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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18화 (218/415)

218화. 나야(2)

* * *

소리도 없이 시렌에게 다가간 물방울은 차례대로 움직였다.

첫 번째 줄에 있던 물이 모래를 굳혔고, 두 번째 줄에 있던 물이 그 틈을 뚫었고, 세 번째 있던 물이 그 사이로 들어가 시렌을 공격했다.

시렌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리기가 무섭게 물방울이 눈에 보였다.

시렌은 급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퍼억.

갑자기 나타난 마법 방패가 어설프게나마 물방울을 막아냈음에도 시렌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미친.'

물 마법사는 미지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공격이 어떻게 나올지,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올지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이는 정령사를 떠올려도 달랐다.

물을 사용하는 정령사들도 이 정도까지 유연하진 않았는데.

'탐난다.'

시렌은 가슴 속에서 욕망이 들끓는 걸 느꼈다.

'너무 탐난다.'

하벨이 탐스러울 만큼 반짝반짝해 보였다.

얌전히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그냥 목숨만 부지하면 되지 않을까.

나머지는 가령 고장이 나도 여러 가지를 붙여주면 그만일 테니.

현재 모든 마법사를 위해 여러 분야에 특화된 마법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마법 실험 도중 피해를 볼 그들을 위해 의수도, 인공 장기도 마법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 하벨에게도 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아프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시렌은 모래로 대충 상처를 막아뒀다.

"나 방금 궁금한 게 생겼는데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래?"

하벨은 물을 계속 불러왔다.

과연 마법 방패 안에 물이 고일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었다.

"아니."

시렌은 뻔한 놀음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기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방어를 풀었다.

쉬익!

한 박자 늦게 자신을 덮치는 칼날들을 보았다.

시렌의 눈동자가 돌아가고, 칼날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쯤 그녀는 발을 굴렀다.

쿠웅!

갑작스럽게 몸을 짓누르는 그 힘에 검을 내밀며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던 카샬은 꼴사납게 넘어졌고, 시렌의 목덜미를 노리던 레디나는 몸에 방향이 뒤틀려 단검의 방향 역시 휘어버렸다.

"……!"

고작 시렌의 옷자락과 함께 팔만 살짝 베어내고는 시렌과 몇 발자국 멀어졌다.

레디나는 눈동자를 굴렸다.

혼자만 중력에서 자유로운 시렌이 씩 웃었다.

그녀가 꺼낸 모래가 레디나의 얼굴을 덮치려던 순간, 물이 앞에서 펼쳐졌다.

출렁출렁.

물마저 중력에 짓눌려 요란하게 떨려왔다.

'와. 여기가 그냥 요새네.'

하벨은 왜 헤일리스가 이곳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그 이유를 직접 체험하자 속으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나씩 발동되는 마법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발악하지 마, 하벨."

시렌은 하벨을 쳐다보았다.

"……?"

시렌은 여유로움을 뽐내려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마법이 지워진 게 아닌가.

'그럴 리가.'

시렌은 눈동자를 굴리자 그곳에 칼리우스가 있었다.

헤레스와 칼리우스를 가뒀던 불꽃은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실수했네."

칼리우스를 보는 시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가 비범하다는 걸 잊어버리다니."

시렌은 중력을 중첩해 칼리우스의 시선을 끌었다.

쿠웅!

쿵!

빠르게 그 힘을 지워버리는 걸 보며 시렌은 일단 하벨부터 짓눌렀다.

쿵!

순간, 하벨의 눈이 커졌다.

자신에게 강한 압박이 가해지자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트득.

휠체어가 휘어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으어어. 대장, 대장!]

아라가 힘껏 정령수를 넣었다.

지금 하벨이 위험하지 않은가.

하지만 하벨은 눈짓으로 칼리우스를 가리켰다.

모래를 더 빨리 멈출 수 있는 건 아라였으니.

[아, 알았어! 이 몸이 용용이를 도와줄게!]

"좋아. 역시 이 모습이 좋네."

이어 시렌은 칼리우스에게 지속해서 마법으로 발을 붙잡으며 방에 새겨진 마법 중 칼리우스를 위해 만들어 놓은, 아직 미완성인 그 마법을 발동했다.

"널 위한 마법이야. 네가 마법을 지울 줄 안다는 건 알았거든. 계속 준비하고 있었어, 칼리우스."

