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마법이 보인다고?(2)
* * *
* * *
"…하."
룬델은 한숨을 삼킬 수가 없었다.
"하벨아."
"예."
하벨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저렇게 어여쁘게 웃고 있으니 어떻게 화가 날까.
"그, 음……."
룬델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가를 쓸었다.
하벨이 깨어났다는 말에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가장 먼저 꺼낸 말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상의라니.
물론, 그것도 중요하나 제일 먼저 자신의 몸부터 걱정해주면 좋으련만.
"지금 제가 이런 상태라 가주님께 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벨은 링거가 달린 팔을 흔들었다.
몸에 힘이 없어 일어날 마음도 들지 않았다.
[헤헤.]
룬델의 손길이 그렇게도 좋은지 아라는 발을 동동 움직이기 바빴다.
"대장은 나다, 아라야."
룬델은 툭 하고 던진 하벨의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물의 특성을 타고났기에 정령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지만, 아라처럼 이렇게 오래 머무른 적도 애교를 부린 적도 없었다.
'정령이 자란다는 사실도 처음 봤고.'
룬델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는 아라를 눈으로 뒤쫓았다.
[응!]
아라가 하벨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해. 대장, 착해.]
'하벨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정령도 처음이고.'
룬델은 뭐가 됐든 하벨과 아라의 사이가 좋아 흡족했다.
[…저, 아라야?]
세렌이 문 쪽에 서서 조심스레 아라를 불렀다.
세렌답지 않게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다.
[세렌! 세렌!]
[…어흑.]
세렌은 배시시 웃는 아라를 보자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라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워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 너한테 가도 될까?]
세렌의 물음에 아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여기서 볼게.]
세렌은 힘없이 날갯짓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아라의 시선에 다시 행복하게 웃었다.
"아, 걱정 끼쳐 죄송해요. 이 말부터 해야 했는데."
하벨은 뒤늦게 가장 먼저 꺼냈어야 할 말을 언급했다.
자식이 밖에서 다치고 돌아왔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그럼 이건 괜찮은 겁니까?"
하벨은 링거를 가리켰다.
"병은 네 잘못이 아니잖더냐. 오히려 나는… 물의 저주에 걸린 자가 어떤 최후를 맞는지를 알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걱정스러웠단다."
"솔직히 좀 놀라긴 했습니다.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벨이 꺼낸 말에 룬델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아빠. …아빠? 내가 저렇게 죽어요? 내가, 흑, 저렇게 굳어지고, 부서져서… 사라지는 거예요? 으흑. 아빠, 나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요. 매일, 매일 아픈데 이제는 숨도 막혀요. 부서지고 싶지 않은데, 산산이 조각나고 싶지 않은데…….
처음 저 아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을 원망하며 저주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더 조심할게요."
하지만 지금 하벨은 평온했다.
마치 이미 죽어본 사람 같지 않은가.
룬델은 그 모습마저 가슴 아팠다. 대체 지금 하벨은 어떤 존재로 자신을 생각하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어쨌든, 티에라 가문은 그 네 영토를 차지해 벽을 얻었습니다. 뒷세계도, 귀족도 다 먹어치웠기에 누군가 티에라까지 뚫고 들어올 틈이 이제는 몹시 좁아졌죠."
솔직히 카샬이 방금 하벨이 했던 말을 보고했을 때 룬델은 믿지 않았다.
뒷세계를 내버려 두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밟고 밟아도 자꾸만 자라라는 잡초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벨은 그런 잡초를 식용 가능한 식물로 바꿔버렸다.
계속 자라되,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식물로.
"벽을 좀 튼튼히 바꾸는 작업이 남긴 했어도 이제 가주님도 안심하시고 밤에 주무셔도 됩니다."
"하벨아."
"예, 말씀하세요."
"네가 나조차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그 사실이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그보다 더 기쁜 건 네가 행복해하는 모습이구나."
"사건을 해결했으니 기쁜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벨은 룬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과정에서 네 마음이 다칠 수도 있었단다. 아마 널 헐뜯고, 흔들고, 모욕했던 자들이 있었겠지."
