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짠. 잡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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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칼리우스는 헤레스가 건넨 손수건에 코를 흥 풀었다.
레디나는 짠한 마음에 아직도 칼리우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평소와 달리 눈물이 그치지 않는 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덜 놀릴 걸 그랬나.'
"미안해, 다들. 그만 울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
칼리우스는 여전히 그렁그렁 눈으로 말을 꺼냈다.
[아니야, 용용아. 이 몸도 막 우는데? 얼마 전에도 대장한테 매달려서 펑펑 울었다?]
아라가 칼리우스를 꼭 안아주며 실실 웃었다.
"칼리우스 님."
엘라힘이 하벨을 치료한 후 상태를 알아보던 헤레스가 칼리우스를 불렀다.
"으응."
"원래 울면서 크는 거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누가 칼리우스 님을 울지 못하게 억압했는지는 몰라도 언제든지 울어도 돼요."
"고마워. 다들 정말 고마워."
칼리우스는 손수건을 꽉 쥐며 수줍게 웃었다.
"…다들 정말 좋아."
칼리우스를 보며 따뜻하게 미소를 짓던 헤레스가 하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련님."
어쩐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하벨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온도 차이가… 너무 큰데?"
"분해서 그럽니다."
"에이, 그런 걸로 분해하지 마. 내가 어떤 경로로 나갈지 그걸 어떻게 다 예측 하겠어? 카샬 봐봐. 매번 놓치……."
"아니요. 도련님이 멋대로 나가버린 사실 말고요."
"그럼?"
하벨의 질문에 헤레스는 하벨의 팔에 붕대를 풀어주었다.
"…어?"
하벨은 제 눈으로도 봐도 믿기 어려웠다.
좀 움직이면 아직 꿰맨 자국 사이로 피가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보기에도 당장 움직여도 될 정도로 정말 좋아지지 않았던가.
"신관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약만 바르면 바로 이렇게 좋아지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헤레스는 씁쓸함을 담아 상처를 바라보았다.
사실 하벨의 온몸에 파편이 박혔던 그때, 엘라힘이 은밀히 찾아와 치료할 동안 피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거기서 오는 차이에 다급한 상황임에도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아니, 신관들이 가진 힘이 이렇게… 강대했어?"
헤레스가 종종 신관들을 도와줬다는 엘라힘의 말을 떠올렸기에 하벨은 놀라며 물었다.
"아뇨. 엘라힘 신관님이 내는 힘이 특별한 거였어요. 다른 신관님들이 내는 힘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 대답에 하벨은 괜히 엘라힘이 꺼낸, 신과 관련된 말이 떠올라 볼 안쪽을 물었다.
"…안 됩니다."
헤레스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며 하벨의 표정을 살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야?"
하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할 때쯤 칼리우스가 말을 꺼냈다.
"도련님."
"…뭐야, 왜 그래?"
단번에 헤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하벨의 눈이 금세 가늘어졌다.
[이 몸도 모르겠는데?]
"언니 뭐, 사고 쳤어요?"
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레디나마저 의문을 가지자 시선이 자연스럽게 칼리우스에게 쏠렸다.
칼리우스는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도련님이 내준 심부름을 하고 난 뒤에 카샬이 꼭 해야 할 목록을 줬거든? 그걸 해결하고 있었어!"
[오, 맞아! 이 몸도 용용이랑 가고 싶었는데 가면 안 되니까 얌전히 방에서 불도 만들고, 바람도 만들고 있었다?]
"전 그때 칼리우스 님에게 인사한 뒤에 아라 님 꼬리를 빗겨주고 있었어요. 얼마나 행복했는데요."
[맞아, 맞아! 레디나가 이 몸의 털을 빗겨줬다? 이 몸도 너무너무 행복했어!]
아라의 눈이 감기자 하벨은 아라의 볼을 꾹 누르며 칼리우스를 재촉했다.
"그래, 용용아.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는데?"
"도련님이 헤일리스를 혼쭐내준 뒤로 심부름을 가도 마법사와 마주한 적은 없었는데 그때는 달랐어. 갑자기 마법사가 나를 불렀어."
"…아, 혹시 감옥에 갇힌 마법사 말고 추가로 이름을 알아내 복종시킨 그 마법사 말이야?"
하벨은 턱을 괴며 씩 웃자 헤레스는 괜히 붕대를 만지작거렸고, 레디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나가셨어요?"
곧 레디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칼리우스는 입가에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조용히 말을 꺼냈다.
"도련님이 맞췄어. 그 마법사가 맞아."
'헤일리스가 데려온 이들이니 좋은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하벨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 어렸다.