자신의 마법을 닮은 모래가 헤일처럼 헤레스와 칼리우스를 덮쳤다.

"…어, 어?"

칼리우스의 눈이 흔들렸다.

마법의 근원이 되는 마나가 지우려고 하면 사라졌다가 위치를 바꿔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자신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잠깐 놀다 와."

시렌은 방어막을 펼치며 칼리우스가 당황하는 모습에 만족하고서는 하벨을 보았다.

미완성이기에 마법은 얼마 안 가 또 지워질 게 뻔했다.

어차피 시간 벌이용이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네가 발악하면 나도 마음이 아파."

안쓰러움이 담긴 시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소리 마."

"정말인데? 어딘가 부러지기 전에 얌전히 있어."

시렌은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물을 부린다고 해도 결국, 저기까지였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건 잘했다고 칭찬할 만큼 대단했지만, 이곳은 마법사 협회.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시렌은 카샬과 레디나를 바라보았다.

"너부터 죽여주지, 암살자."

두 명 중 멋대로 날뛰는 암살자의 목부터 부서트릴 셈이었다.

헤일리스가 그랬듯 시렌의 뒤에서 꼬리가 자라났다.

차례대로 모래가 휘어 레디나를 향해 날아왔다.

처음은 피하고, 두 번째는 카샬이 베어버리고 그 틈에 레디나는 모습을 감추려 했지만, 잠깐 중력이 거세졌다.

모래가 다가오는 걸 알았음에도 레디나는 한 발 차이로 기어코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퍼억!

모래를 맞고 레디나는 벽까지 밀려났다.

얼굴을 막아 치명상은 피했지만, 온몸이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퉷."

레디나는 피를 내뱉으며 시렌을 바라보았다.

"와. 재미있는 걸 많이 사용하네?"

레디나의 눈이 휘었다.

어떻게 시렌을 잡아야 할지 감이 왔다.

"저런, 안타깝네. 넌 이제 죽어야 할 시간인데."

레디나는 시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검에 바람을 실어 던졌다.

눈을 깜박거렸을 뿐인데 머리로 치고 들어오는 단검 주변에 어린 마나에 시렌은 모래로 단검을 막으며 이를 갈았다.

"…불법 마법 시술자?"

당장 시렌이 모래를 내리자 레디나의 몸이 조용히 안개에 휘감기고 있었다.

"네년이 불법 마법 시술자였다니!"

시렌은 이를 갈며 그곳에 마나를 때려 붙듯이 모래를 한 번에 쏟아냈다.

콰앙!

벽을 감싼 마법이 요란하게 울릴 정도로 강대했지만, 그곳에 레디나는 이미 없었다.

"으으!"

시렌은 이를 악물며 눈을 사방으로 돌렸다.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쩌면 제일 까다로울 수 있는 암살자를 놓쳐버리다니.

"좀, 가만히 있어!"

쿠우웅!

시렌의 손짓에 카샬은 자신을 더욱 압박하는 마법에 저항했지만, 아래를 몇 번이나 가리키는 그 손짓에 카샬은 기어코 바닥에 손을 댔다.

"…크윽!"

온몸이 덜덜 떨리며 뼈가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이, 이건 혼자서는 어려운데.]

아코가 바람으로 중력에 저항해보나, 카샬이 숨을 쉴 구멍을 마련해주는 게 전부였다.

시렌은 숨을 잠깐 거세게 내쉬더니 머리를 쓸어올리며 하벨에게 다가갔다.

설마하니 벌써 마법사 협회 내부에 도는 마나를 예상보다 더 소모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하벨을 보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아프지?"

시렌은 모래로 하벨의 휠체어를 빼내 버렸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하벨을 내려다보며 시렌은 거슬리는 헤일리스를 걷어차고는 그에게 더 다가왔다.

"아프지 않아?"

시렌의 손짓에 사슬 하나가 하벨의 팔을 잡았다.

"응?"

시렌은 하벨을 재촉하며 또 다른 사슬로 그의 다른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사슬이 팽팽해지며 하벨이 떠올랐다.

고통이 일어났는지 하벨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시렌은 활짝 웃었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이렇게 꽁꽁 묶여 있으면 저항도 하지 못할 테고, 손쉽게 세뇌를 시킬 수 있는 것을.

