는 건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대비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떤 대비요? 그것도 다 적들의 귀에 들어갈 텐데요? 그럼 그 대비의 대비 역시 할 셈입니까? 그것도 적들의 귀에 들어갈 게 뻔한데요? 그런데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하벨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냐는 듯이 묻자 칼피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작전은 소용없다는 걸 왜 모를까.

그럼에도 칼피오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좋습니다. 정말 작전이 없단 말입니까?"

"애초에 작전이 왜 필요합니까?"

하벨은 뻔히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빙그르르 도는 느낌이 강해 그냥 이 논의 자체를 잘라버렸다.

"당신들은 강하잖습니까. 다른 이들도 아니라 클로저인데요? 내가 믿는 건 당신들의 강인함입니다."

하벨은 좀 더 본질로 들어갔다.

지금 칼피오가 머릿속에 몰려온 뜨거움에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자신은 '습격'을 강행하고자 제안했다.

'작전은 이미 실행되고 있지만, 굳이 직접 알려줄 필요는 없지.'

이미 범인은 초조해할지도 몰랐다.

자신이라는 변수가 갑자기 등장한 것도 모자라 검은 달에게 알릴 수 없는 상황까지 닥쳐오니 절벽에 떠밀리는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벨은 적이 초조하길 바랐다.

그래야 실수를 하고 더 편안하게 잡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다른 방법도 많았으니 하벨은 살짝 떠봤다.

"…으음. 굳이 작전이라고 한다면야 있긴 합니다. 궁금하십니까?"

"예. 알려주십시오."

자존심이 높을 줄 알았지만, 칼피오는 생각 외로 빨리 대답했다.

"작전은 말입니다……."

하벨이 말꼬리를 늘이자 카샬은 설마 했다.

'설마. 에이, 도련님께서 또 그걸 언급하실 생각은 아니겠지?'

[이 몸은 대장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어!]

아라가 얼굴을 살짝 들며 자랑스럽게 말을 꺼냈다.

[바로.]

아라는 하벨이 말을 꺼내는 순간에 맞춰 목소리를 냈다.

[우당탕이야!]

"우당탕 계획입니다."

[엣헴. 이 몸이 맞췄어! 이 몸은 대단해!]

아라의 꼬리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아니, 하벨 너는 그 계획밖에 몰라? 그냥 다 부수는 거잖아. 왜 이렇게 부수는 걸 좋아해?]

루룸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라르웬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라르웬 역시 하벨을 황당하게 쳐다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당탕 계획이라뇨? 이름이, 음, 왜 그런 거죠?"

엘란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이는 다른 클로저들 역시 비슷한 생각인지 괜히 무기를 만지작거리거나, 하벨의 뒤통수가 따갑도록 노려보는 등 주변에서 낯선 반응을 보여와도 하벨은 꼿꼿이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우당탕'보다 현재 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름에서 느껴지는 대로입니다."

"더욱… 잘 모르겠는데요?"

엘란이 얼굴을 구겼다.

"작전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됩니다. 적을 쳐부순다는, 당신들이 해야 하는 행동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든 말든 이미 투표를 통해 자신과 함께한다고 했기에 하벨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여기서 클로저들이 멈춘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클로저라는 저 단체를 유지하는 건 전 세계의 나라에서 거둔 세금 중 일부였다.

이번 일로 전력이 약화할 수도 있고, 하물며 누군가 자신들을 노린다는 그 자체로 신뢰에 금이 가며 결국, 일에 지장까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어느 쪽이든 악순환을 피할 수 없고, 브란스 역시 이번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클로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반쯤 예상이 되긴 합니다. 뭐, 운 좋게 다들 투표를 통해 당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반발이 있겠죠. 하지만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지부장으로서 이건 작은 사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벨 역시 브란스의 생각에 동의했다.

클로저들이 모인 이 상황에서 검은 달 역시 지켜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 근처 정령들을 만났다.

'이제 슬슬 정령들이 올 때가 됐는데.'

아직 다 지우지 못한, 마법사 협회가 만든 부정한 것들을 지우다 정령들을 만났다.

―앗! 그 달 무늬가 가득한 가면은, 하벨 티에라 맞지? 나 다른 정령들한테 들었어. 이건 다들 비밀로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정령들은 자신이 가면을 썼음에도 단번에 알아보았다.

대체 이야기가 어디까지 퍼져나갔는지.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어? 응? 무슨 일을 도와줄까?

정령들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먼저 말도 꺼냈다.

마침 도움이 필요했는데 왜 거절할까.

자신은 정령들에게 주변에 검은 달이 있는지,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감시해달라고 했다.

"작전이 있든 없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브란스가 말문을 열었다.

작전이 있든 없든 검은 달은 쳐부숴야 할 대상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틈의 세계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 역시 동의합니다."

이어 하나 더 동의했다.

"마침 저는 적 아지트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하벨은 클로저들과 범인을 위해 큰 정보를 투척했다.

이미 마법사 협회가 페트리오와 협력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클로저는 어디까지나 검은 달을 속이기 위한 미끼이자, 시선을 끌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기에 요란할 필요가 있었다.

"적의… 아지트를 알고 있단 말입니까?"

라르웬이 놀라며 묻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예. 라르웬 씨께서 제대로 절 쥐었습니다.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하벨은 낄낄 웃다 고개를 돌려 클로저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위치는 압니다. 그렇기에 당장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이 왜 습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건 앞으로 물어보지 마셨으면 합니다."

