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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80화 (180/415)

180화. 무너지기 전(3)

* * *

멍하니 사라진 그자를 눈으로 찾아다녔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대체…….'

하벨이 부들거리는 팔로 상체를 일으키자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제야 제 팔과 몸에 박힌 파편들이 보였다.

'대체 누구길래 나를 아는 건가?'

하벨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칼리우스를 언급한 그자가 어떻게 용왕인 자신을 알고 있는 건지.

'하벨 티에라는 몰랐다.'

하벨은 숨을 겨우 내쉬었다.

'몰랐기에 나를 그리 부르지 않았던가.'

―세상의 수호자이신 용들의 왕이시여…….

용들의 왕.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나를…….'

의문과 의문이 서로를 잡아먹는 와중에 머리가 꼬이고, 떨어지는 피가 짙어졌다.

꼬옥.

갑자기 작은 감촉이 자신을 꼭 감쌌다.

포근함 뒤로 간절한 감정이 전해져 하벨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아라야.'

하벨은 아라를 보며 입꼬리를 차차 올렸다.

[대자아앙!]

울먹이는 아라의 소리가 또렷이 들리자 사람들이 꺼내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언제 그렇게 됐는지 몰라도 연기가 사라졌다.

"…도련님!"

카샬이 소리치며.

"으헝, 도련님!"

칼리우스가 뚝뚝 울면서.

"하벨아!"

룬델이 당장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막내야, 막내야!"

라르웬마저 기겁하며 그렇게 다들 뛰어왔다.

하벨은 왠지 그 모습이 우스웠다.

대체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 걱정하는 건지.

"…도련님."

레디나가 제일 먼저 하벨에게 다가와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부축했다.

"왜 그러셨어요. …왜요?"

방금 하벨이 자신을 밀치며 도망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평소에는 힘도 약하면서 오늘따라 자신을 밀치는 그 힘이 달랐다.

정말 뒤로 넘어졌고, 고개를 들었을 때 뜨거운 열기가 자신을 덮쳐왔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하벨이 만든 물이 자신을 포함해 자폭한 놈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열기와 쏟아지는 파편에서 지켰다.

―보글보글

물이 급히 끓었고, 자욱한 연기가 뒤이어 밀려와 시야를 가려버렸다.

그 속에 하벨이 어떻게 됐는지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폭발음 때문에 귀가 먹통이 되어 제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몸이 회복되어 겨우 하벨을 찾았는데.

하벨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

레디나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왜 도련님 자신을 지키지 않은 거예요?"

하벨이 보호한 사람들은 파편에 살짝 그이거나 뜨거운 열기에 뎄을 뿐이지만, 하벨은 아니었다.

오른쪽 눈에 핏줄이 터져 빨갛게 변했고, 얼굴 일부분과 팔, 다리, 복부 모두 작고 큰 파편이 대체 얼마나 박혀 있는지.

진작 미련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 너무 속상했다.

"진짜… 왜 이렇게."

하벨이 자신에게 도망치라며 밀 게 아니라, 오히려 방패가 되라고 자신을 잡아당겼어야 했다.

자신이 하벨의 신도이기 전에 확률적으로 보아도 자신이 살 가능성이 더 컸으니 당연했다.

죽음을 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했어야만 하는 세계.

그게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세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벨은 달랐다.

설마 이것까지 다를까 싶었는데, 정말 한결같았다.

누가 무어라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언제나 죽음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하벨이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멍청해요……?"

레디나는 울먹였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 세계로 자신을 밀어버리지 않았는가.

이 세계를 알아버렸으니 다시 자신이 알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여긴 정말로 너무도 다정한 세계였으니까.

"내가 모실게."

숨을 몰아쉬며 다가온 카샬은 레디나를 보더니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레디나는 하벨을 쥔 손을 풀었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하벨이 희미하게 꺼낸 그 말에 레디나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이 와중에도 하벨은 자신을 다독였다.

