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차례대로(3)
* * *
"……."
바안은 잠깐 침묵했다.
"물… 마법사요?"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닐까 싶어 한 번 더 물었다.
"예, 물 마법사입니다."
"정령사라고 밝혀야 하는 게… 아닙니까?"
바안은 그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벨이 정령사가 되었다는 건 티에라 가문의 축복이자 하벨에게도 유약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가 아닌가.
잠깐.
바안은 밀려오는 생각에 입을 살며시 벌렸다.
"…마법사 협회가 꼴 보기 싫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습니까?"
"예. 그런 의미였습니다."
하벨은 잠깐 말을 멈췄다.
똑똑.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바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올려둔 종을 흔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향긋한 차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아라는 벌써 꼬리를 흔들었다.
왕실 집사가 안으로 들어와 차를 내려놓은 뒤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드세요. 하벨 공이 그렇게도 마시고 싶다던 유자차입니다."
바안은 차를 권했다.
킁킁.
아라가 찻잔에 매달리려고 하자 하벨은 아라의 꼬리를 잡았다.
"뜨거우니까 여기 잡아야지."
하벨이 손잡이를 가리키자 아라가 손잡이에 매달려 코를 킁킁거렸다.
[…하. 이 몸은 이런 냄새가 엄청 좋아! 꽃향기도 좋구, 차 냄새도 좋구.]
하벨은 아라의 행복한 모습에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바안을 바라보았다.
"예상하신 대로 내부에서 치고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전하."
하벨이 호칭을 바꾸자, 바안은 벌써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결코, 전하께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순수함이 뒤섞인 미소가 하벨의 얼굴에 드러났다.
* * *
"…말씀하셨습니까?"
마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다 말고 카샬이 물었다.
"그럼."
"도련님. 진짜 말씀하셨습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말입니까?"
하벨의 대답이 믿기지 않아 카샬이 재차 물었다.
"그렇다니까. …카샬."
하벨은 대답하다 말고 문득 드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
"예, 도련님."
"혹시 최근에 사기라도 당했어? 내가 갚아줄게. 그건 해줄 수 있어. 알고 봤더니, 이미 건물 주인이더라고."
카샬이 그 말에 다급히 걸음을 멈췄다.
"…거, 건물 주인이요?"
"몰랐어?"
"용돈을… 받으신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충격이 뒤섞인 카샬의 표정에 하벨은 웃었다.
"네 전주인인, 음, 하벨 티에라가 너한테 건물을 뺏길까 봐 그랬나 보지. 아니면 네가 질투할 걸 아니까……."
하벨은 말을 하다 말고 걸음까지 멈췄다.
"……?"
하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찌푸리고, 눈을 비빈 후에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마차 옆에 서 있는 레디나와 칼리우스 말고 헤레스가 보이질 않는가.
평소 안경이 아닌 선글라스와 후드로 얼굴을 가렸지만, 헤레스가 분명했다.
[헤레스다!]
아라가 힘껏 외치자 하벨은 현실 부정은 그만뒀다.
"…저기 헤레스가 보이는데?"
하벨이 더듬거리며 묻자 카샬도 잠깐 당황했다.
"헤레스 씨가 따라온다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아니."
하벨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어쩐지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아, 왕실로 가신다고요?
헤레스한테 허락을 맡기 전에 유난히 밝지 않았던가.
―괜찮아요. 가셔도 됩니다.
이상할 정도로 헤레스가 긍정적이었고.
'…그때 왜 저러나 싶었는데.'
하벨은 룬델을 대신해 자신을 배웅했던 라르웬의 표정에 비웃음이 살짝 들어가 있었음을 이제야 떠올렸다.
'형님 짓이네.'
하벨은 정신을 번뜩 차리며 당장 망토를 걷어 정화 장치를 보았다.
순간, 흠칫 놀라며 다시 고개를 올려 카샬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카샬의 목소리가 굳어 있었다.
정화 장치에 거품이 차올랐다.
"바안 저하와 단지 이야기만 하신 거 아니십니까?"
