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그래서 누구라고?(3)
* * *
크라마의 눈빛에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 절박함이 가득했다.
"잠시만요."
하벨은 일단 크라마를 멈췄다.
지금 라르웬에게 다시 물어야 할 게 있었다.
"샀어."
하벨의 입술이 움직이기도 전에 라르웬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 땅은 이제 티에라 가문의 소유야. 됐어, 막내야?"
"예, 고맙습니다."
하벨은 활짝 웃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라르웬이 말함으로써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도 알게 되겠지.
이 땅을 티에라 가문이 소유했다는 사실을.
하벨은 라르웬의 한숨을 들으며 크라마를 보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누구십니까?"
[크라마인데? 대장도 봤잖아. 얼마 전에 이 땅을 원한다고 대장한테…….]
칼리우스를 달래던 아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꼬리를 바짝 세웠다.
[아! 대장은 지금 왕실에서 바안이랑 했던 것처럼 모르는 척 연기 중이구나! 용용아, 쉬잇.]
아라는 입가에 앞발을 올리며 칼리우스에게 당부했다.
칼리우스는 눈물을 마저 닦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는 크라마라고 합니다."
"아. 이곳의 땅 주인이셨습니까?"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고 꺼내는 하벨의 말에 라르웬과 루룸의 눈동자가 거의 동시에 흔들렸다.
[이건… 사실을 몰랐으면 나도 속았겠는데?]
루룸은 라르웬을 슬쩍 찔렀다.
[네 동생 말이야, 이런 쪽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니야?]
라르웬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네."
하벨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 라르웬은 편안한 마음으로 하벨이 하려는 행동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땅 주인이 아닙니다."
크라마는 레디나를 힐끔 쳐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땅 주인이십니까?"
하벨은 자연스럽게 레디나를 향해 묻자 그녀는 키득거렸다.
"아뇨. 저도 아닌데요?"
"형님? 땅 주인이 없는데 어떻게 땅을 사셨습니까?"
"제가 제 주인으로부터 땅의 권한을 이양받았어요."
레디나는 당장 하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말을 꺼냈다.
"조건도 제법 괜찮고요.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땅이기도 했죠."
"그럼 이분하고 무슨 관계입니까?"
하벨이 크라마를 가리키며 묻자 레디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관계도 아닌데요?"
사실이지만, 자신만 외부인이 된 느낌에 크라마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맞습니다.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그래서 거짓 없이 말을 내뱉음에도 입 안이 썼다.
"그럼 외부자라는 뜻이네요. 방금 날 향한 습격이 있었습니다. 외람되지만, 무슨 자격으로 이 일에 끼어드시는 겁니까?"
하벨은 조금은 날을 세워 물었다.
크라마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 관계도 아닐 뿐이지, 완전히 외부자는 아닙니다. 저는 현재 이 땅의 주인에게 임무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계약이 끝난 게 아닙니까? 내 적을 처단하는 일에 굳이 나서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마차에 붙은 문양이 보이지는 않는 겁니까?"
"아닙니다. 티에라 가문의 자제분이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땅이 필요합니다."
크라마는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태도로 말을 꺼냈기에 하벨은 넌지시 라르웬을 쳐다보았다.
"그런 조항은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우리가 이 땅을 얻으면서 적은 조항과 관련된 일은 다 이쪽과 엮여있지."
라르웬은 레디나를 가리켰다.
가면단이 곧 자신들이니 땅을 소유한다는 계약서에 뭘 적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아, 그럼 내가 만만해 보인 겁니까?"
하벨이 비웃음을 그리자 조금 전보다 더 쓴맛을 느끼며 크라마가 대답했다.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땅을 지킬 수 있게 저를 고용해주십시오."
하벨 말대로 땅 소유자가 티에라 가문으로 넘어간 이상 계약은 끝났다.
땅을 노릴 순 없는 건 당연했고.
하지만 나중에라도 달님하고 말을 나눠야만 했다.
―어차피 그대들은 이 땅을 지키지 못해.
라르웬이 꺼냈던 그 말이 다시금 가슴을 찔렀다.
