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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29화 (229/415)

229화. 흔들린다

* * *

하벨은 방금 페트리오가 꺼낸 말을 섣불리 부정할 수 없었다.

페트리오는 오직 진실인 정보만 자신에게 내어준다는 걸 왜 모를까.

하지만 하벨은 영혼과 관련된 실험이 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게… 정말 없었단 말이야?"

하여 하벨은 자신이 꺼낸 질문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알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드웰이 사라진 뒤로 마법사 협회 내에 영혼을 옮기는 실험 역시 중단되다니.

"예, 도련님. 제게 몇 번이나 물으셔도 그 실험은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드웰을 대체할 사람이… 없기에 드웰을 찾든지, 물 마법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연신 진지한 페트리오의 말에 하벨은 혼자 바다에 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이미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했지만, 카샬은 금방이라도 조각이 나 깨어질 것처럼 보이는 하벨을 보며 가슴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제가… 마법사 협회에 쫓기는 이유입니다.

드웰이 하벨 자신에게 했던 말.

'그 말이…….'

이미 일그러진 하벨의 얼굴에 천천히 절망이 드리웠다.

'그 말이 정말로.'

하벨은 입술을 세게 다물었고, 손끝부터 밀려오는 좌절감에 온몸이 떨려왔다.

'…정말로 사실이라니.'

이채로 가득하던 하벨의 눈동자에 물살이 일렁거리다 어둠에 잡아 먹힌 듯 색이 탁하게 변했다.

[왜, 왜 그래, 대장?]

아라가 하벨의 옷자락을 덥석 쥐었다. 왜 이렇게 불안하게 보이는지 몰랐다.

"잠시만요."

헤레스가 참다못해 말을 꺼냈다.

잠깐 혼란이 밀려왔다.

마법사 협회를 나온 드웰이라면 자신이 아는 그 드웰뿐이었다.

드웰이 가진 특별함은 바로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점이었다.

하벨이 드웰을 티에라 가문으로 불렀을 때부터 어렴풋이 예측했지만, 하벨이 아직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페트리오에게 실험 목록을 달라고 했던 하벨의 의도는 무엇이겠는가.

"도련님."

헤레스는 하벨을 불렀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하벨에 대한 미안함에 당장 울상을 지었다.

"…도련님."

어긋난 이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원래 몸 주인인 하벨 티에라와 영혼을 바꾸겠다는 게 아닌가.

"그건, 그건……."

헤레스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감히 자신이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헤레스는 하벨의 고통을 끊어주고 싶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체 뭘 말하는 거야?"

모두의 표정을 살핀 칼리우스가 덩달아 불안해져서는 물었다.

왜 자신만 모르는 소리를 자꾸 꺼내는 건지 몰랐다.

"도련님."

헤레스는 다시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저는 이전 도련님께서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셨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엄청난 대가를 바쳤을 겁니다."

"헤레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칼리우스는 다시금 재촉했다.

자신도 저 말이 뭔지 알아듣고 싶었다.

하벨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아라는 곧 아랫입술이 벌어졌다.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눈동자마저 흔들렸다.

[…대장은, 대장이 하벨 티에라한테 몸을 돌려주려고 한 거야?]

아라는 설마 하며 물었다.

아무리 상황을 살펴도 자신이 아는 사실 중 입에 올릴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정말… 그랬던 거야?]

아라는 슬픔이 밀려왔다.

하벨이 하벨 티에라에게 몸을 돌려준다는 건 헤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뭐……? 몸을 돌려준다고?"

칼리우스의 눈이 커졌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도련님."

카샬이 잔인할 정도로 단호하게 언질을 날렸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이전 도련님이 자신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겠지.

―만약에 내가 좀 많이 달라지더라도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말고 평소처럼 대해 줘. 그래 줄 수 있어? …아, 진짜 아니다 싶으면 떠나도 괜찮고.

