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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73화 (73/415)

73화. 통합

* * *

작전은 간단했다.

마차를 타고 신나게 달려오는 모스튼 벨을 습격해 덮치는 것.

적들이 약속된 장소로 올 거라 예상했기에 세울 수 있는 작전이기도 했다.

'놈도 습격을 예상해 어느 정도 무장해서 오겠지.'

하벨은 입가를 핥았다.

하지만 대비한다고 해도 어서 땅을 바꿔치기해야 하는 모스튼 벨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대비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을 조사할 시간은 얼마나 있었고.

'뒷세계를 밟을 때보다 더 준비한 수준밖에 되지 않을 거야. 귀족들을 의식해 크게 움직일 수 없으니.'

제아무리 준비했다고 해도 이번 일에 정령사가 개입될 가능성은 작았다.

―안 올 거야. 내가 보장해. 정령들이 생각보다 중요시하는 건 '정의'거든. 그런 의미에서 모스튼 벨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아.

하벨은 루룸의 말을 떠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꼭꼭 숨었기에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고개를 올려 공중에 떠 있는 루룸과 아라를 바라보았다.

[대장. 이 몸을 잘 보고 있어야 해.]

아라가 손을 흔들자 하벨 역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중해, 아라.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루룸은 아라의 꼬리를 잡았고, 아라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소중한 꼬리를 꽉 안았다.

투투투투.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모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적이 오고 있다.

하벨은 자신이 뿌렸던 씨앗을 의식했다.

[라르웬.]

루룸이 라르웬을 불렀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건 라르웬이었다.

두두두두.

갑자기 울리는 땅과 함께 바닥이 꺼져버렸다.

마법사라는 말도, 조심하라는 말도 꺼낼 수가 없을 만큼 무력화된 상황에서 숨어 있던 이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피슈숙!

동시에 날아온 화살이 시야를 가렸지만, 하벨은 아라의 신호를 기다렸다.

[대장!]

하벨은 조금 전 씨앗을 의식하며 나무를 자라게 해 마차를 공중에 띄웠다.

부웅.

'하나 더.'

바로 옆쪽에서 손을 뻗듯 자라난 줄기가 힘차게 마차를 옆으로 밀쳤다.

우당탕.

마차가 한 바퀴 돌며 쓰러졌다.

그리고 다른 화살보다 반짝이고 특별한 화살 하나가 라르웬의 손을 떠나 적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마치 피뢰침이 된 것처럼 그 화살을 중심으로 벼락이 내리쳤다.

모든 걸 삼켜버릴 정도의 화력이었다.

가면단들이 일제히 활을 쏘는 행동을 멈췄고, 숲속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하벨도 나와 마차로 걸어갔다.

"저들을 이끌고 잔당을 처리할게요."

레디나의 말에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벼락을 맞고도 숨이 붙어 있는 자들이 있을 테니.

"으어어억."

마차 안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목청이 좋은데요?"

카샬이 키득거리자 하벨은 웃음을 참았다.

쿵쿵쿵!

마차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하벨은 카샬에게 말했다.

"열어줘. 답답한 모양인가 봐."

우지끈.

누군가 마차 문을 열었고, 모스튼은 뻗어오는 손을 헐레벌떡 잡았다.

"콜록, 콜록. 이게 대체 무슨 일이더냐! 일을 똑바로……."

"모스튼 벨."

변조한 목소리에 모스튼은 흠칫 놀라 시선을 올려보았다.

꽃무늬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보기보다 순진했네?"

방금 들었던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달 무늬가 들어간 가면.

"네놈들은 누구더냐?"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제 약속 장소로 갈까? 너랑 약속한 시각이 벌써 다 되어가잖아? 나는 시간 개념이 좀 철저한 편이라 이러다 늦겠어."

모스튼은 지금 달 무늬가 들어간 남자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습격해놓고 약속이라니.

사람을 대놓고 바보로 만드는 모습에 모스튼의 얼굴은 구겨진 종이가 되었다.

"맞아. 넌 멍청이야."

다짜고짜 꺼내는 비웃음 어린 말에 모스튼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오란다고 진짜 왔잖아? 개도 아니고."

"이놈이……."

짜악!

카샬이 모스튼의 뺨을 후렸다.

"그런데 이해해. 땅을 새롭게 구하지 못하면 네가 죽으니까. 그래도 다른 귀족들의 시선 때문에 네놈 몸을 지킬 사람을 덜 데리고 오면 되겠어?"

얄미운 목소리.

"내가 습격이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잖아, 멍청아."

패배를 알리는 말.

이 모든 게 모스튼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데리고 가."

하지만 하벨은 모스튼의 분풀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눈과 입이 가려진 상태로 모스튼은 손마저 묶여 바둥거리는 게 전부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벨은 먼저 약속 장소로 떠난 모스튼을 확인하며 점보다 크게 반짝거리던 랜턴의 검은 불꽃을 기억했다.

제대로 잡았다는 걸 확인받는 기분이라 하벨은 기쁨을 담아 목소리를 냈다.

"봤어?"

