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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39화 (139/415)

139화. 쥐었다

* * *

하벨은 다시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큰일이네.'

별거 아닌, 아주 작은 선물이었지만.

마치 스치듯 벌어진 일이었지만.

하벨은 가슴이 찌르르한 행복감에 좀처럼 미소가 가라앉질 않았다.

그저 한 번이었다.

일부러 정령들을 구한 것도 아니었고, 검은 물을 없앤 것도 정령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러면… 떠나는 게 점점 쉽지 않은데.'

자신을 싫어하던 정령들이 자신을 인정해줬기에 더 그럴까.

그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반기기는 그 그리움이 그토록 컸을까.

[예쁘다. 그렇지, 대장?]

아라는 꽃냄새를 맡고는 눈을 반짝거렸다.

"그래, 아라야. 정말 예쁘네."

하벨은 꽃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령들이 선물을 준 건 이번에 두 번째였다.

"다 네 덕이야."

하벨은 꽃 하나를 헤레스에게 넘겼다.

헤레스가 쓴 선글라스가 살짝 흘러내렸다.

'정령이… 도련님께?'

하벨에게 저 꽃을 준 자들은 정령들이었다.

허공에서 꽃이 나타나 하벨의 손바닥 위에 하나씩 올려주지 않았던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헤레스는 감격스러우면서도 얼떨떨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하벨은 울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구석진 곳에 웅크려 앉아 너무도 서럽게 울부짖고 있지 않던가.

―…왜.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왜 나는 할 수 없는 거야?

지금 하벨이 영혼이 뒤바뀌어 하벨 티에라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여전히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 덕이라뇨?"

헤레스는 일단 하벨에게 다가가 건넨 꽃을 받으며 물었다.

"모두가 나를 달라진 '하벨 티에라'로 보았기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겠어?"

하벨은 방긋 웃었다.

헤레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방에 갇히든, 병원에 있든, 어딘가에 갇힌다는 전제는 달라지지 않을 테지.

"그러니까 이 일로 앞으로 나한테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어, 헤레스."

하벨은 마지막으로 선을 확실히 그었다.

"…도련님."

헤레스는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더는 삼키기 어려웠다.

"저……."

"헤레스 씨는 어서 타시고, 그만 문 좀 닫으시죠, 도련님?"

삐딱한 카샬의 목소리에 헤레스는 잠깐 시선을 돌렸다.

"이래서 제가 맨 끝에 앉도록 한 겁니까?"

"그럴 리가. 내리기 힘들어서 여기 앉은 건데?"

하벨은 왜 또 시비냐는 눈빛으로 카샬을 바라보다 뒤늦게 헤레스를 보았다.

"아까 뭐라고?"

"…아닙니다."

헤레스는 고개를 살짝 내렸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 * *

"…진짜로 그래도 돼?"

칼리우스가 눈을 반짝거렸다.

"안 될 게 뭐가 있어?"

하벨의 대답에 칼리우스는 후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면 마법사들이 나, 쫓아올 텐데."

"일부러 쫓아오라고 한 거야."

"그런데 하벨은 왜 후드를 쓰고 있어?"

칼리우스의 시선이 다른 이들을 향해 있었다.

수도 밖에서 합류한 페트리오와 같이 마차를 타고 온 레디나, 카샬, 헤레스까지 전부 변장하지 않았는가.

칼리우스는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

자신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단지 마법사만 끌고 오지 않으니까 그래. 그리고 나머지는 적을 상대해야 할 테고.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지."

하벨은 더 꼼꼼히 자신을 숨겼다.

마법사만 온다면 다행이지만, 또 어디에서 숨어 있을지 모를 암살자와 귀족 세력들, 다른 나라 세력들까지.

아주 한 뭉텅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도 도중에 겨우 갈아탔는데, 도련님께서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시면 곤란하지. 그건 나 잡아가라는 말과 뭐가 달라?"

카샬은 칼리우스의 후드를 다시 젖혔다.

칼리우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그럼 저는 잠깐 숨어서 따라갈게요. 저도 들켜봤자 좋을 게 없어서요."

레디나는 하벨에게 걸어와 슬쩍 말을 걸었다.

소리도 없기에 하벨은 깜짝 놀랐고, 레디나는 실실 웃으며 만족했다.