'진짜.'

대체 어디까지 자신의 마음을 흔들 셈인지.

'진짜 도련님은…….'

엄마를 지키지 못했던 그때의 비참함이 또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멍청이예요.'

* * *

"…오시면 안 됩니다!"

류아가 거칠게 소리치자 자신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건 또 무슨 꿈인가……?'

생각해보면 되게 오랜만에 옛날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었다.

'다들 무사한 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괜찮다고 계속 자신을 다독이는 헤레스였다.

하벨은 일단 생각을 접고, 유심히 앞을 바라보았다.

'저놈들은……!'

곧바로 분노가 들끓었다.

들짐승의 머리를 달고, 몸에 진득한 액체가 가득한 비늘로 감싸진 저 존재는 수족이었다.

지상에도, 바다에도 어디에서든 누군가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존재하던 증오스러운 놈들.

하벨은 당장 저놈들의 머리를 박살 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놈들에게 죽어간 이들이 몇이던가.

'그런데 왜…….'

하벨은 멈칫거렸다.

수족들 속에 류아가 있었다.

왜 류아가 있는 걸까.

자신은 그걸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하벨은 자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제야 류아의 목에 겨눠진 톱니를 닮은 날을 단 수십 개의 검이 보였다.

'…아.'

천천히 생각이 났다.

무슨 임무인지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류아는 임무를 수행하다 붙잡혔다.

자신은 그걸 알고 수족의 요구대로 혼자 이곳에 오게 되었다.

바다와 떨어진, 자신의 몸을 가릴 곳조차 없는 넓은 들판으로.

"…류아야."

자신이 목소리를 냈다.

너무도 기가 차, 이게 현실인지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괜찮습니다, 용왕님. …저는 괜찮습니다!"

수족이 류아의 무릎을 꿇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음에도 그는 말을 멈추질 않았다.

"감히……."

자신은 분노했고, 곧 수족 하나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 멈춰라, 용왕. 다가오면 죽이겠다."

한쪽 눈과 손가락 몇 개를 잃은 수족이 자신을 보며 입을 놀렸다.

자신과 류아를 둘러싼 수족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저들이 선 곳은 살짝 높았고, 바다와 멀다뿐이지 수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패거리로 있던 수족들의 숫자가 어쩐지 적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일단 멈췄다.

지금 중요한 건 류아였으니.

"이놈이 네놈의 오른팔이었지?"

수족은 입마개를 채운 류아를 가리켰다.

아.

수족의 물음과 함께 하벨은 저 상황이 천천히 생각이 났다.

저들은 이제 끝의 끝까지 내몰린 상황이었다.

마지막 공격만 남은 상황.

그때, 계획 하나가 틀어져 버렸고, 그 결과 류아를 포함한 다른 이들까지 붙잡혔다.

설마 마지막에 와서 저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혹시 배신자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보가 새어나갔던 걸까.

당황스러움과 복잡함이 치밀어 오르자 피까지 마른 기분이 들었다.

"용왕아. 피차 서로 바쁜데, 여기서 타협을 보자고."

수족은 손을 가볍게 흔들다 남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우린 여기에서 이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을 거야. 영원히. 약속하지. 이제 저쪽에 있는 네 부하 전부를 물린다면 이들 모두 곱게 보내줄게."

"더러운 네놈들의 약속을 내가 믿을 거 같은가."

자신은 소리치며 당장 물보라를 일으켰다.

"어허."

수족의 남은 한쪽 눈이 감기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여기는 네가 물을 쓰면 티가 나요."

바짝 마른 땅.

탁 트인 들판.

수족이 든 검지가 흔들렸다.

"힘 빼지 말라고, 용왕아. 우리가 잡은 게 네놈이 너무 아끼던 놈들이니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잖아? 잘 생각해야지. 아차, 얼굴 좀 제대로 보여줘야겠지?"

놈의 손짓에 류아를 포함한 자신의 부하들이 수족들 사이로 보였다.

