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51화 (151/415)

151화. 새 보금자리

* * *

'…정령수가 왜?'

하벨은 당황했다.

줄줄 잘 들어오던 정령수가 갑자기 끊기다니.

일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푸욱!

무언가가 안에서부터 솟구치는 감각이 들었다.

'뭔가…….'

아프다기보다는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부터 부들거려왔다.

깜박.

눈을 깜박이자 다시 시야가 돌아왔다.

'어……?'

그제야 몸이 앞으로 무너지고 있음을 알자 손을 버둥거렸다.

손가락 끝에 무언가 닿았고, 겨우 잡았나 싶어 안도하던 차 목구멍 너머로 익숙한 감각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뜨거운 게 가면에 고였다가 아래로 질질 흘러내렸다.

뚝뚝.

새빨간 피가 가면 밑으로 줄줄 떨어지자 주변에서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다.

자신을 갉아 먹으려던 감각이 점점 선명해졌다.

하벨은 입술을 깨물며 참다, 또 힘겹게 참다 기어코 신음을 내뱉었다.

"…으, 으으읏."

아팠다.

이건 너무 아팠다.

이건 왜 이렇게 아픈 건지.

'…이상한데.'

하벨은 그대로 눈앞이 다시 캄캄하게 변하는 걸 보았다.

페트리오의 어깨를 짚었던 하벨이 주르륵 미끄러져서야 아라가 멈췄던 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대장…!]

아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왜! 왜 멈췄는데!]

아라는 정령들을 향해 언성을 올렸다.

그렇게 부탁했는데.

[우, 우리가 멈춘 게 아니야!]

정령들은 아라의 분노에 기겁했다.

[정말로 우리가 한 게 아니라고!]

[그, 그래. 갑자기… 갑자기 끊어졌어. 벽이 생긴 것처럼 하벨이 갑자기 우리 정령수를 밀쳐냈다고!]

정령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아라는 눈물을 꾹 참으며 하벨에게 정령수를 밀어 넣었다.

팅.

[……?]

아라의 눈이 커졌다.

정령들이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정령들이 정말로 정령수를 끊어버린 게 아니라 저들이 말한 것처럼 뭔가가 하벨이 정령수를 받지 못하게 튕겨 내버렸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헤레스가 하벨에게 무언가를 했지만, 아라는 하벨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정신 차려, 대장! 대장!]

뚝뚝.

헤레스가 가면을 벗기자 하벨의 입과 코, 그리고 눈동자에서 새빨간 피가 멈추질 않았다.

[용용아, 도와줘!]

아라는 그대로 멈춰 칼리우스를 힘차게 불렀다.

하벨은 아니라고 하는데 칼리우스는 그와 같은 용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칼리우스는 갑자기 떨고 있었다.

놀라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공포에 질린 것처럼.

아라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더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벨이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속상했다.

* * *

퐁당.

자신은 돌을 던진 뒤, 웅크린 채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살이 일어나자 자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모든 걸 신기해하는 그 모습은 어딘가 낯설었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자신의 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전부 다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는…….'

하벨은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들을 눈에 담았다.

비소로 천천히 알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곳이구나.'

기억이 떠올랐다.

많고 많은 기억 중에 이게 왜 떠오른 건지 모르겠지만, 태어난 곳임을 알게 되자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움일까.

애잔함일까.

'그때는 이랬지.'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되는 자신의 몸으로 얼마나 여기에 앉아 있었는지 몰랐다.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 사라져 달이 올라오면 밤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마저 처음에는 몰라 한참을 관찰해서 알아내곤 했다.

쏴아아.

파도가 물러가고 다시 다가오는 그 모습을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야."

툭 하고 누군가 내뱉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다가왔다.

'목소리가… 익숙한데.'

하벨은 앳된 그 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

쿵!

바로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구나.'

"네가 그렇게 주먹을 잘 쓴다며?"

