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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04화 (104/415)

104화. 쫓아라, 잡았다(2)

* * *

<알겠습니다.>

페트리오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덜미를 잡았고, 확실해진 이상 뭘 망설이겠는가.

"나도 부수는 거 잘하는데."

의자에 앉은 칼리우스가 발을 동동 흔들며 말했다.

"넌 안 돼, 용용아. 마나를 아껴."

하벨은 바로 고개를 가로젓다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숨을 삼켰다.

거대 정화 장치 일로 칼리우스의 마나가 또 소비되지 않았는가.

칼리우스가 카샬의 보조 시종이 된 이상 먼저 저택으로 보낼 수도 없고.

<도련님.>

페트리오가 입을 열었다.

"왜?"

<어디까지 부수면 되겠습니까?>

"말할 입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가능해?"

<도련님. 전투 재능이 없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뒷세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페트리오는 정중히 말을 꺼냈다.

"아, 실수했네. 그런데 이해해줘. 내가 본 건 정화제를 훔치려고 했던 좀도둑이라."

<도, 도련님!>

페트리오의 목소리에 당황함이 섞이자 아라가 키득거렸다.

[이 몸도 기억하고 있어! 대장이 던진 빗자루에 걸려 넘어졌잖아!]

"빗자루?"

칼리우스가 눈을 크게 뜨자 아라는 꼬리를 흔들며 작게 속닥였다.

[응응. 엄청 세게 넘어졌어.]

'하벨은 빗자루를 엄청 잘 던지는구나.'

칼리우스는 기대감을 가득 드러냈다.

"그런데 너, 마법사를 잡아봤어?"

하벨은 무언가 생각하듯이 말을 꺼냈다.

바안이 마법사 협회가 움직였다고 말해주었다.

이번 일로 부딪히게 된다면 마법사 협회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지 않겠는가.

좋든 싫든 마법사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질 테지.

<당연히 잡아봤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닙니까?>

페트리오는 마법사였다.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

<아, 뒤처리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원래 시체 처리를 주로 삼았습니다.>

"정 안 되겠으면 연락해. 카샬을 보낼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벨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아뇨. 그놈은 보내줘도 필요 없습니다. 쓸 곳이 없을 테니까요.>

똑똑.

"저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도련님. 절대로요."

문이 열리자마자 카샬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밀며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들었어, 좀도둑?"

하벨이 씩 웃자, 페트리오는 단번에 언성을 높였다.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꺼지라고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하벨은 연락을 끊은 뒤에 카샬을 보았다.

이미 전해주지 않아도 그 말을 들었는지 짜증이 확 일어난 게 보였다.

"들었어?"

하벨이 굳이 확인 차 웃으며 묻자 카샬은 화를 꾹 참고는 하벨의 식사를 위해 준비했다.

"아주 잘 들었습니다. 검으로 반기고 싶을 만큼요."

[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은데. 페트리오하고 카샬하고 서로 싫은가 봐.]

살랑살랑 흔들리던 아라의 꼬리가 멈추자 하벨은 아라의 머리를 간질이며 웃었다.

"아니야, 아라야. 카샬하고 좀도둑하고 개하고 고양이 같은 사이일 뿐이지, 서로 친해."

"도……."

순간, 울컥했지만, 카샬의 시선이 하벨의 손가락 끝쪽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지만, 아라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 아닙니다. 아까보다 조금 덜 묽은 수프를 준비했습니다."

카샬은 속으로 화를 삭였다.

아픈 사람한테 화를 내서 무얼 하겠는가.

"그럼 개는 누구고, 고양이는 누구야?"

칼리우스가 묻자 아라는 눈을 반짝거렸다.

[오오, 이 몸도 엄청 궁금해. 이 몸이 보기에 고양이는 카샬이고, 개는 페트리오야.]

"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칼리우스는 배시시 웃다 카샬을 바라보았다.

하벨까지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카샬을 쳐다보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둘 다 싫습니다. 저는 저일 뿐입니다. 물론, 고양이와 개는 둘 다 좋습니다."

하벨은 후련한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와 링거 거치대를 잡고 테이블로 걸어왔다.

한쪽에는 아라가, 다른 쪽에는 칼리우스가 자신을 붙잡았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상황은 밖에서 들었어?"

"반쯤 들었습니다."

"용용이가 찾았던 그 장소로 웨인 놈의 부하들이 찾아갔다네?"

"거기에… 놈의 부하가 왔다고요?"

카샬은 먼저 물을 따르려다 말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 진짜 웃기지?"