세뇌의 시간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짧았다.

"아프지 않아. 포근한 꿈을 꾸는 것뿐이니까."

시렌이 속삭였다.

조금 전 전투로 살짝 지치긴 하지만, 이제 세뇌만 시킨다면 순탄한 길만 펼쳐질 테지.

지금 마법이 발동되었기에 밖에서 누군가가 저 문으로 들어오는 것도 문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세뇌가 끝나면 밖에서 마법사들을 불러올 셈이었다.

"어떻게?"

하벨이 고개를 들었다.

한쪽에 안대를 찬 그 모습을 보며 시렌이 하벨의 얼굴에 손을 댔다.

"이렇게."

시렌은 다시 세뇌를 사용했다.

"오늘은 용서해줄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물 마법사를 이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팔 하나를 내놔도 좋은걸."

물 마법사가 손에 들어온다면 오미너스는 완벽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럼 이제 자신이 바라던 걸 이룰 수 있었다.

"그래?"

하벨이 갑자기 히쭉 웃었다.

휘익!

바람을 다리에 두르며 무릎으로 시렌의 복부를 찍었다.

"…커, 커헉!"

시렌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눈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속도는 대체 뭔지.

하벨은 손을 펼쳤다. 그의 손등 위로 삼지창이 나왔다.

'자자, 지창아. 죽지 않을 만큼만 독을 내뿜자고.'

하벨은 삼지창에 발린 독을 조절하며 시렌의 팔을 향해 던졌다.

미리 그 감각을 느꼈는지, 시렌이 몸을 움직였지만, 하벨은 그 몸놀림에 맞게 삼지창을 살짝 움직였다.

스윽.

시렌의 팔을 스치고 하벨은 삼지창을 살포시 바닥에 흘려진 모래 속에 넣어버렸다.

"…나를 자극해봤자 좋을 거 없을 텐데."

시렌이 방에 있는 또 다른 마법을 발동시키자 허공에서 흙으로 된 손이 나와 하벨의 목을 쥐었다.

"큭…!"

하벨이 신음을 토하자 시렌은 슬쩍 눈을 돌려 팔을 보았다.

자상은 방금 찔린 어깻죽지에 생겨 있었다.

원래부터 욱신거렸기에 얇게 그인 자상을 보자 별로 심한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봐주는 건 없어, 하벨."

"네 뒤에… 대체 누가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게 그렇게 슬펐어?"

시렌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이번에는 마법 방패를 자신의 몸에 덧씌웠다.

하벨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말해봤자 지금 너라면 이해 못 할걸."

시렌은 스스로 그녀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실토했다.

설령 시렌 뒤에 누가 있어도 이를 자세히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하벨은 시렌 뒤에 누군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페트리오의 힘으로도 읽을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어차피… 큭, 이해 같은 건 안 하니까 그냥 말해."

"그래? 그렇다면 알려줄게. 그분은 말이야, 이 세상에 모든 걸 이뤄주실 분이자 내 모든 바람을 들어주실 분이지."

천천히 시렌의 눈동자에 어떤 열망과 욕망이 어렸다.

"그래서 오미너스를 만들었나?"

하벨은 남은 정령수를 통해 자신의 목을 조르는 흙을 천천히 조종해 힘을 빼게 했다.

자연을 다루는 힘 앞에서 마나 역시 정령의 힘을 이길 수 없었으니.

"뭐야."

시렌은 눈을 크게 떴다.

"너, 알고 있었어?"

하벨은 대답보다 자신의 목을 조르던 흙을 움직여 시렌을 향해 휘둘렀다.

쿠웅!

시렌이 몸에 두른 마법 방패 덕에 그녀는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밀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다시피 붕 뜨다 땅에 몇 바퀴나 굴렀다.

서걱.

하벨은 그 모습을 감상하며 바람의 힘을 끌어와 톱처럼 날을 세워 사슬을 향해 휘둘렀다.

스겅.

"…손목 아파 죽는 줄 알았네."

두 사슬이 잘리자 하벨은 손목을 감싸며 칼리우스와 헤레스를 보았다.

스르르.

모래가 무너져내리고 아라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곧 하벨의 시선에 아라는 방긋 웃었다.