이상하게도 저 말이 자신을 향해 꺼낸 말 같았다.
'…사실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땅을 소유할 수 없다면 저들과 신뢰를 쌓아 이 땅을 수호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법사 협회의 손에 이런 땅들이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하니.
"그렇게 간절합니까?"
하벨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웠다.
"간절합니다. 아주 많이요."
"그럼 내게 가능성을 보여주세요. 판단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겠습니다."
"실례합니다."
하벨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크라마의 한쪽 눈에서 뻗어 나온 초록색 빛이 뱀처럼 번져갔다.
자신과 이어진 동물의 시야가 보였다.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새가 되었기에 바람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도련님을 습격한 세력이 지금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이미 이곳에 온 순간부터 틈틈이 동물들을 움직여 마법사들을 골라냈기에 파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의 날개를 접어 그대로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졌다.
쉬이이이익.
바람을 타 가속도를 붙이고 적이 보이자 날개를 살짝 펼치며 발톱을 들이밀었다.
적을 낚아채듯 밀며 날개를 움직여 다시 하늘로 날았다.
콱!
보기만 해도 아플 정도로 나자빠진 적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 보이던 늑대까지는 필요 없을 듯했다.
"당장 정령님께 지금 하늘에서 빙글 돌고 있는 큰 새를 따라가시라고 말씀해주십시오. 적을 기절시켜놓았습니다."
한순간, 눈에 초점이 나간 듯했지만, 신기하게도 크라마의 입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미리 파악하셨나 봅니다."
하벨은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물었다.
마법사 협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관없이 나서는 모습은 좋았지만, 이렇게 빨리 티에라 가문 쪽에 붙을 줄이야.
'기분이… 좀 나쁜데?'
"맞습니다. 오기 전에 마법사들의 위치를 파악해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법사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즉각적으로 처리하지 못했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아직 다수의 정보를 한 번에 처리는 부분이 미흡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응이 늦어졌습니다."
크라마는 여전히 눈동자에 초록색 빛을 띄운 상태였다.
저번에는 크라마가 '동물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을 흘러들었지만, 직접 능력을 보니 나쁘지 않았다.
'요컨대, 공격이 가능한 GPS란 말이 아닌가.'
페트리오는 정보를.
크라마는 추적을.
레디나는 암살을.
이렇게 된다면 페트리오와 레디나가 서로 담당하던 추적을 크라마한테 넘김으로써 각자의 업무에 효율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레디나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동물을 제공할 수 있을 테고.
하벨의 시선이 랜턴으로 잠깐 옮겨졌다.
'절대로, 너 때문이 아니다.'
재수 없는 랜턴.
크라마를 보았을 때, 환한 빛을 띄우지 않았던가.
하벨은 잠깐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숨을 천천히 내쉰 뒤에 말을 꺼냈다.
"형님. 잠깐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하벨은 마차를 슬쩍 바라보았다.
지금 마차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해. 나도 바로 마차에 올라탈 생각은 없으니까."
루룸의 보고를 듣던 라르웬은 당장 어디론가 갈 준비를 하며 대답했다.
죽여야 할 놈이 남아 있었다.
"그것보다 막내야, 상태는 어때? 괜찮다는 말 말고."
하벨은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조금 전보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대장이 피를 토했어!]
아라가 목소리에 힘을 꽉 쥐며 말했다.
"막내야……."
라르웬의 표정이 굳어지자 하벨은 마차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말로 충격 때문입니다."
"…하. 좋아. 지금은 일단 모르는 척 넘어가 줄게."
라르웬은 뒤로 물러서 레디나를 보았다.
"잠깐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일단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앞으로 땅 문제로 말을 나눠야 할 사이가 아닌가."
"좋아요."
레디나는 라르웬이 무얼 말하는지 눈치챘다.
하벨을 건드린 놈을 같이 아작내자는 의미겠지.
"정리할 것도 있고."
이곳에 깔린 마법사들까지 처리한다는 뜻을 내포하자 레디나는 가면 속에서 입꼬리를 가득 올렸다.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가락이 근질거리던 참이었으니.