"이건 웃긴 정도가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된 덜미를 쥐신 게 아닙니까?"

카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궁지에 몰린 웨인이 한 번의 더미를 이용해서까지 찾아간 곳이라면, 이보다 더 확실한 곳이 있을까.

지이이잉.

연락용 아이템이 울리자 카샬은 바로 움직였다.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앉아 계십시오."

[이 몸은 아까 용용이하고 숟가락 쥐는 법을 연습해서 더 잘 떠줄 수 있어!]

아라가 숟가락을 쥐려고 하자 하벨은 바로 숟가락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쓰라림에 속으로 신음을 참았다.

"괜찮아, 아라야.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조금 전 식사 때, 아라가 낑낑거리며 온몸으로 숟가락을 들지 않았던가.

마음은 고맙지만, 아직 손바닥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라의 모습을 보니 뭔가 안쓰러워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럼 내가 해줄까? 내가 해줄 수 있어. 나는 숟가락만 음, 10년 이상은 쥐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칼리우스가 활짝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역시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제 집사 경력이 몇 년입니까."

"…이리 줘."

카샬이 입꼬리를 올리자 하벨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카샬은 즐거워하며 연락용 아이템을 손에 쥔 채 하벨의 귀에 가져댔다.

<…지금 말하는 도중에 무슨 행동이십니까, 저하?>

웨인의 목소리였다.

꽤 열이 받은 듯해 하벨은 올 게 왔구나 싶은 생각에 양손으로 컵을 쥔 채 목부터 축였다.

'……?'

화르륵.

웨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랜턴에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이거 왜 이러지?'

하벨의 시선이 잠깐 주변을 향하다 랜턴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만 랜턴이 반응하지 않았는가.

'목소리를 들어도 안다는 건가?'

랜턴도 진화한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꼭 랜턴 옆에 누가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아니면 이미 웨인 놈을 만났기 때문에 또 강조하는 건가?'

하벨은 랜턴을 신경질적으로 건드렸다.

잘 생각해보면 자신이 움직이고 난 뒤, 잘됐다 싶어 임무를 얹어주는 기분이라 뭐가 됐든 재수 없었다.

<왜요? 내가 못 할 행동이라도 했나요? 정신 차리세요, 웨인 공.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는 볼 줄 알아야죠.>

자신과 늘 대화를 나누던 바안이라기에는 어딘가 날이 바짝 서 있어 하벨은 컵을 내려놓으며 생각을 멈췄다.

<저하.>

<아,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앞선 대화가 워낙 시답잖아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저하.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유가 뭐죠? 또, 날씨 타령하며 나한테 협박이라도 할 셈입니까?>

<모두 다 오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희 톨 가문은 대대로 왕실을 존경하고 따랐던 가문…….>

<닥쳐.>

바안은 천천히 날을 세웠다.

<방금 네놈이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았다는 보고를 들었다.>

바안이 존대를 버렸다.

페트리오가 자신에게 보고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바안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 그게 무슨… 무슨 말씀이십니까?>

웨인이 당황했고.

<이제 말해도 됩니다.>

바안의 허락이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저하."

하벨은 그제야 목소리를 꺼내 놓았다.

벌써 가슴이 들떴다.

<지금… 누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겁니까?>

"나야, 웨인 톨."

어리둥절해야 하는 웨인을 위해 하벨은 실실 웃으며 그를 반겼다.

<나라니? 누구십니까……?>

조심스러운 그 물음에 카샬은 조금씩 씰룩거렸다.

'아까도 느꼈지만, 아무래도 연락용 아이템에서 목소리가 쉽게 새어 나오나 본데?'

카샬의 귀가 좋아도 이런 식이면 자신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장이야, 대장!]

연락용 아이템에 귀를 가져댄 아라가 힘차게 소리쳤다.

"맞아, 하벨이야."

멀뚱멀뚱 앉아 있던 칼리우스까지 소곤소곤 말하자 하벨은 카샬에 이어 칼리우스를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음, 그냥 다들 귀가 엄청 좋은 게 아닐까.'

하벨은 칼리우스가 자신을 빤히 보자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조용히.

칼리우스는 자신의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시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자꾸 나왔다.

[헤헤. 뭔가 재밌지, 용용아?]

아라가 눈을 반짝거리며 칼리우스를 보았다.

칼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즐거웠다.

"지금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벨이 목소리를 내자 칼리우스는 그를 빤히 보았다.

아무리 하벨이 자신은 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보고 또 봐도 하벨은 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귀를 사로잡을 정도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저 강한 힘은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저하! 지금 저를 농락하시는 겁니까? 이러실 순 없습니다, 저하! 저는…….>

"앵무새도 아니고 그만해. 너는 끝났어."

