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귀 파고 잘 들어(2)
* * *
드디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과 습격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가.
마법사들은 속에서 일어난 답답함을 풀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며 헤일리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간 최근에 일어난 습격에 대한 많은 의문을 느꼈을 테지. 이는 나 역시 이해한다."
헤일리스가 기대와 싸늘함이 담긴 시선에 말문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지."
결론이라는 말에 마법사들은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헤일리스를 지켜보았다.
"이번 습격은 한 단체로부터 시작됐다."
뜻밖의 말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침묵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마법사들은 목소리를 내보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건 당신이 시킨 일 아닙니까? 이제 와서 발뺌해도 소용없습니다. 대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어떤 마법사들은 헤일리스를 의심하며 원망했고.
"맞습니다. 제대로 말씀해주십시오, 협회장님. 이, 이 끔찍한 기억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이건 제가 한 게 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떤 마법사들은 아직도 벗어나기 어려운 기억에 혼란스러워했으며.
"그 단체 뭡니까? 마법사 협회를 노리는 단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또 어떤 마법사들은 헤일리스가 꺼낸 '단체'를 곱씹으며 이를 갈기도 했다.
탁.
그때, 지팡이를 짚는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소리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쏠리다 빠르게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왜 그렇게 다들 놀랍니까?"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진짜 죽어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벨 티에라 님이다."
"뭐? 하벨 티에라라고?"
누군가는 여전히 물 마법사인 하벨 티에라를 반겼고, 누군가는 배신자인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하벨은 자신을 향하는 시선이 어떻고 간에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다들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네요. 마치 내가 살아 있어서 아쉬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하벨이 뒤를 보며 손짓하자 우물쭈물하던 칼리우스가 마지못해 걸어왔다.
분명 하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쿵쿵.
'…주, 죽을 것 같아, 도련님.'
이렇게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는 자리는 거의 처음인지라 칼리우스의 움직임이 한없이 뻣뻣했다.
하지만 긴장이 가득한 칼리우스의 모습에도 하벨을 향한 적대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 착각이겠죠."
여유로운 하벨과 달리 마법사들은 칼리우스를 보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위엄에 섣불리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불렸을 때, 칼리우스에게 느껴진 그 아득한 힘에 사라진 용을 떠올리기도 했으니.
[우오옵. 용용이는 대단해! 모두가 용용이를 보더니 눈빛이 달라졌어!]
그 모습을 위에서 바라본 아라는 칼리우스를 향해 손뼉을 마주쳤다.
아라가 환호할수록 칼리우스의 고개가 숙어지자 하벨이 그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도, 도련님?'
칼리우스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앞을 봐.
하벨의 시선에 칼리우스는 놀라는 것도 잠시 평소보다 살짝 빨라진 하벨의 호흡을 걱정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하벨은 지금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헤레스."
하벨의 부름에 뒤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헤레스가 천에 똘똘 감긴 시체를 광장으로 내던졌다.
팍!
무언가가 떨어지자 마법사들이 급히 흩어졌고, 떨어지면서 시체를 감싸던 천이 스르르 풀렸다.
아라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의 살점으로 보이는 게 바닥으로 흩어지는 와중에 데굴데굴 굴러간 얼굴이 도중에 멈췄다.
"…우웩."
일부 마법사는 그 모습에 헛구역질했고, 나머지는 밀려오는 충격에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시체가 누구의 시체인지 말 안 해도 알겠죠?"
하벨의 물음에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생각 외로 시체의 얼굴이 멀쩡했기에 굳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마법사들 모두가 눈치챘으니.
시렌.
헤일리스 옆에 있던 마법사였다.
'레디나가 참 화가 많이 났나 봐. 저것도 덜한 거라니.'
하벨은 얼굴만 멀쩡한 시렌의 표정에 드러난 격렬한 고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시렌입니다."
하벨이 확신을 주자 마법사들은 참을 수 없는 의문에 입을 열려고 했다.
"이번 사태의 주범이에요."
툭 하고 꺼낸 하벨의 말에 모두가 잠잠해졌고 헤일리스는 자신이 치고 갈 순간임을 느꼈다.
가슴이 설렜다.
