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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23화 (123/415)

123화. 시작된다(3)

* * *

* * *

[…대장, 대장.]

아라의 목소리와 함께 몸이 조금씩 흔들리자 하벨은 눈을 떴다.

주르륵.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깜짝 놀란 아라를 바라보며 다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가, 갑자기 막막 아파? 이 몸이 카샬을 불러올까? 응?]

"아니야, 아라야. 꿈을 꿔서 그래."

[이 몸이 혼내줄게! 누가 그랬어?]

아라가 발바닥을 들어서는 이불로 내리쳤다.

아주 살포시 꺼지는 그 모습에 하벨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흡.

[응?]

아라가 고개를 들고 갸우뚱거리자 하벨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혼낼… 필요 없어. 크흠, 행복한 꿈이었거든."

[행복한데 울어? 이 몸은 잘 모르겠어. 행복한데 눈물이 날 수 있는 건가?]

아라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움직였다.

"아라야. 내가 오래 잤어?"

창문 밖은 살짝 어두웠다.

시간은 7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대장은 하루 동안 쿨쿨 자고 있었어!]

"안 심심했어? 용용이랑 왜 안 놀고 있어?"

아라가 용용이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입을 삐죽 내밀었다.

[용용이는 지금 헤레스랑 놀고 있는걸? 아, 드웰 할아버지도 거기 있어.]

드웰이 가지 않았다는 말에 하벨은 그제야 안도했다.

그나저나 저 조합은 대체 뭔가.

용과 두 명의 마법사라니.

"용용이가 헤레스랑 같이 있다고? 헤레스가 용용이한테 간 거야?"

[응. 처음에 용용이랑 놀고 있었는데 헤레스가 라르웬이랑 왔어. 드웰 할아버지는 나중에 왔구.]

아라는 여전히 입을 삐죽 내민 채로 말을 이었다.

[라르웬이 이 몸만 잠깐 불러서 말했는데, 용용이가 이 몸을 볼 수 있다는 건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어. 안 그러면 용용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구. 관심을 많이 받아서 용용이가 힘들 수도 있다고 했어.]

"그건 형님 말이 맞아. 용용이는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용이라서 존재 자체로 위협을 받고 있어. 실제로 마법사 협회에 쫓기기도 했잖아? 아라 네가 지켜줘야지. 용용이의 유일한 친구잖아?"

[…마, 맞아! 용용이는 친구인 이 몸이 지켜줘야지!]

그제야 아라의 꼬리가 붕붕 흔들렸다.

하벨은 아라가 기특해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어주었다.

보드라운 촉감에 비로소 현실임을 인지했다.

'…역시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그 사실에 룬델에게 미안했지만, 아라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밤바람이나 쐴까.'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와 참기 어려웠다.

하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앗! 대장은 아직 일어나면 안 돼!]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힘차게 당기는 아라의 모습에 하벨은 아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라야."

[응?]

고개를 올리는 아라의 입꼬리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뚝뚝.

[으… 으헝헝.]

아라가 바로 눈물을 흘리자 자신은 당황했다.

아직 말도 다 꺼내지 않았는데.

"아, 아라야?"

[대장, 가지 마아! 이 몸이랑 같이 있어! 이 몸이 금화를 가져가서 그래에? 이, 이 몸이 돌려줄게!]

아라는 '으헝헝' 울며 꼬리를 뒤졌다.

하벨은 아라를 손바닥에 올려 눈물을 닦아주었다.

말만으로도 이렇게 서럽게 울다니.

가슴이 조여왔다.

[이 몸이… 크흡. 이 몸이 잘못한 거 있어? 그럼 이 몸이 다 미안해. 다 잘못했어어!]

"울지마, 아라야. 널 놔두고 어디 안 가."

지금은.

[정마알……?]

아라는 그제야 끅끅거리며 눈물을 멈추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새 자신의 손가락이 흠뻑 젖었다.

"그래. …정말이야."

아라는 그 작은 앞발로 자신의 옷자락을 쥐어서야 그제야 웃었다.

[…헤헤.]

울면서 웃는 저 모습이 왜 이렇게 애처로운지.

하벨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라는 옷자락을 흔들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라지면 안 돼, 대장. 어디 가면 안 돼. 이 몸을 버리고 가면 안 돼. 절대로. 절대로.]

"용용이가 있는데?"

[용용이는 이 몸의 친구야.]

아라는 훌쩍이며 말했다.