[대장, 나 힘냈다?]

"잘했어, 아라야."

"고마워, 아라야! 아차."

칼리우스는 카샬을 짓누른 마법을 하나씩 해체했다.

"…후."

카샬은 그제야 흐트러진 앞머리에 바람을 불며 걸어 나왔다.

"으, 으윽."

시렌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다 하벨에게 모인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분명히 다 붙잡아두질 않았던가.

왜 이렇게 한순간에 상황이 갑자기 뒤바뀐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벨 티에라 너는, 너는……."

시렌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단연 하벨 티에라였다.

왜 멀쩡히 일어나 있는지.

분명히 헤일리스가 말하길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아."

하벨은 그제야 안대를 벗어 던졌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생각보다 멀쩡해서 말이야."

하벨이 웃자 시렌의 눈이 커졌다.

"너."

시렌은 밀려오는 분노에 자신의 가슴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너어!"

순간, 지나온 생각들이 스르르 밀려왔다.

째앵!

그때, 마법 방패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발력에 시렌은 다시금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저 씩 웃는 레디나의 미소를 보았다.

"너, 하벨 티에라!"

내지르는 소리만큼이나 깊게 숨을 멈추자 모래가 꿈틀거리며 시렌을 감쌌다.

그녀는 추가 마법을 발동시켰다.

방에 가득한 마나가 하나의 실처럼 얼기설기 엮인 모습이 자신의 눈에 보였다.

떨림이 느껴졌다.

시렌은 뒤로 물러나 단검의 끝부터 밀고 들어오는 레디나를 쳐다보았다.

펼쳐 놓은 모래로 단숨에 레디나를 잡았다.

아니, 잡았다고 생각했다.

밀려오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레디나는 시렌을 비웃듯 단검 끝에 걸린 바람을 회전시켜 모래를 털어버렸다.

"나 잡아볼래? 네가 술래야."

그리고 약을 올리며 다시 안개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쿠웅.

분명 암살자한테서 밀려온 바람이라 생각하던 그때, 마나의 실이 또다시 떨렸다.

검이 날아왔다.

동시에 집사로 보이던 자가 달려왔다. 그의 주변에 검이 맴돌았다.

뭔가 심상치 않기에 시렌은 모래로 자신을 단단히 가두었다.

팅!

검이 튕기는 소리가 들리던 차 모래가 무너져내렸다.

"……?"

시렌은 당황했다.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모래가 말을 듣지 않았으니.

"내가 누구인지 잊었어?"

헤레스의 목소리와 함께 모래가 양쪽으로 쪼개졌다.

"설마 아까 그 힘이 진짜 내 힘이라고 믿는 거야?"

쩌억.

"나는 그때 그 순간에서 멈춰 있지 않았다고. 하지만 너는 아니네."

완전히 갈라진 모래의 틈을 비집고 헤레스가 꺼낸 비웃음이 들려오던 차, 날카로운 칼 하나가 스며들었다.

시렌은 피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모래를 가지고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두두둑.

손가락은 너무도 쉽게 베어졌다.

카샬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 아아악!"

손가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온몸을 금방이라도 태워버릴 그 힘에 시렌은 마구잡이로 모래를 뿌려 나갔다.

카샬이 뒤로 물러섰다.

그의 뺨을 스치고 들어오는 바람이 있었다.

'…진짜, 도련님은.'

돌아가면 딱밤 백 대는 치고 싶을 정도였다.

바람이 불었다.

불길한 바람이.

시렌이 고개를 올리자 그곳에 하벨 티에라가 보였다.

주먹을 감싼 건 분명 돌멩이가 가득한 흙이었다.

왜 여기에 네가 있냐는 시렌의 물음에 하벨은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그래, 나야."

하벨은 주먹을 뒤로 젖혔다.

새롭게 얻은 땅의 힘.

시렌이 사용하던 모래까지 하벨의 주먹에 몰렸다.

자연의 힘인 정령의 힘을 우위에 뒀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하벨은 흙과 돌멩이 그리고 모래까지 뒤덮어 거대해진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레디나가 마법 방패를 깨트렸기에 시렌을 보호해줄 건 없었다.

시렌은 머리부터 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하벨은 멈추질 않았다.

바람으로 한 번 더 가속해서는 시렌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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