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접수 완료!(3)
* * *
"…뭐? 꾸, 꿇으라고? 지금 나한테 꿇으라고 말한 것이……."
기사 중 한 명이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뮈에르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그대로 식탁에 부딪히고 의자와 함께 뒤로 쓰러졌다.
이빨 몇 개도 날아가자 하벨은 다리를 흔들며 구경했다.
"…어어억!"
뮈에르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카샬은 얼른 식탁에 놓인 물을 컵에 따라 기사에게 넘겼다.
"시원하게 한 번 뿌려줘야지."
기사는 고개는 끄덕이며 뮈에르의 얼굴에 물을 채찍질하듯 뿌렸다.
"푸핫! …허, 허억."
뮈에르는 깜짝 놀라며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더럽고. 추악하고. 오물을 뒤집어쓴 이 역겨운 돼지 새끼야…!"
놈과 눈이 마주하자 기사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갖 증오를 퍼부었다.
지금까지 저놈에게 얼마나 많은 모욕과 폭언, 그리고 폭력을 참아왔던가.
"죽지 말고 평생 썩어버린 시궁창에서 네 인생을 한탄하며 절망해라! 퉷!"
저주와 함께 침까지 뱉었다.
하지만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분노에 기사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 보이자 도미논이 그를 말렸다.
"안 됩니다."
"알고 있네. 그 정도는."
기사는 숨을 고르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자네는 인장을 가지러 가게. 나는 저 돼지 새끼랑 똑 닮은 저놈 자식을 데리고 갈 테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뮈에르는 제 자식 이야기에 눈을 번쩍 떴다.
"자, 잠깐만 지금 뭐 하는 건가?"
이빨이 빠진 통증 때문에 어눌한 말로 기사를 붙잡았다.
"왜? 네놈 대신 네 아들을 가주 자리에 올려주겠다는데 뭐가 잘못됐나?"
기사는 절망하는 뮈에르의 모습에 마음껏 비웃고는 방을 벗어났다.
엉금엉금 기던 뮈에르는 기사를 말리지 못하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도미논을 불렀다.
"이, 이, 이봐."
"뭐 새끼야?"
도미논은 다시 뮈에르의 얼굴을 걷어차서는 쓰러진 놈의 목덜미를 잡고 하벨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저는 이놈의 처분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지금 바쁜 일이 생겼잖습니까?"
도미논은 뮈에르를 던지다시피 놓았다.
가주가 사라진 지금 아르에느를 차지해야 했으니.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어서 가보게."
하벨은 도미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도미논은 허리를 공손하게 숙인 뒤에 밖으로 나갔다.
"자."
하벨은 숨을 몰아쉬며 의자를 잡고 힘겹게 일어나는 뮈에르를 바라보았다.
"네놈을 왜 살려야 하는지 설명해보게.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들어주도록 하지."
"…어디에서 보냈더냐? 내 돈을 더 쳐주마. 넉넉잖게 줄 테니, 내게 붙거라."
뮈에르는 고통을 계속 호소하면서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까지 포섭을 시도하다니.
"과연 다르네. 보통은 질질 울면서 잘못했다고 비는데."
하벨은 신기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잘못을 빌어?"
뮈에르는 고통을 참으며 비웃음을 그렸다.
"나는… 귀족이다. 굽힐 바에야 죽어야지."
"또. 또 시작이네. 좀만 패면 제일 먼저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면서 달려들 놈들이 왜 자꾸 잘난 척, 멋진 척 개같이 행동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라르웬의 목소리에 깊은 짜증이 묻어 있었다.
뮈에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또'라니.
"패는 건 제가 잘합니다. 아시잖습니까? 벌써 몇 놈의 눈물을 짜냈는 걸요."
카샬은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손가락을 풀었다.
뮈에르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몇 놈'이라니.
"그럼 해봐. 살릴 이유가 없으니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하벨이 꺼내는 말에 뮈에르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만!"
[라르웬. 너무 이상해. 어떻게 된 게 분명 다른 놈인데 왜 똑같은 말을 꺼내는 거지? 사실 다 같은 인간이 아닐까?]