그 시렌을 지워버릴 수 있다니.
"이번 습격은 한 단체로 시작됐다."
헤일리스는 조금 전에 언급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그 단체에서 마법사인 시렌은 잠입시켰고, 시렌은 제일 먼저 내 곁에 맴돌아 나의 환심을 샀으며 곧 나를 세뇌했고, 그대들 역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세뇌했다."
시렌이 자신의 옆에 붙어 있던 걸 모르는 마법사들이 있을까.
헤일리스는 사실에 거짓을 천천히 섞어갔다.
"하여 그대들이 느꼈을, 기억의 괴리는 모두 시렌의 세뇌이자 그 단체의 계략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헤일리스는 하벨이 원하는 대로 시렌을 그 단체의 일부분으로 몰았다.
시렌을 빤히 쳐다보던 마법사들의 시선은 다시금 헤일리스에게 돌아왔다.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에 대한 강한 분노를 곱씹으며.
"우리는 그 단체를 몰랐으며, 이곳으로 침투한 적 역시 몰랐으며 이로써 위협이 코앞에 왔다는 것 역시 몰랐다. 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이용당했다."
설령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 기억이 자신이 원한 게 아니더라고 해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더 잘 설득할 수 있는지를.
"시렌이 죽은 뒤, 분명 그대들은 이상함을 알았을 테지."
마법사들은 그 말에 혼란을 느꼈다.
자신들이 이상함을 느꼈을 시점은 바로 칼리우스에게 이름을 빼앗겼을 테니까.
하지만 그 시기가 시렌이 죽었을 시기와 겹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헤일리스는 시렌과 똑같은 자신의 마법을 사용해 하벨을 가리켰다.
하벨 머리 위에 모래가 맴돌자 마법사들은 그 마법을 바라보았다.
이제 오해 하나를 풀 차례였다.
"이번 습격은 습격이 아닌, 여기 하벨 티에라 공께서 더럽고, 역겨운 시렌을 죽여 우리가 세뇌당했음을, 우리를 멈추기 위해 찾아오셨다."
'어떻게'라는 사실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하벨 티에라라는 존재부터 이상했다.
수백 년 만에 등장한 물 마법사가 아닌가.
―내 신비감을 이용해봐. 마법사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낸 것과 엮어서.
이미 하벨 티에라가 방향을 잡아주었다.
자신은 그 방향대로 직진하면서 시렌이라는 역겨운 존재를 털어버리고 지워버리고 짓밟아버리면 그뿐이었다.
이렇게 떠먹여 주다시피 하는데 왜 못 하겠는가.
"그대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낸 것 역시 이곳에 스며든 그 단체의 일당을 알기 위함이었다. 우리를 되찾기 위해. 더는 그 더러운 놈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게."
헤일리스는 말을 하던 도중에 고개를 숙였다.
시렌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라면 이까짓 거짓말쯤 뭐가 문제일까.
"하지만 그 와중에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낄 모두에게 사과하겠다. 내 설명이 부족했으며, 그대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헤일리스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마법사들은 당황했다.
어쩌면 처음으로 마법사들에게 꺼낸 사과일지도 몰랐다.
"그대들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걸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마나를 걸고 맹세하마."
어차피 헤일리스 자신은 저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벨은 이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해. 위에 군림하려면 적당한 '공포'는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시렌이 한 방법은 잘못됐어. 그건 공포가 아니야. 기만이지.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건 네가 저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착각만 주는 거야.
고개를 숙인 헤일리스는 마법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에 긴장했다.
―물론 반발은 있겠지. 반발은 있되, 세뇌가 사라진 마법사를 통솔할 유일한 대체재가 되어줄 거야.
'…하벨 님 말씀대로 착각했을까.'
헤일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마법사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었다.
다시금 공포가 드리웠다.
하지만 달랐다.
"나는……."
다르기에 헤일리스는 저들의 시선에 기억 속에서조차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협회장으로서 그대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은 협회장이 아니었다. 시렌이 세운 꼭두각시였을 뿐.
그저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닌,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그들의 눈빛에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적이 왔음을 몰랐고, 나 역시 꼭두각시가 되어 나는, 그대들은, 그리고 마법사 협회는… 감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실수라는 건 분명했다."
