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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81화 (181/415)

181화. 손을 잡자

* * *

* * *

천장을 보는 하벨의 한쪽 눈이 흔들렸다.

곧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틀어막았다.

팔과 손에 감긴 두툼한 붕대의 촉감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눈동자에 슬픔이 물감처럼 번져갔다.

'…그래서였다니.'

하벨은 자신이 왜 화약 냄새를 맡고 속이 울렁거렸는지.

왜 몸이 먼저 움직였는지.

그제야 알아버렸다.

폭발이 일어났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거칠고, 매서운 폭발이.

하벨은 새어 나오는 안타까움을 막을 수 없었다.

'류아야…….'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류아는 자신을 공격했다.

자신이 가진 용왕의 힘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물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보호할 거라고 예상하고 한 행동이 분명했다.

'대체 왜……?'

하벨은 그런 류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독단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테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던가?'

밀려오는 의문과는 별개로 기억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맞춰져 나갔다.

저게 시작이었다.

자신을 끝까지 좀먹던 짙은 후회와 무능함이.

류아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에 당황해 대응이 늦어진 그 장면을 얼마나 떠올리고 곱씹었던가.

'하지만 달랐다.'

그 기억 속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보였다.

폭탄이 터지던 와중에 류아의 몸에 물이 덮여 있었다.

빛과 물을 순간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보았을 때 그건 분명히 물이었다.

'류아가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기쁨도 잠깐 순간, 하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르티안 왕의 죽음으로 자신이 떠올렸던 죽기 전 기억 속 류아는 진짜가 되어버리는 셈이었다.

그렇다는 건.

'말도 안 된다…!'

하벨은 입술을 바로 깨물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방금 보지 않았는가.

류아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자마자 바로 죽음을 각오했던 일을.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류아를 보았다.'

불길함이 감도는 무기에 자신의 몸이 순두부처럼 부드러이 꿰뚫린 뒤, '열쇠'를 언급하던 그놈이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마치 한 편인 것처럼.

'류아가 날 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보이는 하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하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른쪽 눈동자가 욱신거릴 뿐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쇠를 언급하던 그놈.

―가엾은 널 위해 하나 말해주지. 곧… 그분이 오실 거다. 그분이 널 찾아갈 거다.

수족이 죽기 전, 자신의 발을 붙잡으며 꺼냈던 말.

―모릅니다. 하지만 수족 뒤에 누가 있어요. 그 누군가가 용왕님을 원합니다. 용왕님이 가지신…….

류아가 언급했던, 수족 뒤에 누군가 있고, 자신의 열쇠를 원하던 그놈.

모두가 동일인이었다.

놈이 처음부터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너는 바다와 물의 지배자인 용왕이자 그것들의 심장이다. 네 존재는 세계를 위한 것이며 세계를 위한 열쇠가 되거라.

그 열쇠 때문에.

대체 그 열쇠가 무엇이길래.

"…으읏."

하벨은 몸을 움직이다 말고 신음을 토했다.

그제야 온몸에 느껴지는 아픔에 하벨은 시야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손가락으로 오른쪽 눈을 더듬거리다 볼을 스쳐 갈 때쯤, 무언가가 덮여 있는 걸 느꼈다.

'파편이 얼굴에도 박힌 건가.'

오른쪽 눈에도 까끌까끌한 뭔가가 붙어 있었다.

하벨은 그대로 옷자락을 슬쩍 들치자 붕대가 두툼하게 감겨 있었다.

'대체… 붕대가 얼마나 감긴 건가?'

좀 더 몸을 제대로 보려 상체를 일으키다 말고 팔이 미끄러져 다시 침대에 누웠다.

덜컹.

가볍게 일어난 흔들림에 아라의 귀가 움직였다.

[대… 장?]

잠이 덜 깼는지, 아라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아직 더 자도 돼, 아라야. 아직 밤이야."

목소리가 잠긴 건 자신도 마찬가지인지, 말을 하는 게 편안하지 않았다.

하벨은 아라를 토닥였다.

그대로 안도하며 눈을 감던 아라가 놀란 눈으로 크게 뜨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대장?]

아라의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대자앙……?]

아라는 꽉 다문 입술을 바들거리다 하벨의 품에 다가와 살포시 자신을 안았다.

아라의 얼굴이 닿는 부분이 금세 축축해지자 하벨은 놀라 아라를 다독였다.

"쉬쉬, 아라야. 나는 괜찮아."

아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옷자락만 쥔 채로 흐느꼈다.

하벨은 그게 더 마음이 아팠기에 아라를 조심스레 들었다.

