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08화 (208/415)

208화. 스승님?

* * *

* * *

"…뭔가 느껴져, 용용아?"

하벨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린 칼리우스에게 물었다.

덩달아 아라의 시선도 따라갔다.

갑자기 진찰 중에 하벨이 칼리우스에게 혹시 자신의 몸 안에 어떤 마법이 있는 게 아니냐며 물어보았다.

그 말에 아라는 어젯밤에 하벨이 갑자기 움직였던 일을 떠올렸기에 조마조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신중히 눈동자를 굴리던 칼리우스가 순간, 놀라며 손을 뗐다.

"왜 그래?"

하벨이 묻자 칼리우스가 자기 자신의 손을 매만졌다.

"여기에… 뭔가 있어."

[뭐가 있다니?]

아라는 입을 오므리며 하벨의 가슴팍 위에 조심스레 앞발을 얹었다.

쿵쿵.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어… 여기에는 심장이 있어!]

순간, 하벨은 치솟는 웃음에 입가를 가렸다.

"나도 거기에 심장이 있는 건 알아."

칼리우스는 아라를 귀엽게 바라보았다.

"있잖아, 도련님. 내가 피부가 엄청 두꺼운데 지금 손끝이 따끔따끔할 정도야. 어, 손끝이 언제 따끔따끔하냐면 칼로 몇 번이나 찔린 후에 딱 그랬어."

"…네? 잠시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옆에서 말을 듣던 헤레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으응. 다시 말해줄게. 내 피부가 되게 두꺼워. 얼마나 두껍냐면 칼에 몇 번이나 찔려도 따끔따끔한 정도야."

"……."

헤레스는 잠깐 말을 잃었다.

겉보기에나 만졌을 때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아니, 애초에 칼리우스가 칼에 찔리거나 베여봤다는 말이 아닌가.

"칼리우스 님."

레디나가 갑자기 친절하게 칼리우스를 부르자 하벨은 그녀를 막아섰다.

"레디나. 몸이 근질거리면 카샬하고 검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때?"

"카샬은 지금 좀 이상한데요? 아니, 어젯밤부터요."

레디나의 시선이 옆에 서 있는 카샬에게 향했다.

계속 넋을 잃고 있었다.

"어젯밤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엄청 큰, 음, 출생의 비밀을 들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레디나가 넌지시 묻자 카샬은 그제야 움찔거리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제… 큰일이 있었잖아."

"큰일이야 있었긴 한데. …으음."

장로를 쫓아가다 마법사 협회가 정령사를 만들겠다고 실험한 장소를 알아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레디나는 카샬이 다른 걸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

"어쨌든, 용용아. 여기에 뭔가 있다는 말이지?"

하벨이 묻자 칼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음, 뭐가 있는 맞는데 이게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도련님. 그런데 갑자기 그 질문은 왜 하신 겁니까?"

헤레스는 당장 묻고 싶은 말을 삼키며 겉껍질만 대충 덮은 채로 물었다.

어제 카샬이 하벨을 망토에 가린 채 업어오지 않았던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에 기겁하는 줄 알았다.

다급히 진찰했을 때, 무언가 장기들을 흔들어놓은 듯한 충격을 받은 걸 확인했다.

당장 수혈했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카샬에게 물었지만, 그는 넋을 잃은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지금 하벨이 깨어났다는 사실에 다시 진찰했고, 여전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어제의 충격이 아직도 남았다는 결과만 확인하지 않았던가.

"뭔가가 느껴져서. 이상한 게 말이야."

하벨 역시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자신도 이게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상… 한 거?]

아라가 걱정을 담아 묻자 하벨은 아라를 쓰다듬었다.

머리가 살짝 눌려 아라는 눈조차 뜨지 못했다.

'이게 어떤 거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정확한 건 놈의 힘이 내게 깃들었다는 사실이겠지.'

아직 놈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불길함이 정신을 차리면서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꿈속에 보았던 그 달콤한 순간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또다시 흔들렸을지도 몰랐다.

'계속 여러 의문이 맴도는데도 정확한 건 없으니 답답하구나.'

자신이 있던 세계는 어떻게 된 것이며 왜 하벨 티에라의 몸으로도 놈이 자신에게 했던 무언가가 발동되는 건지.

'아니. 원래는 없었지만, 내 영혼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닐까.'

하벨은 밀려오는 생각에 주먹을 잠깐 꽉 쥐었다.

자신이 어제 그 일을 겪기 전과 비교해 달라진 거라면, 물의 목소리를 어렴풋이라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권능이 회복되었고, 순환의 길에 다섯 번째 막이 생겨 불순물이 이전보다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다는 것뿐이었다.

"미안해. 나도 이걸 설명하고 싶은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

하벨은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아니에요, 도련님. 억지로 생각하려 하지 마세요."

"이만 자러 가, 헤레스. 나보다 네가 먼저 쓰러지겠어."

하벨이 보아도 헤레스의 상태가 위태위태해 보였다.

자신은 이제 괜찮았다.