<…하벨, 하벨 티에라?>

"그래."

<하벨 티에라라고? 네가 그 하벨 티에라?>

웨인은 아직도 혼란에 빠져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 하벨 티에라가 아니었기에 모욕으로 들리지 않았다.

"고마워."

하벨은 비아냥거렸다.

"네 덕에. 아니, 네 멍청함 덕에 내가 좋은 걸 알아버렸거든."

왕의 덕목 중 하나는 신중함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기다렸다.

거대 정화 장치와 마법이 두 번이나 연결되어 있었음에도 가능성을 보았지, 확실히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 판단을 웨인이 할 수 있게 도와줬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뭘… 말하는 건가?>

웨인 역시 존대를 버렸다.

"네가 마법사 협회랑 손을 잡았다……."

탁!

자신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벨은 깜짝 놀란 아라를 달래며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즐겁게 들었다.

<지, 지, 지금 뭐라고 했나?>

"이제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 뭐라고 말했냐고 묻질 않는가!>

"그냥 다 포기하고 순순히 털어놓은 뒤에 죽는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온갖 고문을 받은 뒤에 그제야 후회하며 다 털어놓고 죽는다."

콰앙!

[히익……!]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이어 바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누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가?>

"그래. 웨인아, 아무리 멍청해도 지금 누가 앞에 있는지는 알아야지?"

키득키득.

얄미움이 가득한 하벨의 말에 연락용 아이템을 쥐고 있던 카샬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반사적인 행동이라 곧 표정을 다잡았다.

<웨인, 네놈이 가진 선택지는 하나 더 남았다.>

바안의 목소리에 섞인 분노는 연락용 아이템 너머로 생생하게 흘러들어올 정도였다.

<이대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

단칼에 무언가를 내리찍듯 단호한 바안의 말에 하벨은 뒤늦게 알아챈 것처럼 반응했다.

"아, 그것도 남아 있었습니다. 역시 저하이십니다."

어차피 웨인이 아는 것을 순순히 털어놓는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웨인은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았으며 그의 저택 어딘가, 혹은 별장을 뒤져본다면 반드시 무언가 나오기 마련일 테니까.

지금 웨인을 흔드는 이유는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게, 웨인.>

바안은 이미 승자가 되어 웨인을 찌르며 놈을 압박했다.

과거의 바안은 할 수 없었던 행동일 테지.

하벨은 바안이 저 달콤함에 눈이 멀지 않았으면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저하."

<말씀하세요.>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바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방금 떠오른 사실이 있습니다."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지만, 이제 웨인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었다.

"저하."

하벨은 개구쟁이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웨인의 멍청한 행동을 본다면 분명히 그냥 나왔을 리가 없었다.

위기일수록 본능이 앞선다는 말이 존재했다.

과연 웨인이 그만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자인가.

하벨은 한 가지를 가정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안은 차분했고, 그 소리 너머로 누군가에게 짓눌려 악을 쓰는 웨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놈이 말입니다. 정말 날씨를 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게 맞습니까?"

하벨이 던진 물음이 파문을 일으켰다.

카샬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고, 웨인은 잠깐 잠잠해졌다.

<…하벨 공.>

바안이 무언가 감을 잡은 듯 조금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저하."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힘이 있는 자들은 저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티에라 가문이 그렇듯 힘이 있는 자들이 왜 굳이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겠는가.

절박해서 찾은 게 마법사 협회라니.

거대 정화 장치를 해체한 것도 마법사 협회에서 시킨 일이라면 답은 뻔했다.

<…공께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알겠습니다.>

끼익.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파고들어야 하는지, 다시 알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저, 저하? 저하……!>

<나중에 연락하지요. 그럼.>

뚝.

바안은 연락을 끊었고, 하벨은 카샬을 바라보았다.

"줘봐."

"도련님. 정말 놈이 가진 기술이 가짜라는 말씀이십니까?"

카샬이 연락용 아이템을 건네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웨인은 기상국장이었다.

그런 놈이 가진 힘이자 모든 것이 날씨와 관련된 일일 텐데.

그게 가짜라면 대체 얼마나 뿌리 깊게 썩었다는 말인가.

마치 힘을 빌리기 위해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았다는 말로 들려왔다.

"가짜라기보다는 사용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은데."

하벨은 연락용 아이템 화면에 뜨는 페트리오의 이름을 누르기 전에 넌지시 대답했다.

"멍청해서."

하벨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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