사실이었다.

이는 하벨도 알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왜 검은 달이, 대체 누구의 사주로 '클로저'들을 공격하는 건지.

다른 나라나 세력들이 클로저들을 못 건드리는 게 아니라, 안 건드릴 뿐이었다.

틈의 세계가 일어나면서 입을 피해가 막심하기에 클로저가 필요하다는 건 전 세계에 있는 나라가 동의했다.

'이것도… 검정이 시킨 일일까.'

클로저 역시 세계의 멸망과 이어져 있지 않던가.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랜턴을 바라보던 하벨은 문어발처럼 뻗어가는 생각의 줄기를 잠깐 멈췄다.

"대충 설명이 끝난 후에 출발할 거니까, 장비 잘 챙기세요. 저는 잠깐 마을에 들리고 올게요."

"잠시만요. 왜 마을에 가는 겁니까?"

엘란이 하벨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야 이렇게 우르르 다니면 대놓고 수상하다는 걸 밝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당신들이 지금 이 숲에 모여서 회의를 준비한 거고요. 저는 당신들이 절 믿을지 말지 속삭이는 와중에 마을에 가서 적들의 눈을 속일 준비를 해야죠."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당신 혼자 보낼 수 없습니다. 의심스럽다고 분명히 말했으니까요."

칼피오가 단호하게 나오자 하벨은 일단 물러섰다.

"압니다. 그럼 저랑 라르웬 씨랑 칼피오 씨랑 같이 가죠. 절 의심하시니 데리고 가는 수밖에요. 게다가 굳이 많이 갈 필요가 없잖습니까. 이것저것 구하는 데 시간도 들 테고요."

"이쪽도 담보가 있어야죠. 하나 주시죠."

칼피오가 고갯짓하며 하벨에게 신뢰를 요구했다.

치사하게.

자신은 고작 세 명이 있는데.

하벨은 카샬과 레디나, 그리고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진짜 재수 없고, 짜증 나네요. 여긴 고작 세 명이잖아요. 달님 곁에는 아무도 없고요. 퉷!"

레디나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며 침까지 고스란히 뱉은 후에야 하벨은 그녀를 말리는 척했다.

"너무 그렇게 날을 세우지 마."

"달님은 진짜 순해서 문제에요.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입을 바로 찢어버리면 될 텐데요."

레디나가 칼피오를 보며 입을 찢는 흉내를 내자 하벨은 웃음기를 가득 담으며 칼피오의 제안에 수락했다.

"좋습니다. 제 사람들을 전부 이곳에 두고 가겠습니다. 당신들은 수십 명, 저는 겨우 세 명. 참, 공평하네요."

[아앗. 용용이가 실망하고 있어.]

아라는 칼리우스가 가면을 쓰고 있어도 단숨에 기분을 알아보았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어. 지금은 얕지만, 클로저와 신뢰를 쌓는 게 먼저니까.'

어차피 클로저를 오늘만 볼 게 아니었다.

라르웬이 꺼낸 말대로 자신을 중심으로 정말로 틈의 세계가 열린다면 달님이로 시선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

"자. 이제 들을 준비 됐나요, 여러분?"

하벨은 학교 선생님처럼 클로저들을 향해 말했다.

코웃음을 치거나, 흥미롭게 보거나, 반쯤 때려버리고 싶다는 표정 등 다양한 시선이 하벨에게 쏠렸다.

저 시선이 곧 다르게 바뀌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하벨은 그 모든 시선이 다 우스웠다.

"집중해. 적을 아는 게 바로 살아남는 길이야."

브란스가 클로저들을 재촉해서야 그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아라가 고개를 돌리며 꼬리를 바짝 세웠다.

[정령들이 왔어!]

아라의 말에 하벨은 자연스럽게 클로저들을 보는 척하며 아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하벨!]

정령들이 하벨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라르웬은 팔짱을 낀 채로 하벨을 쳐다보는 척했다.

[수상한 인간들이 저쪽 근처에서 네가 있는 곳을 지켜보고 있었어.]

'역시 검은 달이 나타났다.'

하벨은 활짝 웃었다.

['가면을 쓴 놈들 네 명이 있다. 당장 보고 올려'라는 말을 꺼내더라고. 하벨 네가 말하던 검은 달이 맞지?]

[혹시 누구누구한테 보고가 아직 없냐는 말은 못 들었어?]

루룸이 묻자 아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자신이 물어보려고 했던 말이었다.

[있었어! 나 기억해!]

한 정령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우오옵! 얼른 말해줘!]

아라의 꼬리가 흔들리자 손을 번쩍 들었던 정령은 아라를 귀엽게 바라보았다.

[엘란이라고 했어.]

'…와.'

하벨은 살짝 놀랐다.

적을 이렇게 빨리 알게 될 줄이야.

'어쩐지 아까 레디나가 피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범인일 줄이야.'

[라르웬. 네 동생이 해냈네.]

루룸이 라르웬을 대신해 씩 웃어주었다.

하벨이 자신들을 위해 해줬던 그 모든 일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루룸도 속으로 감탄했다.

"아. 내가 이걸 잊었네요."

하벨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엘란 씨도 함께 가시죠. 저를 그렇게 의심했잖습니까."

범인을 알면서도 농락하는 기분이 뭘까 궁금했는데, 이참에 잘됐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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