헤일리스는 울지 않았다.
그저 저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꺼내는 자신은 울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헤레스는 헤일리스가 마치 오열을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원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건 그 누구보다 내가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나라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빚을 졌다."
분노를 담았고, 슬픔을 흘러내는 저 목소리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을 어루만지는 손처럼 다가와 헤레스는 두 손을 꼭 쥐었다.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벨은 헤일리스의 말에 뒤쪽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헤레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죄책감을 건드는 말에 자신도 괜히 가슴이 흔들리는 데 헤레스는 오죽할까.
이곳 마법사 협회는 너무도 얽히고 얽혀 있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처단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며 또 다른 우리를 만들지 않겠다."
헤일리스는 목소리에 힘을 가득 준 뒤 마법사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이 느낄 이 끔찍한 감각을 저들 역시 느끼고 있겠지.
"이래도 나를… 따를 자들이 있는가?"
순간 헤일리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갑자기 자신이 역겨워졌다.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꺼내나 싶었다.
"…웃기지 마십시오! 제일 더러운 건 당신이잖습니까!"
헤일리스의 호소에 분위기가 흐트러질 때쯤, 한 마법사가 소리쳤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헤일리스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꺼냅니까? 역겹습니다! 역겨워 미치겠다고요! 뭐가… 대체 뭐가 마법사들을 위한 행동이냔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잖아! 내가, 이렇게 끔찍하게 되어버린 건 당신 때문이란 말이야!"
당장 마법이라도 사용할 것 같은 분위기에 하벨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지팡이를 짚고 마법사 쳐다보았다.
"워. 똑같은 사람끼리 그러면 안 되잖아."
하벨이 씩 웃으며 꺼낸 말은 저 마법사만 찌른 게 아니었다.
모두를 하나로 묶어버렸다.
"…뭐? 똑같아? 내가?"
마법사가 흥분하며 자신을 가리키자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똑같잖아. 너나 헤일리스 씨나. 그럼 너는 뭘 어쩌고 싶은데?"
"잘못한 놈만 벌을 받아야지. 나는 피해자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자. 귀 파고 잘 들어. 네가 세뇌에 당한 거 알아. 그런데? 그래서 그 사실만 알면 누가 끝이 난데? 정말 끝이 난다고 생각해?"
하벨은 저들을 재차 찌르며 자신이 기절한 동안 일어난 일을 하나씩 꺼냈다.
"너희 모두 내게 빚을 진 상태에서 내가 배신했다며 사경을 헤매던 나를 죽이려고 했던 놈들의 일부가 아직 이곳에 있을 거야. 지금 속으로 나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자, 누가 역겹고, 누가 피해자일까?"
마법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에 헤일리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벨 티에라가 자신들을 구하러 이곳에 왔다는 걸.
"지금처럼 이렇게 명확한 사실을 가지고 아니라고 우기긴. 네가 뻔뻔하다는 생각이 이제 들어?"
하벨은 마법사를 비웃으며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좋아. 분명히 말하지. 너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야. 그건 확실해."
하벨은 일부로 구분을 지어 원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확정 지었다.
"하지만 세뇌를 당했다고 한들, 억울하다고 호소한들 갚아야 할 빚이라는 건 분명해. 결국, 네가 저질렀잖아?"
하벨은 지팡이를 들어 마법사의 복부를 꾹 찔렀다.
"책임져야지. 그렇지 않아?"
하벨의 시선이 다른 마법사까지 향했다.
"시간이 아까우니 간단히 말하죠. 속죄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나갔으면 합니다. 어디에서 뭘 하다가 죽든 말든 관심 없으니까요."
지팡이를 내린 하벨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물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잊으면 안 됩니다. 당신들을 세뇌에서 풀어준 건 납니다. 여기서 내가 당신들을 멈춘 겁니다."
하벨은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선을 그었다.
이미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걸.
저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걸.
하벨의 말에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자 헤일리스는 다시금 주장했다.
"이제부터 마법사 협회의 방향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거다. 강요하지 않고, 붙잡지 않겠다. 탈퇴하고 싶으면 절차대로 처리하면 될 거다."
