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화난 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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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왕실에서 하벨 티에라의 병 증세가 발작했는데 왕실 의사를 찾아가지도 않고 바로 티에라로 출발했다고?"
피나토는 비헨이 알려주는 사실에 서류 뭉치를 만지다 말고 턱을 쓰다듬었다.
"예. 그전에 바안 저하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저하와 싸웠다? 라르웬도?"
"라르웬 티에라와 따로 움직였고, 하벨 티에라는 이미 전하를 보고 난 후부터 화가 난 상태였다고 합니다."
"…정말 티에라 가문에서 그 사실을 믿었다는 건가?"
피나토가 숨을 짧게 내쉬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라르웬과 하벨이 함께였으면 무조건 의심했을 테지만, 하벨 혼자였다.
티에라 가문에서 교육을 해봤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가 뭘 하겠는가.
'역시 내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한발 늦고 말았다. 이미 티에라 가문은 왕실을 떠난 후였으니.
―오, 피나토 공. 나는 공이 티에라 가문에 관심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하긴, 티에라 라는 이름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귀족들이 어디 있겠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기상국장, 웨인 톨이 지껄였던 말이 떠오르자 이가 갈렸다.
'내가 네놈이랑 같은 줄 알더냐.'
"그리고 또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왕실 앞에서 티에라 가문과 기사들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티에라 가문이 마차에 문장을 달고 온 게 아니라……."
"그 벌레들이 돈을 요구한 모양이군. 명이 질겨 눈에 거슬리던 참인데 잘됐어. 이참에 몇 놈 사라져도 나쁠 거 없지. 이제 끝났는가?"
가장 중요한 사항은 '티에라 가문' 일이었다.
피나토는 서류를 한 뭉텅이 잡아서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웨인 톨에게 지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놈이……?"
피나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그런 주제에 내게 발톱을 들이밀었다니.'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귀족 중 흔들리는 자가 나올 거다."
티에라 가문이라는 거대한 세력의 등장에 흔들리는 자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웨인의 건강까지 문제가 생겼다.
"조만간 왕실에 연회가 열릴 듯싶구나. 혹시 의견을 묻는다면 나 역시 찬성한다고 대답하거라."
하벨 티에라를 다시 부를 방법은 연회뿐이었다.
콧대가 높은 티에라 가문이 유일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게 왕명이었으니.
왕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아 참, 뮈에라 진젤은 찾았는가?"
"…죄송합니다. 아직입니다."
"무슨 일이든 찾거라. 아무래도 판도를 바꿀 때가 왔으니."
기울어진 판도가 바로 설 기회가 찾아왔다.
드디어.
피나토는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지으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하벨은 페트리오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들어가다 말고 자신이 오자 물러나는 정령들을 힐끔 보았다.
마치 더러운 걸 보는 눈빛이지 않은가.
요즈음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정령들의 시선을 마주해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대체 무슨 불쾌한 느낌이 난다는 거지? 단계도 하나 건너뛰었는데.'
"오셨습니까?"
페트리오가 하벨을 보며 허리를 숙였다.
하벨 뒤에 카샬 말고 처음 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안녕, 페트… 으음, 좀도둑!]
아라가 흔드는 앞발을 보며 하벨은 살며시 웃었다.
"오는 길이 멀지 않았어?"
"저도 포탈을 타고 왔잖습니까.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련님."
"아부 떨긴."
아니꼬운 태도에 카샬이 툭 하고 말을 던지자 페트리오는 사람 좋은 미소로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꽃님아. 도련님 앞이라는 거 잊었어?"
"이런 개쓰레기가!"
"꽃님이를 꽃님이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 그렇지, 꽃님아?"
한껏 여유롭게 입을 놀리는 페트리오를 보자 하벨은 카샬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보아도 이번 싸움의 패자는 카샬이었다.
"추하게 굴지 말고 받아들여, 꽃님아."
"…도련님!"
카샬은 배신당한 사람처럼 하벨을 쳐다보았다.
"좀도둑. 어디까지 움직였어?"