바다에서 갓 나와 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오던, 세상의 온갖 추악한 것들을 맞본 얼굴을 하던 악동들의 우두머리.

그가 류아였다.

"잘 쓴다며?"

류아 옆에서 같이 으쓱거리고 있는 태련이도 보였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내 가족들을 만났지.'

우습게도 그때 자신은 화가 나 있었다.

"비키거라."

자신은 웅크린 그대로 바다를 움직여 류아와 태련은 물론 그 일행들을 덮쳤다.

"햇빛을 가리니."

어차피 이 정도로는 죽지도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냥 물이 끼얹었다.

계속.

"어푸푸푸. 야, 잠깐만."

류아가 소리치고.

"으아앗. 말 좀 하자고!"

태련이가 뒤를 돌아서는 물살을 고스란히 맞았다.

그래서.

치지지직.

갑자기 라디오 주파를 맞추지 못할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자유롭다고 느끼던 순간, 하나씩 지워졌다.

배경도.

류아와 태련.

그리고 그 일행도.

'……?'

꿈이 아니었던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 처음 보았기에 하벨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경계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쩍.

느닷없이 균열이 일어났다.

마치 틈의 세상처럼.

쩌억!

기어코 갈라진 틈 사이로 불길함이 일렁거렸다.

알 듯 말 듯, 애매한 느낌에 하벨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저 균열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벨이 손을 뻗으려 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안 됩니다!"

남자는 뒤에서 달려와 균열에 손을 댔다.

"…돌아가! 네가 누구인지 몰라도 너는 이쪽으로 올 수 없어!"

의지를 담은 강한 외침에 균열이 빠르게 회복되다 사라졌다.

곧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뒷모습에 하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벨… 티에라?"

하벨은 흠칫 놀랐다.

목소리가 나오다니.

이곳은 진짜 꿈과 다른 곳이란 말인가.

"진짜 하벨 티에라인가?"

하벨이 재차 묻자 남자는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하벨 티에라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겁에 질려 있었다.

하벨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졌다.

'아니.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면…….'

"…미, 미안합니다!"

하벨 티에라는 급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어깨를 꽉 쥐었다.

"제가 꺼내는 그 무슨 말도 믿지 않으시겠지만, 이것만큼은 믿어주십시오."

이전과 다르게 저장된 영상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하벨 티에라는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방금 일어난 일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누군가… 간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벨 티에라를 만나면 따질 게 정말 많았지만, 한없이 혼란스러운 그를 보자 막상 생각했던 말이 말끔하게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은 들은 적이 없는데."

하벨 티에라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 말고 누가?"

하벨은 방금 하벨 티에라가 말하던 '들었다'라는 말을 의식하며 물었다.

손톱을 뜯던 하벨 티에라는 조용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역시 네가 혼자서 벌인 일이 아니었군."

하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벨 티에라와 누군가 같이 벌였다는 게 사실일 줄이야.

처음부터 계획된 것처럼 들리는 저 말에 그제야 억눌렀던 분노가 쏟아져나왔다.

하벨은 단번에 하벨 티에라의 멱살을 쥐었다.

"날… 왜 부른 것인가."

그 말에 하벨 티에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나였는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몰라 하벨은 당연하게도 알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방금 일어난 균열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벨 티에라가 나타난 걸 본다면 놈이 아직 의식 속에 있는 게 분명했다.

다 봤겠지.

자신이 그렇게도 발악하는 모습을 전부 다 보고 있었겠지.

"재미있었는가?"

하벨은 하벨 티에라를 흔들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나뒹구는 모습을 보니 즐거웠는가? 그래. 거기서 나를 지켜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가? 네놈 대신 발악하는 게 우습다? 아니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당장 대답하게!"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하벨 티에라는 무언가를 꾹 참으며 소리쳤다.

"재미라뇨! 우습고, 다행이라뇨! 할 수만 있다면… 정말 할 수 있었다면 제가 했습니다! 제가 했을 거라고요!"

"억울한가?"