"없다고는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런데도 네가 행복해하니 나는 그걸로 됐단다."
하벨은 그 말에 더더욱 의문으로 가득 찼다.
마치 승패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만약 제가… 실패했다면요?"
"너만 다치지 않는다면야 실패가 무슨 상관일까."
하벨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룬델은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하벨아."
룬델은 하벨을 부드럽게 불렀다.
지금 하벨이 자아의 혼동이 찾아와 다른 사람이 됐다 한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닮아 있었다.
실패가 두려웠던 걸까.
'그게 아니면 역시…….'
룬델은 뭐가 되었든 그 고민에 하벨이 좌절하지 말았으면 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단다. 실패든 성공이든 그건 네가 밟아온 발자취일 뿐이지. 그 발자취가 물론, 너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보고 있단다. 지금 너를."
'…이상하다.'
하벨은 손끝이 간지러워졌다.
룬델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계에 퍼진 정령사들의 구심점이며 물의 오염을 이겨낼 정화제의 소유자이며 모두가 탐낼 보물을 쥐고 있는 사람이기까지 했다.
저 어깨에 나열되어 있을 목숨이 몇 개인가.
그런데도 어떻게 현재만 바라볼 수 있을까.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벨이 묻는 저 물음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걸 룬델은 느꼈다.
하지만 룬델은 여전히 하벨만 바라보았다.
"당연히 걱정된단다. 네 곁에 라르웬과 카샬이 붙어 있어도, 아라가 널 도와줘도, 나는 언제나 네가 걱정스럽단다."
룬델은 하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내 품에서, 내 손에서 마냥 움켜쥐는 건 널 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 그래서… 우습지만, 사실 나도 어렵단다."
속내를 털어놓으며 룬델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과 하벨 사이에 필요한 건 솔직한 대화였다.
설령 어색한들, 룬델은 계속 이렇게 하벨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 넣을 생각이었다.
'아쉽다…….'
하벨은 저 시선과 더 많이 마주 하고 싶어졌다.
자신이 모르는,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선은 지켜야 했으니.
하벨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제가 정신을 잃은 동안 무얼 하셨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물론이지. 뭐든 물어봐도 된단다."
"좀도둑하고 수장들에게 감시를 붙였습니까?"
"그래. 그들이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느슨하게 감시 중이란다. 나머지는 죽여야 할 자만 죽였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제가 물어볼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가 보는 시각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단다."
무언가를 짊어진 자의 시각.
그 시선을 가진 자들은 죽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죽음이 자칫하다간 수백 이상의 죽음으로 번질 수 있으니 누군가를 죽일 때도 신중해야 했다.
하벨은 눈치가 빠른 자를 좋아했다.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룬델을 불렀다.
"가주님."
"그래, 하벨아."
"몸이 나으면 뮈에르 진젤이 건드렸다던 거대 정화 장치로 가볼 생각입니다."
아르에느 마을의 귀족인 뮈에르 진젤이 마법사 협회와 손을 잡고 거대 정화 장치 주변에 부정한 것들로 뒤덮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원래는 바로 가려고 했지만, 틈의 세계와 물의 저주 때문에 가지 못했다.
룬델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정말로?]
아라에게 미세할 만큼 아주 천천히 다가가던 세렌이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그래."
[네가?]
"그래, 내가."
[너, 머리가 어떻게 됐어? 거대 정화 장치는 그 일대에서 가장 물의 오염이 심각한 곳에 설치가 된단 말이야.]
세렌은 하벨의 꼴을 보며 혀를 찼다.
[네 꼴이 지금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서 그래?]
"내가 물의 오염에 관심이 부쩍 늘어났거든."
"하벨아. 세렌 말이 맞단다. 그곳은…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맞질 않는 곳이구나."
"형님께 들었습니다."
"무, 무얼 들었더냐?"
룬델이 갑자기 당황해하며 물었다.