하벨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든, 자신이 은혜를 다 갚았다는 말 역시.

"여, 영혼을 바꾸는 건 큰일 나는 행동이야!"

칼리우스가 그제야 목소리를 냈다.

"영혼은 건드리면 안 되고, 그 누구도 건드려서도 안 되는 부분이야. 만약 그러려면 아주 긴 시간 동안, 아주 많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 이게… 사람이 가진 수명으로는 안 돼."

제 머릿속에 있는 용의 지식이 영혼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알려주었다.

"아니, 애초에 여, 영혼은 함부로 바꿀 수 없어. 몸이 다른걸? 아무리 많은 대가를 바쳐도 그 영혼이 다른 몸에 안착이 될 수가 없어. 빠르든 늦든 죽어가. 그런데… 도련님의 영혼이 바뀌었다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을 다다다 꺼내던 칼리우스가 마지막에 와서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벨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이 몸은 내게 아니야."

하벨이 숨을 섞으며 대답했다.

"불가능한데. 이건… 할 수 없는데? 그럼… 그럼."

칼리우스는 꺼내고 싶지 않은 말에 입술이 덜덜 떨려왔다.

"도련님이……."

너무도 무서운 말.

하지만 칼리우스는 겁에 질린 채 물었다.

"…죽어간다는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없어! 대장이 그럴 리가 없다구!]

아라가 칼리우스의 말을 세차게 부정했다.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용의 지식이 그렇게 말한다고."

칼리우스는 밀려오는 참담함에 이미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저, 저, 정말 드웰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럼, 이미 전부터 들었던 거예요?"

헤레스가 말을 더듬었고, 카샬은 설마 하며 미간을 아주 깊게 찌푸렸다.

"다 알고 있었습니까, 도련님?"

"그래."

하벨의 대답에 카샬은 뒤통수를 맞은 표정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카샬. 처음에 내가 이 몸을 하벨 티에라에게 돌려주겠다고 당당히 말했지만, 이제 점점 자신이 없어져. 이 말을 가주님께도 꺼내지 못했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처음에는 물론 하벨도 몰랐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드웰이 티에라 가문으로 오지 않았던가.

그때는 분명히 알았을 텐데.

몸이 바뀐 대가로 죽어간다는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그럼에도 도련님께서는 지금 몸을 바꾸려고 했단 말입니까?"

카샬이 하벨을 재촉하자 그는 소리쳤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그 말을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건가.

"…그래!"

하벨은 손에 힘을 꽉 쥐었고, 페트리오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은 자신이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하벨이 죽어갈 줄은 몰랐다.

후회가 밀려왔다.

"이미 전부터 알고 있다고! 다! 전부……!"

하벨의 목에 핏대가 섰다.

다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설령 원래 몸을 돌려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를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역시.

태어나면서 몸에 지니고 있던 열쇠를 잃어버리고, 영혼이 찢겨 너덜너덜한 자신이 지급할 수 있는 대가가 어디 있겠는가.

"…하하."

하벨은 입꼬리를 바들거리며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니 이제 이 몸은 용왕님 겁니다.

못된 하벨 티에라.

망할 하벨 티에라.

'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떨림으로 가득한 손을 천천히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나도…….'

드웰에게서 모든 걸 듣고 난 뒤에도 미련을 놓지 못한 쪽은 바로 자신이었다.

'알고 있었다.'

하벨은 자신을 토닥이는 아라의 손길에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려 노력했다.

'이미 전부터.'

왜 모르겠는가.

애초에 영혼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인 것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룬델에게 너무 미안해서.

"하지만……."

자신이 감히 또 다른 삶을 살아도 될지 모르기에.

"하지만 내가."

밀려드는 여러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양심이 외치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방법을 찾는 길밖에 없었다.

도중에라도 자신이 하벨 티에라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다.

하벨 티에라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저들에게 어설픈 희망을 주는 게 아니겠는가.