자신이 정령의 힘을 사용해 만든 자백제를 레디나에게 줘 감옥에 갇힌 마법사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아라가 물의 길을 열어 칼리우스와 같이 마법사들이 갇힌 곳으로 향했다.
마법사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 전에 자신이 제압했고, 칼리우스가 마법사들의 진짜 이름을 거론했다.
그 순간, 갑자기 칼리우스의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던가.
―프레톤 릴, 타네스 톤톤, 데미토른. 나 그대의 이름을 기억했다.
마치 어떻게 해야 마법사들을 지배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아는 것처럼 막힘 없이 말을 꺼내기에 옆에서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너희를 감싼 마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억한다면 내 부름에 응답해라.
칼리우스가 마법사를 지배하는 과정은 너무도 쉬웠다.
그저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끝이 나는 모습에 애초에 용을 위해 만들어진 수단 같았다.
감옥에 갇힌 마법사들을 통해 또 다른 마법사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지만,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꼴이 참 우습긴 했다.
'그때 용용이가 '마나의 본질'이라는 말을 썼지? 마법사가 쓰는 마나는 용에게서 비롯됐다는 말인 걸까.'
하벨은 잠깐 생각하다 피부가 찌릿한 느낌에 레디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그, 잠깐 그랬어."
"잠깐이요? …제가 간식을 가져올 때 맞죠? 그거 말고는 없는데."
"그때 맞아, 레디나."
칼리우스가 긍정하자 레디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게 쥐었다.
"이름이, 아, 이건 안 되니까. 그 마법사가 이제 나쁜 마법사가 아니니까 나는 안심하고 마법사가 슬쩍 다가갔다?"
레디나가 지금 어떤 표정인지 모르는 건지 칼리우스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그 마법사가 이걸 줬어. 그래서 내가 헤레스한테 가서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봤어."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였어, 헤레스?"
하벨은 그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졌기에 당장 헤레스를 바라보았다.
붕대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헤레스가 움찔거리니 흘러내린 안경을 채 올리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숨기려고 한 건 절대로… 아닙니다.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오늘 상태를 본 뒤에?"
하벨이 기가 찬 목소리를 내자 헤레스는 입안이 바짝 마른 기분을 느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신관님께서 오실 줄이야. 처음에 놀랐는데, 도련님을 보자 멋대로 움직이셨던 일이 떠올라서……."
"괜찮아, 헤레스.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으니까."
하벨은 속으로 안도했다.
'고맙다, 엘라힘.'
[…어엇!]
하벨보다 먼저 쪽지를 빼꼼히 바라보던 아라가 깜짝 놀랐다.
[대장, 대자앙! 어서 봐! 어서 봐야 해!]
아라가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재촉하자 하벨은 바로 칼리우스가 넘긴 쪽지를 확인했다.
―장로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페브란 마을에 빵집을 운영 중입니다. 진짜 이름은 '에멜 콘스'.
"……?"
하벨은 쪽지 내용을 보자마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로의… 위치라니?'
헤일리스를 따라올 정도의 마법사들이라면 보통 위치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장로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는 잡초도 아니고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게, 이게 진짜라고?"
하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칼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그 마법사한테 나를 배신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으니까,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칼리우스에게 이름이 불린 마법사들 모두 자연스럽게 칼리우스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봤기에 그 역시 당연한 듯이 말을 꺼냈다.
"그렇단 말이지?"
하벨이 입꼬리를 올리자 헤레스가 안경을 올리며 인상을 팍 썼다.
"이래서… 나중에 알려드리려고 한 거예요."
"나중에 엘라힘을 만나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해야겠네."
하벨은 엘라힘이 건네준 선물이 그제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뻔하지 않았던가.
"아, 용용아."
"응?"
"아직도 이름으로 마법사를 지배하는 게 무서워?"
칼리우스는 하벨의 물음에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하벨이 알려준 가능성을 믿고 시도했기에 정말로 마법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힘은 사람을 한순간 변하게 했기에 정말 무서운 힘이라 생각했다.
"아니야. 지금은 안 무서워."
―힘은 가지고 있는 자체로 원래 무서운 법이야. 하지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힘의 쓰임이 달라져. 용용아. 이 힘을 무서워하지 말고 네 신념을 지키면서 이 힘을 사용해봐.
감옥으로 가기 전에 하벨이 자신에게 해준 말이었다.
하벨은 매번 망설이는 자신을 잘할 수 있다며 다독이고, 자신이 마음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 말을 들은 후로 점점 더 무섭지 않았다.
"정말로 이제는 안 무서워."
칼리우스가 활짝 웃자 하벨도 덩달아 웃었다.
"자, 카샬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거든."
[기회?]
아라가 눈을 깜박거렸다.
