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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00화 (200/415)

200화. 이 몸은(2)

* * *

하벨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저 말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저토록 단호하면서도 올곧은 눈을.

"괜찮겠어?"

하벨이 걱정을 담아 조심스레 다시 손을 뻗자 정령들을 그 손바닥에 자신의 앞발을 맞닿았다.

[그럼. 우린 말이야.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대응할 수 없는 사실이 더 무서워.]

[티에라 가문을 믿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참 무서워. 하지만 하벨 너는 믿을래. 그러니까, 우린 괜찮아.]

정령들은 하벨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헛구역질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을 봤기에 하벨은 자신들을 말리고 있었다.

그런 하벨의 다정한 마음씨를 고스란히 느꼈다.

사랑스러운 아이.

저 아이의 눈이 바뀌어도 자신들은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자. 이제 말해줘, 하벨.]

하벨은 저들의 눈동자에 밀려오는 고마움과 애정 어린 시선에 안쓰러움을 느끼며 입술을 잠깐 크게 다물었다.

"…하아."

입을 열자 튀어나온 건 긴 한숨이었다.

막막했다.

정말 싫은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저기에."

저 어여쁜 눈망울에 어떤 절망이 깃들지 생각하니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하벨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너희가."

목이 막혀왔다.

너무도 답답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분명 마법사들은 정령들을 보지 못할 텐데.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서로 모르는 척 지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텐데.

"갈… 려 있었어."

하벨이 조심스레 눈동자를 돌려보자 아라의 눈망울에 파도가 치고 있었다.

[갈려… 있었어? 정령들이?]

차마 대답하지 못한 하벨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조금씩 입가를 떨었다.

[…그렇구나.]

한 정령이 숨을 섞으며 말했다.

슬픔에 찬 그 목소리에도 정령은 하벨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하벨. 우릴 위해서 화를 내어주었구나.]

그제야 하벨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앞에 벌어진 일과 달리 기쁜 일이었다.

자신들을 볼 수 있는 정령사들은 몇 없지만,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정령사는 그것보다 더 없었으니.

그래서 고마웠다.

찌르르.

이 와중에도 교감이 느껴졌기에 하벨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많이… 아팠겠다.]

정령의 시선이 저 앞을 향했다.

그 시선이 천천히 잠겨갔다.

정령들이 죽었음에도 그 누구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만큼 괴로웠구나.]

[이 몸은… 이 몸은 화가 나.]

아라가 눈물을 참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정령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했어. 예쁜 꽃이 되기도 하구, 아주아주 큰 나무가 되기도 하구, 시원한 바람이 되기도 하구…….]

정령들이 알려준 말을 꺼내던 아라는 말을 멈췄다.

참았지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되지 못했어. 이 몸은 그래서 화가 나. 너무, 너무.]

"…그래, 아라야."

하벨은 손을 뻗어 아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 몸을 부른 게 저 정령들이었어. 이 몸한테 도와달라고 부른 건데 이 몸은 알아듣질 못했어.]

"저들이 너를… 불렀다고?"

[응. 이 몸을 계속 부르고 있었어.]

아라가 훌쩍였다.

자신을 부르던 그 목소리가 정령들일 줄이야.

[…그게 들린다고?]

아라 근처에 있던 정령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응응. 여기에 오니까 더 잘 들려와.]

아라가 조금 더 다가가자 '딸깍'하고 서랍이 흔들렸다.

[……?]

정령들은 그 모습에 입을 살며시 벌렸고, 하벨은 움찔거렸다.

'방금… 목소리가 들렸는데.'

정확하진 않아도 '괴롭다'라는 뉘앙스의 말이 들려왔다.

[방금 뭔가 들렸지?]

[그럴 리가…….]

그 목소리를 다른 정령들도 들었는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니, 나는 왜 저 말이 들린 거야?'

하벨은 의문을 가졌고, 아라는 정령들이 숙덕거리는 와중에 하벨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대장도 들렸어?]

그 말에 갑자기 시선이 쏠려왔지만, 하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들렸다고? 넌 인간인데?]

