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그럴 수가(3)
* * *
쿵쿵.
갑자기 하벨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관통된 왕의 복부에서 피가 튀자 하벨은 자신의 배와 가슴팍이 점점 뜨겁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파지직.
처음 이 몸에 빙의 되었을 때 들려왔던 의식을 깨우는 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사로잡았다.
하벨은 비틀거렸고, 간신히 벽을 잡아 버텼다.
[이, 이, 이 몸은 눈을 가렸어!]
아라의 목소리마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쿵쿵.
격렬한 고통과 고동 소리가 더 세차게 밀려왔다.
레디나가 자신의 팔을 잡는지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음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저벅저벅.
들리면 안 될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걸어들어왔다.
―저희와 가실 데가 있습니다, 용왕님.
아.
생각났다.
용왕이었을 적, 자신이 죽기 직전의 기억이.
'…그래. 그들이 나를 불렀다.'
새장처럼 왕좌에 자신을 처박아둔 그들이 어느 날 자신을 불렀다.
각 가문을 관리하던 가주와 관료들이 궁 밖에 몰려 있었다.
눈에 익은 자들이 정말 많았고, 그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또 망설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달랐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저들의 태도가 다른 날이었다.
―스겅.
갑자기 그들 모두 무기를 꺼냈다.
처음 보는 무기였다.
불길함이 고스란히 담겨 꺼내는 것만으로도 바다가 오염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마치 지금 물이 오염된 상황처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 채 그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욱!
'…그 소리다.'
자신이 죽었다 단정할 수 있었던, 몸을 꿰뚫는 소리가.
저건 단지 날붙이가 아니었다.
불길함이 가득한 저 수많은 무기가 자신의 몸을 관통했다.
더럽게도 아팠고, 회복이 더뎌 피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나왔다.
놈들의 얼굴이 보였다.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증오스러운 그들의 얼굴이 기억이 났다.
―…하아아.
자신이 바안을 만나다가 떠올린 그 숨소리.
그게 놈들이 내는 소리였을 줄이야.
―이, 이러려고…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내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용왕님!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미친 모양입니다! 아악!
두려움과 경악에 물들었던 여러 명의 소리 뒤로 누군가 웃고 있었다.
아주 즐겁다는 듯.
깨진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만큼은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기억하거라.
놈이 입을 열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 떠올렸던 그 목소리였다.
―네놈이 가진 그 열쇠.
자신의 몸이 무너져내렸고.
―그건 이제 내 것이 될 테니까.
알 수 없는 저 말을 꺼내며 놈이 손을 뻗어왔다.
한순간 어둠이 덮쳐왔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단지, 자신이 천천히, 정말 천천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희미한 시야 안에 누군가 보았다.
'저건…….'
류아.
흐려진 시야 속에 죽었던 류아가 있었다.
'진짜 류아라고? 류아는… 그때 분명히 죽었을 텐데?'
까앙!
혼란이 밀려오기 전,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에 하벨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리세요!"
레디나가 적의 검을 양손으로 막으며 부들거렸다.
한눈에 봐도 버거워 보이는 모습에 하벨은 적을 바라보았다.
복면에 얼굴을 가린 채 우람한 덩치로 레디나는 압박하고 있었다.
[대장, 정신 차려! 여기서 쓰러지면 큰일 난다구!]
자신을 흔드는 아라의 다급한 손길이 이어 느껴졌다.
하아.
하벨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고 상황을 파악했다.
에르티안의 왕을 찌른 저놈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죽이려 하고 있었다.
'이래서… 랜턴에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던가.'
왕은 죽었을까.
아직 숨이 붙어 있을까.
머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끈거렸지만, 하벨은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뭐가 됐든, 일단 이 좁은 통로에서 벗어나야 했다.
"저놈은. 제가… 쫓던 자에요."
레디나가 숨을 섞으며 말했다.
딱.
하벨은 그 말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밀려오는 정령수를 느끼며 단숨에 양손을 뻗었다.
화르르륵!
