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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18화 (118/415)

118화. 뒤바뀐다

* * *

《깡! 깡!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곧 비가 올 거라고 합니다. 오랜만의 외출이신데 날씨가 이 모양이니."

카샬이 하늘을 보며 혀를 찼다.

하늘은 지금 맑은데.

"잠깐만."

카샬을 말리고 다시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부서진 확성기가 보였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절로 언성이 올라갔다.

저 확성기는 날씨 예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그걸 부숴버리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인부는 화를 내려다 누군가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아마도 카샬이겠지.

실눈을 뜬 모습이 어떻게 보면 무서울 수도 있으니.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인부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지침이라뇨?"

"이제 확성기는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날씨 예보를 위해 꼭 필요한 확성기가……."

"아니. 아직도 그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까?"

"무슨… 소식이요?"

멈칫거렸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께서도 그 소식을 내게 전해줄 리가 없었다.

소꿉놀이하듯 층층이 쌓인 집에 얌전히 앉아 있으면 그뿐인 나에게?

정령도 보지 못하는, 정화제에 의지해 겨우 숨이나 쉬며 죽어가는 내게 누가 기대할까.

하지만 가슴이 아팠다.

시리고, 시려도 또 시릴 데가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고 하잖습니까? 여긴 계속 맑을 겁니다. 공사를 하는데 날씨가 궂으면 되겠습니까?"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인부의 저 믿음은 대체 무엇인지.

뭔가 이상했다.

"…카샬."

조금 전 카샬이 비가 내린다며 나를 재촉했던 말을 떠올렸다.

카샬에게 다가가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를 속인 거야?"

너마저?

배신감이 들끓었다.

카샬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직 저건 불확실한 정보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이 나지 않아 도련님께 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너까지 나를 멍청이로 만들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대체 누구인지 무슨 정보인지 말해."

"기상국장 웨인 톨. 그자가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날씨를 조종할 수 있다니.

살짝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비는 내립니다. 그러니 어서 집에 돌아가시죠."

"요새 이상해. 아버지야 그렇다 치지만, 너는 왜 그러는데?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런 거 없습니다, 도련님."

카샬은 말과 달리 주변을 경계하며 마차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상했다.

더 나를 보호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화제를 가지고 아버지와 누님이 싸우는 것도 분명 들었는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 상황이 더 갑갑해졌다.

왜 나만.

.

.

.

그 날, 그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다음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에도.》

하벨은 다급히 입가를 가렸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 틈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진짜로 만들어졌다고?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

하벨은 의심했다.

진짜 만들어졌다기에 어딘가 불확실하지 않은가.

직접 본 적도 없었고.

하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저 기술은 절대로 마법사 협회 손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걸.

<…날씨를 조종해서, 네놈이 이 나라를 조종하려고 했는가?>

바안이 분노했다.

그 소리에 하벨은 몽롱한 기분에서 벗어나 아픔을 느꼈다.

구석구석 날카로운 날붙이에 찔린 기분이 선명에 밀려와 역겨움이 치밀었다.

자신을 죽였던 그 감각이 자연스레 떠오르지 않는가.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하벨은 눈을 질끈 감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손수건으로 입과 손을 닦았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하! 저는 이 재난을 극복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저하! 믿어주십시오!>

웨인은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다.

<재난을 극복하고 싶었다? 하면 왜 거대 정화 장치를 건드렸다는 말인가!>

<그…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물의 오염이라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건 마법사 협회뿐인데 제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저는 맹세코 왕실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왕실을 노린 적도 없고, 이, 이 충성만은 진심입니다!>

하벨은 잠깐 비웃음을 그렸다.

'마법사 협회가 재난을 끊을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웃기게도 대부분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놈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웨인이 건드린 건 제 배를 불리기 위한 행동일 뿐, 그는 피의 연회에 개입된 적이 없었다.

<…저하. 이 지긋지긋한 오염이 끝나지 않는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하벨은 흥미로운 말에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진심으로 네 가문을 존경한다.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직접 행동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이유 때문이지.>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하벨은 손을 닦다 멈췄다.

웨인이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지껄일지 궁금했다.