자신은 그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무날도, 태련이도, 그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생각이 났다.

"미친 새끼들……."

"이제 생각이 달라지나, 용왕아?"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놈이 웃었다.

"아차차, 또 한 가지 잊었네. 네가 만들어준 이 흉터 보이지? 이 이후로 자꾸 뭘 하나씩 잊어버리네."

놈이 손짓했다.

"이거 알고 있지?"

놈의 손짓에 수족 한 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무언가를 매달고 있었다.

물고기 모양을 닮은 검은 종이가 가득했다.

"기억할 수밖에 없지. 네 물에 반응해서 터지는 폭탄이니까."

팔랑팔랑.

물고기 모양을 한 검은 종이의 지느러미가 움직이자 한쪽 눈이 없는 수족이 방긋 웃었다.

"이게 더 빨리 만들어졌으면 너랑 내 입장이 반대가 됐을 텐데, 아쉽네."

"포기해라."

"포기? 웃기고 있네! 내가 왜? 미쳤어?"

당장 수족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네놈이야말로 헛수고하지 마, 용왕아!"

수족이 팔을 벌렸다.

"우린 이제 여기뿐이야. 네 물에 반응하는 폭탄을 다 끌고 왔어. 이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물을 쓰면 여기에 서 있는 놈은 너뿐일걸?"

케케.

수족은 특유의 웃음을 터트렸다.

"네 손으로 네가 그렇게 아끼던 저놈들을 다 죽이는 거라고!"

희번덕 눈을 뜬 수족의 모습에 자신은 이를 갈았다.

저 폭탄에 몇 번이나 당해봤기에 위험성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폭탄 하나를 만들려면 수천에 가까운 수족의 피가 쓰이는 것도 모자라 성공률마저 낮았다.

그야말로 오직 자신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폭탄이었다.

"해봐!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수족은 도발했고, 자신은 망설였다.

"무섭지, 응? 두렵지, 용왕아? 사실 우리도 그래. 이제 죽을 걸 생각하니까 두렵더라. 그러니 여기서 합의하자. 굶어 죽든 말든 여기서 안 나갈게."

"개소리하지 말거라. 네놈들이 언제라도 신의를 지킨 적이 있던가."

자신은 차갑게 분노했다.

"자식만큼은 살려달라는 부모의 부탁에도 네놈들은 들어주겠다며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자식을 죽였다. 마을을 살려주겠다 약속해놓고, 가두고, 불태워 죽였다…! 네놈들이 죽인 이들의 숫자가 바다를 붉게 물들였는데, 대체 무엇을 지켰단 말인가!"

"아, 그거?"

수족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던졌다.

"그건 미안해.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야, 용왕아. 우리도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아니다, 어차피 네가 우릴 감시할 거잖아? 이상한 짓 하면 알아서 던져줄 테니까, 죽여버려. 그러면 되는 거잖아?"

수족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자 속에서 살의가 들끓었다.

원래 저런 놈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선을 너무도 벗어났다.

"용왕아. 너 지금 너무 열 받았구나. 그래, 그래. 그건 나도 이해해. 거꾸로 되어도 열 받을 테니까. 그럼 한 놈 던져줄게."

수족이 뒤를 쳐다보다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한쪽 눈이 없는 수족에게 명령을 받은 수족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음대로 죽여. 손가락부터 자르든, 눈부터 파든. 그걸로 화 좀 풀고 제대로 생각을 해 봐."

'그래. 바로 저 모습이다. 내가 수족을 증오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무 이유 없는 살육. 그건 동족에게까지 포함된 말이었다.

쾌락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족속들.

"나도 이렇게 인질을 잡는 개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가 얼마나 급한지 알겠지?"

수족은 류아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빠드득.

자신의 이가 갈렸다.

"네놈들은… 부하들을, 백성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 말에 순간, 수족은 정색했다.