"놀라셨네요?"

"레디나."

"말씀하세요."

레디나는 여전히 방긋거렸다.

"기왕 숨을 거 용용이 근처에 있어 줘."

이곳에 검은 달이 숨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알겠어요. 잘 보고 있을게요."

하벨이 허락하자 레디나는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였다.

레디나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아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몸은 레디나가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어.]

"좀도둑."

하벨이 아라를 곁눈질로 바라보다 조용히 페트리오를 불렀다.

"예, 도련님."

"여기 근처가 맞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페트리오는 주변을 살피다 목소리를 더 낮췄다.

"이곳 근처에 자금줄 행방을 아는 놈이 숨어 있습니다."

자신이 붙잡은 마법사들의 기억을 읽고 조금 불확실하나, 마법사 협회의 자금줄 행방을 찾아냈다.

크라마에게 인상착의와 놈이 있었던 지역의 특징까지 알려주자 그는 잠도 자지 않고 새로 탐사하며 지역의 위치를 알아냈다.

요 며칠 협회의 장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에 억지로 잠도 재우고, 밥도 먹이며 죽지 않게 챙겨준 보람이 느껴졌다.

페트리오의 시선이 잠깐 건물로 향했다.

―페트리오 씨. 우리는 마법사 협회의 눈을 피하려고 각지에 흩어져 있어요. 이름은… 음, 귀찮아서 정한 적은 없지만, 이거 하나는 정했어요. 신호요.

크라마가 말한 것처럼 정말 있을까.

페트리오는 의심하면서 건물 벽으로 걸어갔다.

"…뭐 해?"

하벨이 물어보았지만, 페트리오는 아직 무엇도 확실하지 않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버려 두십시오. 도련님께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카샬은 빈정거리면서 자신의 검을 쥐었다.

슬쩍 시선을 내렸다.

분명 여기에서 정령이 나타났다고 했다.

눈을 뜨면 검의 소리가 나는 것도 정령 때문일까.

카샬은 하벨을 쳐다보며 간지러운 입을 다물었다.

―내가 도와줄게, 카샬.

아직 하벨이 꺼낸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하벨이 도와주면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저, 도련님."

헤레스가 주변 눈치를 보다 말을 꺼냈다.

"왜 그래?"

"대체 뭘 하실 생각이신 거죠?"

"아."

후드에 가려지지 않은 하벨의 하관에 미소가 피어났다.

"용용이가 미끼."

하벨은 칼리우스를 가리켰다.

"내가 미끼라고?"

칼리우스는 어떤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벌써 즐거움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용용이를 뒤쫓다가 적이 나타나면 덮치면 돼. 간단하지?"

"…하."

이어지는 하벨의 말에 카샬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저럴 줄 알았다.

'우당탕'이라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숨 쉬지 마, 카샬.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어."

"그럼 달리 생각하신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카샬은 말을 하면서도 의심을 풀지 않았다.

하벨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라를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아라가 있으니까."

[…이 몸이?]

아라는 눈을 크게 떴다.

"아라가 가진 능력이랑 정령들한테 말 좀 섞어 볼 생각이야."

하벨은 이어 자신을 가리켰다.

[아! 이 몸이 가진 능력이라면 왕실에서 땅이 이 몸한테 알려주는 그 힘을 이용한다는 거지?]

"그래, 아라야. 맞았어."

하벨은 사람들 틈에서 아라를 힐끔 보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정령들의 숫자가 다른 곳보다 적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라가 괜찮은 걸로 봐서는 부정한 건 근처에 없는 듯했다.

쾅쾅.

갑자기 벽을 두드리는 페트리오의 행동에 하벨은 페트리오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뭐가 마음에 안 들었……."

"에이, 망할! 또 떨어졌네!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은 취업 문이 왜 이렇게 좁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에 하벨은 말을 멈췄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페트리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어 이게 진짜 가능하냐는 듯한 얼떨떨함이 뒤섞인 표정에 하벨은 페트리오가 무얼 했는지 눈치챘다.

"…신호였어?"

"그, 그렇습니다. 크라마의 사람들입니다."

"좋아. 작전은 완벽하네."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마의 사람들이라면 마법사가 아닌가.