뒤쪽 숲에서 나오는 에본을 바라보았다.

"…봤습니다."

"열심히 해야겠지?"

"저렇게 건드려도 되는 겁니까?"

에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여러 가지 사실이 복합되어 두려운 모양이었다.

"이게 두려웠으면 애초에 하지 않았겠지. 그렇지?"

"……."

"입단속 잘 시켜. 좀도둑한테 교육을 받았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에본은 하벨이 꺼내는 '좀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에 몸을 잠깐 떨었다.

―반갑네, 에본. 내 이름은 페트리오 비발체. 너도 뒷세계에서 살아봤으면 그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

분명 귀족들에게 죽었다고 들었던 뒷세계의 악마가 살아 돌아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이라곤 이렇게 까불다간 뒷세계의 악마조차 자신들한테 짓밟혀 죽는다며 모스튼 벨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런 페트리오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의 말이었다.

마치 자신의 기억을 본 것처럼 생생하게 꺼내는 약점에 정말로 악마한테 영혼이 붙잡힌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악마를 고작 좀도둑이라고 부르다니.'

에본은 달님이 더 두려워졌다.

악마를 지배하는 자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마치 어둠마저 지배하는 밤의 제왕 같았다.

"뒷정리하고 돌아가 있어."

하벨의 지시에 에본은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 * *

촤악.

물이 뿌려지자마자 모스튼은 눈을 크게 떴다.

"안녕."

하벨이 손을 흔들었고, 모스튼은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어디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 하벨이 대답했다.

"여기가 어디냐면, 약속 장소야. 너하고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 아쉽게도 내가 한, 2분 정도 늦었더라고.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안대와 입마개를 풀어줬어. 고맙지?"

저 가벼운 말투에 모스튼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느꼈다.

"이런 미친 새……."

짜악!

카샬은 모스튼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기 전에 뺨을 후려쳤다.

"입 닥쳐."

"꽃님아, 네가 이해해라. 원래 저런 놈들이잖아? 품위도 없으면서 품위 있는 척. 가진 거라고는 동물 같은 욕망과 돈뿐인데 이걸 '귀족'이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하고 있으니."

라르웬은 카샬을 말리는 척하며 모스튼을 내리깔았다.

"이 거지 같은……."

짜악!

카샬의 손이 한 번 더 움직였다.

붉어진 모스튼의 뺨 아래 입가로 피가 흘러내렸다.

"학습이라는 걸 모르나 보네. 똑똑한 거 맞습니까?"

카샬은 더러운 게 묻은 것처럼 손을 닦았고, 페트리오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똑똑하지. 다른 쪽으로 말이야."

페트리오는 모스튼에게 한 발, 한 발 걸어가 별무늬가 들어간 가면을 벗었다.

모스튼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어떻게 저놈이.

어떻게.

"…페, 페트리오 비발체!"

"영광이네. 이렇게 이름까지 기억해주고 말이야."

"죽었다고 했는데!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는데? 피나토 웬이? 아니면 다른 귀족들이?"

페트리오는 대충 넘겨짚다가 모스튼의 얼굴을 꽉 쥐었다.

"아니면 네놈 뒤에 있는 재무부 장관이?"

모스튼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페트리오가 누구인가.

한때, 이 나라의 귀족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던 시체 청소부이자, 조작에 능해 돈만 더 준다면 무엇이든 조작해 귀족 살인자라는 이름까지 달았던 놈이었다.

저놈 앞에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네놈이. 네놈이……."

모스튼은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자신이 관리하던 뒷세계 개들을 습격한 것도 저놈이고, 땅을 뺏어간 것도 다 저놈이라는 말인가.

이제야 이상했던 사실이 맞춰지고 있었다.

이건 놈이 귀족들에게 벌이는 복수극이었다.

저놈이 모든 걸 다 박살 낼 생각인 게 분명했다.

"…아. 자문관도 있었지?"

페트리오가 꺼낸 말에 모스튼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당장 그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이 왜 나오는 건지.

흔들리는 모스튼의 눈을 보며 페트리오는 웃었다.

카샬이 저놈의 뺨을 때려 나온 피를 얻으러 페트리오는 일부러 모스튼의 얼굴을 잡았다.

이는 하벨의 지시이기도 했다.

―카샬이 몇 대 때릴 거야. 이유가 있든 아니든 피가 나올 만큼. 그럼 쉽고, 자연스럽게 얻을 방법이 뭔지 알겠지, 좀도둑?

모스튼이 잠깐 생각에 빠졌을 때, 피를 삼켜 마법을 사용했다.

"꼭 내 공을 기억해주셔야 합니다."

자문관은 재무부 장관에게 신중히 말했다.

"물론입니다. 공은 공식적으로 왕의 조언자가 아닙니까. 그만큼 왕 가까이에 있고, 신뢰를 얻고 있으며 또 한자리를 차지하고 계신 분이지요. 그런 분의 공로를 내 어찌 잊겠습니까?"

재무부 장관의 고개가 모스튼을 향했다.

"모스튼 경. 잘 봐두게. 앞으로 우리와 함께할 사람이니."