"그럼 나는 뭐길래?"

자신이 뭐길래 이렇게도 서럽게 울고, 혹시나 갈까 봐 옷자락까지 꽉 쥐는지.

[대장은.]

아라가 갑자기 다른 앞발로 자신의 꼬리를 잡아 얼굴을 묻었다.

[이, 이 몸의 가족… 이야.]

하벨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용왕님!

꿈속에서 들었던 그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금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아.

큰일이었다.

이러면 떠나기가 더 어렵지 않은가.

갑자기 처음으로 이 세계에 연결 고리가 하나 생겨버렸다.

아주 작고, 작은 연결 고리가.

'…어렵네.'

룬델과 라르웬, 아직 보지 못한 넬시아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주춤거려졌다.

'어려워.'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으니까.

또 가슴이 조여왔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었다.

[…울어, 대장?]

슬쩍 꼬리를 내린 아라의 귀가 접혔다.

"아니. 안 울어. 그냥 기뻐서."

가족이라는 저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아!]

아라가 앞발로 얼굴을 비빈 뒤 눈을 크게 떴다.

[이 몸이 열심히 연습했다?]

"연습?"

[응!]

"아, 저번에 보여준 이동기를 말하는 거지?"

[맞아! 이 몸이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

'그게 그렇게 빨리 되진 않을 텐데.'

하벨은 의문을 접으며 아라에게 부탁했다.

"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원래는 밖에 나가려고 했는데 더 급한 게 생겼다.

아라가 연습했다는데 당연히 봐야지.

[응응! 대장한테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이 몸의 가슴이 너무 콩닥거려서 자는 도중에도 일어나서 대장을 바라봤다?]

아라는 쑥스러움이 묻어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꼬리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후.]

아라는 긴장되는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천천히 해도 괜찮아."

하벨은 미소를 지었다.

연습한 결과를 보여주는 셈이니 얼마나 긴장될까.

아라가 꼬리를 놓고 두 발을 들어 흔들며 물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아라 자신의 꼬리를 닮은 형상이었지만, 그 크기가 이전보다 3배는 커져 있었다.

[대장이 들어가지 못한 건 웅덩이 크기가 작아서였어. 이 몸이 그게 서툴러서 안 됐던 거야.]

아라가 열심히 생각해낸 결과였기에 하벨은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이러면 대장이 들어갈 수 있겠지?]

"물론이지. 이 정도는 충분해. 그럼, 이제 여기랑 연결했어?"

하벨은 물컵을 가리켰다.

자신도 물을 타고 이동해봤기에 도울 게 반드시 있을 테지.

[응! 이 몸은 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아라는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좋아. 그럼, 가자."

하벨은 망설임도 없이 아라가 만든 물웅덩이 속으로 손을 뻗었다.

* * *

"…풉!"

라르웬은 갑자기 자신의 컵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을 보자 마시던 물을 뿜었다.

'세렌인가?'

세렌이 가끔 저렇게 이동해오지 않던가.

[아직도 그래?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어어?]

라르웬 옆에서 종이를 찢고 놀던 루룸이 눈을 반짝였다.

[짠…….]

아라가 앞발을 위로 뻗다 말고 루룸을 보더니 그대로 굳어졌다.

"아라야. 내가 보기에……."

몸을 웅크려 물을 빠져나오던 하벨마저 라르웬과 시선을 마주치자 그대로 멈췄다.

3초간의 침묵이 흘러내렸다.

"……."

라르웬의 표정이 굳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난 하벨은 얼른 말을 꺼냈다.

"실수입니다."

"…실수?"

"예. 실수입니다."

[마, 맞아! 이 몸이 분명히 이동하는 곳이랑 나가는 곳이랑 잘 연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 몸이 실수한 거야!]

아라가 라르웬과 하벨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앞발을 허둥지둥 움직였다.

뭔가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만 같았다.

[라르웬. 아라가 실수 좀 할 수 있지. 너는 왜 그래?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루룸은 찢었던 종이를 가지고 라르웬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라르웬은 그제야 굳어진 얼굴을 풀었다.

방금은 갑자기 나타난 하벨의 모습에 기가 차 표정이 굳어졌을 뿐이었다.

'…확실히 루룸 말대로 기뻐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

이동기는 정령일지라도 무조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으니.

특히, 아라는 물의 특성이 강하지 않은가.