"맞아. 이야기만 했어."
[어……. 으음, 대장이… 딱 한 번만 정령수로 힘을 썼어. 원래 그 정도는 괜찮은데.]
아라가 하벨 대신 변명하다 말고 꼬리를 바짝 세웠다.
[아까! 헙!]
아라는 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하벨이 하벨 티에라의 기억을 봤다는 건 비밀이지 않겠는가.
실수할 뻔했다.
"카샬."
"안 놔드릴 겁니다."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주사 하나만 놔줘."
"저기 헤레스 씨가 있잖습니까?"
"아직 우리를 못 봤……."
"도련님!"
칼리우스의 해맑은 소리에 카샬이 씩 웃었다.
"이제 봤겠네요."
"…용용아."
하벨은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잠깐 숨을 길게 내쉬었다.
칼리우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헤레스를 볼 때마다 뭔가 찔리고, 움찔거리는 자신이 잘못됐을 뿐이지.
하벨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라와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마차로 걸어갔다.
"도련님."
레디나가 하벨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왜?"
"왜 헤레스 씨가 온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죽일 뻔했잖아요.
그 뒷말이 생략되었다는 걸 알기에 하벨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몰랐는데?"
"도련님께서 모르셨다고요?"
"네. 도련님께서는 모르셨습니다."
헤레스가 레디나의 물음에 대답하며 안경을 살짝 내렸다.
"가주님하고 둘째 도련님하고 저하고 머리를 맞대서 나온 결과니까요."
헤레스는 하벨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일단 이렇게 몰래 따라오게 되어 정말 죄송했습니다."
"날 따라온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하벨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헤레스가 마법사이기에 도움이 되는 건 당연했지만, 자기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음."
헤레스는 잠깐 머뭇거렸다.
왠지 당황한 눈치라 하벨은 자신이 물으면 안 될 걸 건드렸나 싶은 마음이 컸다.
"도련님."
"그래."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헤레스가 호흡을 참자 하벨의 망토가 살짝 들췄다.
헤레스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하벨은 단번에 그녀가 온 이유를 알았다.
"…이해했네. 말하지 않아도 돼."
"아셨다니 다행입니다. 지금 머릿속에 정말 많은 말이 맴돌지만, 일단 타시죠."
헤레스는 마차를 가리켰다.
마차 창문에 비친 카샬은 너무도 행복해하고 있었다.
* * *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헤레스가 한숨을 내쉬자 하벨은 움찔거리며 마차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래. 고민이 많아 보이네."
"가주님께서도 계속 상담한 내용이지만, 역시 제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결론이 왜 그렇게 흘러가는가?"
"지금까지는 도련님의 활동 범위가 제 눈에 닿았기에 저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쩌다가… 음."
헤레스가 말꼬리를 늘이자 하벨은 긴장했고, 아라는 혀를 날름거렸다.
"아닙니다. 괜한 소리를 해서 불안함을 키울 수는 없지요."
두어 번 정도 물의 저주 때문에 심장이 멈춘 적이 있다고 말하면 얼마나 불안할까.
"그래서 앞으로도 나를 따라올 생각이라는 거지?"
헤레스가 말을 생략하자 하벨은 잘됐다 싶어서 당장 말을 바꿨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도리어 헤레스가 주춤거렸다.
"아니, 왜 움츠러드십니까? 도련님 앞에서 더 당당해지셔도 됩니다."
카샬은 헤레스를 격려했다.
하벨을 말로써 짓누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룬델, 라르웬, 그리고 헤레스.
하벨이 지금 신형 마차를 타고 왕실로 온 건 단지 룬델을 대신해 티에라 가문의 의사를 밝히고 귀족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검은 달 지부를 박살 내고, 마법사 협회의 자금줄 행방을 추가로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누가 제발 말려줬으면 하고 생각한 순간에 헤레스가 왔으니 왜 기쁘지 않을까.
"너는 진짜……."
하벨은 카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래도 집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헤레스."
"예, 도련님."