정령들이 기겁하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아. 난 인간이 아니지.'

그제야 하벨은 왜 자신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를 이해하자 괜히 우스웠다.

자신은 용왕이었으니.

아라가 하벨을 보며 잠깐 미소를 내보였다.

[이 몸은 있지. 무얼 할 수 있는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이 몸이 가야 하는 건 분명해.]

아라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꼼지락거렸다.

[그러니까 대장. 이 몸이 갈 수 있게 허락해줘.]

"나도 부탁할게, 도련님. 아라가 용감한 건 도련님도 알고 있잖아?"

칼리우스가 하벨에게 진지하게 부탁하자 아라는 배시시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위험한 거 아니야, 대장. 정말로. 하지만 이 몸이 가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이게 어떤 느낌인지 하벨에게 말하지 못해 아라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아라야."

뭘 더 망설이겠는가.

하벨은 아라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같이 가자."

[응응!]

아라가 하벨의 손가락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괜찮겠어요?"

상황을 지켜보던 레디나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요컨대 저기 앞에 정령들이 있고, 아라가 하벨 옆에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괜찮아, 레디나. 이 몸은 할 수 있어! 이 몸은 지금 가슴에 용기로 가득해!]

하벨 역시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라가 가슴을 내밀며 말하자 잠깐 웃었다.

"아라가 괜찮대."

"아라 님. 무서우면 언제든지 뒤로 가도 괜찮아요. 그건 도망이 아니니까요."

레디나는 숨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아라를 만졌다.

자신의 손가락을 쓰다듬는 아라의 촉감에 그제야 레디나는 안도하며 옆으로 빠졌다.

"저는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카샬은 허리를 숙인 뒤 에멜을 데리고 하벨 뒤로 빠져주었다.

"아라야."

하벨은 서랍을 잡다 말고 아라를 불렀다.

[응, 대장.]

"모두가 이렇게 잔인하지 않아. 오히려 대부분 사람은 그 잔인함에 맞서서 싸웠어. 그러니까 아라야, 놓아버리면 안 돼."

[뭘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거야?]

"타인을 향한 믿음. 그 믿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으면 안 돼."

하벨 자신도 대신들에게 모든 걸 빼앗겼지만, 그 믿음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하벨 티에라의 몸에 들어왔음에도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어느덧 사람과 정령들에게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겠는가.

[응! 이 몸은 절대로 놓지 않을게.]

하벨은 아라를 바라보며 서랍을 아주 천천히 열었다.

'…미안해, 아라야.'

꼬리를 껴안고 있던 아라가 그 속을 보더니 다시 샘솟는 눈물을 참으려고 아랫입술을 올리며 무던히도 애를 썼다.

[…대장.]

하지만 아라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이 몸도… 이제 죽음이 뭔지 알아.]

막을 수 없는 아라의 눈물이 다시금 바닥을 적셨다.

[사람이든 정령이든 다 죽는대. 그건 아주아주 슬픈 거래. 그런데… 대장.]

"그래, 아라야."

덩달아 하벨의 목소리마저 먹먹해졌다.

[이런 죽음은… 너무 잔인하잖아?]

아라가 꼬리를 내리고 하벨의 손을 놓으며 링거 액체가 담긴 곳으로 다가갔다.

[너무해.]

앞발을 뻗어 액체가 담긴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괴로워.

도와줘.

도와… 줘.

저들이 내는 소리가 더욱 커졌기에 아라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해.]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이 몸은, 이 몸은 아무도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아무도…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라는 울먹이며 저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이 무얼 해야 할까.

이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 왜 자신을 부른 걸까.

가슴 속에 원망이 꿈틀거렸다.

모든 게 미웠고,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라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짙은 절망감에 고개를 돌려 하벨을 바라보았다.

웅웅.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야.'

아라는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알아챘다.

'물이 죽은 정령들의 말을 전해주고 있어.'

허공에 있는 물들이 웅얼거리더니 아라 자신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아라의 눈빛이 물처럼 일렁거렸다.

[어……?]