라르웬의 머리에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루룸이 몹시 실망했다.
"그러니까 손을 잡았겠지?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라르웬은 루룸만 들을 수 있게 속닥였다.
"왜? 굽힐 바에야 죽겠다며?"
하벨은 카샬이 검을 뽑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손깍지를 껴 배에 올렸다.
"나, 나는 귀족이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그 소리를 한 번만 들었는 줄 아는가?"
하벨은 비웃음을 흘렸다.
가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 비웃음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뮈에르는 통증마저 잊을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같은 말과 행동을 재차 하려니 싫증이 납니다. 알고 보면 다 같이 오기 전에 이렇게 말하자고 작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카샬은 검으로 바닥을 그으며 옆 방으로 움직였다.
그 소리가 섬뜩해 뮈에르가 흠칫거렸다.
"프렝 크로그."
하벨이 꺼낸 말에 뮈에르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무르토 마을의 귀족 이름이 아닌가.
"지헬 론."
비튼 마을의 귀족.
"베케이튼 르르한."
메멘 마을의 귀족.
"맨 처음에 온 자는 베케이튼 르르한이었어."
―보셨소?
헤콘은 반쯤 죽인 베케이튼을 데려와서는 그렇게 말했다.
―이놈은 아는 게 없소. 내 모든 걸 걸고 장담할 수 있소. 그러니 내게 기회를 주겠소?
이미 그래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헤콘은 굳이 베케이튼을 자신의 앞에 꿇렸다.
뭐라고 말하려다 낯설 만큼 정중한 태도에 하벨은 말없이 승낙했다.
―커… 커헉!
베케이튼이 남긴 건 비명뿐이었다.
"죽었지. 시체는 없어. 안타깝게도 그 시체마저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하벨의 섬뜩한 소리에 뮈에르는 잠깐 숨을 멈췄다.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짐작되는 사람이 많을 테지. 얼마나 죄를 지었으면 그럴까."
하벨은 혀를 찼다.
"자, 잠깐만……."
툭.
무언가 뮈에르에게 굴러왔다.
뭐가 굴러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화르륵.
갑자기 불꽃이 일렁거리자 뮈에르는 양손을 뻗은 라르웬을 보며 넋을 잃었다.
"…마법사."
하벨은 뮈에르의 중얼거림을 들었기에 천천히 그를 흔들었다.
"다음은 지헬 론이 찾아왔네."
셴과 함께 비튼 마을의 귀족이 찾아왔다.
"신나게 두들겨 맞고는 정보 하나를 털어놓더라고. 동맹을 추진한 건 네놈이라고."
―동맹을, 흑, 동맹을 추진한 건 뮈에르 그놈입니다. 저는 진짜, 멍청이처럼 그 말에 속아 넘어간 것밖에 없습니다. …아! 그, 그놈이 저지른 중한 죄를 알고 있습니다.
하벨은 지헬이 꺼냈던 죄를 생각하며 뮈에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뮈에르의 눈동자에 배신감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네놈이 오기 전에 프렝 크로그가 찾아왔지. 네놈과 가장 긴밀한 동맹을 구축했던 놈 말일세."
프렝의 이름이 나오자 뮈에르는 크게 반응했다.
―뮈, 뮈에르 그자요! 이 동맹을 권한 자도 그자고, 마법사… 빌어먹을!
순간 튀어나온 말에 프렝은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고통이 더 앞선 탓인지 술술 털어놓았다.
―그, 그래. 마법사 협회. 그자가 마법사 협회를 끌어와야만 티… 티에라 가문을 없앨 수 있다고 했소. 정말이오! 그러니 제발, 티에라 가문이 그대 뒤에 있다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해주시오!
"꽃님아."
하벨은 차분히 카샬을 불렀다.
"…하."
한숨 소리와 함께 카샬은 눈을 가리고 재갈까지 물린 빼빼 마른 귀족의 뒷덜미를 잡고는 끌고 왔다.
"으읍!"
