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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05화 (105/415)

105화. 쫓아라, 잡았다(3)

* * *

"아니, 도련님.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놈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했다니요."

카샬은 기가 찬 소리를 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래. 아마 저하도 이를 눈치채고 새로운 지시를 내리고자 서두르신 거겠지."

하벨의 목소리가 여전히 가벼웠기에 카샬은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와……."

자기 가문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놈이 어떻게 가주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놈이 가주가 됐는지는 뻔하지. 그렇지 않아, 카샬?"

흠칫.

카샬은 하벨이 꺼내는 말에 깜짝 놀랐다.

"혹 요새 읽으시는 책 중에 '이것만 읽으면 당신도 독심술의 왕' 같은 제목의 책도 있었습니까?"

"그럴 리가."

하벨은 키득거렸다.

자신이 왕으로 지낸 세월이 몇인가.

"어쨌든, 바안 저하가 웨인 놈을 통해 얻으려 했던 건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었는데 그게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급하겠어?"

"자, 잠깐만. 나는 지금 하벨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칼리우스는 대화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힐끔 아라를 쳐다보자 이미 눈이 핑그르르 돌고 있지 않은가.

"간단해."

하벨은 말부터 던졌다.

"용용이 네가 쫓았고, 좀도둑이 알아낸 사실을 통해 웨인 톨이랑 마법사 협회가 손을 잡았다는 걸 확인했어."

[응! 거기까지는 이 몸도 알아!]

이제야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라는 눈에 힘을 줬다.

"나도, 여기는 알아."

벌써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이니 칼리우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잖아."

하벨이 툭 던진 말에 카샬은 얼른 주워 담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했습니다. 어쩌면 덜미를 잡았다는 사실에 시선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잊고 있었던 사실.

당연히 먼저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이었는데.

"웨인이 굳이 왜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아야만 했을까."

하벨은 싱긋 웃었다.

[어어, 손을 잡다라는 건 힘을 합친 거야. 힘을 합칠 만한 이유는, 음. 음.]

아라는 눈을 질끈 감다 곧 크게 떴다.

[무언가 부족해서야!]

"그래. 놈은 무언가가 부족했을 거야.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고, 놈들이 하라는 대로 거대 정화 장치를 해체했겠지. 즉, 위는 마법사 협회고, 아래는 웨인이라는 뜻이겠지?"

칼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오염된 지금,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데. 마법사도 사람이야.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웨인이 아래가 됐다는 건 하나밖에 없는 거지."

하벨은 바안이 연락을 끊자마자 불꽃이 사라진 랜턴을 툭 건드리며 뒷말을 이었다.

"웨인 놈은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고."

답은 뻔했다.

그래서 간단하다고 먼저 말을 꺼낸 거였다.

[그, 그럼 쓸 수도 없는 기술로 막막 거짓말을 한 거였어?]

아라가 기겁하며 꼬리를 바짝 세웠다.

"그래. 전형적인 거짓말쟁이야. 할 줄 아는 게 거짓말뿐이라서 위급할 때, 어디로 달려갔는지 봤잖아?"

"그래서 도와달라고, 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거였어."

칼리우스는 그제야 배시시 웃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감정에 웃음기를 천천히 지워나갔다.

느닷없지만, 웨인 톨이라는 사람이 부러웠다.

"하벨."

"왜? 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어?"

칼리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하벨한테 도와달라고 말해도 돼?"

혼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을 갑자기 확인하고 싶어 꺼낸 말이었다.

괜히 말했나.

칼리우스는 움츠러든 채로 양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하벨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세상을… 멸망시킬 용인데.'

칼리우스의 미래를 보았기에 하벨은 그의 맑은 눈동자가 여전히 낯설었다.

아직 이렇게 순수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지만 하벨은 감정에 휩쓸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멸망을 처단할 생각이 없다면 이미 칼리우스에게 말했던 부분을 자신도 지켜야 했다.

"네 마나가 차기 전까지라면야 괜찮아."

하벨이 웃었고, 칼리우스는 안도하며 배시시 웃었다.

[이 몸도 도와줄 수 있어! 이 몸이랑 용용이는 친구잖아.]

아라는 칼리우스를 꽉 안아주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제가 보기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칼리우스가 아니라 도련님으로 보이십니다."

카샬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용이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게 참 웃기지 않는가.