모든 게 다 끝이 날 때, 그때 자신이 말하려고 했다.

"내가 그렇다고 해서 하벨 티에라가 가진 것들을 빼앗을 수는… 없잖아."

하벨이 손을 내리자 카샬은 당장 그를 한 대 치고 싶은 얼굴로 쳐다봤다.

하벨은 카샬의 표정에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는 카샬이었기에 더 화가 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어. 염치없는 소리잖아?"

꽈악!

카샬이 더는 참지 못하고 하벨의 멱살을 쥐었다.

"카샬 씨!"

헤레스가 놀라며 일어나 카샬을 붙잡았다.

"왜, 왜 그래, 카샬?"

칼리우스 역시 카샬을 붙잡으며 당황했다.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그러면 안 돼, 카샬! 지금 대장은 아파!]

아라가 카샬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카샬은 이를 악물었다.

"미치셨습니까?"

당장 언성이 올라갔다.

한 번 죽었다고 두 번이나 죽을 생각을 하는 게 어디 있는가.

"왜 도련님답지 않게 미련한 짓을 하는 겁니까! 안 된다는데, 안 되는 걸 아는데 양심이 대수입니까!"

"너는 그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안 돼! 설령 그게 어설픈 희망이라도 나는 붙잡아야 했다고! 나는!"

살아 있을 거란, 어설픈 희망을 품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지금도 룬델에게 하벨 티에라가 자신의 의식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하벨은 뒷말을 필사적으로 눌렀다.

"왜 안 되는 겁니까? 도련님만 다 손해 보고 있잖습니까! 솔직히 이전 도련님 때문에 열 받잖습니까!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원망스러워. 열 받는다고."

"그러면 이 개새끼야, 내가 너보다 더 잘 산다, 이러면서 정말 온갖 것들을 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누군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건데. 왜 하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내가 아무리 해도 하벨 티에라가 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래? 내가 어떻게 그러냐고……!"

하벨은 이전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이 약한 몸뚱어리 때문에 벌써 목구멍에 피 맛이 맴돌았다.

"누가 되라고 했습니까? 아무도 강요한 적 없습니다! 어떤 새끼가 강요했습니까? 아니, 도련님이 누가 강요한다고 말을 들을 만큼 온순하셨습니까? 그게 아니면 진짜 하벨 티에라가 되고 싶은 겁니까?"

"미친……."

하벨은 자신의 멱살을 쥔 카샬의 손목을 꽉 쥐었다.

듣자 듣자 하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 미친 새끼야! 지금 하벨 티에라가 되고 싶냐고 물었어? 되라고 해도 절대로 안 해! 나는 나야! 이렇게 된 것도 억울한데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럼 잘됐네요. 이제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카샬은 그제야 미간에 주름을 펴며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았다.

하벨이 주춤거리자 카샬은 조금 전보다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가주님께서도 아시는 거 아닙니까?"

룬델을 언급하자 하벨의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온순해지는 그 모습에 카샬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럼 아무 문제도 없잖습니까. 애초에 이렇게 멋대로 하나씩 다 주워놓고 발을 빼다니. 그게 제일 역겨운 거 아십니까?"

"내가… 주웠다고?"

하벨은 기가 찬 듯이 반응했다.

"그럼 주운 거죠. 미친놈에, 용에, 정령에 주렁주렁 아주 장사라도 차리시겠습니까. 애초에 도망치는 거 못하신다면서요? 겁쟁이시라면서요?"

"그래. 나는 겁쟁이야."

"지금 도련님이 하시려는 행동이 도망이랑 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가시면 얼씨구나 좋다고 하며 저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

사실을 꼬집은 저 말에 하벨은 말을 잇지 못했다.

[싫어! 이 몸은 대장을 무조건 붙잡을 거야! 이 몸은 대장이 없으면 슬퍼! 너무 슬퍼서 매일매일 울어버릴 거야!]

