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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21화 (221/415)

221화. 만나다(2)

* * *

* * *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하벨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천천히 모두가 멀어졌다.

이제는 손끝을 뻗어도 닿을 수 없었다.

왜인지 모든 게 천천히 느려지는 것 같았다.

의식도.

[대장!]

아라의 목소리에 하벨은 점점 가까워지는 아라를 보았다.

아라가 아래로 추락하는 하벨의 손을 붙잡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이 그저 같이 떨어질 뿐이었다.

[어떡해! 어떻게 하면 좋아!]

아라는 밀려오는 막막함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큰일이었다.

바다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벨은 바다에 닿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라야."

하벨은 피를 흘리며 아라를 불렀다.

[이 몸이… 이 몸이…….]

아라는 울음을 꾹 참으며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야 했다.

아라는 다급히 눈동자를 굴리다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슬퍼 보여요?

귓가에 속삭이는 그 말에 아라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자신은 정령이었다.

저 바람은 무조건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어떤 강한 예감이 들었다.

[도와줘! 도와줘, 바람아!]

아라가 간절히 바람에게 부탁했다.

[도와줘! 대장이 떨어지지 않게 잡아줘, 제발!]

계속 얼굴을 때리는 거센 바람이 갑자기 살랑살랑 불어와 아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미안해요. 여기서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아까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에서 거센 역풍이 불어와 떨어지는 하벨의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속도를 늦췄을 뿐, 하벨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니.

이 근처에 있는 정령들은 모두 저 위에 있었다.

아직도 오미너스 때문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무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숲이 멀었다.

너무도 멀었다.

[땅이… 응답을 하지 않아. 땅이.]

검게 물든 바다에 잠겨진 땅은 아무리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응답하지 않았다.

아라는 까맣게 물든 저 바다를 보며 끝을 예감했다.

[이런 건 싫어. 이 몸은 이런 거 싫다구……!]

더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벨은 아직도 이렇게 자신을 물로 보호해주고 있는데.

[이, 이동하자. 그래 이동하면 돼!]

아라의 눈동자에 금세 희망이 어렸다.

물의 길을 열고자 물을 불러왔다.

하지만 물은 응답하지 않았다.

바람은.

[아, 안 돼! 멈춰!]

아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바람의 길을 열려던 순간, 하벨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으으.]

아라가 밀려오는 울음을 다시금 꾹 눌렀다.

지금 하벨의 속도를 멈추는 바람을 사용해야 했다.

제시간에 바람의 길을 만들지 못하면 하벨은 바다에 빠질지도 몰랐다.

[…어헝.]

할 수 없었다.

하벨의 목숨과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그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어헝헝……!]

아라는 막막함과 서러움에 목놓아 울었다.

다 실패했다.

죄다.

"아… 라야."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하벨은 힘을 억지로 쥐어짜며 아라를 불렀다.

바다와 가까워진 만큼 용왕의 힘으로 만든 물로 감싸고 있음에도 숨을 쉬고 있는 사실만으로 온몸이 갉아 먹히는 것 같았다.

하벨은 이 아픔과 하벨 티에라의 몸보다는 아라가 더욱 걱정스러웠다.

모든 수단이 막혀버리지 않았는가.

[바다가… 미워.]

아라는 하벨을 붙잡아 위로 당겼다.

하지만 하벨은 떨어지고, 계속 떨어졌다.

[이 몸은 바다가 너무 미워!]

바다 때문에 바람이, 땅이, 그리고 모든 것들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라는 그 사실이 너무도 속상했다.

"…하."

하벨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바다를 원망…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바다가 원한 일이 아니었다.

저들은 그저 원치 않은 것들을 가득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게 고작이니.

[하지만. 하지만…….]

'떨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벨은 자꾸만 끊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마법사 협회에 결계가 작동했다.

모든 마법사가 마법을 쓸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이건 자신의 실책이었다.

