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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01화 (101/415)

101화. 파헤쳐라(2)

* * *

"웨인 놈을 왜 쫓아야 하는지 저도 압니다. 지금 상황상, 놈을 무조건 쫓아야죠."

카샬이 다소 투박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마침 덜미를 하나 잡지 않았나.

칼리우스가 거대 정화 장치를 해체할 때 생긴 마법의 흔적을 쫓아 놈들이 있는 집을 확인했으니 페트리오가 이제 그 집에 누가 있으며 어떤 놈인지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 나도 저기까지는 동의해. 그런데 바안 저하와 왜 연락을 하고 싶은 건데?"

라르웬이 손가락으로 팔뚝을 두드리며 물었다.

바안이 움직인다는 건 곧 왕실이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하벨이 대체 어디까지 개입하려는지 알 수 없기에 신중히 접근했다.

"웨인 놈이 왕실에 구금됐다고 해서 진짜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라르웬을 보던 하벨의 입꼬리가 길어졌다.

연회 이후, 웨인을 보며 타오르던 랜턴의 검은 불꽃이 더 커지지 않았는가.

이미 랜턴의 빛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았는데 이걸 가만히 둘 순 없었다.

자신은 겁쟁이였으니.

"당연히 아니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겠지."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이 된 지금, 놈이 어디로 움직일 거라 생각합니까?"

[…으음.]

아라가 귀를 파닥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너무 어려운 말 같았다.

[고민할 필요 없어, 아라야.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이 몸은 이해하고 싶어. 대장하고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아라가 배시시 웃자 루룸은 잠깐 움찔거리다 곧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참 착해.]

루룸은 눈웃음을 지은 후에 라르웬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이해하고 싶은 인간이 있었으니.

저렇게 고민하는 게 맞는 거겠지.

칼리우스는 눈을 깜박이다 손을 번쩍 들었다.

"만약 나라면 하벨한테 가지 않을까 싶어. 잠깐 지켜봐도 나보다 하벨이 더 깊어. 어, 그러니까, 생각이 말이야."

[…푸흡.]

루룸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이는 칼리우스가 더 많은데.

칼리우스가 용인 걸 생각한다면 이 정도 수준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긴, 이 나이 때 용을 본 적이 없으니.'

용은 새끼가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외부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굉장히 유식하며 잘난척쟁이였다는 이야기를 어떤 정령을 통해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 의미에서 어리숙한 저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루룸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칼리우스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용아. 누가 과자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

"나도 그건 알고 있어."

[다행이네. 그럼, 하벨이 부른다고 하면?]

"하벨이 부르면 따라가야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루룸은 흠칫거렸다.

설마.

슬쩍 아라를 바라보았다.

하벨의 시선 역시 덩달아 아라를 향해 움직였다.

[넌 어때, 아라야?]

[대장이 부르면 가야지! 왜 당연한 걸 묻는 거야?]

[…허.]

루룸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하벨은 다급히 말을 꺼냈다.

"따라가면 절대 안 돼, 아라야! 용용이 너도!"

"도련님께서는 흥분하지 마십시오."

카샬은 그런 하벨을 말렸다.

대충 대화만 들어봐도 답이 나왔지만, 자신이 보기에 걱정스러운 도리어 하벨이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낯선 사람이라도 따라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대장이 불렀는데? 진짜 불렀으면 어떡해!]

쫑긋 선 아라의 귀가 힘없이 늘어졌다.

"맞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음, 곤란한데."

칼리우스는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하벨이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러지 않을게."

[이 몸은… 조금 더 고민할래.]

아라는 쭈뼛쭈뼛하다 자신의 꼬리를 꽉 쥐었다.

하벨이 불렀는데 오면 안 된다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그럼, 계속 말씀하시죠, 도련님."

갑자기 불쑥 시작된 작은 이야기가 가라앉자 카샬은 다시 말을 꺼냈다.