하벨이 입을 열자 헤레스는 긴장했는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미 하벨에게 사과할 일도 있는데 거기에다 기름까지 부은 격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갔다가 오면 멀쩡하게 두 발로 들어오는 모습을 요즈음 언제 봤는지 까마득했다.
정말 어떻게 제 몸을 저렇게 막 쓸까 싶을 정도라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는지 알고 있나?"
"예상하고 왔어요."
평소에 가볍게 들려왔던 하벨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져 헤레스는 허벅지에 올려둔 손을 주먹 쥐었다.
"마법사 협회를 박살 내실 생각이시죠?"
"그래. 헤레스 자네한테는 껄끄러운 곳일 테지만, 나는 지금 마법사 협회의 자금줄 행방을 뒤쫓고 있어."
분명 마법사 협회를 언급했을 때마다 티가 났을 거라 생각했기에 헤레스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마주쳤어야 했어요."
헤레스가 쥔 주먹이 떨려왔다.
"그게 오늘인 거고요."
하벨을 만나러 올 때, 다 털어놓자고 다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차마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헤레스."
하벨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헤레스의 몸이 크게 떨렸다.
대체 얼마나 긴장한 건지.
"내게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몰라도 천천히 말해도 괜찮네."
하벨은 떨리는 헤레스의 주먹을 보며 말을 꺼냈다.
"…사과드릴 게 있어요."
"드웰 일이라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네."
하벨은 다시 창문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드웰은 아직도 티에라 가문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직은 맨정신으로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드웰이 머무는 곳 역시 자신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고.
"제 오진이… 맞는 거였네요."
헤레스의 목소리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눈앞이 순간, 흐려져 헤레스는 꽉 쥐었던 주먹을 풀지 못했다.
이 참담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동을 느꼈을까.
"죄송합……."
"됐어."
하벨은 헤레스의 사과를 말렸다.
"잘 생각해 봐, 헤레스."
하벨이 씩 웃자 카샬은 수상쩍은 미소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대체 또 뭘 하려고.
"나는 처음부터 '하벨 티에라'가 아니라고 말했어. 그런데 이걸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을까?"
한층 편안해진 하벨의 말투에 헤레스는 살짝 놀라면서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아니야. 이 몸은 처음부터 대장을 믿었어! 대장은 용왕이잖아?]
아라가 배시시 웃자 하벨은 아라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헤레스, 네 덕에 나는 이곳에 적응할 수 있었고, 새로운 인연을 쌓아 올렸어."
하벨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애초에 이건 헤레스가 오진했다고 볼 수 없었다.
영혼이 바뀐 걸 누가 진단할 수 있을까.
오히려 헤레스가 세워둔 벽이 자신에게는 적응을 위한 시간이 되었고, 자신 역시 하벨 티에라의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니.
그렇다고 하벨 티에라가 자신에게 말했던 '세상이 멸망한다'와 '하벨 티에라가 회귀자'라는 말을 어떻게 섣불리 꺼낼 수 있을까.
애초에 그건 다른 문제였다.
"…정말 영혼이 바뀌었군요."
헤레스는 필사적으로 검게 물든 선글라스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드웰이 왔고, 자신한테 말도 못 할 정도의 일이었으니.
이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돌려주려고 했어."
[……?]
아라가 하벨이 꺼내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대장이 영혼을 돌려준다면 대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답을 알 수 없었다.
아라는 처음 느껴보는 묵직한 아픔에 숨소리를 섞으며 물었다.
[대장이 하벨 티에라한테 영혼을 돌려주면 대장은… 어디로 가는데?]
"거절당했어, 아라야."
하벨은 깊어지는 아라의 슬픔에 다급히 말을 꺼냈다.
"……."
헤레스는 숨을 들이켠 상태로 하벨을 바라본 뒤 눈동자를 굴려 카샬에게 향했다.
"저는 갑자기 왜 보십니까?"
"…그러니까, 그게."
카샬이 꺼내는 말에 헤레스는 당황했다.
카샬이 지금 하벨 말고, 영혼이 바뀌기 전 하벨에게 얼마나 극진했던가.