"알겠습니다. 제가 제대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페트리오는 읽은 기억을 떠올리며 모스튼을 더 흔들었다.

"설마, 재무부 장관과 자문관이 한편일 줄이야."

"……?"

하벨은 페트리오를 보았다.

―재무부, 자문관. 이 두 개가 왕국을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이전에 페트리오가 꺼낸 말을 떠올리며 하벨은 기가 찼다.

'둘이서 손을 잡고 에르티안 왕국을 먹으려고 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수많은 왕국 중에서도 왕이 두 명이 없듯 저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지.

"누가 위야, 좀도둑?"

하벨이 묻자 페트리오는 바로 대답했다.

"재무부 장관입니다."

모스튼의 반응을 살피던 하벨은 그가 조금이라도 눈동자를 흔들자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스튼 벨."

하벨이 입을 열었고, 카샬이 병을 꺼내 흔들었다.

"그냥 다리 하나 자르는 게 어때요?"

레디나는 병에 담긴 게 무엇인지 알기에 살짝 지루해하며 말했다.

"과연 그 고통을 견딜 수는 있을까? 중간에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라르웬이 입을 열자 레디나는 오히려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도 제대로 잘라야 하는 법이죠. 방법이 필요하답니다. 고통은 되도록 약하게, 갑자기 사라진 다리에 절망감을 느껴야 말을 꺼내 놓는 놈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아요."

"선택할 기회를 줄게. 자백제 먹을래? 다리가 잘릴래?"

살벌함으로 가득한 레디나의 말에 하벨은 이때다 싶어 모스튼을 압박했다.

어차피 놈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잘 쓰고 죽여야지.

"……."

꿀꺽.

모스튼은 그제야 한없이 작은 자신과 마주했다.

"뭐가… 필요한가?"

모스튼의 얼굴에 진땀 흘러내렸다.

"그냥 말할 리가 있겠어? 어떤 거짓말을 섞을지 모르니까 그냥 먹여."

라르웬은 혹여 하벨의 마음이 약해질까 그를 말렸다.

"그렇겠죠. 그럼 이렇게 하죠. 둘 다 내뱉는 말을 비교하는 겁니다. 다를 때마다 어딜 자를지 구름이한테 물어보고요. 어떻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하벨의 말에 모스튼의 낯빛이 점점 어둡게 변하고, 레디나는 하벨의 의도를 눈치채 일부러 단검을 꺼냈다.

"저야 좋죠. 오랜만에 인체 공부도 하고 즐겁겠어요."

"그럼 저는 검술 연습을 하겠습니다. 요새 어깨가 굳었는지 깔끔하게 목이 베어지질 않더라고요."

카샬도 검을 휘두르며 신나게 저 대화에 참여했다.

[어, 어.]

아라가 허둥지둥거리며 놀라자 루룸이 꿀밤을 먹였다.

[거짓말이잖아. 잘 봐.]

[그렇지만, 가면을 썼잖아!]

아라가 씩씩거리며 쪼그려서는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가면 썼는데 어떻게 알아? 이 몸은 잘 모른다구. 이, 이, 바보야!]

[느낌으로 알 수 있어. 지금보다 더 자라면 알게 되겠지?]

루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자 아라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말……."

모스튼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공포, 부끄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에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하벨이 묻자 모스튼이 숨을 고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말하겠다고."

"말이 짧네?"

"말이 짧아."

카샬과 레디나가 동시에 살기를 올리자 모스튼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귀족으로서 그간 쌓인 신념과 위상은 공포 앞에서는 어차피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찌익.

그 종이가 찢어지자 죽음을 코앞에 둔 초라한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단 살아야 했다.

살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법.

"…말하겠습니다."

"뭐든?"

"뭐든 말하겠습니다!"

"재무부 장관과 자문관이 은밀하게 쓰는 장소가 있지?"

"있습니다."

"위치를 말해봐. 거짓으로 말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자백제로 한 번 더 확인할 거니까."

모스튼은 잠깐 망설였다.

저 둘을 죽이려는 걸까.

"죽… 이려는 겁니까?"

"머리 굴리지 마, 모스튼."

하벨은 모스튼의 눈에 어린 욕망을 보았기에 실실 웃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익숙한 눈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갈 뻔했다.

"하지만 네 말은 정답이야."

일단 참았다.

모스튼은 가장 재미있는 곳에서 가장 추하게 죽어야지.

모스튼의 눈동자에서 피어난 희망만큼이나 하벨은 높게 입꼬리를 올렸다.

* * *

자리에 앉으려던 남자는 책상에 올려진 편지봉투에 짙은 눈썹을 올렸다.

'…뭐지?'

분명 시종이 방을 정리하기 전까지 책상에 올려진 건 없었다.

자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집사가 온 것일까.

'머리를 비우러 왔다고 분명히 말했거늘.'

남자는 콧바람을 세게 불었다.

아무래도 급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남자는 인장도 없는 편지를 열어 읽어갔다.

―존경하는 자문관님. 혹시 당신과 손을 잡은 재무부 장관이 당신 몰래 돈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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