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17화 (217/415)

217화. 나야

* * *

피가 튀었고, 헤일리스는 비명을 터트렸다.

"…으윽!"

이를 악물며 모래를 이용해 카샬을 후려쳤다.

카샬은 다급히 모래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검을 들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도 거리였고, 넓게 퍼져오는 모래 속 매개체들을 모두 베어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공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몸을 틀어 치명상은 피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려졌다.

헤일리스는 재차 숨을 참았다.

4개의 꼬리처럼 늘어난 모래가 카샬을 찌르기 위해 동시에 움직였다.

하지만 모래는 무언가에 붙잡힌 것처럼 허공에 멈췄다.

헤일리스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그제야 한 명이 어느새 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와아. 잡았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해맑은 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닿는 차가운 감각에 헤일리스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설마 암살자… 일 줄이야.'

헤일리스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을 이어갔다.

"누가 더 빠른지 해보자고?"

레디나의 시선이 시렌을 향했다.

시렌이 마법을 사용하는지 레디나 자신의 등이 따끔따끔하지 않은가.

"난 자신 있는데."

즐거움이 가득 담긴 레디나의 입꼬리가 높이 올라갔다.

"도련님. 죽여도 되나요?"

마법사 협회에 오기 전에 헤일리스를 죽여도 되냐는 물음에 하벨은 상황을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니."

하벨이 대답하자 레디나는 다른 손으로 단검을 꺼내 헤일리스의 허벅지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으, 으악!"

이어 레디나가 단검을 비틀자 헤일리스의 비명이 커졌다.

스르르 움직이던 모래가 단숨에 하벨을 덮쳤다.

"미쳤어? 네 협회장이 죽는다고."

레디나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시렌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할 뿐이었다.

"죽여봐. 이제 필요 없으니까."

"뭐?"

헤일리스가 당황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죽여도 된다고."

시렌의 비웃음과 별개로 칼리우스가 이미 마법을 느끼며 움찔거렸다.

―그럼 언제 마법을 쓰면 좋겠냐고?

헤레스가 알려준 정보, 마법사 협회 내에 흐르는 마나는 하나라 통째로 없애지 못한다면 소용없으며 헤일리스, 아니, 시렌을 제압해도 그녀가 여전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어질거려 하벨에게 물었다.

자신이 가진 마나로는 마법사 협회 내에 흐르는 마나를 통째로 없앨 수는 없었다.

하벨을 만나러 시간을 건드린 후유증으로 마나를 대부분 소진해버렸으니.

―최소한 한 번은 참아 봐, 그런데 두 번은 참지 않아도 돼. 그건 답답하잖아?

칼리우스는 손을 뻗었다.

콰앙!

칼리우스가 만든 마법 방어막에 모래가 부딪혔다.

―그 한번은 말이야.

헤레스가 모래를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금 헤일리스에게 돌려주었다.

그물처럼 한순간에 퍼져 화살처럼 시렌에게 쏟아졌지만, 그녀의 손짓에 스르르 모래알갱이처럼 녹아버렸다.

"방해하지 마렴, 헤레스."

시렌이 웃고 있었다.

그때 하벨처럼 지금도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착하지? 거기까지 해야지."

시렌이 말했다.

[으으으. 온다, 온다.]

아라가 꼬리를 꽉 잡고는 하벨의 휠체어를 향해 뱀처럼 스르르 혀를 놀리는 모래를 보았다.

칼리우스는 이미 참고 있었다.

―헤일리스가 날 세뇌하려 어떻게든 노릴 거야. 나는 붙잡힐 생각이고. 확인할 게 있거든. …다들 미안해.

이게 한 번이었다.

"푸흡."

시렌이 웃자 그제야 헤레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모래가 하벨을 삼켜버렸으니.

"도련님!"

"얌전히 있어. 이 아이도 마찬가지로 얌전히만 있으면 괜찮을 거니까."

시렌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이 하나 발동됐다.

헤레스와 칼리우스가 있는 공간에 불이 나타나 그들을 감쌌다.

탁.

한 겹.

탁.

두 겹.

탁!

세 겹까지 이어지는 불꽃에 시렌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너한테도 좀 벅찰 거야, 헤레스. 잠깐 시간 벌이 정도는 되겠지."