이렇게 침착하다는 건 이미 짐작하고 받아들였다는 말이 아닌가.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헤레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게 자신의 오진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왔다.
"죄송하지만, 잠깐만… 마차 좀 세워주시겠어요?"
쾅쾅.
카샬이 마차 벽을 때리자 마차가 급히 멈췄다.
"괜찮아?"
하벨이 묻자 헤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헤레스가 마차 문을 열었고, 아라의 귀가 쫑긋거렸다.
[…어?]
혹시 모를 습격에 긴장하던 카샬은 헤레스가 땅을 밟자 다급히 문 쪽으로 옮겨 탔다.
"도련… 님?"
하벨이 갑자기 마차 밖을 보며 웃질 않는가.
카샬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오직 나무뿐,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뭐가… 있는 건가요?"
토악질하려던 헤레스는 심각한 카샬의 목소리에 나무를 잡고는 경계심을 세워 물었다.
"있어."
하벨이 밖을 향해 몸을 돌리자 카샬은 그를 붙잡으려다 말고 멈췄다.
향긋한 꽃냄새가 퍼져왔다.
'…정령들이 왔다고?'
카샬의 눈이 커졌다.
[하벨!]
하벨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에게 안기는 정령들을 맞이했다.
찌르르.
교감이 느껴졌다.
저들의 반가움은 정말이었다.
[지나가다가 널 봤어! 티에라 가문 문장도 봤고!]
[맞아! 네가 왕실로 가더라?]
정령들은 꺄르르 웃었다.
저들은 수도에서 벌어진 거대 정화 장치 사건에서 만난 정령들이었다.
[아라야! 너도 반가워!]
정령들은 아라에게도 안겼다.
이미 방긋거리고 있는 아라의 볼때기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나를 보러왔어?"
하벨은 설마 하며 물었다.
[맞아!]
[응! 하벨 널 보러 왔어!]
[왕실에는 들어가기가 꺼려져서 기다렸다가 네가 나오자마자 뒤를 쫓았어. 어떻게 놀라게 해야 하나 하고 말이야.]
정령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선물!]
정령들은 하나씩 꺾어온 꽃을 하벨에게 건넸다.
―용왕님. 여기 선물이에요!
하벨은 그 꽃을 보며 아이들이 수줍게 건네왔던 꽃을 기억했다.
가슴에 천천히 감정 하나가 솟구쳤다.
"…나한테?"
하벨은 알면서도 물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워서.
자신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빛이 너무도 눈이 부셔서.
[그럼. 하벨이랑 아라한테 주는 거야.]
[나는 하벨 널 보면서 꺾어왔어.]
[손 내밀어 봐.]
정령들은 하벨이 천천히 뻗은 두 손에 꽃을 내려놓았다.
빨강, 노랑, 파랑.
색마저 다양했다.
[다음에는 더 예쁜 꽃으로 줄게.]
[나는 저번처럼 아프지 말라고 주는 거야.]
[네 이야기는 내가 엄청 퍼트리고 있지롱. 나중에 하벨 널 칭찬하는 정령이 있으면 내가 그런 거라고 생각해 줘.]
정령들은 낄낄 웃다 하벨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하벨! 다음에 또 봐. 다음에도 예쁜 선물을 준비할게!]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정령들은 하벨을 안아주고 가볍게 떠나갔다.
[응! 안녕!]
아라가 하벨을 대신해 양손으로 흔들었다.
정령들을 바라보던 하벨은 손 위에 올려진 많은 꽃을 향했다.
천천히 미소가 피어났다.
가슴에 치솟는 이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그리웠구나.'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그리웠을까.
여전히 공허했던 자신의 마음에 꽃비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
제일 처음 내려온 꽃비는 아라였다.
그다음에는 룬델이.
그리고 지금.
하벨은 헤레스를 향해 활짝 웃었다.
"…고마워, 헤레스."
헤레스가 준 기회를 통해 정령이라는 작은 친구들과 만나지 않았는가.
티에라 가문에 머물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했을 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의 작은 친구들.'
정령들을 그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벨은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