저 이동기는 물의 특성이 강한 정령들에게만 발휘되는 힘이기도 했다.

물은 이 세상의 근원이자 모든 걸 연결하는 힘을 가졌으니.

'하지만 이걸 마냥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동기를 손에 넣은 하벨이라니.

벌써 정신이 아득한 기분이었다.

"막내야."

"말씀하세요."

하벨은 살짝 긴장했다.

라르웬이 자신에게 무얼 묻겠는가.

드웰이 온 이유와 관련된 것들이 아닐까.

이런 식의 만남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다.

'룬델에게도 솔직히 말했으니, 라르웬에게도 말해야겠지.'

"링거까지 달고 왔으니 화는 내지 않을게. 하지만 어디 가기 전에 꼭 말하고, 지금 당장 얌전히 침대로 돌아가."

라르웬은 아라와 하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둘이 똑같았다.

사고뭉치.

"…이걸 말하려던 게 아니잖습니까?"

하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네 얼굴 봐봐. 다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또 시름시름 앓을 문제를 주고 싶진 않아."

드웰이 하벨에게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몰라도 다급히 나온 드웰의 표정에서 일이 좋지 않게 흘러갔다는 걸 눈치챘다.

일단 아버지만 급하게 들어갔지만, 한참이고 나오지 않았다.

하벨이 언성을 높였고, 의문은 더 커졌다.

룬델이 나중에 나올 때 무언가 홀가분하면서도 애잔할 정도로 구슬퍼 보였기에 아주 살짝.

정말 아주 조금은 눈치챘다.

"아뇨. 이건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하벨은 라르웬의 말을 부정했다.

라르웬은 하벨 티에라의 형이 아닌가.

하벨은 천천히, 천천히 마음을 다잡았다.

"막내야."

라르웬은 손에 쥐고 있었던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부터 나는 좋은 형이 아니었어."

직접 그 말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사실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오래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내 낯짝이 아무리 두꺼워도 너한테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으니까 너도 더는 생각할 필요 없어."

라르웬은 얼버무렸다.

그런 소리.

모든 의문을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나는……."

"하벨아."

라르웬은 하벨의 말을 막았다.

사뭇 진지한 그 눈빛에 하벨은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한테 조금만 시간 좀 줘라."

"알겠습니다. 나만 생각했네요."

"아니야. 그건 아니지. 정말 너만 생각했으면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본인만 생각했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문 채로 자신과 아버지하고 말을 섞으며, 웃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도 역겹고 끔찍했지만, 하벨은 아니었다.

―나는 하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쭉 말하지 않았는가.

하벨이 오죽했으면 자신의 영혼을 확인했을까.

아버지의 반응을 봤을 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하벨이 진짜 하벨이 아닌 경우.

루룸이 그랬듯이 하벨의 영혼에 정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하지만 어느 쪽도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

"막내야."

"예?"

하벨이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넌 괜찮아?"

당연하게 물어본 말임에도 하벨의 눈동자가 순간 일렁거렸다.

'…괜찮지 않구나.'

괜찮을 리가 없었다.

자아의 혼동이 사실이 아니라, 진짜 다른 사람이라면 그럼 하벨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벨이 산에 올랐던 그날, 정말로 사라진 걸까.

'…그렇게도 이곳이 싫었니, 하벨아?'

"솔직히 괜찮지 않습니다. 형님도 그래 보이시네요."

"그래. 네가 폭풍을 몰고 왔네?"

라르웬은 키득거렸다.

하벨이 산에 오른 그 뒤부터 조용했던 집안이 얼마나 시끌벅적해졌던가.

그나마 집안이 조용했을 때는 하벨이 기절한 순간뿐이었다.

새로운 막내가 정말 찾아온 게 아닌가.

"폭풍이라뇨? 그냥 얌전히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침대에만 붙어 있어 침대 정령이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벨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쩌다 라르웬의 방이라도 찾아왔지만,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침대 정령이 있는데?]

루룸은 라르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넌지시 던졌다.

[뭐어어?]

아라가 당장 루룸에게 달려왔다.

귀찮은 듯한 시선을 아라에게 보냈지만, 루룸은 이번만은 그냥 말해주기로 했다.

[침대만 좋아하는 정령이 있고, 옷만 좋아하는 정령도 있고 그런 거지. 그럼 침대 정령이고, 옷 정령이니까. 보통 그런 정령들은 음, 그 물건하고 동화되어 있더라고.]