시렌이 가진 수를 다 꿰뚫었다고 생각한 오만함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마지막에 폭탄이라 생각했는데 단순히 바람이었다니.

'…자책은 여기까지.'

하벨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내버리지 않았다.

살아야 했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아직은 안 돼.'

그때처럼 너무도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하벨은 용왕의 힘을 끌어왔다.

콜록.

하벨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자 아라가 기겁했다.

[대장! 그만해! 이 몸이 어떻게든 해볼게.]

아라는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바람을 더 끌어왔지만, 결국 또 속도를 늦추는 것뿐이었다.

[이익…! 바람아, 멈추라구! 대장을 멈춰줘!]

양 볼에 눈물을 머금은 것처럼 아라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넘실거리다 못해 흘러내리는 속상함에 파묻힐 것만 같았다.

하벨은 손아귀에 가득 들어오는 그 힘을 느끼려 시도하고.

탓.

또 시도했다.

하지만 한 번 연결된 뒤로 다시는 응답하지 않는 그 힘에 하벨은 애가 탔다.

끊어진 이 힘만 이으면 될 것을.

바늘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실을 달래는 기분이었다.

[아, 안 돼, 대장! 이제 그만 해! 멈춰!]

하벨의 심장 소리가 느려지자 아라는 그를 흔들었다.

'힘은 분명 이전보다 돌아오지 않았던가.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왜?'

하벨은 아라의 간절한 말에도 입술을 깨물었다.

안 되면 더.

탓.

계속.

'살아야 한다.'

삶에 대한 갈망이 이보다 더 컸던 때가 있을까.

―너는 내 아들이란다.

하벨의 머릿속에 룬델이 떠올랐다.

약속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무어라 하든, 네가 나를… 부정해도 말이다.

이런 자신을 아들이라 말해주는 룬델을 위해 죽지 않기로.

오늘도 무사히 돌아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무엇도 지키지 못하고 다 잃어버렸는데.'

탓.

'이제는 왜… 거꾸로 내 손으로 저들의 소중한 것을 부서트리도록 밀며 강요하는지.'

하벨은 간절히.

정말 간절히 힘을 이어보았다.

'그건 싫다.'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힘을 자라나게 했다.

'이제는 다시는 비참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바닷속에 일어나는 물거품과 자신을 밀어주던 바다의 보드라운 촉감.

그리고 한때, 이 손으로 모두를 지키던 자신의 그 용맹함을 떠올렸다.

우우우웅!

하벨 주위에 바람이 더욱 휘몰아쳤다.

'내 부름에 응답해주거라.'

타탓.

손아귀에 무언가 쥐어지는 느낌이 이어졌다.

[제발, 대장이 죽는 건… 어?]

눈물을 흘리던 아라가 귀를 쫑긋 세웠다.

웅웅.

바다가 울었다.

하벨은 손아귀에 들어온 자신의 힘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몸에 있던 나쁜 것들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너무도 가벼워졌다.

하벨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피어나자 아라가 깜짝 놀랐다.

[대장 눈이, 저번처럼 파랗게 변했어!]

"…바다여."

하벨은 검게 변한 바다를 바라보며 불렀다.

이제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으엉엉.

바다가 그 부름에 울었다.

하벨은 터무니없을 만큼 가벼운 울음소리에 반가움이 밀려왔다.

이 목소리였다.

"내 부름에 응답하거라."

바다가 파도를 일으키며 요동치자 아라는 왜인지 몰라도 그 모습에 깊은 반가움을 느꼈다.

―왜 이제 왔어요? 으엉!

―못됐어요! 진짜 못됐어요!

바다가 울부짖었다.

하벨은 그 말에 제 귀를 의심했다.

"나를… 기억했어?"

―물론이죠! 목이, 아, 목은 없지만, 어쨌든 목이 터지라 불렀잖아요!

―용왕님이 우릴 버린 줄 알았어요.

하벨이 살짝 얼어붙은 표정으로 내려오자마자 바다가 갈라졌다.