"네 생각이 얼마나 대단한지 들어보고 싶은데?"

<오염된 물을 정화제로 되돌리면 무얼 하겠는가. 재차 오염된 물에 덮여 다시 오염된 물이 될 뿐이지. 그렇다면 오염된 물을 따로 움직여 격리한 후에 정화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지. 나도 말로는 널 수 없이 죽일 수 있는데?"

하벨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웨인이 제시한 방법은 나쁘지 않았다. 가능만 하다면.

현재 정령수의 힘으로도 오염된 물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가문이 소유한,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은 다른 나라가 가진 그 어떤 기술보다 세세할 정도로 물의 흐름을 읽을 수 있지. 마법사 협회가 지금 하려는 일은 오염된 물을 움직여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태를 종료하려는…….>

"직접 봤어?"

하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신이 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글자를 보지 않았던가.

검은 물에 삼켜져 살려달라던 정령들의 필사적인 외침이 담긴 글자를.

<직접… 봤냐니?>

"오염된 물이 어떤 꼴이 됐는지 네놈이 직접 봤냐고 물었어."

내리는 비는 평범한 비처럼 투명했다.

하지만 그 물만큼은 검은색을 띠고 있지 않은가.

'그래. 거기서 더 부족했던가.'

웨인이 가진 그 기술을 통해 검은 물에서 태어난 괴물을 완벽히 조종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당연히 봤지. 오염된 물이 흐르지도 않고 허공에 멈춰 있었어! 저 마법이라면…….>

"그걸 왜 왕실과 협력하지 않을까?"

하벨은 파문을 위해 의문을 하나 던졌다.

당연한 질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찾아간 곳이 왜 하필 너였을까."

이건 아마도 웨인이 직접 느끼고 있을 의문일지도 몰랐다.

하벨은 그걸 살포시 눌러주었다.

"정말 오염된 물을 막고 싶었다면 네가 아니라 티에라 가문을 찾아와야 했을 텐데."

정화제는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를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이상했을 거야. 이상했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가주의 자리에 오른 너는 무언가 필요했겠지. 너도 이만큼 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인정이."

하지만 티에라 가문은 웨인을 쳐다보지도 않았겠지.

그때, 마법사 협회가 놈에게 손을 내밀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내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너도 알면서 왜 그래?"

하벨은 필사적으로 사실을 부정하려는 웨인의 목소리가 참 우스웠다.

"인정받기 위해서 무엇이든 손을 댔을 거야. 하지만 '아차' 했겠지. 이미 발을 빼기에 너무도 멀리 왔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빠져나올 수 없다면 합리화라도 해야지. 마법사 협회에 재차 '빚'을 지면서 말이야."

<…빚을 단 게 그런 이유란 말입니까? 그럼 내가 본 사업 계획서는 다 무엇입니까?>

바안은 경악했다.

믿을 수 없겠지.

자신도 방금 웨인과 대화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테니까.

"뭐겠습니까? 정당화를 위한 하나의 안식처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식처.

"돈에 굶주린 자가 뭐 하러 또 빚을 지겠습니까? 저놈이 이중첩자 질을 한 것도 다 그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언제든지 마법사 협회를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하벨 공의 말이… 정답인 듯합니다. 웨인의 얼굴이 저리도 새하얗게 변했으니까요.>

바안이 목소리를 낮추며 허탈함마저 섞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저하."

하벨은 원하는 바를 손에 넣었다.

원치 않게 하벨 티에라의 기억을 보고 멸망을 하나 막은 듯하지만, 웨인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제 놈이 절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마법사 협회가 왜 웨인 톨이 소유한,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을 노렸는지.

그 이유를 듣기 위해서 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걸로 정말 충분합니까?>

바안은 혹시나 하며 물었다.

"딱 한 가지가 아쉽습니다."

<그러면 더 물어도 됩니다.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아뇨. 놈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이건 모습을 담아낼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죠.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라. 만약 있다면 신기하겠습니다.>

바안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탁.

연락용 아이템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공의 말에 웨인 놈은 자기 생각에 잡아먹힌 듯 보였습니다. 의식에 균열이 나고, 아마 이제 천천히 잠식되겠지요.>

"그럼, 충분합니다, 저하."