피를 많이 쏟아 어지러워서 그렇지 자신의 물로 응급조치를 한 뒤로는 아픔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요, 언니. 이제 언니가 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레디나는 일단 불길을 잡은 하벨보다 지금 타오르는 헤레스가 걱정스러웠다.

"제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그만 자러 가십시오."

카샬이 입을 열며 헤레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 이 몸도…….]

"아라야."

[응?]

"칼리우스와 함께 가줄 때가 있어. 괜찮겠지?"

[이 몸이 대장의 심부름을 하는 거야?]

아라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래. 크라마한테 다녀와 줘."

하벨은 새벽에 크라마한테 급한 연락을 받았다.

장로를 추가로 붙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칼리우스에게 지배된 장로의 정보 덕이었다.

[아! 장로가 잡혔으니까, 용용이가 장로를 지배하러 가는 거야?]

"그래, 아라야. 똑똑하네. 이제 하나씩 쌓아가는 거지."

마법사 협회의 지배자는 헤일리스였다.

하지만 각지에 흩어져 명령을 수행하는 이는 장로였다.

그들을 지배한다면 마법사 협회의 허리를 반쯤 잘라버리는 게 아닌가.

이어 하벨은 레디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달에 갔다 와줘."

"검은 달에요? 왜요?"

"레디나 네가 검은 달에 부여받은 임무는 원래 날 죽이는 거였잖아."

"그리고 그 임무를 다른 놈이 가지지 못하게 막는 게 제 역할이죠."

"이제 슬슬 지겹지 않아?"

"음, 솔직히 말하면 짜릿해요. 뭣도 모를 검은 달 일원이 저한테 찾아오면 한 명씩 죽이는 게 즐거웠거든요."

레디나가 히쭉 웃었다.

아직도 이 임무를 차지하고자 하벨 주변에 알짱거리는 놈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발견하고, 죽이고, 까마귀밥이든, 들짐승 밥이든 모르는 숲에 뿌려버렸다.

'페트리오가 있었을 땐 정말 좋았는데.'

운 좋게 페트리오가 보고를 위해 하벨에게 오는 날이면 시체 처리를 부탁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적어도 자신은 페트리오만큼 시체 처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그럼, 아쉽게 됐네."

"왜요?"

레디나는 여전히 하벨이 꺼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웠다.

"이제 넌 간부가 되어야 하잖아?"

하벨은 씩 웃었다.

레디나는 이제 검은 달의 수장에게 한 발 더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레디나의 눈이 커졌다.

"자, 이제 움직일 이유가 생겼지?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움직임을 알아봐 줬으면 해."

"물론이죠! 당장 갈게요!"

레디나의 미소가 길어졌다.

하벨은 각자에게 움직여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이건 모두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으며 자신에게 얽매이게 하지 않을 방법이자 동시에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닌, 각자가 세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민다면 분명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벨은 움직일 그들을 향해 먼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도 움직이지 않자 하벨은 상체를 일으켰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다 움직여야겠네."

[아, 아니야! 이 몸은 이제 움직이려고 했어!]

아라가 허둥지둥거렸고, 헤레스는 눈썹을 안쪽에 모은 채로 말했다.

"저는 나중에 자도 됩니다, 도련님."

"에멜, 아니 장로 프덴스를 잡았어, 헤레스."

"……."

헤레스가 입을 다물었다.

곧 그녀의 눈에 분노가 깃들다 못해 갑자기 일어난 마나에 칼리우스가 깜짝 놀랐다.

"헤, 헤레스!"

헤레스가 다칠까 칼리우스는 마나를 억누르지도 못해 큰 목소리로 힘차게 그녀를 불렀음에도 헤레스의 분노는 꺼지지 않았다.

"헤레스."

하지만 하벨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헤레스는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마치 자신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

하벨과 시선이 맞자 헤레스는 그제야 자신의 정신을 잡고는 다급히 마나를 억눌렀다.

"죄, 죄송……."

"마법사 협회가 무너지는 그때 너도 있어야지."

"제가… 요?"

"그래. 네가 가장 보고 싶었던 모습이 아니야?"

하벨이 묻자 헤레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덩달아 코끝에 걸린 안경테가 흔들렸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정말 많이요. 언제나 제가 바라왔던 풍경인걸요."

자신의 죄로 시작된 그 풍경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너무도 간절히.

"그러니까, 오늘은 쉬어."

하벨의 목소리는 조금 전처럼 헤레스 자신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

"…제가 죽이게 해주세요, 도련님."

헤레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그놈을 죽이게 해주세요. 아니, 반드시 제가 죽여야 해요."

"그래. 에멜은 네 거야, 헤레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

"감사합니다, 도련님."

헤레스는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애써 웃고 있었다.

하벨이 설마하니 장로 프덴스, 아니 에멜을 잡아 올 줄이야.

"자자, 이제 다들 출발해야지?"

하벨은 다시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진짜… 오늘은 움직이지 않으실 거죠?"

레디나가 발을 떼려다 말고 망설였다.

"절대로 제 신이신 도련님을 의심하는 게 아니고요. 그냥 물어만 본 거예요. 아시죠?"

"그걸 사회에서는 의심이라고 하지."

하벨이 꺼낸 말에 레디나는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볼 테니까."