"혹시 탈퇴… 불이익은 없습니까?"
"없다."
단호하기까지 한 헤일리스의 대답에 질문을 꺼냈던 마법사와 계속 눈치를 보던 다른 마법사들 역시 흔들렸다.
"지금부터 마법사 협회는 우리를 이렇게 만든 암살자 집단인 '검은 달'을 적으로 명시한다."
헤일리스는 하벨이 바라던 마지막 목표로 방향을 단번에 틀며 검은 달이라는 이름을 직접 꺼냈다.
헤일리스가 사실을 알렸고, 하벨이 그런 사실을 꼬집어 죄책감을 일으켰으니 당연히 그 이름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검은 달. 그놈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그렇다."
헤일리스는 마법사들의 물음에 긍정하며 다시금 주장했다.
"검은 달이야말로 우리의 적이다."
마법사들의 눈빛에 깃든 증오를 조금 전과 달랐다.
명확히 적을 보는 시선에 소름을 느끼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보았는가.
마치 하벨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여기까지 예상한 걸까.
하벨은 제 생각마저 예상한 것처럼 눈웃음을 지었다.
자, 다음 말을 꺼내야지.
그렇게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 '게르함' 장로의 죽음 역시 검은 달이 저질렀다는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 이와 관련된 자료는 오늘 중으로 나눠주겠다."
헤일리스의 손짓에 헤레스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레디나가 잡아 온 놈을 허공에 띄워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꾸욱.
옷자락을 아래로 당기며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냈다.
"…역겹기 그지없는 네놈들이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아?"
검은 달의 일원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마법사들을 실컷 비웃었다.
"이미 사람임을 포기해놓고 우리가 다시 잘 해보자고 '으쌰으쌰'라고 하면 사람이 되는 줄 아냐고? 이 역겹고 더러운 쓰레기들아. 우리는 어둠 속에 숨어 너희를 무너트릴 거다. 천천히 너희를……."
빡.
헤일리스는 모래를 일으켜 놈의 목을 꺾어버렸다.
침묵이 흘렀다.
짧지만, 놈이 일으킨 반항은 컸다.
"시체를 마음껏 조사하는 걸 허락하겠다."
헤일리스는 시체가 된 검은 달의 일원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벨이 정령의 힘으로 자백제를 먹였고, 그 흔적은 아무리 뒤져봤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테지.
"보았는가? 적은 아직도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우리가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전보다 자신감이 섞인 눈빛으로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호소했다.
"하나, 나는 그렇게 둘 수 없다. 나와 그대들이 느끼는 그 억울함을 두고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손을 올린 헤일리스는 자신을 가리켰다.
꽈악.
옷자락을 세게 쥔 헤일리스는 간절함을 담았다.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내 온몸이 부서지도록 모든 걸 바로 잡을 것을 맹세하겠다."
모든 것이 잘못된 집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잘못밖에 저지르지 않은 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헤일리스는 온몸이 포박된 그 와중에 수없이 생각했다.
세뇌에 걸렸다 한들, 잘못은 잘못이었다.
이건 자신들을 가엾다 바라보기에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그렇다면 바로잡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속죄하고, 모든 걸 바로 잡고. 그때, 죽겠다.'
헤일리스는 마른침을 삼키고 그들의 결정을 기다렸다.
"저는… 따르겠습니다."
한 마법사부터 시작했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검은 달도 용서할 수 없고, 더는 제가 저지른 죄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정말 이 모든 게 이용당한 거라면 이대로 있고 싶지 않습니다. 복수할 겁니다. 반드시!"
"나가더라도 잘못을 바로잡은 뒤에 나가겠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말입니다."
의견이 갈렸지만, 대부분 헤일리스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기에 누군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하벨 역시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았다.
'잡초가 될 싹은 일찌감치 잘라버려야지.'
잘 꾸며진 이 자리는 헤일리스가 다시 협회장으로 허락을 구하는 자리가 아닌, 마법사들의 심판대였다.
이제 변론은 끝이 났으니 심판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잘라버릴 싹이 누구인지 마법사들 틈 사이로 가면단이, 크라마의 사람들이 섞여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저 멀리서 크라마와 페트리오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