자신의 손아귀에서 새빨간 불길이 뻗어 나왔다.
어차피 견제용이었기에 하벨은 놈이 뒤로 물러나는 소리를 듣자마자 불을 지워버리며 바로 씨앗을 만들어냈다.
쉬이이익!
좁디좁은 통로가 거의 찰 만큼 굵직한 나무가 놈에게 뻗어 나갔다.
'이러면 물러설 수밖에 없을 거다.'
하벨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먼저 갈게요."
레디나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아직도 자라고 있던 나무를 붙잡았다.
속도를 받은 레디나는 놈이 보이자 손을 놓고 놈의 복부를 향해 발을 길게 뻗었다.
팍!
정확히 발길질이 들어가자 레디나는 허공에서 돌며 바닥에 안착했다.
[오오오!]
레디나를 따라간 아라가 손뼉을 마주쳤다.
"왜 가만히 있어? 이럴 때는 박수쳐줘야지. 치사하게."
레디나는 놈에게 투덜거리며 연기에 휩싸였다.
저놈은 검은 달이 아니었다.
놈이 만약에 검은 달이었다면 이미 손등에 문양이 여러 번은 떠올랐을 테니까.
[으아앗! 레디나 사라졌어!]
하벨은 요란한 아라의 반응에 나무에 주입했던 정령수를 거두고는 방으로 뛰어갔다.
레디나는 정말로 사라진 상태고, 놈은 뒤늦게 등장한 자신을 보았다.
'내가 증오스러운 모양이지?'
분노가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하벨은 피식거리며 양손에 씨앗을 쥐었다.
숨을 참는 척, 호흡하고는 씨앗을 던졌다.
탁.
'…온다. 반드시.'
씨앗이 땅으로 떨어지자마자 놈이 사라졌다.
하벨은 당황하지 않고 왼손과 오른손에 장갑을 전부 검게 물들인, 극독을 꺼내 합쳤다.
단검만 한 크기로 뽑아냈을 때, 살기가 느껴졌고, 바람이 일어났다.
하벨은 예측했던 방향에 맞춰 단검을 들었다.
자신의 시야에서 날붙이 하나가 반짝거리며 놈이 검을 뻗어왔다.
끼기긱!
고래가 자신에게 부딪힌 것처럼 큰 충격에 양팔이 부르르 떨리다 못해 몇 발자국이나 밀려났고, 가면에 흠집이 난 것 같았지만, 하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놈과 자신의 단검 사이에 새로운 단검이 등장하며 당장 놈을 향해 휘둘렀다.
쉬익!
놈의 허리가 한순간 뒤로 휘었고, 레디나는 다시 단검을 잡아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었다.
깡!
놈이 든 검과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하벨은 들고 있던 단검을 던지며 한 번 더 틈을 보았다.
저놈이 누구인지.
왜 왕을 공격했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 전 던져놓았던 씨앗을 터트렸다.
덤불처럼 자라난 식물이 조용히 움직여 벽을 타고 올라갔지만, 놈의 얼굴이 몇 박자 뒤에 움직였다.
'늦었어.'
하벨은 보란 듯이 여러 개의 줄기를 꼬아 그대로 땅으로 내리쳤다.
콰앙!
거대한 소리에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부터 하벨이 노린 건 소동이었다.
바안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수 있게.
"한눈팔면."
레디나는 고개가 돌아간 놈을 보니 짜증이 일어났다.
자신의 단검 끝에 바람을 일으켜 놈의 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휘둘렀다.
"죽을 텐데?"
레디나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서걱.
하지만 놈이 뒤로 움직였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레디나가 베어낸 건 복면이었다.
'이런.'
레디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에, 에잇!]
아라가 달랑거리는 복면을 향해 뛰었다.
하벨은 순간 흠칫거렸다.
정령이 보이지 않을 뿐, 베이면 피가 나고, 아픔도 느끼며 죽을 수 있었다.
목구멍까지 아라의 이름이 차올랐다.