하벨은 카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페트리오에게 연락했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페트리오가 바로 연락을 받자 하벨은 잠깐 눈을 깜박거렸다.

지금쯤 칼리우스가 발견한 그 집을 부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빨리 받아?"

<어떤 상황에서든 계속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잘났네."

카샬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앞으로 잘 기억해둬, 꽃님아.>

더 큰 반격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카샬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저……."

새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확 치밀어올라다가 하벨을 보고는 삼켰다.

"좀도둑."

<예, 도련님.>

페트리오는 조금 전과 달리 너무도 공손했다.

"저 새끼, 저거. 내 언젠간 아작 내고야 만다…!"

카샬이 이를 갈자 하벨은 웃음을 참지 않았다.

"아, 미안."

하벨은 카샬을 향해 비웃음을 그리고는 그제야 만족해하며 목소리를 냈다.

"웨인 놈의 저택을 알아보는 건 바안 저하가 담당하실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지금 움직이고 계실 거라고."

<지금요? 시기가 예상보다 이르잖습니까? 아직… 부수고 있습니다.>

얼핏,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좀도둑 너는 지금 웨인 놈의 계좌를 쫓아."

바안이 저택을 뒤진다면, 이 소식을 알게 된 마법사 협회에서 당연히 남은 흔적을 지우려 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미 지우기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고.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그럼.>

페트리오는 다급히 연락을 끊었다.

"자, 우리도 움직여볼까?"

하벨은 연락용 아이템을 내려놓은 뒤에 카샬을 바라보았다.

웨인은 이제 바안과 페트리오가 알아서 잘할 테니 자신은 이제 다른 걸 살펴볼 차례였다.

"도련님……?"

카샬은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 저택으로 돌아가야지."

티에라 가문으로.

"계속 여기에 있을 거 아니잖아?"

[대장, 많이 아파?]

아라가 깜짝 놀라며 하벨의 이마를 짚었다.

[앗 뜨거!]

아라는 다급히 앞발을 떼서는 울먹였다.

[어떡해, 용용아.]

"왜, 왜 그래, 아라야?"

칼리우스는 말을 더듬거렸다.

열이 또 높아졌을까.

아라만큼이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장이 엄청 아픈가 봐. 대장이… 대장이, 집에 가자고 말했어! 이 몸은 이런 소리를 처음 들어봐!]

아라의 눈동자에 금세 커다란 눈망울이 고였다.

'……?'

하벨은 아무리 아라가 꺼낸 말이라도 감정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가자고 했을 뿐인데.

자고 일어났더니 좀 살만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카샬! 아라가 그러는데 대장이 엄청 아프대!"

호들갑을 떠는 칼리우스의 행동에 카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도련님의 업보인 거 보이시지요?"

"시끄러워, 카샬."

"진짜 저택으로 갈 준비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정말로 준비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그럼 레디나한테……."

"레디나를 데려와야지. 겸사겸사 크라마 얼굴도 보고, 또 형님께서 땅도 잘 사시는지 봐야 하고."

그럼 그렇지.

카샬은 슬쩍 내밀었던 기대를 제 손으로 찢어 던졌다.

"그럼, 둘째 도련님한테 여쭤보겠습니다."

"그래. 어서 물어봐봐."

하벨은 손을 휘휘 저었다.

자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라르웬한테 크라마를 감당할 수 있냐고 묻지 않았던가.

"어서."

이번에 귀족들을 없애면서 땅 하나 산 적이 있었다.

원래는 바람처럼 흘러가야 할 마나가 고인 땅.

마법사들이 마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마성물이 가득한 곳이었기에 마법사 협회가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법사 협회에 대항하겠다는 크라마를 만났고, 이번 땅 사건으로 크라마와 재차 얽혔다.

크라마의 입장에서는 그 땅을 절대로 마법사 협회 손에 넘어갈 수 없으니 당연히 자신을 도와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테지.

"도련님."

카샬은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하벨을 불렀다.

"왜?"

하벨이 순진무구한 자신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까.

"이번 일로 크라마가 땅을 더 포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벨이 왜 크라마를 움직였는지는 알고 있었다.

땅을 노렸던 만큼 현재 그 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크라마뿐이었기에 레디나를 위해 움직였을 테지.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땅을 지켜봤으니 이전보다 더 쉽게 놔줄 리가 없었다.

"아니지, 카샬."