[이 말썽꾸러기야.]
루룸은 라르웬을 따라가려다 하벨의 이마를 꽁 때렸다.
[얌전히 있으면 입 안에 뭐가 나기라도 해? 우리가 얼마나 자리를 비웠어? 1시간을 비웠어? 무슨 그 짧은 시간에 사건이 하나 벌어져?]
[맞아! 루룸 말이 다 맞아! 이 몸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거야.]
아라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억울하다.'
마차 문을 열자마자 습격을 받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아! 루룸, 루룸!]
아라가 곧 눈동자를 반짝이며 루룸을 불렀다.
[왜?]
[있잖아! 다들 도와줬다?]
[도와주다니? 아, 하벨을?]
[맞아! 정령들이 대장을 감싸줬어! 이 몸은, 이 몸은 진짜 행복했어. 엄청 든든했고. 우리 편이 생긴 기분이라 가슴이 막 콩닥콩닥 뛰었어.]
다시 생각해도 멋졌다.
자신이 힘을 쓰려던 순간, 정령들이 움직였으니.
[그럴 만하지. 말썽꾸러기지만, 요새 예쁜 짓을 많이 했잖아.]
루룸은 하벨의 볼을 꾹 누르며 싱긋 웃었다.
"그만해, 루룸."
라르웬이 루룸을 두 손으로 쥐었다.
[에이, 살짝 찌른다고 하벨이 기절하는 것도 아니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하여튼 쪼잔하기는.]
루룸이 발을 버둥거렸지만, 라르웬의 손아귀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쿡.
아라가 조심스레 하벨의 볼을 찌르다 그와 시선이 맞았다.
순식간에 털이 바짝 서서는 부들부들 떨리자 루룸은 라르웬의 손을 살짝 깨물다 말고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핫…!]
그 소리가 움직이는 라르웬과 함께 점점 멀어졌다.
[혹시 아, 아팠어, 대장?]
아라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루룸이 하벨을 찌르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벨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누르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럼, 타시죠."
크라마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
꿀꺽.
크라마는 마차에 오르자마자 긴장감을 좀처럼 풀 수가 없었다.
하벨과 나란히 타고 있는 저 아이는 대체 누구인지.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저 아이를 보자 마나가 환호하듯 일렁거려왔다.
"아, 이번에 내 집사의 시종이 된 아이입니다."
하벨은 칼리우스를 빤히 쳐다보는 크라마의 시선에 태연하게 칼리우스를 소개했다.
"입이 무거우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종… 이라고?'
크라마는 마차에 오르다 말고 일순간 멈췄다.
울었는지 눈가가 붉어져 있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종의 시선이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싸늘하지 않은가.
"…예."
크라마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려 애를 쓰나, 바로 옆에 그 시종이 있었다.
"용용아."
하벨이 입을 열자 크라마는 흠칫거렸다.
용용이?
"응?"
"……?"
크라마의 눈이 재차 커졌다.
존대가 아니라니.
아무리 아이라지만, 제 주인한테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혹시 불편해?"
"아니. 여기가 훨씬 좋아!"
칼리우스는 배시시 웃었다.
여기에는 같은 용인 하벨도 있고, 친구인 아라도 있었다.
"크라마 씨?"
하벨이 부드럽게 크라마를 불렀다.
"…예."
이상하게 바짝 얼어붙은 크라마를 보니 하벨은 일이 예상외로 쉽게 흘러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긴장하고 있기에 머리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테니까.
"내 이름은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도련님."
"동물을 조종하는 마법을 가지고 계시고요. 맞습니까?"
"예. 그게 제 마법입니다."
"동시 조종은 얼마나 가능한 겁니까?"
"현재 최대 5마리까지 가능하고 시야까지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칼리우스는 호기심을 최대한 억눌렀지만, 시선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반짝이는 눈빛이 아라 못지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봐, 용용아.'
하벨은 칼리우스를 살짝 바라보고는 다시 크라마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에 문제를 느꼈다.