아라는 잠깐이지만, 아주, 아주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책 속에 보았던 옛날 바다를 담아낸 듯 여러 색이 담긴 눈동자를 한 누군가를.

그 아름다움에 저절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아라가 손을 뻗자 그 모습이 사라지고, 그곳에 하벨이 있었다.

[으응?]

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짝 실망하는 물의 감정이 느껴지던 차, 물이 또 다른 걸 보여주었다.

웅웅.

죽은 정령들이 있는 그 서랍과 하늘로 향하는 길이 갑자기 이어졌다.

[아! 길이 끊어져 있었어!]

아라가 그제야 훌쩍이며 왜 정령들이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는지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떡해? 너희가 없어지면 아이들이… 위험할 텐데.]

웅웅.

물이 대답하자 아라는 다시금 울먹였다.

[아이들도 이걸 바란다고? 이걸?]

"…아라야? 너 누구하고 대화하는 거야?"

하벨은 기다리다 기어코 말문을 열었다.

아라가 자신은 볼 수 없는 무언가와 말을 섞고 있지 않던가.

[물이 이 몸한테 알려줬어. 정령들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끊어져서라구.]

"물이?"

하벨은 새삼 그 말이 낯설었다.

누구보다 물과 가장 가까웠던 자신이 지금은 용왕의 힘을 끌어와도 그 말조차 제대로 들을 수가 없으니.

[이 길을 연결하면 아이들이 사라지는데, 아이들은… 그걸 바라고 있대. 그런데 이 몸은 그 결정이 너무 어렵고, 길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모르겠어.]

아라 자신의 눈에 끊어진 연결점이 보였지만, 이걸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어려워 아라의 한쪽 귀가 접혔다.

웅웅.

그때, 물이 움직이며 아라에게 물방울을 튕겼다.

아라의 한쪽 눈이 감기다가 곧 귀를 바짝 세웠다.

[아아! 알겠다! 물이었어!]

아라는 당장 하벨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대장! 세상의 근원은 물이야! 물을 통해 끊어진 길을 이어나가면 되는 거였어!]

손바닥을 꼭 쥐던 아라는 곧 시무룩해져서는 하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길을 이어버리면 아이들이 사라져버리는데?]

"그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싶다고 그랬어?"

하벨이 조심스레 물었다.

[정령들이랑 같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랬어. 여긴 너무 괴롭대.]

"아라야."

[…으응.]

힘없는 아라의 목소리에 하벨은 자신이 무얼 해야 아라를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았다.

"내가 가진 힘으로 길을 연결할게."

하벨은 아라를 토닥였다.

아직 이런 결정을 하기엔 아라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자신이 도와줄 차례였다.

"그 어떤 물보다 가장 좋은 길이 될 테니까."

하벨은 아라를 위해 단번에 용왕의 힘을 끌어오다 잠깐 멈칫거렸다.

소곤소곤.

어디선가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벨이 뒤를 돌아보자 정령들과 칼리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고 있었고, 레디나와 카샬은 옆에서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소리는…….'

또 장례식장에서 폭탄이 터지기 전, 조금 전 일어난 폭파 때 들었던 그 목소리와 닮아있었다.

[대장도 들려?]

아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 목소리가…….'

하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라가 귀를 파닥이며 잠깐 해맑게 웃었다.

[대장이 목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에 물이 기뻐하고 있어. 엄청 엄청 기뻐하고 있어!]

'물이… 라니.'

하벨은 입을 살짝 벌렸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물이 모여들었다.

소곤소곤.

아직 무어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힘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물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듯 그렇게 흔들리던 물은 자신에게 물방울을 튕기며 장난을 치다 앞으로 움직였다.

하벨은 멍하니 물이 길을 만드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하벨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자신과 물은 언제나 하나였으니 물이 무어라 말하는지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벨은 물이 알려준 그 길을 기억하며 물을 만들어냈다.

'나를 따라라.'

몽글몽글.

하벨 주변에 나타난 수많은 물방울의 모습에 정령들이 입을 벌렸다.

티끌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한 그 물을 보자 아주, 아주 그리운 감정이 밀려와 가슴이 뛰었다.