방금 자신의 위치를 알았으니 적당히 알아서 돕겠지.

"…원래 이러세요?"

헤레스가 목소리를 낮추며 페트리오와 카샬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디가 완벽하다는 건가.

미끼가 된 칼리우스와 갑자기 등장한 크라마의 사람들.

그 둘을 어떻게 이용할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련님께서는 신중하신 분입니다."

"이제 아셨습니까? 도련님께선 아주 충동적인 행동을 밥 먹듯이 하신다는 걸요."

페트리오와 카샬의 목소리가 갈리자 헤레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하벨은 페트리오와 카샬이 서로를 째려보는 걸 확인하자 칼리우스를 불렀다.

이제 또 유치하게 싸울 테지.

"용용아. 둘은 신경 쓰지 말고."

"응. 하벨이 어린아이는 싸우면서 큰다고 말했잖아."

"그럼, 그럼."

하벨은 서로의 멱살을 잡은 페트리오와 카샬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비웃음을 가득 그렸다.

"어쨌든, 용용아. 이렇게 큰 시장에 나오고 싶었다며?"

"응. 시장에 나와서 뭐든 사보고 싶었어. 나는 돈도 없어서 시장에 가면 안 된다고 말했어."

[아니야, 용용아.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돈이 없어도 갈 수 있어. 이 몸은 대장이 기절했을 때, 세렌이랑 루룸이랑 같이 가봤는걸.]

'……?'

하벨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가 쫑긋 섰다.

아라한테 금화를 사준다고 해놓고, 손바닥을 찌른 검은 물 때문에 몸이 급격히 나빠져 죄다 미뤄지지 않았던가.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었고.

"그런데 진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냥 바라봤는데, 지금은 쫓기고 있어서 바라보는 것도 어려워졌어."

칼리우스는 시장을 바라보며 손톱을 뜯었다.

"이제 그런 걱정할 필요 없어. 이참에 원하는 거 사도 돼."

하벨이 당당히 말해도 칼리우스는 살짝 주눅 들었다.

"…나 아직 월급날 멀었는데."

"도련님이 다 내실 거니까 그냥 사라는 거잖아?"

카샬이 당당히 말하자 칼리우스가 깜짝 놀랐다.

"하벨이 왜 내는 거야?"

"그게 주인의 덕목이 아니겠어? 도련님께서 사준다면 군말 말고 당장 달려가서 비싼 걸 짚어. 나중에 팔아넘겨도 돈이 될 만한 거 말이야."

"카샬 씨!"

헤레스가 기겁하며 카샬을 불렀다.

지금 칼리우스한테 뭘 알려주는 건지.

"그래. 너 지금 칼리우스 님께 무슨 말을 하는 건데?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어?"

페트리오가 헤레스를 두둔하자 카샬이 입꼬리를 카샬이 살짝 올렸다.

"아니, 내가 틀린 말 했어? 이것도 모르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모름지기 세상을 살아가려면 첫째 돈이고, 둘째도 돈이었다.

카샬은 칼리우스가 언제까지 순진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틀린 말은 아니지. 용용아, 잘 들었지?"

하벨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헤레스와 페트리오가 황당함을 드러냈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더라도 하벨은 칼리우스한테 카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 뻔뻔함을 칼리우스가 배우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도움이 될 테지.

"응. 들었어. 카샬이 돈이 될 만한 건 다 사래."

"좋아, 좋아. 이제 아라하고 먼저 걸어가 있어. 뭘 사고 싶으면 뒤에서 계산한다고 말해. 자, 출발."

하벨은 손가락을 들어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가리켰다.

[대장. 그럼, 이 몸이 용용이를 지키는 거야?]

"그래, 아라야. 이상하다 싶으면 소리쳐."

하벨은 아라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응. 이 몸은 정신을 바짝 차릴게.]

아라는 칼리우스와 가기 전에 하벨에게 정령수를 넣어주었다.

[대장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해.]

하벨이 놀라자 아라는 배시시 웃고는 칼리우스와 함께 먼저 출발했다.

시간이 지나면 정령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긴 하지만, 하벨은 밀려드는 감격에 입을 열었다.

"아라가… 나한테 정령수를 줬어."

삐비빅.