눈물이 가득 찬 아라의 눈동자에 깊은 슬픔이 어려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적시는 그 눈물에 하벨은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하지만 아라는 자신의 꼬리에 얼굴을 묻고 또 조용히 울었다.

"아라야."

하벨이 아라를 가볍게 흔들었다.

팔죽지에 통증이 밀려왔지만, 하벨은 다시 밝게 목소리를 냈다.

"나는 괜찮아. 진짜야."

으헝헝.

아라가 그제야 울음을 토했다.

"아라야. 네가 뭘 못한 것도 아니야."

하벨은 아라를 자신의 옆에 놓고는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어. 가주님도 두 번째 폭탄은 놓쳐버렸잖아?"

[이 몸이…….]

아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아라야. 네가 그때 내 옆에 없었지만,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콱.

아라가 자신의 손가락을 물었다.

평소와 달리 좀 아팠기에 분하고, 슬픈 아라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 왔다.

화를 내던 아라의 눈동자에 다시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 몸은… 그런 거 싫어.]

"알아."

[이 몸이… 이 몸이 언제나 대장 옆에 있어야 했어.]

"아라야. 넌 내 말을 지켜준 거잖아. 오늘 나는 정령사가 아니라 마법사가 되어야 하니까, 내 근처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이 몸은 대장 말이라면… 으흑, 다, 전부 다 들어주고 싶었는데.]

손가락을 깨문 아라의 이빨도, 손가락에 맞닿는 아라의 입가도 전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 몸이, 바보처럼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려버렸어! 이 몸은 너무 멍청해서…….]

팅.

하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아라의 이마를 때렸다.

아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벨은 또르르 흐르는 아라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시 다정히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라가 과거의 자신이 되어버렸다.

류아와 제 사람들을 눈앞의 폭발에도 지키지 못했다며 후회하고 자책하던 자신이 그려지고 있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아라야."

그렇기에 하벨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라의 자책을 부정했다.

"네가 한 행동의 결과가 어떻든 넌 멍청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야."

[하지만 대장, 이 몸은… 정말로, 정말로 아무것도 못 했는걸.]

아라가 흘리는 눈물이 손등을 타고 떨어졌다.

[이 몸은 있지, 다른 정령들처럼 빨리빨리 자연의 힘을 불러오지도 못해서 매일 연습했어. 손가락에 불도 붙이고, 바람도 꺼내고, 그렇게 연습했는데.]

"그래. 아라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내가 봤어."

[하지만 힘을 써야 할 때 쓰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적어도 이 몸이 대장한테 정령수를 줘야 했어. 이 몸은 이제 대장을 만지지 않아도 줄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못 했어.]

아라의 눈이 일그러지다 기어코 감겼다.

으헝헝헝.

아라는 천장을 보며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하벨이 붉게 물었다.

빨간 꽃은 예뻤는데, 붉게 물든 하벨은 너무도 무서워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으흑, 세렌은 했는데에. 세렌은 정령수를 룬델한테 빨리 넘겼는데에에…….]

룬델이 처음에 폭탄을 터트리려던 놈을 막지 않았던가.

[이 몸은 못…….]

꿀꺽.

아라는 입안으로 들어온 맛있는 물을 반사적으로 삼키며 멍하니 하벨을 바라보았다.

"푸하핫!"

하벨은 그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덜거덕거려 아팠지만, 너무 웃겼다.

아라는 입맛을 다시며 여전히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벨은 그제야 아라의 볼을 꾹 누르며 말을 꺼냈다.

"아라야. 보다시피 나는 네 옆에 있어."

볼을 꾹 누른 손으로 아라의 눈물도 닦고, 자신의 손바닥 위에 아라의 발을 올려보았다.

이 온기가 아라에게도 전달이 됐으면 했다.

"다음이 있으니까, 후회는 그때 하면 되는 거야."

비슷했지만, 다음이 없었던 자신과 아라의 상황은 달랐다.

지금은 후회에 발목이 잡힐 때가 아니라 더 나아갈 때였다.

[다음에……?]

아라의 아랫입술이 위로 올라갔다.

"그래, 아라야. 너한테는 다음이 존재하잖아? 오늘을 떠올리고, 다음에 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아라는 여전히 울먹였다.

"나는 아직 따뜻하지?"

[으응.]

"그래. 나는 살아 있어, 아라야."

아라는 비로소 하벨의 체온을 느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정말로 따뜻했다.

아라가 찬찬히 미소를 그렸다.

