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시작된다
* * *
"…다시, 다시 말해주십시오."
하벨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싶었다.
"영혼을 떼어내는 것도, 다시 돌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드웰은 조금 전처럼 공손히 대답했다.
"……."
하벨은 침묵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싶었다.
"이유를…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럴 리가.
어딘가 이를 부정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당신의 영혼이 너무도 큽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요."
드웰은 말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았다.
바람을 일으켜 영혼의 소리를 듣자마자 귀를 찢을 만큼 강한 공명이 들려왔다.
이토록 커다란 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사람이 아닌 존재, 그 외에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고, 성스럽기까지 해 절로 공손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영혼에 상처가 생긴 듯합니다."
거대하고 웅장하나, 소리가 새어나갔다.
구멍이 있다는 뜻이었다.
영혼의 구멍이라면 상처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혼에 상처라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벨은 일렁거리는 마음을 꾹 누르며 차분히 물었다.
―하벨, 너 영혼에 문제가 생긴 거야? 아니면…….
루룸이 자신이 마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저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하벨은 마른 침을 삼키자 드웰은 그가 내뱉으려던 말을 꺼냈다.
"영혼이 크고, 상처가 낫기에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 몸이 아닙니다."
천천히 흔들리는 하벨의 눈동자에 드웰은 말을 한 번 삼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돌려줘야만 합니다. 과정이 길든 얼마나 걸리던 꼭 돌려줘야 합니다."
하벨은 다리를 침대 밑에 내려놓고는 드웰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무얼 해서든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드웰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하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미천한 존재는 감히 당신이 가진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영광을……."
"그만두십시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게 아부를 떨 이유는 없습니다."
하벨은 달라진 드웰의 태도에 계속 부담감을 느꼈다.
"아부가 아닌, 진정한 존경심으로 꺼내는 말입니다."
"그럼 그 존경심으로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세상에 용이 살아 있다고 한들, 불가능합니다."
드웰의 시선이 점점 아래를 향했다.
거듭된 거절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저 존재에게 감히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그렇게 단정하는 겁니까?"
하벨은 자신이 질척거리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벌써 드웰이 몇 번이나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꺼냈는가.
하지만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두려웠다.
정말로 몸을 바꾸는 게 불가능할까 봐, 정말로 자신이 이 몸으로 살아야 할까 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요?"
하벨의 언성이 살짝 올라가며 입술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말하는 원래 영혼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 몸에 붙질 못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원래 영혼이 원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미 이 몸은 당신의 영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원래 몸인 것처럼 제대로 안착한 상태입니다."
"…하."
믿을 수 없는 저 말에 하벨은 기가 찬웃음을 흘렸다.
원래 몸이 원래 영혼을 배신하고 자신을 선택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너무도 우습고, 우스워서 가슴이 들끓기 시작했다.
"지금… 얼마나 웃긴 말을 꺼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이런 말을 나누자는 게 아닙니다. 당신하고 편안히 담소나 나누자고 했다면 저 자리에 앉아 있었겠지요."
하벨은 손가락을 들어 탁자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마저 떨렸다.
"위대한 분이시여, 원래 주인에게 이 몸을 돌려주겠다고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발버둥 치는 게 너무도 노골적으로 보여 드웰은 하벨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하벨은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여기에서 무슨 문제가 또 있단 말인가.
"영혼에 상처가 있어 불안정합니다. 영혼은 본디 무언가를 채우고자 하는 욕심쟁이입니다. 그래서 육체는 완벽하지 않아도 영혼만은 그 누구든 완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십시오."
하벨이 이를 악물었다.
영혼, 영혼!
지금 자신의 영혼이 어떻든 그건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야 하는 건 하벨 티에라에게 이 몸을 돌려줄 방법이었다.
"영혼이 부족하기에… 육체를 갉아 먹을 겁니다."
"……!"
탁자를 가리키던 하벨의 손가락이 차차 내려갔다.
그의 낯빛에 그림자가 졌다.
자신이 이 몸을 죽이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하벨은 그저 숨만 내쉬며 가슴을 움직였다.
"여기부터는 제 의견일 뿐이니 흘리셔도 됩니다."
드웰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무거운 마음을 떨구려 애를 썼다.
이 말을 해도 될지 망설였지만, 두려움과 함께 밀려오는 안쓰러움에 기어코 말을 내뱉었다.
"원래 영혼도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영혼의 문제를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하벨은 드웰의 말을 자르며 인상을 구겼다.
"몇 번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겁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방법 말입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당신이 사라진 이 육체는 죽습니다."
쿵.
하벨은 기어코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내려앉아야 했을 테지만, 버텼다.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방법이 있겠지.
희망이.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하벨은 억지로 자신을 붙잡았다.
이미 속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이 버텨보지 않았던가.
감정이 자신을 잡지 못하게끔, 누르고, 짓눌러 그 위에 서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이 감정이 나오는 순간, 휩쓸리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라.'
상황을 봐야 할 눈을 잃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었어야 할 귀를 잃어 손에 쥐었던 것마저 다 빼앗기지 않았던가.
왕좌에 묶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십시오."
하벨의 목소리에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낭떠러지 앞에 선 하벨의 모습에 드웰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제가… 마법사 협회에 쫓기는 이유입니다."
"아니, 당신보다 더 뛰어난 자가 있을 거 아닙니까?"
하벨의 목소리에 힘이 살짝 빠져 그 속에 이유 모를 분노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나를……!"