하벨이 묻자 페트리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클로이 체닐라가 소유한 영토에 있는 뒷세계 수장 중 가장 힘이 강한 자를 손에 쥐었습니다."
"벌써?"
하벨은 깜짝 놀랐다.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클로이 체닐라가 귀족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자 여기저기 손을 벌릴 때 제가 정보를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속도가 장난 아니잖아? 역시 왕년에 하던 버릇이 어디 가는 건 아니네."
레디나가 비아냥거리자 페트리오는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상황은?"
하벨의 물음에 페트리오는 다시 공손히 대답했다.
"클로이 체닐라의 죽음은 아직 숨겨진 상태입니다."
"유서는 어떻게 됐지?"
"…유서, 도련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그래."
하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트리오는 충격에 입가를 핥았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귀가 딱딱 맞는 게……."
"나도 했어."
레디나가 손을 흔들었다.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페트리오가 더는 레디나를 흘리지 못하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레디나 컬이야."
"에이, 그게 무슨 소개에요?"
레디나는 하벨에게 핀잔을 주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레디나 컬이고, 암살자이기도 해. 어제부터 도련님의 시녀가 됐어."
레디나의 눈이 휘었다.
섬뜩.
페트리오는 갑자기 레디나가 짓는 웃음에 살기를 느꼈다.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페트리오 비발체."
페트리오를 빤히 보던 레디나가 빠르게 다가갔다.
"돈에 미쳐서 에트리안 왕국을 개차반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놈이잖아? 네 목에 걸린 돈이 꽤 많았는데, 의뢰가 갑자기 취소됐거든."
[대, 대장! 칼! 칼!]
"레디나."
하벨이 손을 뻗었고, 손톱만큼의 간격을 두고 레디나의 단검이 멈췄다.
"알고 있어요.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열이 받아서 그런 거예요. 의뢰가 갑자기 사라져서 엄청 짜증이 났었거든요. 그땐, 정말 열 받았는데."
레디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죽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죽이고 싶잖아."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입가를 핥았다.
레디나는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망설이다 페트리오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의뢰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네 목은 내 거였어. 아니, 오늘 도련님께서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로 끝을 낼 수 있었는데. 페트리오 비발체, 내가 계속 보고 있을 테니까 목 간수 잘해야 해. 알겠지?"
"…허억."
페트리오는 레디나가 물러서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살기가 왜 이렇게 짙은지.
"와. 적이 한 명 생겼네? 축하한다, 좀도둑."
카샬이 씩 웃었다.
얄미울 정도로 환한 웃음에도 페트리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련님. 주제넘은 말이라는 건 알지만, 페트리오, 저자를 가까이하지 마세요.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니까요."
하벨은 당당한 레디나와 자신의 죄를 알기에 당당해질 수 없는 페트리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네.'
라르웬이 레디나에게 꺼냈던 말이 아니던가.
하벨은 레디나를 응원하는 카샬의 모습까지 본 후에야 싱긋 웃었다.
"거기까지."
"도련님. 그냥 드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레디나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나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너처럼 좀도둑의 목줄도 내가 잡고 있어."
"하지만……."
"네 말대로 좀도둑은 위험해. 하지만 정말 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놈이 좀도둑이라면 그 정보를 요구하고 이용한 놈들은 왜 가만히 내버려 둔 건데?"
레디나는 하벨의 질문에 주춤거렸고, 페트리오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뭘 감쌀 게 있다고, 저런 놈을 감싸주시는지.'
카샬은 탐탁지 않게 하벨을 바라보았다.
"그놈들의 목을 바라는 의뢰가 걸리지 않아서? 아니면 놈들이 한 행동이 네 기준에서 악이 아니라서?"
하벨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보를 판 페트리오와 이를 이용한 귀족들 모두를 악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자인 페트리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에 검은 달은 레디나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전부터 망가진 게 아닐까 싶었다.