하지만 하벨은 용왕의 힘을 끌어올리며 참고, 기다렸다.
찌이익!
아라가 놈의 복면을 잡고 뜯어내자마자 그대로 자신에게 도망쳤다.
[으아아아!]
달려오면서 아라가 만들어낸 바람에 놈의 복면 너머로 얼굴이 고스란히 보였다.
아라가 숨을 헐떡이며 하벨에게 달라붙었다.
"…모르는 얼굴인데요?"
레디나는 멈칫거렸다.
이렇게 쉽게 적의 얼굴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건 놈도 마찬가지였는지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때, 시원하지?"
하벨이 꺼낸 도발에 순간 놈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구겨지고, 검에 연기가 휩싸였다.
오러.
그 모습에 레디나는 하벨의 등을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오러에 감긴 검을 상대하는 건 무척 어려웠다.
자신의 단검이 당근으로 변하는 순간이 아닌가.
하지만 하벨은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워 오히려 자신이 조급해졌다.
'…도련님.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제발 그 여유로움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누가 보낸 거야?"
하벨은 장난기를 가득 섞어 물었다.
조금 전 슬쩍 본 왕은 아직 살아 있었다.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든 살든 이미 전쟁이 고개를 내밀 정도로 엄청난 사건을 벌이지 않았는가.
다른 왕들이 바보라서 암살자를 보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전쟁을 벌이면 일어날 추가 상황들을 감당할 수 없기에 하지 않는 것뿐.
"네놈을… 갈기갈기 쪼개 죽여주마."
"할 수 있다면 해 봐. 넌 못하겠지만."
놈이 이를 갈자 하벨은 팔짱을 껴 놈을 흔들었다.
착!
놈과 함께 레디나가 움직였다.
"단검 비싼 걸로 부탁드려요!"
자신의 신인 하벨이 중요하지 단검 하나가 무슨 대수라고.
레디나는 최대한 검에 바람을 담아 부딪혔다.
끼기기긱!
오러에 레디나가 두른 바람이 갈리고, 단검마저 놈의 검이 닿는 순간, 하벨이 히쭉 웃으며 펼쳤던 손을 움켜쥐었다.
"…크어어억!"
놈이 비명을 터트리며 검마저 떨구었다.
탁.
몸속에 돌고 있는 물이 잠깐이라도 멈췄으니 그 고통이 오죽할까.
잠깐 요단강이 보이지 않았을까.
하벨의 시선이 레디나를 향했다.
콱!
레디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의 한쪽 팔이 레디나가 단검에 실은 바람에 휩쓸려 위로 떠올랐다.
떨어지는 팔과 함께 피가 분수처럼 일어났다.
'…봐. 못 닿는다니까.'
덩달아 휘청거리던 하벨이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팔로 겨우 지탱해 놈을 바라보았다.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듯 입에서 피 맛이 일어났다.
[으어어, 정신 차려, 대장!]
아라가 하벨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쿨럭!"
잠깐의 흔들림에 하벨은 더는 참지 못했다.
사람 몸속에 있는 물만큼은 자신이 용왕일지라도 그 반발력이 엄청났다.
망토 속으로 들어가던 아라가 그 소리에 그대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멈추질 않고 정화 장치를 바라보았다.
[대장! 정화 장치에 거품이 올라왔어!]
아라가 바로 소리쳤다.
'어쩐지, 어지럽더라니.'
하벨은 숨을 가다듬고는 아라와 레디나에게 말했다.
"…준비해."
이제 왕실 기사들이 올 때가 되었다.
도망칠 준비는 해둬야지.
"죽일까요?"
레디나는 놈의 나머지 손가락을 자른 뒤, 등을 세게 밟았다.
"아니. 죽이면 안 돼."
하벨은 일어나려다 말고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면을 타고 피가 바닥에 뚝뚝 흘러내렸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는 가면을 올려 입가를 닦아냈다.
"…대신, 흔적이 될 만한 걸 뒤져봐. 아무래 생각해도 왕을 죽이려고 한 게 이상하니까."