카샬은 곧바로 하벨의 열을 쟀다.

정령수를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이었다.

"어때요?"

헤레스가 재촉하자 카샬은 온도를 보여줬다.

"…미열이 있으셨군요."

헤레스는 안경을 살짝 내려 하벨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측은함이 뒤섞여 있었다.

* * *

"…우와아아."

칼리우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봤던 시장보다 훨씬 컸기에 어딜 보아도 신기한 게 많았다.

[우와아아!]

덩달아 입을 벌린 아라는 눈을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게 많아!]

"음식도 많고!"

칼리우스는 두 주먹을 가득 쥐었다.

[이거 진짜 부드러워, 용용아!]

아라와 함께 부드러운 천의 촉감도 느껴보고.

"반짝거린다."

아라가 한 가게 앞에 떠나지 못하자 앞서 나가던 칼리우스가 뒤돌아 가게에 진열된 것들을 보았다.

아라가 좋아하는 금화가 가득했다.

시장은 어딜 보아도 재밌고.

저길 보아도 즐거웠다.

꿀꺽.

칼리우스는 자신의 코를 붙잡는 향긋한 냄새에 시선을 돌리자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고기를 튀긴 음식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용용아. 먹고 싶으면 얼른 사.]

"…그래도 될까?"

아라가 재촉하자 칼리우스는 목소리를 낮추며 망설였다.

[응응. 저기 봐봐.]

아라의 손가락에 칼리우스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구경하느라고 하벨이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벨이 방금 자신이 봤던 장난감을 사고 있지 않은가.

하벨이 손짓하자 아라가 빠르게 다가갔다가 다시 칼리우스에게 돌아왔다.

하벨이 무어라 말했을까.

칼리우스는 초조해하면서도 호기심을 느껴 아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장이 방금 용용이가 본 거 싹 다 샀으니까 걱정하지 말래.]

칼리우스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본 걸 다 샀다니.

"정말로……?"

[응. 정말로 다 샀대!]

'왜?'

칼리우스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동족이기에 그런 걸까.

'그런 지식은 내 머릿속에 없는데.'

칼리우스는 그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금방 입꼬리가 올라갔다.

[…으으음.]

아라가 칼리우스가 빤히 보는 음식들을 덩달아 쳐다보며 한껏 고민했다.

[미안해, 용용아. 이 몸은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어.]

아라의 말에 칼리우스는 정신을 번쩍 차려서는 그제야 음식을 눈에 담았다.

손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던 순간, 몸에서 울리는 경고음이 들려왔다.

짙어지는 마나 냄새.

마법사들이었다.

'…역시 날 쫓아왔어.'

칼리우스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사방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게 눈에 보였다.

칼리우스는 그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부분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어, 어.]

달라진 칼리우스의 모습에 아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큰 시장인 만큼 사람들이 많았고, 뒤에는 하벨과 카샬, 페트리오, 헤레스가 뒤쫓아 오지 않은가.

아라는 고민하다 땅이 알려주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이, 이쪽으로 달려, 용용아!]

아라가 가리킨 곳은 오른쪽이었다.

땅이 저쪽으로 가길 바랐다.

"응!"

칼리우스는 힘차게 대답해서는 오른쪽으로 달렸다.

분명 쫓김에도 불구하고 칼리우스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이제 왼쪽으로 돌아!]

아라와 함께였으니까.

사람들 틈 사이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칼리우스는 골목을 지나 무너진 폐가 앞에 멈췄다.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라의 지시가 들려오지 않았고, 숨어 있던 마법사들이 걸어나왔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마법사 중 한 명이 칼리우스한테 손을 뻗었다.

칼리우스는 그들의 눈동자에 담긴 어떤 강렬한 욕망을 보았다.

하벨과 달리 짙고 거무튀튀해 너무도 불길했다.

칼리우스는 두려움이 밀려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포근한 감각에 움츠렸던 몸을 풀었다.

[안 돼, 용용아! 대장이 낯선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된다고 그랬어!]

아.

칼리우스는 다시금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인지하며 힘껏 소리쳤다.

"싫어! 너희랑은 절대로 안 가!"

"잘했어요. 낯선 사람은 따라가면 안 돼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 감으세요."

레디나였다.

칼리우스와 아라가 그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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