하벨은 프렝을 가리켰다.
"프렝, 저놈이 재미있게도 마법사 협회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이, 이, 개새……."
뮈에르가 소리치자마자 불꽃이 다시금 그를 덮치려 눈앞에서 일렁거렸다.
뮈에르는 피어오른 불꽃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네놈은 저놈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가? 재갈 풀어."
하벨의 지시에 카샬이 재갈을 풀자 프렝은 당장 빌었다.
"사, 살려주시오! 다 말했잖소! 저놈이 티에라 가문을 공격하러 동맹을 맺은 것도 모자라 마법사 협회까지 끌어들였다고 말이오!"
"이 미친놈! 그 주둥아리가 뭐로 되어 있길래 함부로 지껄이는……."
흠칫.
뮈에르는 필사적으로 언성을 높이다 말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달 문양이 그려진 가면 너머로 뚫고 오는 위압감에 입가에 침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하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대 풀어줘."
미리 안대를 붙잡고 있던 카샬은 그대로 손을 놓았다.
안대가 떨어지고.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을 본 순간, 프렝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살기 위해 마법사 협회가 끼어들었다는 걸 말했는데 마법사가 왔다니.
분명히 마법사 협회에서 온 게 틀림없었다.
"…으어어."
딱딱.
이빨이 금세 맞닿으며 금방이라고 기절할 것처럼 떨었다.
"꽃님아. 밖으로 꺼내."
하벨이 카샬을 부르자 그는 '꽃님이'라는 말에 다시금 화를 참으며 프렝의 눈을 가렸다.
"사, 사, 살려주시오! 오늘 일을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지 않겠소! 저, 정말이……."
카샬이 단번에 프렝을 기절시켰다.
"제대로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하벨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 밖으로 나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셴에게 넘길 셈이었다.
비록 거짓이지만, 프렝은 마법사 협회의 배신을 눈으로 본 자였다.
셴의 감시하에 두되, 살려두면 알아서 귀족들에게 떠들 테지.
마법사 협회가 귀족을 배신했다고.
"…후."
라르웬도 숨을 내뱉는 척하며 불꽃의 제어력을 놓아버렸다.
하벨은 말없이 뮈에르를 바라보았다.
배신한 건 마법사 협회다.
방이라는 폐쇄적인 곳과 프렝, 그리고 다시금 뮈에르의 의심을 이용해 그렇게 각인시켰다.
"…씹새끼들."
뮈에르는 다시금 이를 갈았다.
피가 입 밖으로 줄줄 흘러도 배신으로 치미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마법사. 네놈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대법관 피나토 웬."
하벨은 페트리오가 알려줬던 그 이름을 한 번 던져보았다.
아니면 그만일 뿐, 어차피 들을 방법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뮈에르의 얼굴에 혈색이 사라졌다.
'…뭐야? 정답이었어?'
하벨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라르웬마저 그를 쳐다보며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뮈에르 뒤에 누가 있든 말든 하벨이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하벨은 뮈에르가 더 타오를 수 있는 장작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내, 네놈들이 뭘 하는지 알고 있지!"
"뭘 하는데?"
하벨은 정말 몰랐기에 내뱉는 말이었으나, 마치 빈정거리는 듯 들려왔다.
"에르티안 왕국을 삼키려는 걸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아니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네놈들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서 이번 일에 끼어들게 했으니까!"
'그것도 아니야.'
"티에라 가문이 거슬렸겠지. 티에라 가문의 힘이 얼마나 큰지 모르니 힘을 떠보고자 티에라 마을 뒷세계에서 그딴 일을 벌인 거겠지!"
하벨은 의외의 이야기에 멈칫거렸다.
'뭐야. 별개의 일이었다고?'
입 안에 고인 피를 토하며 소리를 지르던 뮈에르가 그 모습을 보자 좋다고 낄낄 웃었다.
"네놈들을 정말로 믿었다고 생각했더냐? 우린 티에라 가문을 처리하기 위해 네놈들이 필요했을 뿐이지."