하벨은 놈을 잠깐 바라보았다.
'저놈을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가.'
이대로 잡히게 두어야 할까.
아니면 저놈이 도망가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
'어차피 시간 차이일 뿐이다.'
어느 쪽이라도 결국, 진실로 가게 되어 있었다.
다만, 거슬리는 건 왜 왕을 노렸냐는 사실이었다.
'나라에 망조가 들면 무슨 일이든 벌어진다던데.'
많은 이유를 떠올리며 하벨은 왕에게 걸어갔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모습에 하벨은 왕을 안고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을 죽인 자를 붙잡았습니다."
"…바, 바……."
왕이 헐떡거리며 입을 열었다.
왕이 자신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하벨은 슬쩍 가면을 올렸다.
하지만 왕은 정확히 자신을 보았다.
여러 의문을 품었는가 싶더니 눈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바안을 부탁한다는 그런 말처럼 보였기에 하벨은 바로 말을 꺼냈다.
"그런 부탁은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엇나가지 않게 돕겠습니다."
바안은 길만 잘 잡아도 알아서 잘 나갈 테지.
왕은 부들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네.
안도가 가득 담긴 미소를 짓더니 곧 눈을 감았다.
이토록 끝까지 아들을 생각하니.
하벨은 룬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마음이 또 무겁다.'
"…가야 할 시간인데요?"
레디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의식했다.
"뭘 좀 건져냈어?"
"네. 충분히 뒤진 것 같아요."
"그럼, 준비하자."
이제 자신들이 빠질 차례였다. 기사들이 자신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건 조금 전 왕실을 돌아다닐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하벨은 아라를 바라보았다.
[이 몸은 준비됐어!]
아라는 얼른 자신의 꼬리를 닮은 물웅덩이를 만들어냈다.
하벨은 용왕의 힘을 끌어내며 집으로 향하는 정확한 좌표를 설정했다.
이미 이동해본 곳이기에 한결 손쉬웠다.
레디나에게 손을 뻗었다.
"가자."
"네!"
레디나는 실실 웃으며 하벨의 손을 잡았다.
* * *
"……."
카샬은 그대로 굳어졌다.
이제 슬슬 하벨이 깨어날 때가 된 것 같아 식사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음식을 담고 지나가다 라르웬을 만나 하벨이 깨어났다는 말에 안도감과 함께 때를 잘 맞췄다는 뿌듯함도 이어졌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집사이기에 외부에서 온 마법사 드웰이 왔을 때, 하벨의 방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지 못했지만, 하벨이 이렇게 기절하듯 쓰러진 걸 본다면 분명 큰일일 테지.
"도련님."
카샬은 노크를 한 뒤에 방으로 들어갔다.
"……?"
뭔가 싸늘했다.
인기척이 전혀 없지 않은가.
카샬은 끌고 온 카트를 놓고 조용히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냈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숨을 멈춘 채 걸어갔다.
"……!"
카샬은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하벨의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링거도 빠져 있지 않은가.
'4층인데?'
카샬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살폈다.
열린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또 가출… 하신 게 아니겠지?'
초조함에 다른 방도, 옷장도, 침대 밑도, 화장실과 욕실까지 죄다 뛰어들어갔다.
'이런 미친!'
카샬은 답답함에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음식 때문에 잠깐만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칼리우스한테 도련님을 지켜보라고……. 아니다. 도련님께서 움직이셨다면 바로 가주님 귀에 닿았을 거야.'
지금 그 몸으로 어딜 간다면 정령들이 말릴 게 틀림없었다.
일단 룬델에게 가봐야 할 듯했다.
탁탁.
요란하게 문으로 뛰어가던 카샬이 그대로 멈췄다.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안고 뒤로 돌았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레디나였다.
그런 레디나 옆에 찢어진 달 가면을 쓴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미치셨습니까, 도련님?"
카샬은 바로 언성을 올렸다.
분명 미친 게 틀림없었다.
"안녕, 카샬."
저러고 해맑게 인사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