시렌은 왼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손가락을 튕겼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이 카샬에게 불어오다 못해 강하게 압박했다.

카샬이 바닥에 검을 박으려 했으나, 바닥마저 마법 방패로 치장되어 있기에 헛손질하며 단숨에 벽에 끝까지 몰렸다.

거센 바람에 눈조차 뜨기 어려웠고 앞에 벽처럼 서 있던 검들마저 덩달아 흔들렸다.

[이 정도 바람은 완전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내가 멈출 수 있어, 카샬.]

바람을 보며 으르렁거리던 아코가 카샬을 올려다봤다.

"어디 그 잘난 검으로 바람을 벨 수 있으면 베어봐. 그게 쉽지 않을 테니까."

시렌은 낄낄 웃자 카샬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이 미친 게.

카샬은 목소리를 낮췄다.

"좋아. 멈춰봐, 아코."

하벨이 붙잡힐 거라 미리 말했다.

웃기고 있네.

카샬은 처음부터 그딴 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

시렌은 천천히 숨을 쉬며 자신의 앞에 놓인 모래를 바라보았다.

모래알갱이가 천천히 바닥에 떨어지고, 하벨 티에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표정도 아니었으며 놀란 표정도 아닌, 정답을 알아챈 아이처럼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너였구나?"

하벨은 기쁨에 찬 목소리를 냈다.

헤일리스에게 시선이 집중될 때 하벨은 카샬 뒤에서 시렌을 바라보았다.

헤일리스가 마법을 사용했을 때, 시렌은 다른 사람 눈을 속이며 이곳 방에 있던 마법을 하나씩 사용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자신은 한 가지 사실을 가정해봤다.

왕실에서 봤던 랜턴의 검은 빛.

―음. 애초에 시렌은 진짜 시녀가 아니에요. 헤일리스를 모시는 마법사들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럼 시렌이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일 뿐인데, 왜 계속 붙어 있는 거죠?

헤레스가 건넨 말.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가 방으로 들어오기까지 헤일리스와 시렌의 거리.

그리고 시렌이 자신에게 했던 말까지.

이 모든 것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진짜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은 시렌이라는 사실을.'

하벨은 짓는 미소가 길어졌다.

"설마하니 네가 진짜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이라니."

하벨의 발언에 헤일리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야?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개소리냐니. 네가 꼭두각시라잖아, 바보야."

레디나는 키득거렸다.

"그럼 이제 죽여도 돼요, 도련님?"

"아니."

"칫."

레디나는 실망하며 금방이라도 날뛰려는 헤일리스를 기절시키고 대충 던져버렸다.

"놀랍지?"

시렌이 웃었고, 하벨도 웃었다.

"그래. 꼭두각시놀이는 재미있었어?"

"그럼. 엄청 즐거웠지. 특히 헤일리스는 꼭두각시 중에서도 제일 뛰어났어. 생각해보니 그냥 저렇게 버리기에는 좀 아깝네?"

시렌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헤일리스를 보며 비웃었다.

"시렌. 지금 네가 얼마나 역겨운지 알고는 있어?"

"그럼. 아가야, 너는 모르겠지만, 마법사 협회장이라는 위치는 말이야, 생각보다 위험한 자리야. 특히 에르티안 왕국에 있는 마법사 협회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

시렌은 하벨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를 따라 모래가 움직였고, 하벨은 비아냥거렸다.

"왕실이 무너졌으니까. 그 더러운 토사물을 먹고 컸겠지."

"아니. 그건 더러운 토사물이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어. 다 쓰러져가는 왕국이야말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잖아?"

시렌은 하벨의 말에 비웃듯 콧노래를 불렀다.

방에 도배된 마법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왕실의 힘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이미 늦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정파 귀족들이 무너지고, 강했던 왕실의 권력마저 이전 세력들에게 잡아먹혔으니까요.

에르티안 왕국은 왕권이 강했던 나라였음에도 한순간 귀족들에게 나라를 빼앗겨버렸다고 바안이 말해주었다.

"그 상태가 정말 좋았는데. 갑자기 왕권이 이렇게 빨리 회복이 될 줄이야. 마치 뒤에서 누군가 돕는 것 같았단 말이지."

시렌은 히쭉 웃으며 하벨에게 다가갔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아주 작고 작은 생물을 바라보듯 가소로움과 오만함이 눈에 담겨 있었다.