하벨은 멱살을 놓고 손가락을 들어 하벨 티에라의 가슴팍을 찔렀다.

점점 하벨 티에라의 눈동자가 흔들리다 기어코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가?"

"……."

"해내지 못해도 네가 했어야지. 세상을, 가족을 그렇게도 구하고 싶었으면 네가 했어야지 않겠나?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너는 책임을 회피했을 뿐이다."

한껏 눌러 담은 하벨의 비웃음에는 뾰족함만이 가득했다.

"억울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제 몸으로 무얼 할 수 있습니까?"

하벨 티에라는 미간에 잡힌 주름만큼이나 주먹을 꽉 쥐었다.

"아시잖습니까. 저만큼이나 아주 잘 알고 있잖습니까……? 병신 같은 그 몸으로……."

"착각하지 마. 그 몸을 나한테 준 건 너다. 그 병신 같은 몸을 나한테 넘겨버렸다고. 그럼에도 네놈은 나보고 해내라며 같잖은 부탁으로 나를 이 몸에 넣어버리지 않았던가?"

하벨이 꺼내는 한마디, 한마디에 하벨 티에라는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합니다. 소리쳐서 미안하고, 이렇게 멋대로 제 감정만 꺼내서… 너무 미안합니다."

일렁거리는 하벨 티에라 눈동자 위에 짙은 미안함으로 뒤덮였다.

"정말… 입이 몇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건 알지만, 아니, 무얼 말해도 당신의 신뢰를 얻을 수 없지만."

하벨 티에라는 눈을 잠깐 질끈 감다가 떴다.

"…이건 당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대체 어디가 그렇다는 건가? 여기는 나와 다른 세계이질 않은가."

하벨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이 얼마나 기가 찬 소리인가.

"…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 게 날 위한다는 그런 개소리는 아니길 비마."

하벨 티에라를 보는 하벨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참고 참았지만, 점점 선을 넘지 않는가.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순간, 하벨 티에라의 언성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떨구었다.

"새 인생이라니…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내뱉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들었을 뿐입니다. 더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 합니다."

하벨 티에라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올렸다.

그는 갑자기 흠칫거리더니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제 저는 여기까지네요."

"잠깐만. 멋대로 끊지 말거라. 너에게 물어봐야 할 말이 많으니."

"역겹겠지만, 제가… 아직은 사라질 수 없어서 그럽니다. 방금 일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하벨 티에라는 당장 하벨을 밀 것처럼 손을 들었다.

"잠깐."

하벨이 하벨 티에라를 말렸다.

"이것만 묻지."

"나중에 더 물어보셔도 됩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하벨이 꺼내는 말에 하벨 티에라는 주춤거렸다.

조금 쓰게 웃다가 그대로 하벨을 밀었다.

"당신께는 그저 한없이 미안합니다. 전부, 전부 말입니다."

* * *

톡.

톡톡.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하벨은 천천히 눈을 떴다.

망할 하벨 티에라.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고 차차 이전 일이 떠올랐다.

'아, 맞다. 또 쓰러졌지 않던가.'

이 몸이 정령수를 받지 못해 난리가 났다.

불순물이 차오를 때마다 정령들이 주는 정령수를 이용해 버텼는데.

'그 꼼수가 갑자기 막혀버렸으니…….'

하벨은 방금 자신이 보고 왔던 걸 천천히 되짚어가다 왜인지 몸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살짝 내렸다.

눈앞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인 물, 독, 식물, 불, 바람이 보였다.

'…이건.'

이전에 단계를 넘고자 정령들이 도와줬을 때도 이렇게 가지고 있던 힘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대장!]

아라가 무언가 꼬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 너무도 반갑게 소리쳤다.

하벨을 꽉 안는 손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감촉이 보드랍고, 따뜻해 하벨은 그제야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내가 단계를 건너뛰고 있다는 건…….'

하벨이 살짝 상체를 일으키자 아라 말고 다른 정령들이 하벨의 시야에 들어왔다.