[…바다가 생각이 나. 너무도 아름다웠던 바다가.]

[나도. 그립다. 너무 그리워.]

하벨의 손가락이 묵묵히 위로 향하자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물들이 아이들의 링거와 연결된 서랍으로 들어갔다.

'길을 이어라.'

다시 서랍 밖으로 나온 물이 하늘을 향해 이어졌다.

하나씩.

하나씩, 서랍과 하늘로 향하는 물로 된 밧줄이 이어지자 공기가 떨려왔다.

웅웅.

순간, 아라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끊어진 길이 하벨의 물로서 이어지자 아라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알았다.

바람을 살랑살랑 일으키자 아라의 손에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딸랑딸랑.

그 울림이 이를 지켜보던 이들까지 뒤흔들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소리였다.

[이제 괜찮아!]

아라가 방긋 웃으며 줄들이 모인 곳으로 날아갔다.

빛이 아라를 따라 그려졌다.

[이쪽으로 가면 돼!]

가볍게 손짓하자 모든 서랍이 동시에 크게 흔들리더니 단번에 열렸다.

딱!

그 속에서 어여쁜 싹이 피어났다.

빠르게 자란 싹은 줄기가 되어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혹여 아이가 다칠까, 조심스레 감싸며 다른 쪽으로 뻗어난 줄기가 모두 아라가 있는 곳으로 모이자 서로 몸을 꼬았다.

그 속에 다른 싹 하나가 피어났다.

아라는 손바닥을 입가에 올리다 숨결을 섞어 불었다.

[후.]

작은 구름이 나타나 비가 내려왔다.

딸랑딸랑.

식물을 적실 때마다 맑은 방울 소리가 또 들려왔다.

새싹은 물을 머금다 줄기를 틔우고, 하나의 나무가 되어갔다.

더욱 굵어진 가지가 위로 뻗어나가자 땅과 부딪혔다.

쿵!

쿵!

[길을 비켜줘!]

위로 나가려는 간절한 모습에 아라가 다급히 말했다.

쿠쿠쿠쿵.

땅이 아라의 말에 응답했다.

처음에 작은 틈이 생기더니 이내 점점 크게 벌어져 그 사이로 나무가 제 몸을 뻗어나갔다.

쿠쿠쿠쿠.

나무가 몸을 넓히며 아이들마저 데리고 갈 정도로 구멍이 커져 흙더미가 아래로 계속 쏟아졌지만, 아라에게 단 하나의 흙도 묻지 않았다.

'아라는… 특별하다.'

하벨은 예상했던 사실이 현실이 되어버리자 조금은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하길 바라지 않았는데.

[대장! 아이들은 나무가 데려갈 거래!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아라가 하벨을 보며 활짝 웃자 그 역시 마지못해 웃어주었다.

가지 하나가 아라를 조심스럽게 찌르자 아라는 고개를 돌려 가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라를 보고 인사를 하듯 아라를 향해 뻗은 가지 끝에 하얀 꽃을 피어났다.

[아니야. 이 몸이 더 고마운걸?]

아라가 조심스럽게 꽃을 잡자 꽃이 단번에 휘날렸다.

[우와아아!]

아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라를 감싼 꽃이 아라 주변에 여러 번 맴돌자 꺄르륵 거리는 아라의 웃음소리가 번져갔다.

꽃잎은 이내 하벨에게 날아왔다.

'……?'

―잊어버리고 있어서 미안해요.

물이 울리며 하벨에게 말을 걸어오자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너무도 또렷이 들려오는 목소리보다 그 말이 가슴에 울려왔다.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하지만 우린…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꽃잎이 하벨의 뺨을 부드러이 쓰다듬어주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뭘 말하는 거야?"

하벨은 물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떠올렸지만,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뭘 기억했다는 건지.

무얼 잊지 않았다는 건지.

단 하나의 말도 귀에 닿지 않았다.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용왕님.

쿠구구궁!

위로 내뻗던 나무의 움직임이 요란해지더니 곧 잔잔한 빛이 내려왔다.

하벨은 땅으로 떨어지는 하얀 꽃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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