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좀도둑, 도착!(3)
* *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페트리오는 하벨이 무얼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왕이 죽었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왕이 죽었어."
"……."
페트리오는 이어지는 하벨의 말에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띵했다.
하벨의 시선이 잠깐 시계를 향했다.
"바로 오늘. 그러니까, 아까 내가 너한테 연락하기 20분 전에."
"…이런 미친."
페트리오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약 4~5시간 전이 아닌가.
"내가 이럴 줄 알고, 분명 큰 사건이라고 미리 말해줬잖아? 괜찮아?"
"이건, 이건… 그냥 큰 게 아닙니다! 미친 듯이 크잖습니까!"
페트리오는 무언가 억울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올라갔다.
적당히 큰 사건이 아니었다.
시선을 돌려 카샬을 보았다. 그가 비웃음을 한껏 품고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가.
―정보에 빠삭하다더니 거짓말이네.
카샬이 이런 의미로 저 말을 꺼낸 게 틀림없었다.
아니, 애초에 거기까지 자신이 어떻게 파악하겠는가.
저 망할 놈.
'그럼 이건… 전하를 암살한 놈의 피인 건가?'
페트리오는 병에 담긴 피를 보았다.
대체 누가.
왜.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떠돌아다녔지만, 가장 의아스러운 건 하벨의 태도였다.
직접 봤다는데 왜 저렇게 침착할까.
어떻게 저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당장 레디나는 자신을 보며 측은함이 섞여 있되, 이 혼란을 동감하고 있지 않은가.
페트리오는 밀려오는 생각을 모조리 접고는 일단 피를 머금고 숨을 참았다.
마나가 꿈틀거리자 머릿속으로 기억이 아주 큰 도화지처럼 쫙 펼쳐졌다.
정보를 알 수 있는 기억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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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습니다. 저것들도 왕실 기사라고."
에르티안의 왕을 향해 암살자가 목소리를 냈다.
거친 숨이 살짝 섞여 있었다.
사실은 굉장히 버거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기사들을 욕보이지 말게. 그대가 내 기사보다 조금 더 강했을 뿐이니."
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왕을 향한 암살자의 존경심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무얼 목적으로 이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벌였는지 몰라도 날 죽인다고 해서 에르티안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네."
"어차피 꺼트릴 생각도 없습니다, 전하. 오히려 그 불꽃이 거세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대의 주인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왕이 진심으로 한탄했지만, 암살자의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대는 날 죽이고 사라질 테지.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허락해주겠나?"
"말씀해보시죠."
"내 아들 바안은… 무사한가?"
"무사합니다. 저는 바안 에르티안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혹시 바안을 죽일 생각인가?"
당장 죽음을 앞둔 왕이라기에 그가 꺼내는 목소리나 눈빛에 드러난 서늘함이 페트리오 자신의 심장마저 옥죄여 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암살자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고맙네."
왕은 웃었다.
'아니야. 이 기억이 아니야.'
페트리오는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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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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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무언가 발밑으로 던져졌다.
보따리였다.
"…이번 임무 때, 이걸 들고 가거라."
누군가 말했지만, 자연스럽게 암살자의 윗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네가 이번 임무에 반드시 입고, 써야 하는 물건이다. 너는 반드시 이걸로 죽여야만 한다."
암살자는 깊은 의문을 느꼈다.
"돌아올 수 없을 거다."
"언제든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여야 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에르티안의 왕."
윗사람이 꺼내는 말에 암살자는 큰 충격을 느끼며 잠깐 머뭇거렸다.
"너는 그 왕을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네가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게 확실히 도울 테니, 비밀 통로를 이용해 죽이거라."
"그것이… 그분의 뜻입니까?"
"그렇다."
"제가 그분의 검인 이상, 따르겠습니다."
"너는 이제 코스모피안 왕국의 검이다."
암살자는 고개를 들었다.
"예. 저는 이제부터 코스모피안 왕국의 검입니다."
――
.
.
.
"……."
페트리오는 추가적인 기억을 더 본 후에야 마법을 멈췄다.
비밀 통로를 가르쳐준 자가 누구인지, 그 얼굴을 보았다.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졌어."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칼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맞아. 지금 꼭 대장 같아.]
아라가 하벨을 쳐다본 뒤에 페트리오에게 말을 꺼냈다.
[아니, 대장 얼굴이 더 하얀가? 음…….]
"…괜찮습니다."
페트리오는 잠깐 비틀거리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내가 아니라 네가 침대에 누워야겠어."
하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페트리오는 다급히 손바닥을 보이며 흔들었다.
"아닙니다, 도련님. 거기 가만히 누워 계십시오."
"맞습니다. 좀도둑의 안색이 나빠지긴 했지만, 도련님만큼은 아닙니다. 은근슬쩍 일어날 생각하지 마십시오."
카샬마저 하벨을 말렸다.
하여튼 눈만 떼면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뿐이지.
"여기 좀 앉아요."
레디나가 의자를 가져다주자 페트리오는 겨우 자리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대체 뭘 얼마나 봤길래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그렇게도 볼 게 많았어?"