[우, 우오옵!]

아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 너머로 다시금 희망이 번져갔다.

[바다가 갈라졌어! 아, 아니. 살았다!]

아라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라의 눈은 이전보다 더 동그랗게 변하며 그대로 굳어졌다.

하벨이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그곳에서 맑고 깨끗한 물이 웅덩이처럼 자라났다.

킁킁.

[마, 맛있는 물이다!]

냄새를 맡던 아라는 그 물이 어떤 물인지 바로 알아냈다.

바로 입맛을 다셨지만, 아라는 유혹을 떨쳐내고 하벨을 바라보았다.

이전보다 혈색이 돈다고 해도 뭔가 엉망이었다.

저 힘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었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데?"

하벨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질문했다.

"이곳은 다른 세계일 텐데?"

―미안해요.

바다는 사과했다.

―우리도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용왕님을 죽였고, 그리고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여기에 있었어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어요.

'바다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대체 내가 죽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하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알아볼 생각도 없었던, 자기 죽음 그 뒷이야기가 가슴을 찔러왔다.

바다가 얽혀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정령들이 자신을 알아보았다.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이란 말인가.'

턱밑까지 다가온 의문에 하벨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곳은 자신이 알던 곳과 달랐다.

장소, 사람들의 행동, 문화 등 하벨은 지금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을 꾹 눌렀다.

바다를 향해 하벨이 손을 뻗자 바다는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에요. 지금 우리의 몸은 달라졌어요. 이 검은빛은 용왕님을 해칠 뿐이에요.

"괜찮아."

하벨은 손을 뻗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잖아?"

―용왕님이죠.

"그러니까 이리 와. 잠깐이라도 덜 아프면 좋잖아."

―용왕님이 위험해요. 어서 위로 올라가세요.

"언제 또 이 힘이 작동할지 몰라서 그래."

―하지만 용왕님인데요?

"이건 내 몸이 아니야."

―하지만… 용왕님인데요?

바다가 같은 대답을 하자 하벨을 키득거리며 먼저 다가갔다.

"내가 다시 힘을 되찾았으면 좋겠네."

바다를 향해 손을 뻗자 아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러면 큰일 나는데. 대장은 오염된 물에 닿으면 큰일이 나는데.]

"눈 떠봐, 아라야."

하벨이 실실거리자 아라는 감았던 눈을 떴다.

"걱정하지 마. 안 닿고 있어. 지금 닿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사실 하벨은 바다를 만지고 싶었다.

자신과 평생을 같이했던 바다의 그 감촉을 느끼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앞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삐삐삐!

정화 장치가 울리자 아라가 기겁하며 당장 망토를 들춰 정화 장치를 가리켰다.

[이것 봐! 대장 벌써 지금 난리가 났어!]

―이것 봐봐요. 우리 때문에 아프시잖아요.

―이래서 오지 말라는 거였는데. 기껏 물러난 보람이 없잖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쉿. 오늘만 모르는 척해줘."

하벨이 손을 옆으로 부드럽게 휘젓자 햇살에 반사가 되듯 바다가 반짝반짝한 빛을 뿜어냈다.

달콤한 냄새가 아라의 코를 자극했다.

구름을 떼어 만든 솜사탕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 빛에 닿자 검게 변한 부분이 스르르 사라졌다.

바다는 밀려오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용왕의 그 따스한 힘에 파도를 치며 꿀렁꿀렁 춤을 췄다.

―용왕님이다아. 너무.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용왕님의 힘이야.

―아프지 않아.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아.

[우, 오오옵. 대장이… 대장 혼자서 정화제를 만든 거야? 멋지다아.]

아라는 검게 변한 부분이 벗겨져 가는 바다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바다는 푸른색이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용왕님.

바다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아라는 다시금 눈물을 찔끔 흘렸다.

바다는 지금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하벨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건 정화제가 아니야, 아라야."