"웨……."

"상황이 최악이 된 지금, 놈은 살려달라며 협력한 세력으로 가거나,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 쪽으로 움직이겠지."

라르웬이 하벨의 말을 가로채며 씩 웃었다.

"맞지?"

"맞습니다. 내가 보기에 둘 다 해당하겠지만요."

"그래서 왕실과 협력하겠다는 거야?"

"정확히는 좀도둑이 왕실과 협력하는 셈입니다. 연회 일로 이미 티에라 가문이 떠들썩합니다. 이 이상 개입했다가는 덜미를 내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신진 귀족들이든 기존 귀족들이든 아버지께서 놈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으셔서 빨리 떠나셨지."

라르웬은 이미 귀족들이 자신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꺼낼까 말까 생각하다 집어넣었다.

하벨이라면 이미 예상했을 테니까.

"형님. 이제 슬슬 웨인이 진짜 움직일 겁니다."

벌써 틈의 세계가 열린 지 이틀이나 지났다.

"놈은 왕실이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 테고,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하벨이 진지한 걸 알지만, 라르웬은 턱을 쓰다듬으며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다.

"막내야."

"예, 형님."

"바안 저하는 왕자야. 우리가 이곳 에르티안 왕국에 살아가는 이상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분이고."

다른 때라면 하벨이 꺼내는 말에 거의 망설이지 않고 알았다고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아.'

하벨 역시 라르웬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들었다.

바안이 움직일 정도로 네 말이 확실해?

자신도 잠깐 바안의 몸집을 잊어버렸기에 뒤로 한발 빠졌다.

"좋습니다. 이 문제는 좀도둑이 돌아오면 다시 말을 나눠보죠."

페트리오는 지금 왕실이 쫓는 웨인 세력과 아직 움직이지 않은 진짜 웨인 세력, 이렇게 두 개로 나뉘어 감시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슬슬 보고가 올 때가 됐기에 하벨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오늘 바로 떠날 생각도 없어 보이고.'

라르웬이 얼굴을 구기자 하벨은 씩 웃었다.

지금 몸 상태를 봤을 때, 마차로 이동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그걸 알기에 라르웬이 저렇게 인상을 쓸 테지.

"형님. 용용이랑 말을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나눴던 겁니까?"

하벨은 뒤늦게 칼리우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지금 시기에 손님이 온다고 한다면 또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카샬의 보조 시종으로 들어오면 어떠냐고 물었어."

"보조 시종이요?"

"내가 하겠다고 했어. 나는 심부름도 잘해. 엄청 빨리 움직일 수도 있어."

칼리우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방긋 웃자 하벨은 이상하게 가슴이 찔렸다.

"용용이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게다가 시종으로 들어오다뇨."

"용의 나이로 따지자면 한참이나 어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너보다 많아. 형이라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형이라니!"

"……?"

무언가를 크게 결심하는 칼리우스를 보자 하벨은 더 기가 찼다.

칼리우스가 하벨 티에라보다 나이가 많다니.

라르웬은 저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칼리우스가 그나마 가장 조용히 들어올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

"둘째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카샬 역시 동의하며 입꼬리를 잠깐 올렸다.

"생김새나 키 등 외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호위로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카샬의 시선이 칼리우스를 향하자 그는 살짝 움츠러든 채로 아라의 꼬리를 만지작거렸다.

"그,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라르웬이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 때 허락한 거야. 나는 어린아이로 보이니까."

"솔직히 시종이 되기에도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제 보조 시종이라고 하는 편이 그나마 자연스럽습니다. 보통 제 잡심부름을 담당하기에 나이가 어려도 괜찮으니까요."

"오! 역시 나한테 딱 맞아! 난, 복잡한 일은 아직 어려워."

칼리우스가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자 아라는 슬쩍 콧대를 세웠다.

[에헴, 이 몸은 복잡한 것도 괜찮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대단하다, 아라야. 그럼, 나도 힘내야지."