하벨은 이미 발을 침대 밑으로 내려 페트리오를 바라보았다.
페트리오가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본 적이 있던가.
적어도 자신이 보았을 때는 없었다.
"워낙 놈의 기억에 쓸데없는 게 많아서 찾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암살자 기억 속 대부분은 하늘을 보는 거나, 산을 보는 일이었다.
"…후우, 일단 암살자인 건 확실합니다."
페트리오는 숨을 가다듬고는 말을 꺼냈다.
적어도 2주 전에 누군가를 죽인 기억이 있었으니.
"바안 저하는 애초에 적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적의 목표는 처음부터 전하셨습니다."
'…역시.'
하벨은 자신이 예측했던 부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에르티안 왕국 자체를 이용하기 위해서 바안의 복수심을 일깨워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정체 모를 적의 계획이.
"암살자는 누군가에게 에르티안 왕을 죽이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코스모피안 왕국'을 모함하는 일까지 겸했습니다."
"누군가 에르티안 왕국와 코스모피안 왕국을 의도적으로 이간질하려고 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도련님."
페트리오의 대답에 하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시기가 너무 절묘한데?"
마침 자신이 데론 트로인을 잡아 놈이 코스모피안 왕국의 끄나풀임을 밝히지 않았던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레디나가 데론이 숨기려 했던 자료들, 코스모피안 왕국과 관련된 자들이 적힌 명단을 바안에게 넘겼고.
"하필 코스모피안 왕국의 경계심이 올라와 있는 지금, 왕 시해 사건이 벌어졌고, 암살자가 코스모피안 왕국과 관련된 옷가지며 검까지 들고 있는 것도 모자라 심문 중에 자신이 코스모피안의 사람이라고 밝힌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벨이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진실 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당연히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카샬은 하벨이 원하던 정답을 내뱉었다.
다른 이도 아닌, 왕의 죽임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는데 바안이 가만히 있겠는가.
이미 정당성 역시 자연스레 확보된 상태였다.
누가 저 전쟁에 손가락질하겠는가.
아라의 귀가 쫑긋 섰다.
[전쟁……?]
"그래. 전쟁이 벌어질 거야."
하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페트리오를 바라보았다.
"그 암살자를 보낸 놈이 어떤 나라인지, 아니, 하다못해 어디 소속인지는 몰라?"
"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서도 에르티안 왕국의 사람이지만, '나는 에르티안 왕국의 사람이다'하고 매일매일 생각하지 않으시잖습니까? 제복이나 신분을 증명할 만한 특정 의복을 입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벨이 얼마만큼 소득을 원했는지 모르기에 페트리오는 살짝 난감해하며 말했다.
"제가… 모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 기억의 범위는 2주 정도고, 강렬한 기억 순으로 또렷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변명 같지만, 페트리오는 다시금 하벨에게 자신의 마법이 어느 정도인지를 언급하며 표정을 살폈다.
"그거야 좀도둑 네가 말해줘서 이미 알고 있지. 그런데 음……."
페트리오의 불안한 시선에 하벨은 도리어 의문을 섞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나한테 알려준 정보는 물론, 지금 네 마법으로 알아낸 정보도 대단한 건데 왜 그렇게 불안하게 나를 보고 있어?"
며칠, 몇 주는 걸릴 만한, 아니, 상대방의 꾐에 넘어가 평생 묻힐 수도 있는 일을 단번에 해결하지 않았는가.
정체 모를 적이 이성을 잃은 바안을 움직여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켜 이득을 취한다는 자신이 생각한 가능성에 날개를 단 셈이기도 했다.
"이번 일은 정말 네 공이 커, 페트리오. 정말 고생 많았어."
"아뇨. 제가…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벨이 활짝 웃자 그제야 페트리오는 굳어진 표정을 천천히 풀었다.
이전에 거미줄처럼 엮었던, 아니, 그것보다 더 촘촘한 정보망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나 아쉬운 마음이 솟구쳤다.
"좀도둑."
"예, 도련님."
"아쉬워?"
"예. 아쉽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좀 낯섭니다."
"아쉬운 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지만, 이미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원래 아쉬워야 이전과는 달라질 테니까."
하벨은 슬쩍 카샬을 보았다.
"왜 절 보십니까?"
"아니. 뭐라고 시비를 걸 것만 같아서 그랬지."
"저도 눈치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좀도둑의… 으음, 공이…, 하. 공이… 젠장, 큰 건 사실입니다."
카샬은 정말 맛없는 걸 먹은 사람처럼 오만상을 쓰며 진짜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와."
겨우 내뱉은 말조차 페트리오는 놀라워하며 반응했다.
평생 보지 못할 일이 펼쳐진 셈이 아닌가.
카샬과 페트리오의 반응을 재밌게 보던 하벨은 갑자기 자신의 볼을 살짝 찌르는 아라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아라야?"
[대장, 레디나 봐봐. 이 몸이 보기에 엄청 화가 나 보이는데 이유를 모르겠어.]
하벨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레디나와 마주했다.
조용한 분노를 드러내며 입술을 굳게 다물던 그녀는 자신의 시선에 빠르게 감정을 감췄다.