하벨은 딱 알맞게 식은 수프를 먹으려 숟가락을 쥐었다.

손바닥이 아픈 만큼 그 모습이 어설펐다.

[이 몸이 해줄게!]

아라가 쪼르르 날아와 네 발을 활짝 펼쳤다.

꼬리가 함께 흔들렸다.

"나도 숟가락 쥔 지 10년이 넘었고, 엄청 잘해."

이어 칼리우스가 자랑하듯 말을 꺼냈다.

하벨은 그들을 바라보다 가볍게 웃고는 억지로라도 수프를 잘 먹는 모습을 내보였다.

"그 땅은 곧 티에라 가문이 살 텐데. 그때도 과연 떼를 부릴 수 있을까?"

공식적으로 땅의 주인이 바뀌는 셈이었다.

"…지금 엄청 악랄한 말씀을 하셨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크라마의 진심이 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냥 겸사겸사 보는 거지."

―…마법사 협회에 대항하려고 했습니다.

크라마가 자신을 향해 그 말을 하지 않았던가.

이를 헤레스가 사실임을 증명해주었고.

하지만 진심은 누구든 모르는 법이었다.

원래도 자신의 잠을 깨워버린 마법사 협회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만, 거대 정화 장치를 의도적으로 오염시켜 검은 물을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더 처절하게 부서트려야지.

'같은 방향을 향하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쨍그랑.

하벨은 숟가락을 놓쳤다.

'…하.'

아래를 내려다보다 슬쩍 시선을 올리니 아라와 칼리우스의 눈동자가 너무도 반짝거렸다.

* * *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하벨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을 짓누르는 열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어려웠다.

분명 자기 전까지 버틸 만했는데.

[안 돼, 대장! 이… 이 몸이 일어났어!]

아라는 아직 잠이 덜 깨 비몽사몽 한 채로 날아가다 유리에 머리를 박았다.

콩.

[이 몸은, …이 몸은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아!]

아라는 울먹거리며 힘차게 소리쳤다.

[어……?]

아라의 눈이 커졌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정령들은 거대 정화 장치에서 보았던 정령들이 아닌가.

아라가 낑낑거리며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몰아쳤다.

하벨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시원했다.

[안녕, 아라야.]

[안녕. 또 만나네!]

아라가 배시시 웃으며 앞발을 흔들었다.

[앗! 쉬, 쉿! 지금 대장이 자고 있어. 조용히 해야 해.]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맞췄다.

[짠. 우리가 뭘 가져왔게, 아라야?]

고양이 귀를 한 정령이 배시시 웃으며 다른 정령들처럼 앞발에 무언가를 소중히 움켜쥐고 있었다.

킁킁.

아라는 냄새를 맡았다.

[어어?]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가 아닌가.

정령들은 하벨을 둘러쌌다.

[하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벌써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눈빛에 아라마저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셋!]

숫자에 맞춰 정령들이 움츠렸던 손가락을 펼치자 은은한 빛이 퍼져 나왔다.

[저, 정화제야!]

아라가 꼬리를 힘껏 흔들며 소리치다 다급히 자신의 입을 가렸다.

분명 정화제였다.

반영구가 된 정화제.

별빛처럼 예쁘게 하벨 위로 떨어졌다.

[…어.]

아라는 자신의 앞발이 은은하게 빛나는 걸 바라보았다.

저 정화제 때문일까.

머릿속으로 힘 하나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바람이 불 듯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 몸은 이제 물을 통해 이동할 수 있어.'

아라는 배시시 웃으며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어서 나아, 대장!]

하벨이 낫기 전까지 열심히 익혀야지.

[아프지 마, 하벨.]

[너한테 받은 은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이 힘으로 아픔이 사라지면 좋겠어.]

[부디, 이 빛이 네 속을 파고든 오염된 물을 지워주길.]

정령들은 하벨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며 그의 회복을 바랐다.

새액. 색.

열 때문에 하벨의 숨소리가 빨라졌지만, 그는 천천히 눈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손길이 너무도 부드러웠다.

밀려오는 바닷냄새에 머리를 찌르듯 솟구치던 열이 차차 가라앉는 듯했다.

처음 반영구가 된 정화제를 만졌을 때처럼 용왕의 힘이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고맙다.'

너무도 상냥한, 작은 친구들.

사아아아.

쏟아지는 잠과 함께 그립고 그리웠던 파도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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