칼리우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흠.'

하벨은 아라와 칼리우스의 말을 듣다 말고 조금 전과 다른 의미로 올라간 카샬의 입꼬리에 왠지 모를 냄새를 맡았다.

"솔직히 말해봐, 카샬."

"무얼 말씀하시는 겁니까?"

"좀 즐겁지?"

"예, 무척 즐겁습니다."

카샬은 기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가 언제 합법적으로, 뒤탈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용을 부려보겠습니까?"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네. 그렇지, 막내야?"

카샬이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라르웬은 금세 짜증이 일어났다.

"맞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죠."

하벨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아니지, 생각은 내가 할 테니까. 넌 어서 잠이나 자."

라르웬은 잠깐 고개를 가로저어서는 침대를 가리켰다.

생각하는 시간조차 하벨에게는 사치였다.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요?"

"식욕이 있어?"

"굶고 싶지 않습니다. 밥은 내 기쁨 중 하나인데요?"

라르웬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에 방긋 웃었다.

"그럼 밥 먹고 자."

"왜 자꾸 자라고 하……."

"좀도둑이 먼저 올지, 네가 먼저 여길 떠날지 기대가 되네. 물론, 내가 바라는 건 빨리 집으로 가는 거지만."

클로저 일도 대충 마무리가 될 것 같고, 하벨이 마차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면 어서 떠날 생각이었다.

"막내야. 지금 네 결말은 하나야."

라르웬은 우쭐거렸다.

"집으로 가야지?"

되도록 빨리.

* * *

"…빌어먹을.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야?"

짜증을 넘어 남자의 말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그만해. 짜증은 됐어."

"됐다뇨? 그게 할 소리입니까, 대장?"

남자는 걸어오는 여자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콰콰콰.

갑자기 땅에서 솟구친 가시가 남자의 목을 겨눴다.

"그럼, 뭐가 할 소리라는 거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여자는 마법을 거두며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땅을 반드시 차지해야 해. 그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문제란 겁니다, 대장. 원래 이 땅은 재무부 장관이 손에 넣었을 땅이 아닙니까? 그렇게만 됐다면 이렇게 요란스럽게 하지 않아도……."

"요란을 떤 건 저 머저리들이지!"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자들을 매섭게 쳐다보았다.

"마법은 되도록 자제하고, 땅 주인을 협박해 조용히 이 땅을 돌려받으라는 내 지시를 어긴 저 머저리들 말이야!"

"하, 하지만 대장. 원래 땅 주인은 도망쳤고, 현재 땅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부하에게 다가가 종아리를 걷어찼다.

"그러니까 지금 이 땅에 저 새끼들이 나타나서 설치는 거잖아!"

조용히 땅을 뺏어도 모자랄 판에 저놈들이 개판을 치고 말았다.

집을 태우고, 길목을 막지 않았는가.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집주인은 물론 주변에 냄새를 맡던 놈까지 꼬이기 마련이었다.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저 새끼들을 무조건 산 채로 잡아."

그녀는 부하들을 살벌하게 바라보다 긴장하고 있는 놈의 멱살을 쥐었다.

"무조건!"

냄새만 맡은 놈인지, 아니면 집을 지키는 놈인지 그걸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보고를 올려 대응을 할 수 있을 테지.

"산 채로 잡으면 뭘 할 거야?"

키득키득.

어디선가 비웃음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소름이 쫙 끼칠 무렵, 이곳 대장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미칠 듯한 고통에 감았던 눈을 뜨자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팔이 사라졌다.

자신의 팔이.

"어서 알려줘, 어서."

레디나가 잘린 여자의 팔로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미안. 돌려줄게. 잘 받아."

툭 하고 던진 팔이 바닥을 굴렀다.

"아, 실수했어."

천진난만한 레디나의 웃음에 대장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이, 이 새끼가…!"