"용용이는 날 따라와야 하고. 한 명은 남아야 하는데. 혹시 따라올 사람?"
자연스러운 하벨의 제안에 칼리우스는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천천히 깨닫고는 눈동자를 굴렸다.
"도련님. 지금 어딜 간다고?"
"그래. 장로 잡으러 가야지. 그래도 될 몸 상태가 되어버렸네?"
하벨이 어깨를 으쓱하자 헤레스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안경을 올렸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제가 이럴 줄 알고 미뤄뒀는데. 이럴 줄 알았는데."
"헤레스."
"도련님. 당연히 가실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실……."
말을 하는 도중에 헤레스는 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멈췄다.
장로는 하벨이 그렇게나 잡고 싶었고, 자신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더는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제가 남겠습니다. 치료하고 있다고 둘러댄다면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카샬 씨도 데리고 가세요."
"음. 카샬이 가만히 있을까 모르겠네."
하벨이 턱을 괸 손을 까닥거리자 레디나가 키득거렸다.
"카샬은 한숨을 쉬고, 윽박질러도 결국 따라가잖아요. 제가 얼른 데려올게요."
바로 뒤를 돌아 몇 걸음 걷던 레디나가 곧 입을 가리며 낄낄 웃었다.
"진짜 웃기네요. 카샬이 촉이 좋은 건지, 도련님께서 운이 나쁜 건지."
"또 왜 그러는데 레디나?"
카샬이 카트를 끌고 오며 물었다.
목소리부터 의심이 가득했고, 바퀴가 구르는 소리와 함께 배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방에 퍼져나갔다.
"나… 밥 먹었는데, 카샬?"
하벨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간식입니다. 헤레스 씨가 도련님께서 좀 야위셨다고 하셔서 간식도 더 신경 썼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까?"
"어……."
하벨은 입을 살짝 벌렸다.
오늘따라 카샬이 왜 이렇게 친절한지.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도련님."
카샬은 살짝 얼어붙은 하벨의 표정에 어깨를 늘어트리며 읊조렸다.
"그냥 말씀해주세요."
"장로를… 잡으러 갈 거야."
"부상은요?"
"신관이 힘을 사용해서 나아졌어. 정말로. 이것 봐봐."
하벨은 아직 붕대가 덜 감긴 팔을 보여주었다.
"갑시다, 도련님."
카샬이 상처를 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놀란 건 오히려 하벨이었다.
"진짜……?"
"그럼 안 가실 겁니까?"
"아니. 놈을 잡아야 마법사 협회를 더 빨리 무너트릴 수 있으니까."
"그럼 어서 갑시다. 그냥 차라리 이렇게 입씨름하느니 빨리 갔다가 돌아오는 편이 낫습니다."
하벨은 재차 이어진 카샬의 대답에 그를 빤히 보았다.
"계속 저 보시면 저는 바로 아가씨께 갈 겁니다."
"그게 아니라 꽃님이 가면은 잘 있냐고."
하벨이 실실 웃자 카샬은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품에서 꽃무늬가 가득 박힌 가면을 내밀었다.
진짜 재수 없었다.
"…됐습니까?"
"그럼. 완벽하네! 가면단에 꽃님이가 빠질 수 없지."
[그럼, 그럼!]
아라가 크게 끄덕였다.
* * *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여느 평범한 사장처럼 남자는 기분 좋게 말을 꺼냈다.
"어서 오세요!"
이어 직원들 역시 활기차게 말을 꺼내려다 들어오는 이를 보고는 순간 흠칫거렸다.
달 무늬, 구름무늬, 해무늬, 그리고 꽃무늬가 박힌 가면을 쓰고 오는 게 아닌가.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네요."
하벨이 자연스럽게 진열대로 향했다.
[대장. 호옥시, 찔러봐도 돼?]
말랑말랑 빵에 아라가 힐끔 하벨을 쳐다보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사라질 빵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직원들을 당황하며 남자를 쳐다보았고,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내며 애써 말을 돌렸다.
"어디 축제라도 열린 겁니까?"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벨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나자 남자는 덩달아 웃었다.
"아니, 어떤 축제길래 이렇게 가면을 같이 맞춘 겁니까?"
"어떤 축제인지 궁금하십니까?"
"그럼요. 저도 저 가면이 탐이 납니다."
칼리우스가 남자의 대답을 들으며 하벨에게 다가가 망토를 잡아당겼다.
준비 완료.
"음."
하벨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라가 그에게 정령수를 집어넣었다.
"이걸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하벨은 손에 바람을 두르고는 단검처럼 만들어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의 목을 향해 던져버렸다.
푸욱!
피가 튀었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네 마지막을 축하하는 축제 말이야."
히쭉, 웃음이 목소리에 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