―피의 연회에 휘말렸던 귀족들에게 거액의 돈이 입금됐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요.

'귀족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누군가 쥐여줬던 돈이 가장 컸다.'

하벨은 바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시렌을 향해 물었다.

"에르티안 왕국을 무너트린 게 너였어?"

"아니."

하지만 시렌은 사실을 부정했다.

"네가 방금 내 말에 뭘 상상했는지 알겠지만, 나는 에르티안 왕국을 무너트리지 않았어. 음, 아주 살짝 도움을 주긴 했네. 하지만 그걸로 무너진다면야 왕국이 아니라 마을이겠지?"

"그럼 이렇게 된 거 그냥 말해 봐. 누가 에르티안 왕국을 무너트리려고 한 건데?"

하벨은 태연하게 물었다.

가장 큰 용의자인 코스모피안 왕국일까.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시렌이 하벨 앞에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너한테 마법사를 세뇌하는 힘이 있잖아?"

"아. 마지막으로 알려달라는 말이었어?"

"그래."

"이거 안타까워서 어떡해? 진짜 안타까워."

시렌은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하벨의 뺨을 만졌다.

"왜 안타까운데?"

"그게 말이야."

시렌은 상체를 숙여 하벨에게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지금도 다 듣고 있을지도 모르거든."

시렌은 뒤로 살짝 물러나 하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벨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여러 감정이 너무 재밌었다.

"내 심장이 지금 그자한테 붙잡혀 있어. 비록 헤일리스의 입을 통해 말하긴 했지만, 나는 말이야, 모든 마법사가 행복해졌으면 해. 이건 진심이야."

그 말에 하벨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시렌은 부드럽게 웃었다.

"무슨 방법을 쓰든, 어떤 희생을 하든 나는 이 세계의 지배 구조 위에 마법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역겹네."

"너도 곧 이해하게 될 거야. 그때, 진짜 우리가 되는 거니까.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 약속해."

하벨은 시렌의 목소리와 눈동자에서 묘한 감각을 느꼈다.

끈적한 어떤 힘이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만 같았다.

"나는 네가 필요해, 하벨."

시렌은 헤일리스에게도 했던 것처럼 하벨의 뺨을 다시 쓰다듬었다.

하지만 시렌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동시에 숨을 참았다.

'쥐새끼가……!'

모래가 카샬이 찌른 검을 붙잡았다.

대체 언제 빠져나온 걸까.

"쫄았냐, 병신아."

카샬은 검을 비틀며 빼어내서는 뒤로 물러섰다.

"네가 베어보라며?"

'…와, 카샬.'

하벨이 깜짝 놀라자 카샬은 보란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게 평소에 말씀 좀 들으셔야죠.'

카샬은 공격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시렌을 덮친 건 레디나였다.

챠르르르!

단검이 마법 방패에 깊은 자상을 남겼고, 레디나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푹!

마법 방패 쪽에 박히다시피 한 건 사슬이었다.

"…너, 이런 취향이었어?"

레디나는 살짝 기겁했다.

잠깐 하벨과 레디나의 시선이 마주했다.

'멀쩡하시네.'

그제야 레디나는 신이 났다.

하벨의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렸고, 잠깐이지만 웃는 걸 보았다.

레디나는 손에 쥔 단검을 꽉 쥐었다.

욱신욱신.

등의 상처가 쑤시자 단검을 휘둘렀다.

까앙!

사슬 하나를 튕겼지만, 뒤이어 오는 사슬에 단검이 휘감아질 때쯤, 레디나는 바람을 실었다.

사슬을 쪼개버리고 망설이지 않고 시렌을 향해 발을 놀렸다.

발소리가 없었다.

챙!

레디나의 뜀박질과 함께 부드러운 단검의 놀림에 사슬이 튕겨가거나 부서졌다.

쉬이이익.

시렌이 공격 범위 안에 들어서자 레디나의 행동이 뒤바뀌었다.

힘차게 단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에 시렌이 모래를 움직이자 레디나는 코웃음을 치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뒤를 노린 건 카샬이었다.

카샬의 손짓과 함께 그의 주변에 떠돌던 검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잔재주가 좋구나. 좋아"

시렌은 그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새로운 방어 마법이 여러 겹이나 발동되어 하벨과 자신을 감쌌다.