하벨은 아쉬움을 남기며 육지로 걸어갔다.

이미 한계가 된 몸에 그보다 더한 충격이 오기 전에 바다를 떠나야 했다.

저벅저벅.

그의 발걸음에 땅에서 맑고 투명한 물이 일어났다.

"용왕인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힘이야. 나는 물이니까. 바다에 스며든 나쁜 것들을 없앨 수 있어."

하벨은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은 그저 바닷속에 스며든 힘을 지워버렸다.

만져본다면 더 정확히 알겠지만, 상당히 이질적인 힘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도 드는데.'

하벨은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파도에 피식 웃었다.

꼭 강아지 같았다.

뒤늦게 안도의 울음을 터진 아라를 달래면서, 바다와 함께 그렇게 육지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를 걸었다.

바다가 조잘거렸다.

이 만남이 언제가 될지 저들 역시 모르기에 자신에게 많은 걸 알려주려 바닷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마법사 협회가 바다에 아주 많은 사람을 떨어트렸다느니 하는 말을 꺼냈다.

하벨은 예전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주며 반응하다 잠깐 멈칫거렸다.

'언제 이렇게 도착했을까.'

육지를 한 걸음 앞둔 그때, 몸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음번에……."

바다를 바라보는 하벨의 아랫입술이 살짝 떨렸다.

안타까웠다.

너무도 안타까워 이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언제 또… 다시 이렇게 가까이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줘."

―당연히 알고 있죠. 기다릴게요.

―계속,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기다릴게요, 용왕님.

바다는 육지로 발을 내디딘 하벨을 향해 손을 흔들 듯 계속 파도를 쳤다.

"놀라지 마."

하벨은 바다와 아라를 향해 말했다.

이제 몸에 한계가 찾아왔다.

"울지 말고."

바다에게 시선을 주던 하벨은 아라를 지그시 보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괜찮… 커헉."

하벨의 몸이 앞으로 휘었다.

아라도 바다도 하벨이 흘리는 피를 보며 멈췄다.

띠띠띠.

타이머가 돌아가는 소리가 하벨 귓가에 들려왔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마치 정화제 사건 때, 정령수가 멈췄던 것처럼 뭔가가 억지로 자신의 힘을 풀고 있었다.

하벨의 눈동자의 색이 파랗다가 에메랄드색으로 뒤바뀌자 아라가 놀란 그 모습으로 숨을 헐떡였다.

[대장 눈동자 색이… 바뀌고 있어.]

그 말에 하벨은 다급히 앞으로 뛰었다.

'멀어져야 해.'

지금은 권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하벨 티에라 본연의 몸으로는 바다를 버틸 수가 없었다.

―괘, 괜찮아요, 용왕님?

바다가 다급히 멀어졌다.

"커헉……."

하벨은 가다 말고 또다시 피를 토했다.

허벅지를 잡고 간신히 버티며 눈을 질끈 감다가 숨을 들이마신 채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칼리우스가 자신의 피로 걸어주었던 마법이 반응하는지 가슴팍에 옅은 빛이 맴돌았다.

'또.'

하벨은 이전에 가슴팍에서 이상한 문자가 올라왔던 사실을 떠올랐다.

'그게 반응하는 건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놈의 힘.

왜.

하벨은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의식의 끈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건강… 다시 뵐… 반가웠어요.

바다가 꺼내는 말이 점점 끊어졌고, 작별인사를 건네지 못한 사실에 미련이 남았지만, 이 몸을 지켜야 했다.

'또 미안한 일만 생기는구나.'

하벨은 그저 앞만 바라보았다.

하벨이 휘청거리자 아라가 식물을 일으켜 그를 붙잡았다.

눈동자에 어렸던 하벨의 푸른빛마저 희미해졌다.

쿠웅.

그때, 무언가 자신의 앞에 떨어졌다.

익숙한 형상이었지만, 하벨은 그걸 살펴볼 틈도 없이 잠깐 의식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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