[그게 뭐야?]

[하나가 되는 거라고 하면 알아듣겠어? 자연에 녹아드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물론,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진짜로 녹아들 수는 없지만.]

[…아!]

아라가 눈을 크게 떴다.

[카샬의 검에 있었어!]

"카샬의 검에 있다니? 정령이?"

하벨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몸도 몰랐는데 아까 카샬이 잠깐 앉아 검을 쓱싹쓱싹 닦는 걸 보다가 뭔가랑 잠깐 눈이 맞았어! 그리고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데? 이, 이 몸은 귀신인 줄 알았어!]

[……?]

루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샬의 검에 정령이 있다고? 본 적 있어, 라르웬?]

"그럴 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내가 카샬의 검을 왜 봐?"

라르웬은 고개를 가로젓다 곧 미간을 찌푸렸다.

"어쨌든, 지금 카샬이고 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라르웬은 성큼성큼 걸어서 방문을 열었다.

"이제 다시 침대 정령이 될 시간이야, 막내야. 물론, 걸어서 가는 거 잊지 말고."

하벨은 마치 쫓겨나는 기분에 살짝 불쾌했지만, 여기는 라르웬의 방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하벨은 방문을 나섰음에도 발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았다.

"왜 따라오십니까?"

"네가 딴 곳으로 셀까 봐. 지금 칼리우스한테 가려고 그러잖아?"

"……!"

하벨은 그대로 멈췄다.

칼리우스가 마법 암호문을 해독한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참겠는가.

"…하. 진짜였어?"

정답을 맞춘 라르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따라가길 잘했다 싶었다.

"앞장서, 막내야."

* * *

"아라야."

하벨은 침대에 앉아 턱을 괸 상태로 물을 불러들였다.

방금 라르웬의 방으로 이동했을 때, 아라에게 부족한 건 하나였다.

좌표.

물이 어디든 널린 와중에 정확한 좌표를 찍는 건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세렌도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걸 보면 정령조차 까다로운 힘인 건 분명했다.

[대, 대장!]

깜짝 놀라는 아라의 목소리와 달리 하벨의 손가락에서 만들어진 물을 보며 입맛을 삼켰다.

둥글게 말아 아라 입에 넣어주자 아라의 눈이 감기며 행복함에 젖어 들어갔다.

[아앗!]

귀를 파닥거리던 아라의 눈이 커졌다.

물을 삼켜버리다니.

이제 코피를 흘릴 텐데.

"아라야."

[으, 으응?]

"멀리 이동하고 싶지 않아?"

[멀리?]

아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멀리도 이동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지 않아?"

살살 긁는 하벨의 목소리에 아라는 입을 벌리며 상상을 했다.

멀리멀리 이동할 수 있다면 하벨이랑 같이 소풍도 가고, 얼마나 행복할까.

[응응! 이 몸은 너무 궁금해!]

"좋았어. 그럼 잠깐 물 좀 만들어볼래?"

하벨은 코피를 닦으며 말했다.

이미 한 번 라르웬에게 들켰지만, 두 번은 왜 못 할까.

이럴 때일수록 더 과감해져야지.

[응!]

아라는 헤헤 웃으며 조금 전처럼 꼬리를 닮은 물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하벨은 혹시 모르니 달무늬가 들어간 가면도 쓰고 옷도 갈아입고, 링거도 빼내며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 몸은 준비됐어!]

하벨은 아라가 만든 물에 용왕의 힘으로 만들어낸 물을 뒤섞으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지도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용왕의 힘이 완전하지 않은 만큼 물의 흐름이 그려진 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저분해 알아보기가 좀 어려웠다.

'이번에는 한 번 쓱 갔다 오는 거니까.'

대충 멀리 보이는 곳으로 점을 찍었다.

부르르.

[어어, 물이 떨리고 있어!]

"준비됐다는 표현이야. 얼른, 갔다 오자!"

하벨은 실실 웃으며 소리치다시피 말했다.

[돌아올 때는 어떡해?]

"어떻게든 되겠지."

하벨은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그래. 가자!"

[응응! 가자!]

하벨은 아라와 함께 신나게 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물보라가 일었다.

곧 차분히 가라앉자 하벨은 눈동자를 굴렸다.

"……?"

어디서 익숙한 모습에 하벨은 눈을 깜박거렸다.

'왕궁… 처럼 보이는데?'

[왕궁이다!]

아라가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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