"좋아. 이제 달도 예쁜데 보러 갈까?"

[아, 아, 안 돼! 그러면 안 돼! 붕대를 엄청 많이 맸어! 지금 아프잖아!]

아라가 기겁하며 하벨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농… 담, 으, 으엇!"

하벨은 눈앞에 나타난 누군가를 보며 기겁했다.

아라마저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화르륵.

뒤늦게 아라가 만든 불꽃에 주변이 환해지자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레디나였다.

"깜짝이야. 무섭게 왜 그렇게 나타나?"

"지금 어디 가신다고요?"

레디나의 목소리와 눈빛이 오늘따라 아주 매서웠다.

"당연히 농담이었지. 방금 아라한테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야."

"왜… 이런 걸로 농담하세요?"

"평소에도 이랬는데?"

"지금은 그러시면 안 돼요. 지금 도련님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잖아요."

하벨의 몸에 붕대가 감기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였다.

힘이 빠진 레디나의 목소리에 하벨은 오히려 그녀를 향해 씩 웃었다.

안대에 가려 한쪽만 남은 하벨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깊게 고민하지 마, 레디나."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요?"

"내 부탁을 한 번 더 들어주고, 간식을 더 잘 챙겨주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간단하다뇨!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쉿. 카샬도 오겠다."

하벨은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렸다.

레디나보다 잔소리가 심한 카샬을 소환할 수 없지.

"안타깝지만, 늦었네요."

레디나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발소리에 그제야 굳어진 표정을 풀며 뒤를 가리켰다.

"…아니, 다들 안 자?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하벨은 기가 찼다.

커튼 틈으로 봤을 때, 아직 밤이었다.

"너도 얼른 자야지, 아라야."

[대장이 자면 이 몸도 잘 거야!]

아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제가 오히려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깨어나셨으면 다시 얌전히 주무셔야죠."

카샬은 하벨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어쩐지 카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힘이 빠진 상태였다.

"…하."

하벨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에 카샬은 크게 반응했다.

"어디 아프십니까? 숨이 막히시는 겁니까?"

"아니. 네 모습을 보니 대충 어떤 흐름인지 알겠다 싶어서. 나는 괜찮아, 카샬, 레디나."

"당연히 괜찮으셔야죠. 졸리지 않으십니까?"

카샬은 온도계를 꺼냈다.

왠지 저 온도계가 반가워 하벨은 실실거렸다.

"졸리긴 한 데, 지금 자면 오후에 깨어날 거 같아서. 이거 안 되겠다. 다 불러. 그냥 다들 내 얼굴 보고 나서 자라고 해."

"지금 도련님 얼굴 보면 기겁한다니까요?"

레디나가 살짝 핀잔을 줬다.

"그래도 안도했잖아? 아, 용용이는 울고 있어? 또 막 뭐 부순 거 아니지?"

[용용이는 울다 잠들었고, 룬델도 울었어.]

아라는 코를 먹으며 대답했다.

'…아.'

룬델이라는 말에 하벨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마음이 급히 가라앉았다.

"혹시… 헤레스가 흉터는 남는데?"

조심스럽게 꺼낸 하벨의 물음에 카샬은 얼굴을 쓸었다.

"지금 흉터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엄청. 이건 내 몸이 아닌데?"

"지금은 도련님의 몸이죠."

잠깐 하벨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카샬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죽다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미련한 행동을 하신 겁니까?"

"미련하다니?"

"도련님께서 사용하시는 물로 도련님 자신만 막으셨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겁니다."

"그게 뭐가 좋은데?"

하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샬을 보자 오히려 카샬은 하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을 구하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자신이 살아야만 했다.

"뭐가 좋냐뇨. 지금 도련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제가 당장 거울을 가져오겠습니다."

"구할 수 있는데도 이를 외면할 만큼 내가 용감하지 않아서."

"그건 용기와 관련 없습니다. 모두가 그러는데 왜 도련님께서는 하지 않으십니까."

"방금 말했는데? 내가 용감하지 않아서라고."

"…하, 좋습니다. 일단 주무십시오. 제가 헤레스 씨한테 깨어났다고 알려줄 테니까요."

"다 보고 잠들 거야."

"그 말 정말 진심이셨습니까?"

"그래.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발을 동동 굴렀을 거 아니야."

하벨은 활짝 웃었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버텨보세요."

"아,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알려줘."

하벨은 폭탄을 터트렸던 놈들의 눈빛을 보았다.

그건 정상적인 눈이 아니었다.

"폭탄 터트린 놈들, 코스모피안 왕국 사람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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