하벨은 이를 악물었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대체 뭐가 위대하다는 건가.
수족에게서 어인과 사람들을 해방했으면 뭘 하겠는가.
부하들도 지키지 못하고, 자신 손으로 시신을 들고 불 속에 던졌다.
그때 맡은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돌았다.
'그런 내가 위대하다고?'
하벨의 시선이 날카로워졌고, 드웰의 눈이 커졌다.
심장이 고스란히 쥐어진 기분에 드웰은 숨을 멈추고, 끝없는 두려움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영혼이 저 육체에 가려질 리가 없었다.
드웰이 식은땀으로 목욕하듯 줄줄 흘러내리자 하벨은 그제야 기세를 거뒀다.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안합니다."
붕대의 거친 느낌이 몰려왔다.
왜 저 사람한테 화풀이하는 건지.
자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지 않은가.
"미안합니다. 하지만."
하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몇 번이나 물어도."
하벨은 깊은 숨소리를 내며 말을 꺼냈다.
추해도 상관없었다. 이 몸을 돌려줘야 하는 이유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함을 담았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제발, 어떤 희망이라도 달라고.
하벨은 자신의 감정들을 담은, 그 상자가 덜컥거리는 걸 느꼈다.
"방법은… 없습니다. 제게 몇 번이나 물으셔도 당신은 영혼을 바꿀 수 없습니다."
드웰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하벨은 조용히 입가를 가렸다.
거칠게 내뱉은 숨 때문에 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으읍."
하벨은 거칠어진 숨소리에 억지로 숨을 참아보았다.
쿵쾅쿵쾅.
두 눈을 질끈 감자 심장이 거칠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이건 자신의 몸이 아니었음에도 멋대로 자신의 기분에 맞춰 반응했다.
역겨웠다.
구역질이 올라와 거북했고,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에 눈앞까지 일그러졌다.
"괘, 괜찮으십니까?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드웰은 갑자기 온몸을 떨다시피 한 하벨의 모습에 겁이 났다.
당장 밖으로 나가려 순간, 하벨은 간신히 손을 뻗어 드웰을 잡았다.
"…내가. 내가 말하겠습니다."
룬델이 생각이 났다.
―너는 내 아들이란다.
담담히 꺼내던 그 말도 같이 떠올랐다.
―세상이 무어라 하든, 네가 나를… 부정해도 말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드웰이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마법사 협회.'
어쩌면 그 속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드웰이 전문가라고 해도 결국 혼자였다.
모든 마법이 몰려 있는 그곳이라면 새로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제가 무어라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럼, 그때까지 침묵하겠노라 제 마나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하벨은 저 맹세가 말뿐인 맹세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벨은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잠깐만. …미안하지만, 잠깐만 나가주십시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참으려고 해도 억눌러봐도 앞이 캄캄한 기분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드웰은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밖으로 움직였다.
"…제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하벨은 깊게 내뱉은 숨과 함께 말을 토해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혹시나 듣고 있다면, 제발 이러지 마. 하벨 티에라……."
눈시울까지 금세 뜨거워졌다.
"내게 어떤 것도, 바라지 마."
두려웠다.
미친 듯이 몰려오는 두려움에 쫙 펼친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아무것도 짊어지고 싶지 않아."
한 명이었던 자들이 수십이 되고, 수천, 수만 점점 늘어나 감당할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그래서 나라가… 만들어졌다.'
하벨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수족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음에도 자신은 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
놓았어야 했는데 놓지 못했다.
그 속에 소중한 것들의 피와 생명이 뿌려졌기에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정신 차리고 보니 용왕이라는 이 무거운 왕관은 머리를 짓누르고, 수족을 죽이며 성장한 자신의 힘과 세력은 역으로 자신을 향한 검이자 족쇄가 되어버렸다.
'놓아야 했었는데.'
하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라도 해야 했는데.'
또 후회가 차올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움직이지 않았던가.
당연하게 주어진 운명에 벗어나려 애를 쓰지 않았던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사라지는 것.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하벨은 소리치다 말고 눈을 번뜩 떴다.
'팔찌.'
다급히 팔찌를 쥐었다.
이건 처음부터 하벨 티에라의 것이었다.
"날… 건들지 마."
벗어보려고 힘을 주나, 손바닥에 아픔만 밀려왔다.
하지만 하벨은 멈추질 않았다.
"날 풀어줘."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하벨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날 놔줘!"
손바닥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도 하벨은 필사적으로 팔찌를 당길 뿐이었다.
"제발 좀 날 놔달라고!"
당기고.
또 당기다 하벨은 팔찌에 얼굴을 묻듯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이 점점 더 뜨겁게 달궈졌다.
"제발……."
"하벨아."
룬델의 목소리에 하벨은 흠칫 놀랐다.
멍청한 표정으로 룬델을 바라보았다.
'……아.'
눈물이 떨어졌다.
미안함인지, 안도감인지 모르겠지만, 하벨은 뜨겁게 차오르던 눈물을 더는 참지 못했다.
"왜… 이러는 것이더냐."
걱정만이 담긴 그 모습에 하벨은 그제야 알았다.
이 눈물은 룬델을 향한 미안함이었고.
용왕이었던 자신이 왜 슬픔에 빠졌는지를.
―가족이 거창하다면 거창할 수 있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류아가 그러지 않았던가. 피는 이어져 있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단지 부하들이 아니었다.
'내 가족을… 잃었다.'
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고리이자, 자신의 흔적과도 같았던 이들이 다 사라졌다.
전부.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