아라가 다시 하벨에게 날아와 그의 얼굴을 꼭 잡고 볼에 머리를 비볐다.

[가지 마, 대장! 어헝, 이 몸을 두고 가면 안 돼!]

금세 아라가 서럽게 울부짖었다.

마음이 따끔거려와 하벨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만약 도련님이 가버리면 시간을… 다시 움직여서라도 되돌릴래. 나는 용이니까, 할 수 있을 거야! 그때 다시 설득할래."

"저도 돕겠습니다, 칼리우스 님."

의지가 가득한 칼리우스의 말을 헤레스가 동조했다.

"이건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하벨은 이전 도련님의 의지 그 자체이자 자신의 은인이었다.

어떻게 그냥 보내겠는가.

"저도 이런 일만큼은 도련님께서 부탁하셔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일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페트리오가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어쩌면 하벨이 듣기에 잔인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번만큼은 선을 넘을 생각이었다.

이전 하벨 티에라가 어쨌건 자신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바로 눈앞에서 울음을 꾹 참는, 낯선 표정을 짓고 있는 하벨이었다.

"보셨습니까, 도련님?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게 왜 멋대로 주우셨습니까?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길거리에 있는 건 함부로 주워서도, 먹어서도 안 된다는 걸요."

하벨은 카샬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건 짊어진 게 아니다.'

부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백성들의 목숨을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했던 그때와 확실히 달랐다.

'그저 하나씩 얽혔던 인연의 실들이 이렇게나 튼튼해졌구나.'

하벨은 치솟던 절망 끝에 작은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

그 의지가 서서히 차올라 하벨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내가… 그래도 될까?"

갑자기 랜턴이 흔들려서는 빛을 깜박거렸다.

마치 자신을 혼내는 것 같았다.

[응!]

아라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몇 번이나 끄덕였다.

[으응. 그래도 돼. 아니, 그래 줘. 제발, 이 몸이 가장 좋아하는 대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간절함으로 가득한 아라의 속삭임에 하벨은 지금껏 꺼내지 못한 말을 내뱉을 뻔했다.

자신이 하벨 티에라의 몸을 빼앗은 채로 살아가도 되는지.

하지만 하벨은 일그러진 얼굴로 올라오는 모든 걸 삼켜보았다.

"돼! 무조건 돼. 나는 도련님이 도련님이 아닌 건 싫어! 영혼이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련님이 사라지는 건 싫어."

칼리우스는 하벨의 옷자락을 꽉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의지를 다졌다.

"도련님은 나한테 소중한 존재야. 엄청. 엄청!"

"이전 도련님께서 이미 다 말씀을 끝내고 떠나셨습니다. 솔직히 왜 그딴 망할 짓을 했는지 멱살 잡고 묻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걸 어쩌겠습니까?"

카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는 새로운 도련님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카샬은 하벨 티에라라는 존재가 티에라 가문에 얼마나 큰지, 이전 도련님이 산을 오른 뒤로 알게 됐다.

"진짜 생각이 겹쳐 짜증 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 때문에 도련님을 희생시키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페트리오는 목을 조이는 장식을 떼며 땅에 던져버렸다.

"왜 도련님께서 그러셔야 합니까?"

앞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충성하는 사람은 지금 하벨뿐이었다.

"그러니까, 도련님."

헤레스는 잔잔한 미소를 그려갔다.

"그러지 말아 주세요."

아직도 머릿속에 구석에 웅크려 울던 이전 도련님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도련님은 당장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로 더 애잔하지 않은가.

"그냥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있어 주세요."

헤레스의 눈가가 붉어졌다.

하벨은 밀려오는 그들의 다정한 말에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자신에게 살아달라고 말하는 그들이 왜 사랑스럽지 않을까.

활짝 웃으며 입을 열던 순간, 그 소리가 들려왔다.

딸깍.

하벨 티에라의 과거가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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