그답지 않게 흐트러진 모습에 하벨은 의문을 느꼈다.
"왜 이렇게 놀라십니까? 무슨 비밀이라고 있습니까?"
"……."
룬델은 침묵으로 임했다.
지금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에 하벨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움직일 인원이 없다면서요?"
"라르웬이 거기까지 말했더냐?"
"예. 말해줬습니다."
"억지로 짜낸다면야……."
"그러지 마십시오."
하벨은 룬델을 말렸다.
"그러지 말라니?"
"그렇게 억지로 없는 인원을 충당하려면 다른 곳에서 빼 와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새로운 인원을 충족하려니 거대 정화 장치는 꽤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구나."
"가주님께서 하신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
룬델은 살짝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아마 고민하셨겠죠. 거대 정화 장치냐, 정화제냐."
"그래, 고민했단다. 정화제는 내 역할이나, 거대 정화 장치는 내 담당 밖이었지. 하지만 둘 다 안고 가고 싶었다."
"원래 선택은 후회가 남습니다. 하지만 잘하셨습니다."
하벨의 칭찬에 룬델의 눈동자마저 흔들렸다.
귀족과 관료들, 아니, 그 이상의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거대 정화 장치가 제대로 돌아가면 좋습니다. 하지만 정화제는 없으면 안 되잖습니까?"
"그렇지. 정화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라지면 안 된단다. 그래도 둘 다 필요한 건 사실이구나. 거대 정화 장치가 제대로 돌아야 지금 사람들이 소비하는 정화제 일부를 바다에 투입할 수 있으니."
"…바다."
하벨은 그리움을 담았다.
바다야말로 모든 물의 시작이자 끝인 곳이 아닌가.
"바다가… 보고 싶더냐?"
룬델은 하벨의 그리움을 읽자 그는 활짝 웃었다.
"예. 보고 싶네요."
"음. 아마 네가 책에서 봤던 모습과는 다를 거다. 어둡고, 칙칙하고."
"괜찮습니다. 그냥 보고 싶어요. 너무 그립거든요."
하벨은 바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바다는 제집이자, 제 전부였습니다."
"그래. 몸이 나으면 가자꾸나. 나도 시간을 빼보마."
룬델은 하벨의 이마를 쓸었다.
"가주님."
"그래."
"왕자를 만나겠습니다. 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기왕 왕자를 만날 거, 그냥 만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모든 건 보여주기식이니 룬델이 미리 작업을 해줘야 자신이 편할 테지.
시작부터 요란하게 가야 귀족들의 시선을 더 끌지 않겠는가.
"왕자가 혹시 너에게 무어라 말을 했더냐?"
"아뇨. 저는 원래 뿌리 뽑는 걸 좋아하거든요.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너무도 지친 탓에 건들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제거할 겁니다."
하벨은 싱긋거렸다.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만약 여기서 멈춘다면 하벨 티에라가 돌아올 때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정말로 관료들의 목을 얼마나 잘라버리고 싶었는지.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들뜬 기분이었다.
"그러니 지금 드러난 마법사 협회도, 대법관도 다 제 겁니다."
하벨은 사냥감에 확실히 침을 발랐다.
룬델에게 넘보지 말라고.
* * *
"…도련님."
헤레스는 방긋 웃었다.
방 안에서 가볍게 아라를 쫓아다니던 하벨은 그대로 멈춰 어색하게 웃었다.
덩달아 멈춘 아라가 하벨이 자신을 쫓아오지 않자 입을 꽉 다물며 털을 세웠다.
[…씨잉.]
"도련님께서는 지금 뭘 하고 계실까요?"
"헤레스. 오해하지 말게."
"예. 오해하지 않으려고 듣고 있습니다."
헤레스는 계속 웃었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그렇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운동이 필요하시죠. 가벼운 산책은 몸에도 좋고요."
"뛰어다닌 적은 없네. 나도 어지러운 건 싫어해서."