"알잖아. 알면서 왜 물어? 소모품이지. 나도 똑같고. 그냥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건데 나는 죽기는 싫어. 내가 왜 죽어야 해? 아직 즐거운 게 얼마나 많은데."

케케.

수족은 곧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좋아. 너희가 그, 가족이니 뭐니 하는 걸 애지중지하는 걸 알고 있어. 자자, 말 좀 나눠. 그러면 화가 풀리겠지?"

수족이 손가락을 튕기자 류아의 목을 겨눈 칼이 거둬지고, 그의 입을 막았던 입마개도 풀어주었다.

몸에 물고기 모양을 닮은 검은 종이를 가득 맨 수족과 다른 수족이 두 다리가 부러진 류아를 질질 끌고는 자신에게 좀 더 다가왔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겁니까?"

류아는 미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많이… 아픈가?"

"왜 아직도 가지 않는 겁니까? 어서 가십시오! 어서요!"

"미안하다."

"…미안이요?"

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입술을 깨물었다.

"미치셨습니까? 용왕님은 저희 모두의 희망인데! 지금 이곳에 오신 것도 모자라 미안이요?"

"걱정하지 말거라, 류아야."

"아무것도,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절 버리시고, 어서 모두가 바라던……."

"내가 널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가족을 버릴 수 없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지만, 흔들리는 류아의 시선이 또렷이 보였다.

"…용왕님."

"그래, 류아야."

"이거 함정입니다."

"안다."

"아뇨. 달라요."

"다르다니?"

"수족 뒤에… 누가 있습니다."

류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하벨은 순간 저 말에 깜짝 놀랐다.

수족 뒤에 누군가 있다니.

"누가 있다는 것인가?"

"모릅니다. 하지만 수족 뒤에 누가 있어요. 그 누군가가 용왕님을 원합니다. 용왕님이 가지신……."

푸욱!

류아의 배에 갑자기 칼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무도 움직이질 않았다.

그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저 개새끼! 내가 입을 다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한쪽 눈이 없던 수족이 깜짝 놀라며 소리치며 다가왔다.

"열쇠… 를."

류아의 입가와 배에 피가 줄줄 흘렀다.

자신은 멍하니 류아를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말해야만 하는데.

류아가 씩 웃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웃음이 아닌가.

'…아.'

자신은 그제야 기억이 또렷이 났다.

'말리거라.'

이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류아를!'

팅.

류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가 숨긴 암기가 자신을 향해 튀어나왔다.

'…아아.'

한스러움이 밀려왔다.

류아가 이용한 건 자신이 가진 힘이었다.

수족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고, 모든 걸 끝내는 방법.

절대로 자신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고 저 검은 종이를 이용했다.

찰랑찰랑.

류아가 알고 있는 대로 무언가 자신을 위협하자 물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자신을 감쌌다.

'이런 건 필요 없었다, 류아야.'

분명히 저 방법 말고도 또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이, 이런 씹!"

한쪽 눈이 없는 수족이 이를 악물었고, 류아가 크게 소리쳤다.

"그놈이 지금 용왕님께서 가지신 열쇠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조심하……."

팔랑거리던 검은 종이가 거칠게 흔들리더니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콰콱!

'여기서 나는.'

하벨은 자신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자신의 살이 익어 버릴 정도로 강한 열기와 눈을 찌를 듯이 다가오는 빛이 터지고, 또 터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은 홀로 서 있었다.

'아무도……. 어?'

하벨은 잠깐이지만, 무언가 보았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찰랑.

폭탄이 멈춘 후에도 자신을 보호하고자 나타난 물이 주변에 흔들렸다.

자신은 숨을 참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사라진 류아와 자신의 사람들을 찾으러.

하지만 주변에 퍼진 연기가 무심할 정도로 자욱했고, 숨을 쉴 때마다 몸속에 가득 들어오는 화약 냄새가 너무도 끔찍했다.

자신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서.

연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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