까앙!

뒤에서 나타난 레디나의 공격이 마법에 튕기자 시렌은 가볍게 웃었다.

"자, 이제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어, 하벨."

시렌은 다시 하벨을 향해 손을 뻗어 나갔다.

"넌 이제 내게 되는 거야."

또 이전과 같은 정신력을 갉아먹는 어떤 힘이 하벨 자신의 머릿속에 전해졌다.

'생각보다 시렌이 가진 세뇌라는 힘이 크긴 커.'

지금 귓가에 시렌이 꺼내는 말이 계속 반복해서 들릴 지경이었으니.

왜 마법사들이 저 힘에 저항하지 못하는지 하벨은 잠깐 이해했다.

'하지만 이건 나한테 소용없지만.'

세뇌는 자신에게 소용없었다.

몇천 번, 몇만 번을 시도해도 절대로 걸릴 수가 없었다.

세뇌의 힘은 존재의 본질인 영혼을 살짝 건드려 의식을 바꾸는 힘이었지만, 자신의 영혼은 일반 사람과 달리 격이 높았다.

자신보다 더 높은 격을 가진 영혼을 가진 자가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찰싹.

하벨은 시답잖은 시렌의 행동과 카샬이 뿌린 재에 자신도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손을 후려쳤다.

"내 볼에 뭐라도 발라놨어? 아까부터 왜 만지작거려? 재수 없게."

"어… 어떻게……."

시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네가 즐긴 것만큼 못하지만, 나도 좀 즐겁긴 했어."

하벨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정령수로 미리 손아귀에 만들어 놓은 물을 놓았다.

아래에서 위로 치솟은 물이 시렌의 턱을 쳤다.

"…윽!"

비명과 함께 시렌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네가 위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게 재밌더라."

하벨은 휠체어에 기대 턱을 살짝 괴며 정령수로 또 다른 물을 만들어냈다.

"잘 들어봐."

날을 세운 물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시렌에게 날렸다.

푸욱!

시렌이 마법을 발동하기 전, 헤일리스가 그랬듯이 시렌의 어깻죽지에 물이 관통했다.

"잘난 건 나야."

일부는 바닥에 꽂혀 물웅덩이가 되었지만, 하벨은 피가 튀는 걸 보며 씩 웃었다.

시렌은 어깻죽지를 붙잡으며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너어. 너어!"

"내가 누구인지 잊었어? 나도 공격할 줄 아는데. 난 또 왜 이렇게 가까이 오나 그랬네."

하벨은 시렌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며 그녀가 뒤늦게 자신을 보호하고자 만든 모래를 발판삼아 걷어차고는 휠체어를 뒤로 움직였다.

"네 꼭두각시가 당한 건 너도 당해야 공평하지."

하벨은 이제부터 시렌이 가진 모든 수를 이용하게 만들 셈이었다.

시렌을 자극해 그녀가 많은 것들을 토할수록 곧 마법사 협회를 쳐들어올 이들을 보호하는 길이 될 테니까.

탁.

시렌이 자신과 그녀를 감싼 마법 방패가 등에 닿았다.

스르르 일어난 모래가 시렌의 분노와 함께 쏟아졌다.

숨을 참는 동안 무어라 말을 하는지 몰라도 욕을 내뱉는 것 같았다.

"열 받았어?"

하지만 하벨은 웃으며 바닥에 만들어졌던 물웅덩이를 이용해 시렌의 발을 힘차게 당겼다.

휘청거리던 시렌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한 방울.

열 방울.

백 방울.

하벨은 자신의 주변에 물이 많아 보이도록 잘게 쪼개 하나씩 늘어트렸다.

"…그럴 리가 없어."

시렌은 부들거리며 자신의 모래를 이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끄러움보다는 의문이 넘실거렸다.

하벨이 물 마법사라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갓 마법사가 된 누구든 이렇게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를 수는 없었다.

"아. 왜 이렇게 잘났냐고? 아니면 매개체도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냐고?"

하벨의 물음에 시렌의 눈이 커졌다.

저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하벨은 매개체를 꺼내지도 않았다.

아니. 저건 속임수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매개는 휠체어가 아닐까.

시렌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일 때, 하벨은 활짝 웃으며 자신의 주변에 떠돌던 물방울을 통시에 튕겼다.

"그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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