'…하긴 새로운 악이 등장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어?'
저런 세력이 등장하지 않도록 계속 악을 억제하던 집단이 바로 '검은 달'이라고 했다.
아마도 속이 문드러질 지경이겠지.
평소라면 '왜요, 도련님?'이라는 말을 꺼낼 레디나는 입조차 다물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있지, 페트리오."
칼리우스가 침묵을 깨트리며 목소리를 냈다.
"나는 진짜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페트리오를 바라보았다.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기억을 읽는 마법은 처음 보는데. 혹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려줄 수 있어?"
원래 마법을 캐묻는 건 마법사들 사이에 암묵적인 금기였지만, 페트리오는 저 순수한 눈망울에 오히려 웃음이 났다.
"그럼요. 얼마든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으음, 보고도 끝났으니까 저쪽으로 가서……."
"잠시만요, 칼리우스 님."
레디나가 말을 꺼내자 칼리우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응. 무슨 일이야?"
"잠시만 페트리오와 말을 나눠도 될까요? 정말 잠깐이면 돼요."
"괜찮아.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고마워요."
살짝 웃는 레디나의 표정을 따라 칼리우스도 웃었다.
레디나는 주머니에서 피가 담긴 다른 병을 꺼내 페트리오에게 넘겼다.
"저도 봐주세요."
"…혹시 검은 달 일원의 겁니까?"
"맞아요. 이전에 부탁드린 대로 지부의 위치를 알려주시면 돼요."
이미 웨인 톨을 죽이려던 검은 달 일원을 심문해 지부의 위치를 알아냈지만, 그 위치가 제대로 된 곳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마나가 회복되는 즉시 보겠습니다."
페트리오는 병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보은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날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페트리오가 씩 웃자 그제야 레디나는 키득거렸다.
"확 바뀌셨잖아요? 제 단검은 짜증과 죽여야 할 사람을 구분한답니다."
"아, 그래서 나한테 단검을 날렸고?"
카샬이 빈정거리자 레디나는 새삼 순진한 눈을 깜빡거렸다.
"그건 실수에요. 실수."
"그게 실수라면 너한테……."
"카샬."
하벨이 카샬의 말을 잘랐다.
카샬의 눈동자에 불만이 뒤섞였지만, 일단 대답했다.
"예, 도련님."
"이제 준비해야겠네."
하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룬델이 바안을 지키겠다고 했으니 티에라 가문에서 어차피 누군가를 왕실로 보내 방패가 되어줘야 했다.
지금쯤 바안이 헛다리를 짚고 있을 테고.
무엇보다 룬델을 대신해 지금 누가 왕실로 갈 수 있겠는가.
가주인 룬델이?
피의 연회 일로 자신을 따라와 이미 징계를 잔뜩 먹은 클로저, 라르웬이?
아니면 티에라 가문으로 오고 있는 첫째, 넬시아가?
"……."
카샬은 말을 아끼고 하벨을 바라보았다.
지갑을 흘렸는데 차마 어디에서 흘렸는지 모르는 표정이라 페트리오는 이번에는 카샬을 찌르지 않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 좀도둑."
"예, 예!"
갑작스러운 하벨의 부름에 페트리오는 크게 당황했다.
"마나가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려?"
"그건… 왜 물으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도 검은 달에 관심이 있거든."
검은 달의 지부가 티에라 가문 근처에 있다면 왕실로 갔다가 티에라 가문으로 돌아오면서 박살 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벨의 시선이 깜짝 놀란 레디나에게 닿다 잠깐 아라를 향했다.
아라가 이동기가 생기면서 더 강화된 추적 능력도 기대가 됐다.
이미 왕실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물론 이번에 좀도둑 네가 알아온, 마법사 협회의 자금줄 행방을 안다는 그놈도 마찬가지고."
"도, 도련님."
페트리오가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좀도둑. 크라마한테 말해둬. 그놈이 어디 있는지 그 일대만 알아보고 장로를 추적하는 데 더 신경 쓰라고. 알았지?"
현재 마법사 협회 장로의 얼굴을 아는 건 크라마뿐이었으니.
하벨은 굳어진 카샬과, 레디나, 페트리오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있잖아, 하벨."
칼리우스가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가도 되는 거야?"
"물론이지. 같이 가자."
하벨은 더 활짝 웃었다.
마법사 협회가 칼리우스의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을 테지.
"널 쫓는 놈들이 누구인지도 같이 잡지 뭐. 너도 그놈들이 싫잖아? 그렇지?"
"당연히 싫어. 나를 그만 쫓아왔으면 좋겠어!"
의지가 가득 담긴 칼리우스의 대답에 하벨은 만족하며 카샬을 향했다.
세상의 수호자라는 그 무거운 직책이 얼마나 쓸모없는 건지 알려줄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카샬. 나는 바안 저하께 갈 거야."
하벨은 확실한 노선을 정했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탁!
갑자기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말에 하벨은 입을 벌렸다.
"…지금 어딜 간다고, 막내야?"
라르웬은 성이 나 보였다.
그것도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