카샬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벨에게 물어야 할 게 있었다.

"그래. 오늘은 진짜 얌전히 있을게. 다들 오늘만큼은 걱정을 내려놔도 돼. 음, 내 물을 걸고 약속해."

하벨이 물을 만들어 새끼손가락을 올리는 흉내를 내자 아라가 달려와 물을 먹어버렸다.

[물을 만들면 안 돼! 이건 얌전히 있는 게 아니… 하,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어!]

도중에 화를 내다 말고 점점 아라의 눈동자가 풀리더니 이내 꼬리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광대가 높이 올라가고 볼때기가 쫀득한 떡처럼 늘어났다.

[헤헤헤.]

아라의 웃음소리가 늘어난 볼때기만큼 번져갔다.

"또 먹을래, 아라야?"

[응응!]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다 잠깐 머뭇거렸다.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아라의 시선이 빙글빙글 움직이는 물을 따라가더니 고개를 다급히 끄덕였다.

"아, 해야지."

[아.]

아라가 입을 벌리고, 하벨은 물을 움직여 입에 넣어주었다.

"이거 먹고 힘내서 갔다 와."

[응응! 이 몸은 대장이 말한 거 다 해줄 수 있어! 이 몸은 이제 혼자도 잘해!]

"그럼 저는 언니를 데려다주고 움직일게요. 가다가 쓰러질 것 같잖아요."

레디나는 헤레스와 팔짱을 끼며 하벨에게 손을 흔들었다.

"잠깐만, 레디나. 나는 아직 간다고 말한 적 없어."

헤레스가 당황해하며 레디나를 쳐다보았지만, 하벨이 흔드는 손을 출발신호 삼아 레디나는 헤레스를 끌며 출발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용용아.]

아라가 아직도 용왕의 힘으로 만든 물을 우물우물하며 앞발을 흔들어 물을 만들어냈다.

"도련님."

칼리우스가 하벨을 불렀다.

"왜?"

"내가 어, 잠깐 막아둘까?"

"막을 수 있어?"

"응. 그런데 내 피가 필요해서 헤레스가 있을 때는 말을 하지 못했어. 헤레스가 나를 혼낼 것 같았는데. 어음, 도련님도 나, 혼낼 거야?"

"피가 얼마나 필요한데?"

"조금만 있어도 돼. 한 세 방울?"

"아프지 않겠어?"

"그 정도는 안 아파. 도련님이 지금 더 아파 보이는데? 멀쩡한 곳이 내 눈에는 하나도 안 보여."

"지금 양쪽 눈이랑 얼굴은 멀쩡한데? 안 보여?"

하벨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자 카샬이 바로 비아냥거렸다.

"자랑이십니다."

진짜 그걸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건지.

"자랑은 맞는데.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 한쪽 눈으로는 방향이 잘 안 잡혔거든."

"칼리우스. 얼른 진행해. 도련님께서 아무래도 열이 오르는 것 같으니까."

카샬은 저 말에 기가 차 하면서 칼리우스를 재촉했다.

"알았어."

칼리우스가 대답과 함께 손가락을 입에 가져대자 아라가 기겁했다.

[어어엇! 깨무는 거야? 아플 텐데.]

"나한테는 이런 건 하나도 안 아파, 아라야. 진짜 아픈 건 도련님인데?"

콰직.

칼리우스는 손가락을 깨물어 하벨의 가슴팍에 떨어트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피와 피가 쌓일 때마다 하벨의 옷가지에 묻어난 피가 옅어졌다.

[어어?]

아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분명 피는 옷에 묻어야 정상인데.

"그 무엇도 이 피를 뚫을 수 없으리."

칼리우스가 꺼내는 말이 곧 마법이 되어 하벨에게 스며들었다.

하벨이 옷가지를 들치자 붕대가 보였고, 피가 떨어진 그 자리에 마름모 모양의 엷은 빛이 떠 있었다.

"내 피라서 이건 마법사들도 모를 거야. 이 피가 도련님 속에 있는 그 못된 게 나오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 막아줄 거야."

칼리우스는 만들어진 마법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 나는 이제 준비됐어, 아라야."

"잠깐만 손 좀 내밀어봐, 용용아."

하벨의 말에 칼리우스는 아무런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하벨이 상체를 일으켰고, 바로 옆 서랍을 열어 약과 밴드를 꺼냈다.

칼리우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건 하나도 안 아픈데?"

"아니. 상처가 난 부분이 안 아플 리가 없지. 그냥 참을 수 있는지, 아닌지 그 차이일 뿐이야."

하벨이 칼리우스의 손가락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칼리우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왠지 모를 아픔이 밀려와 조심스레 물었다.

"도련님은… 왜 나한테 친절한 거야?"

단지 동족이라기에는 이상했다.

사람들도 같은 동족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기에 칼리우스는 밀려오던 의문을 더는 참지 못했다.

"네가 칼리우스니까."

"응?"

"네가 용용이니까."

"그러니까, 어, 내가… 나라서 친절한 거라고?"

"그래."

하벨이 시선을 돌려 칼리우스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싶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