"얼굴이 궁금하다며. 그래서."

콰과과곽!

땅에 가시가 솟구치기도 전에 레디나는 연기에 휩싸였다.

가시를 피하며 뒤쪽에서 날아온 돌덩어리를 쳐다보다 씩 웃었다.

"말하는 도중에 이러면 치사한데."

한 발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서는 멍하니 있던 한 마법사의 목을 단숨에 쥐었다.

레디나는 뒤쪽으로 마법사를 내던지며 연기에 휩싸였다.

콰직!

돌덩이가 마법사의 머리를 깨부쉈다.

"불법 마법 시술……."

다른 마법사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레디나의 단검에 목을 찔려버렸다.

푹!

피가 묻기 전에 자리를 옮긴 레디나는 도구 가방에서 비수를 꺼내 날렸다.

비수 뒤에 실린 바람을 타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법사들의 머리를 파고들자 레디나는 씩 웃었다.

적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찾아왔냐고? 너무 궁금하지?"

레디나가 천천히 다가가자 팔이 잘린 이곳 대장은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섰다.

다 죽어버렸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부하들이 다 죽었다니.

"네 부하가 친절하게 알려주던데?"

"…더러운, 새끼."

"적어도 나는 남의 걸 뺏은 놈을 죽인 적은 있어도 뺏은 적은 없어."

"불법 마법 시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마법사를 죽였을까. 응……?"

"그런데 넌 뺏고 싶네. 응. 뺏어도 되겠어."

"…끄아아악!"

땅에서 가시가 솟구치다 말고 그녀는 비명을 토했다.

"네 팔 말이야. 양쪽 다."

레디나의 눈이 휘었다.

키득키득.

양팔이 잘린 채 버둥거리다 죽어버리는 모습에 웃음을 토하던 레디나는 곧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여기까지 웃으면 안 되지.'

레디나는 솟구치는 웃음을 참으며 죽는 여자의 품을 뒤졌다.

어차피 저런 입은 있어봤자 필요 없었고, 차라리 여길 뒤지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도련님한테 좋은 소식을 가져다줄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개구쟁이 같은 하벨.

자신이 가져다줄 정보가 하벨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적어도 그의 옆에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이 평온해졌다.

탁.

문이 열렸고, 크라마가 어깨로 숨을 쉬며 소리쳤다.

"너희들… 어?"

크라마의 눈이 커졌다.

"뒤져주세요. 좋은 소식 가져간다고 약속했거든요."

레디나는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올 때부터 이미 구름 가면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다… 처리하신 겁니까?"

"밖에는 크라마 씨가 처리하셨잖아요."

"달님 씨가… 음, 산 채로 잡아 오라는 말 없었습니까?"

크라마는 죽어버린 적들을 살피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달님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제일 잘하는 걸 시키죠."

레디나가 키득거리자 크라마는 맥이 빠진 사람처럼 목소리를 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보자."

크라마는 눈을 깜박이다 태연하게 시체를 뒤졌다.

'없네.'

대충 손을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졌다.

마법이 걸려있었지만, 이 정도는 손쉬웠다.

딸깍.

"어."

열린 서랍 속 무언가를 발견한 크라마는 나른한 표정을 하고는 손에 쥐고 흔들었다.

종이 한 장을 나풀거렸다.

"되게 허술하네요."

"저게 뭐예요?"

레디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음."

크라마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마법 암호로 된 중요한 서류처럼 보이는데요?"

"아싸!"

레디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봐도 좋은 소식이었다.

* *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하벨은 잠에서 깨어나 한쪽 눈을 슬쩍 떴다.

"…이 미친놈. 진짜 와?"

살짝 열린 문틈으로 카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놈이라니. 말조심해라, 카샬."

'…좀도둑이다.'

하벨은 페트리오의 목소리에 활짝 웃었다.

라르웬과 했던 내기에서 자신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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