"레디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다른 건 잘 몰라. 좀도둑이 티에라 가문에 죄를 지었다는 확실한 사실만 알 뿐이지. 그래서 나는 그 죗값을 치르게 하고, 좀도둑의 복수를 도와준다는 약속으로 이렇게 부리고 있어."
거짓조차 섞지 않고 이어지는 하벨의 말에 레디나는 당황했다.
그가 자신이 가졌던, 검은 달의 의문을 계속 꺼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내 계획을 위해 좀도둑이 필요한 것과 별개로 네가 말한 악은 죽었어. 만약 좀도둑이 이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 내가 먼저 죽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살벌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웃음에 레디나는 어깨에 힘을 뺐다.
"…맞아요."
이전에 보았던 페트리오는 저런 모습이 아니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법도 몰랐고, 누군가 밑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장대 같던 그는 이미 누군가에게 부러졌다.
"고마워요, 도련님. 저도 모르게 물들어갔나 봐요."
레디나가 씁쓸한 미소를 짓자 소매에 감췄던 랜턴에서 점보다는 조금 큰 환한 빛이 깜빡거렸다 사라졌다.
하벨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레디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후."
악을 처단하던 검은 달이 거대하게 자라버린 나무 같은 악을 내버려 두고 옆에 조그맣게 자란 작은 싹 수준의 악을 처단하는 모습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았던가.
"악은 고정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며 뽑아야 하는 건 잎사귀가 아니라 뿌리죠. 무엇보다 그런 악에 물들어서는 절대로 안 되고요."
레디나는 깔끔하게 단검을 집어넣어서는 페트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페트리오는 이제 작은 싹일 뿐이었다. 어떻게 자랄지 모르는 싹.
"레디나 컬이에요. 도련님의 첫 번째 신도입니다."
"……?"
하벨은 레디나의 소개에 눈이 커졌다.
"다른 건 몰라도 도련님께 검을 겨눈다면 내가 먼저 죽여줄게요."
"…신도라뇨?"
페트리오는 레디나의 손을 잡지 못하고 의문을 담아 물었다.
"무시해도 돼, 좀도둑."
하벨이 얼굴을 찌푸리자 레디나는 너무도 기뻐하며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도련님은 제 신이니까요."
손을 뻗던 페트리오가 또 주춤거리며 하벨을 쳐다보았다.
"레디나.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사실이잖아요. 확실히 말해야죠. 이 자리를 노릴지 누가 알아요? 제가 첫 번째입니다."
하벨이 당황해하자 레디나는 싱글벙글했다.
이제야 놀리는 재미가 생겼다.
[아니야! 이 몸이 첫 번째라고!]
아라가 레디나의 손가락을 물자 그녀는 잠깐 흠칫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벨은 레디나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 바로 페트리오에게 물었다.
"어쨌든, 유서는?"
"클로이 체닐라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현명하나, 둘째는 욕심이 많죠."
"첫째를 납치했어?"
하벨이 정답을 말하자 페트리오는 살짝 놀랐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으로 자랐는데 보면 볼수록 뒷세계에서 수십 년 이상 굴러본 것 같지 않은가.
"예. 둘째가 유서를 퍼트리기 전까지만 붙잡아두려고 합니다."
"그럼 둘째를 만나야겠네."
"약속은 이미 잡았습니다. 끼리끼리 논다고 둘째와 제가 방금 손에 쥐었다고 말한 뒷세계 수장이 친우 관계였습니다."
"좋아. 일단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클로이 체닐라 일은 폭탄에 불을 붙일 심지였다.
그럼 이제 터트릴 폭탄이 넓게 퍼질 수 있게 화약을 가득 준비할 차례였다.
"좀도둑."
하벨은 자리에 앉으며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나 클로이 체닐라는 부끄러움을 더는 견디지 못해 죽었다. 많은 죄를 지어 이곳에서 적기도 부끄러울 일이 많아 망설여진다.
하지만 수많은 죄 중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죄를 고백하고자 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정화제를 가짜로 바꿔치기했으며 거대 정화 장치에 들어가는 정화제마저 빼돌렸다. 나는 사람이 아니었고, 돈만 무수히 먹는 거대 정화 장치가 증오스러워 그만 팔아 치우고 말았다.