자신이야 이제 페트리오와 연락할 수단이 생겼지만, 레디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암살자로서 몸에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을 지닐 수조차 없었다.
연락용 아이템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있을 수도 있고, 은밀히 무언가를 전하고자 할 때 크라마의 힘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지.
'게다가 공격까지 가능한 걸 확인했고.'
적어도 제 몸을 보호할 수단은 존재했다.
독사 2마리만 있어도 웬만한 암살자 못지않을 수준이 아닌가.
"목적이 뭡니까?"
하벨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크라마의 간절함.
자신에게는 그게 필요했다.
"조금 전 땅을 거래할 당시 라르웬 티에라 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형님께서요?"
"'어차피 그대들은 이 땅을 지키지 못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벨은 크라마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맞습니다. 방금은 제가 오만했습니다. 한때 이 땅을 가지고자 마음먹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미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눈치가 없다는 말을 가끔, 아주 가끔 듣긴 했는데, 여기서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긴장이 살짝 풀린 건지, 처음 크라마를 보았을 때처럼 나른한 표정이 드러났다.
"설령 이 땅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저는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얼 생각하신 겁니까?"
"……."
크라마는 당연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하벨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음을 다독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지킬 수 없다면 지금까지 찾았고, 소유한 마성물이 존재하는 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티에라 가문과 마법사 협회를 싸우도록 유도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하벨이 잠깐 실소를 내뱉자 크라마는 살짝 뚱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예. 믿기 어려우시겠죠. 어쨌든, 애초에 마성물을 마법사 협회만 소유해야 한다는 법조차 없는데 왜 싸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도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보아도 목적이 뻔한데 시치미를 뗄 작정입니까? 왜 티에라 가문 뒤에 숨으려는 겁니까?"
"숨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티에라 가문에서는 마법사 협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그건……."
하벨은 손을 들어 크라마의 말을 막았다.
"각오는 되셨습니까? 나는 잔재주를 싫어합니다."
"물론입니다. 절대, 허투루 꺼내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리 제가 동물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해도 감히 정령님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편안이라는 말은 크라마 자신하고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마법사 협회에서는 예전부터 티에라 가문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도 없이 이렇게 함부로 입을 놀렸겠습니까? 저는 제 목숨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글쎄요.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다급해서. 너무 다급해서 그랬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지금 도련님과 독대를 하고 있습니다."
하벨이 칼리우스를 슬쩍 가리키자 크라마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티에라 가문 근처에 티에라 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어……? 대장이 처음으로 뒷세계가 갔던 곳이잖아?]
아라가 귀를 쫑긋 세웠다.
"마법사 협회가 그곳 뒷세계에 마법사를 보냈습니다. 그 정황을 포착했고요."
크라마는 사진 몇 장을 내보였다.
―사진기 말입니까? 귀하죠. 연락용 아이템 못지않게 비쌉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마성물이 사용됩니다. 한 번 찍는데 굉장한 마나가 필요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하죠.
하벨은 카샬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사진을 보다 말고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때, 그 뒷세계에서 죽였던 불 마법사인데?'
그놈이 누군가와 만나는 장면이 여럿 찍혀 있었다.
불 마법사가 만나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은 후드로 가려져 있었고.
'이미 저놈들을 움직인 자는 마법사 협회였고, 놈들이 몰락한 귀족 그림자에 숨어 이를 은닉했다는 사실까지 확인하지 않았던가.'
룬델은 경고의 의미로 그 귀족 가문을 끝장냈고.
이미 끝난 일이 왜 다시 나오는 건지.
'모르는 척해야 하나.'
하벨은 크라마를 쳐다보았다.
마치 이전부터 준비했던 패인 것처럼 그는 기세등등했다.
"그 뒷세계 사건은 이미 티에라 가문에서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꼬리는 잡지 못하셨을 겁니다."
확실히 그랬다.
결과적으로 마법사 협회만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지 놈들은 아직 단단했다.
"저는 그 꼬리를 알고 있습니다."
크라마의 뒷말을 듣자마자 하벨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꼬리라니.
"그래서 누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