어차피 웨인은 죽게 되어 있었다.

이제 곧 검은 달에서 놈을 죽이기 위해 움직일 테니까.

일부러 바안에게 그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

검은 달의 정보가 없는 와중에 그 어떤 작은 정보라도 얻을 기회였다.

'그 자리에 레디나도 있을 테니, 어쩌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거고.'

처음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 암살자도 검은 달의 일원이었다.

티에라 가문에 자연스럽게 잠입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는가.

<그거 압니까? 공이 찌르는 말에 이상하게 나도 아팠습니다.>

"저는 저하를 찌른 적이 없습니다."

바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있어요. 나 혼자 찔린 모양입니다. 그럼, 나머지 정보는 알아내는 즉시 공에게 넘겨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공 덕에 또 정보를 하나 알아냈습니다.>

"아닙니다, 저하. 저하께서도 곧 얻으실 정보였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벨 공. 여기서 내가 아니라고 하면 말씨름만 이어지겠지요. 이제 그만 쉬십시오, 하벨 공. 오늘 너무 신경 썼어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하. 저하께서는 앞으로 이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실 텐데 지금은 괜찮으십니까?"

<음…….>

바안은 말꼬리를 늘였다.

<죽을 것 같습니다.>

"정상이십니다, 저하."

<푸핫!>

한 번 터진 바안의 웃음이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서야 바안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미, 미안합니다, 하벨 공. 오랜만에 웃음이 터졌네요. 그럼, 이제 끊겠습니다. 아, 웨인의 기술은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테니까요.>

"그러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벨은 연락이 끊어진 후에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일단 피가 묻은 손수건을 넣고, 연락용 아이템까지 넣으려다 슬쩍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휴대전화를 닮아 있었다.

'…흠.'

하벨은 연락용 아이템을 문질렀다.

가끔 이런 현대용 물건을 보게 되면 괜스레 한 번씩 이전 세계가 생각이 나곤 했다.

자신이 살던 곳에 있던 사람들은 수족에게 해방되자마자 붙잡혔던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나올 정도로 고점에 올랐다 싶을 때쯤, 그들의 시간은 비로소 천천히, 제대로 흘러갔다.

문득 자신이 죽고 난 뒤, 원래 세계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졌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너는 바다와 물의 지배자인 용왕이자 그것들의 심장이다. 네 존재는 세계를 위한 것이며 세계를 위한 열쇠가 되거라.

여전히 이해 못 할 소리였으니.

심장은 무슨 말이고, 열쇠는 또 뭔지.

'…설마 내가 죽고 그 세계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어차피 자신이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육체는 이미 없을 테지.

하벨은 연락용 아이템을 아공간 주머니에 던지고 아라와 칼리우스가 놀라기 전에 손을 씻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얼마나 즐겁게 놀고 있으면 링거 거치대가 움직이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건지.

다행이었다.

하벨은 아직도 손가락에 묻은 피를 바라보았다.

'씻고 가봐야겠네.'

아라와 칼리우스가 왜 침대에 있지 않냐며 한소리 할 테지만, 하벨은 그들이 뭐 하고 노는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쏴아아.

세면대에 손을 씻고 고개를 올렸다.

여전히 거울 속에 비친 이 얼굴이 어색하게 보였다.

갑자기 싸한 기분이 몰려왔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하벨은 눈을 찌푸리며 생각하고자 애를 쓰나 가슴만 일렁거렸다.

'하얀 머리카락.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금세 일그러졌다.

자신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꿈을 꿔도 자신의 시점에서 진행되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대체 기억이 얼마나 망가졌길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다니.'

하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푸욱!

자신을 꿰뚫은 그 날붙이들의 소리는 이토록 선명한데.

하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됐다. 떠올리지 마.'

손을 닦으려고 한 걸음 내디딘 순간.

―기억하거라.

흠칫.

'……?'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떠오르고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허, 허억!"

단숨에 자신의 숨통을 쥘 만큼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복부가 타는 것처럼 고통이 몰아닥쳤다.

―네놈이 가진 그 열쇠.

'…열쇠?'

열쇠라니.

―그건 이제 내 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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