"어지러운 걸 싫어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도련님께서 안정은 저 멀리 던져버리시고 이렇게 돌아다니니 혹시나 어지러움을 극복하셨나 싶어 엄청 기뻤습니다."
"혹시… 화났나?"
"예."
헤레스가 순순히 대답하자 하벨은 안도했다.
"내 행동이 그렇게 무모했는가?"
"으음. 독에 중독되신 뒤 하루 있다가 외출하셨고. 휴식을 취하셔서 겨우 안정이 됐는가 싶었는데 또 외출하신 후에 손등이 푸르게 물들 정도로 물의 저주가 진행된 상태로 카샬 씨에게 업혀 돌아오셨잖습니까? 이걸 또 겨우 억눌러서 안도와 행복으로 문을 열었더니, 짜잔."
헤레스의 말과 웃음에 해탈이 엿보였다.
"자네, 노크를 빠트렸네."
"했습니다. 몇 번이나요."
[응응!]
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네."
"저한테 미안하시면 지금 누워주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하벨은 그 말에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헤레스의 웃음이 포근해졌다.
"도련님, 카샬 씨는 어디 가셨습니까?"
"저녁밥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웠네. 아무래도 독 사건 이후에 계속 살피는 모양이야."
"마침, 잘됐습니다."
헤레스는 안경을 올리며 씩 웃었다.
"여, 연락이 왔는가?"
"아뇨. 그… 음, 연락이 이제 닿았습니다."
"연락이 닿다니?"
"제가 말씀드리는 걸 잊었더라고요."
머뭇거리던 헤레스는 괜히 시선을 흘렸다.
"저나 그분이 등록된 마법사는 맞지만, 아, 잠시만요."
헤레스는 옷을 걷어서는 손목에 바코드 모양처럼 보이는 문양을 내보였다.
"이거 보세요. 이게 등록된 마법사를 나타내는 증표에요. 영원히 지워지질 않을… 음, 뭐 그런 거죠."
"이렇게 막 보여줘도 되는 건가?"
하벨은 놀라며 물었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대뜸 보여달라고 하시면 당연히 안 되죠. 하지만 등록됐는지 안 됐는지를 확인할 때 무조건 이 증표를 내보여야 해서 저는 괜찮습니다."
아라가 빤히 쳐다보다 앞발로 문양을 만지작거렸다.
"…어?"
헤레스는 낯선 손길에 잠깐 움찔거렸다.
"왜 그러나?"
"아, 아닙니다."
헤레스는 당황했지만, 어쩐지 기뻐 보였다.
"헤레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네."
"뭐든 말씀하세요."
"이 팔찌 혹시 마법이 담긴 팔찌인가?"
"도련님께서 좋아하시는 팔찌 아니셨… 나요?"
"내가?"
"최근에 그 팔찌만 하셨잖습니까."
"빠지질 않네."
참담해 보이는 하벨의 모습에 헤레스는 눈을 깜박거렸다.
"웃어야… 하나요?"
"진심이네."
"잠깐 제가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실례합니다."
헤레스는 팔찌를 잡아 자연스럽게 빼내려다 다급히 손을 뗐다.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버렸다.
"왜 그러는가?"
"뭔가… 걸려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억지로 빼내시면 안 됩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섬뜩함에 헤레스는 무슨 말을 더는 하지 못했다.
"그, 어쨌든, 저나 그분이 마법사 협회를 탈퇴해서 소식통이 좀 느립니다. 그 부분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 협회를 탈퇴할 수도 있나?"
팔찌를 쭉 늘렸던 하벨이 다급히 묻자 헤레스는 진료하던 손을 멈췄다.
"음, 조건이 엄청 까다롭고, 불이익이 많긴 한데 탈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린 협회가 싫어서 나와버렸죠."
"고맙네."
"예?"
"헤레스."
"예, 도련님."
"언제 움직이면 되겠는가? 곧 나가야 해서 말이야."
하벨의 물음에 헤레스의 안경이 흘러내렸다.
차마 입으로 할 수 없으니 그녀는 눈으로 하벨에게 욕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