뮈에르의 웃음은 멈추질 않았다.
"나는 귀족이다. 내 뿌리는 에르티안이란 말이다. 더러운 배신자인 네놈들이 언제가 됐든 이 왕국을 배신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귀족과 마법사 협회가 정말로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건가?'
하벨은 여전히 의심했다.
"우리가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궁금하겠지?"
"……."
"헤일리스 퀸! 내 네놈들의 진짜 주인을 찾아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가?"
후.
랜턴의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이거지.'
하벨은 그제야 등받이에 기대며 라르웬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써도 라르웬이 씩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마법사 협회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역시 동맹을 체결한 이가 아니겠는가.
이걸 위해 마법사인 척 위장이 필요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되게 큰 걸 건졌어."
라르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겨우 이름뿐이지 않습니까?"
"마법사는 진짜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
"진짜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요?"
"그래. 마법사는 마나에 얽매인 자들이야. 그 이름조차 마나로 얽맬 수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럼 좀도둑의 이름도 가짜 이름인 건가?'
하벨이 잠깐 생각할 무렵, 라르웬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벨에게 걸어왔다.
"어쨌든, 저 이름이 설령 가짜라고 해도 엄청 가까이 접근한 셈이야. 일단 실마리를 잡았잖아? 고생했어, 막내야."
뮈에르는 뭔가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걸 눈치챘다.
막내라니.
"무슨… 수작이냐? 여기서 부릴 수작이라도 남아……."
"에이, 수작은 계속 부리고 있었어."
하벨은 손을 뻗어서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이제 네놈들이 맺은 동맹은 파기될 거고, 마법사 협회도 곧 퍼질 소문에 몸을 사릴 테고, 무엇보다."
세 번째 손가락을 접기 전에 하벨은 가면부터 벗었다.
앳된 소년의 모습에 뮈에르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저 소년에게 농락당했다고?
정말로?
"이제 안심하고 밤에 잠을 잘 수 있거든."
적어도 티에라 가문 근방에서 티에라 가문을 노릴 이들이 싹 사라졌다.
이제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
하벨이 실실 웃었다.
장난기가 가득 섞인 목소리에 뮈에르의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 섰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봐. 하긴 그럴 만하지. 봤지, 막내야? 네 얼굴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없다는 걸?"
"예. 정말이네요. 이거 섭섭합니다."
"섭섭하면 내 반응을 봐봐."
라르웬까지 가면을 벗자 뮈에르는 당장 눈이 빠질 듯이 휘둥그레졌다.
누구인지 왜 모르겠는가.
라르웬 티에라.
"티, 티, 티에라……."
뮈에르는 말도 나오지 않는지 라르웬을 가리킨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라르웬 티에라다, 이 개새끼야."
"그, 그럼."
"하벨 티에라지, 뭐겠어? 멍청한 새끼야."
하벨이 꺼내는 그 이름에 뮈에르는 절망으로 가득 찬 눈물을 흘렸다.
티에라 가문이 이렇게 턱밑까지 검을 들이미는 줄도 모르고 하벨 티에라를 죽였다고 멋대로 축배의 잔을 올리고 말았다.
다 끝났다.
전부 다.
"그래, 알고 있겠지만, 전부 다 끝났어."
하벨은 뮈에르의 절망을 보며 사실을 알렸다.
이제 티에라 가문을 둘러싼 영토 중 가장 큰 영토들이 줄지어 뒷세계 수장들의 손에 무너질 테니까.
"하벨 티에라는 죽지 않았고, 너는 실패했고, 승리는 티에라가 손에 넣었다."
사건의 끝을 알리는 말이 하벨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뮈에르의 눈물이 굵어졌다.
"네놈 가문은 이제 곧 이 땅에서 영원히 지워질 거야. 약속하지.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벨은 그대로 주저앉은 뮈에르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그렸다.
방금 개구쟁이처럼 보였던 그 웃음이 지옥으로 향하는 안내음으로 뒤바뀌었다.
"으… 으아아아!"
뮈에르는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절망으로 가득한 비명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