미스트리안 프론, 모스튼 벨, 루이어스 쳄버, 핼레나 툰, 체이크 데언, 뷔스트 람바가 이번 일에 관여되어 있음을 똑똑히 밝히겠다.
내 땅에 사는 백성들에게 미안하며 훗날 다시 태어나 죗값을 받겠다고 전해주길.
"제가 필체를 베껴 적었던 클로이 체닐라의 유언장이잖아요?"
레디나가 말했다.
"맞아. 내가 좀도둑이 준 정보로 놈의 특징을 살렸다고 해도 어색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좀도둑, 네가 클로이 그놈의 첫째를 납치한 건 아주 절묘했어."
하벨은 페트리오를 칭찬하며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유언장 밑에 적힌 귀족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에 적힌 놈 중에 누가 폭탄이야?"
"모스튼 벨입니다. 재무부 소속이죠."
"나라 살림을 살펴야 할 재무부가 이 일에 끼어들었다고?"
하벨은 기가 막혔다.
"맞습니다. 여기도 구린 곳 중 하나죠. 시체 처리를 꽤 많이 맡았고요."
페트리오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재무부, 자문관. 이 두 개가 왕국을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확실해?"
레디나가 간지러운 입을 참으며 물었다.
페트리오를 비꼬고 싶었지만, 일단 악수를 먼저 청한 건 자신이었으니 한 번은 참아야지.
"내가 저들에게 정보를 줬어."
페트리오는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놈들의 힘을 빌려서 견제한 세력을 죽이도록 말이지. 세력이 사라진 후에 어떻게 됐겠어?"
"어떻게 되긴. 견제할 세력이 사라지니 마지막으로 비밀을 가지고 있던 널 노렸겠지. 이 멍청아."
카샬이 페트리오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귀족들이 좀도둑 널 향해 검을 들이밀었을 때, 제일 앞장선 게 피나토 웬이었고. 그렇지?"
하벨이 뒤이어 일을 물었지만, 페트리오는 카샬이 찌른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일단, 모스튼 벨을 파봐야겠네. 하필 소속이 재무부인 게 수상하잖아?"
"나머지는 어떻게 하실 셈입니까?"
카샬이 하벨을 보며 물었다.
저기 나열된 이름 중 가장 거대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자가 모스튼 벨이었을 뿐, 나머지 역시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내가 내버려 두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빠져나갈 구멍부터 메워야지."
하벨은 가볍게 웃었다.
지금 저 귀족들을 덮친다면 파도를 일으키며 빠져나갈 게 분명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할 적이 나타났다면서.
공동의 적이 존재하면 폭탄은커녕, 오히려 귀족들을 응집할 좋은 빌미만 제공하겠지.
자신이 원하는 건 응집이 아니라 갈등이었다.
"연회는 못 해도 일주일 안에 열리게 되어 있어. 티에라 때문에 안달이 난 귀족들이 왕실을 압박할 거니까."
"연회라뇨? 아니, 그렇게 빨리요?"
페트리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금 이 시기에 열릴 연회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전하의 탄생일도 있었고, 연회 준비 기간만 해도 최소 3주 이상은 걸립니다."
"어차피 구색만 갖출 연회야. 대충 준비만 되면 그뿐이고, 귀족들까지 대거 사람을 보내서 어떻게든 날짜를 맞추겠지. 마치 이전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대충 '하벨 티에라 완쾌 축하 기념' 같은 걸로 붙이지 않겠어?"
하벨이 꺼낸 말에 카샬은 몸서리를 떨었다.
"정말로 그런 연회가 열릴 것만 같아 끔찍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면 뭔들 못 하겠어?"
하벨은 다들 자리에 앉는 걸 보며 대답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될까요?"
레디나가 손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겉에서 찔리는 것보다 속에서 찔려 나오는 게 더 아픈 법이지."
하벨이 가면을 꺼내자 카샬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면단 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