[하벨. 일어났어?]

[정말 죽은 듯이 자더라. 하루가 지났는데도 깨어나지 않아서 얼마나 무서웠는데!]

"…이건 갑자기 왜 하는 거야?"

하벨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자신의 힘을 가리켰다.

[어제 정령수를 넣던 와중에 단계 끝에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하루가 시작됐는데도 네가 깨어나지 않으니까.]

[네 몸 상태가 얼른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에 우리 모두 의견을 나눴고 전부 다 동의했어.]

"그러니까……."

하벨이 입을 열자 정령들이 다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고맙다는 말이나 뭐 그런 건 안 해도 괜찮아.]

[맞아. 그런 말은 필요 없어! 이건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고, 네가 오래오래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니까.]

하벨이 여전히 어리둥절하며 눈동자만 굴리자 정령들은 해맑게 웃었다.

[지금은 비가 오지만, 아까 해가 뜰 때 하늘을 봤어.]

정령들이 하늘을 가리켰다.

[너무 예쁘더라.]

그들은 활짝 웃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와 내리쬔 햇살은 당장 눈물을 흘려버릴 정도로 포근했다.

[네 덕이야, 하벨. 그러니까 이건 당연히 해줄 수 있어.]

정령 중 일부는 하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쓰러질 때 진짜 놀랐어.]

[너는 물의 저주가 심해서 비가 내리면 더 아프다고 했어. 그래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거야.]

[비는 곧 그칠 거야. 갑자기 내리더라.]

[맞아. 이 몸도 깜짝 놀랐어. 밖에 카샬을 불러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장이 깨어났어.]

아라가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대장! 너무 좋아! 안 아프면 더 좋은데!]

하벨은 아라를 토닥거렸다.

[그럼 이제 시작할게.]

정령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각 힘을 중심으로 다섯 조로 나뉘어 부르며 둥글게 움직였다.

꺄르르.

이번에는 가볍게 부르는 노래에 경쾌한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전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돌며 가끔 흥겨운 춤도 추었다.

아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벨이 가진 물의 양이 더욱 커지자 파도처럼 천천히 휘몰아쳤다.

[어……?]

잠깐 하벨이 가진 물의 힘에 반영구 정화제처럼 무언가 반짝이는 걸 보았다.

잠깐 눈을 비볐다가 다시 보니 보이질 않았다.

'이 몸이 잘못 봤나?'

짝짝.

정령들이 손뼉을 마주쳤다.

세 개로 나눠진 독의 힘이 다시 하나로 합쳤다.

빨강, 검정, 보라 차례대로 색을 띠던 독은 검지만 한 뾰족한 삼지창처럼 모습을 띠었다.

'……?'

하벨은 눈을 깜빡거렸다.

물의 힘이 커졌을 때, 아주 잠깐 용왕의 힘과 비슷한 힘을 느꼈다.

착각이겠거니 생각하던 와중에 마주한 삼지창에 왠지 웃음이 났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각각 성질을 띠던 독이 합쳐진 걸 보면 이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쑤우욱.

반짝거리던 줄기가 자라나 가지를 띄우자 근처에 싹 하나가 났던 곳에 다른 싹들마저 같이 성장해 두 개의 잎을 단 채로 흔들거렸다.

'조만간 작은 숲을 이룰 것 같네.'

바람은 몸집을 키워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불 역시 커진 상태에서 옆에 작은 불씨를 터트렸다.

여전히 듣기만 해도 흥겨운 노래가 정령들에게 퍼져 나왔다.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자신을 위해 추는 춤과 노래가 제대로 닿았다.

아프지 마라.

건강해라.

행복해져라.

정령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그들이 자신을 위해 비는 축복이 들려왔다.

'…이런 의미였다니.'

하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도 행복해져."

자신에게 축복을 빌고 있는 것보다 더.

하벨은 작은 친구들을 향해 따스하게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