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 용이 아니라 이 용인데(3)
* * *
물론 형태뿐이었지만, 처음에 정령을 보지도 못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닌가.
'되게 부드러웠어. 모습은 새처럼 생겼으니 깃털이겠지?'
깃털이 저렇게 부드러웠던가.
적어도 자신이 쓰다듬어주었던 새 중에는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혹시 내가 보이는 건 아니지? 그렇지?]
세렌은 화를 내려다 일단 참았다.
룬델이 싫어할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냥 하벨 상태가 어떤가, 아주 살짝 비웃어주려다 갑자기 맞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름."
하벨은 일부러 짧게 물었다.
또 진중해야 할 순간에 가벼운 말투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내가 먼저 물었어! 이 재수 없는… 아니지. 너, 너어! 내 목소리가 들려?]
"이름."
[이것 봐봐!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세렌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하벨이?
얼마 전에 티에라 가문에 존재하는 모든 정령에게 거절당한 그 하벨이?
[그러고 보면…….]
킁킁.
세렌은 하벨 주위로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묘한데?]
불쾌함은 여전했지만, 좋은 냄새가 살짝 났다. 위대한 바다 냄새가.
참 이상했다.
갑자기 왜 좋은 냄새가 나는 건지.
"뭐해요?"
하벨이 웃자 세렌은 기겁했다.
'그럴 리가.'
하벨이?
저 하벨이?
세렌은 얼른 말을 돌렸다.
[이봐. 산에서 뒹굴었다며 거기서 뭐 좋은 거라도 먹었어?]
하벨이 아무 말도 없자 세렌은 씩씩거렸다.
[뭘 했는지 몰라도 우리가 주는 정령수를 새끼발가락만큼 받을 수 있게 되었나 본데. 착각하지 마. 여전히 네가 싫어. 아마 이건 여기 티에라 가문에 있는 정령들뿐만 아니라 모든 정령일 거야. 너는 절대로 정령사가 될 수 없어!]
"……?"
하벨은 옆에서 쫑알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듯 흘리다 문득 한쪽 눈썹을 올렸다.
'정령수는… 정령이 주는 힘이자 정령사가 사용하는 힘?'
하벨은 잠깐 생각하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봐, 조그마한 놈.'
"조그마한 정령님."
망할.
또 생각과 말이 달리 튀어나왔다.
"조그마한 정령님은 절 싫어하잖아요. 그렇죠?"
[난 조그맣지 않아! 위대하다고! 너 같은 건 진짜 싫어! 싫어! 싫어!]
"제가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자신은 티에라 가문의 막내 '하벨 티에라'로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본의 아니게 가족들로부터 하벨 티에라를 빼앗았다는 미안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원인 제공자는 바로 그였다.
멋대로 자신을 빙의시키지 않았던가.
[내가 왜?]
역시나 저 정령은 반응할 줄 알았다.
"조그마한 정령님은 절 보지 않아서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룬델이 '암살자'라는 자신의 말에도 당황하지 않은 걸로 보아 흔한 일인 듯했다.
즉,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오호. 그건 되게 흥미로운 말이네? 네가 꺼낸 말 중에서 가장 좋은 말이기도 하고.]
세렌이 히히 웃었다.
하벨이 사라진다면야 눈에 거슬리는 게 사라지니 자신 역시 좋았다.
무엇보다 하벨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이니 룬델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룬델한테 잔소리를 듣는 게 제일 싫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네.'
하벨은 속으로 웃었다.
비록 선의 형태라도 저 정령은 꽤 순진해 보였다.
"이름이 뭐죠?"
[잘 들어, 내 위대한 이름을 말이야. 딱 한 번만 알려줄 거야.]
새의 형상을 한 선이 하벨의 어깨에 다가왔다.
날개로 하벨의 얼굴을 쓸어내렸는지 부드러운 촉감이 금세 일어났다.
[세렌이야.]
정령의 이름을 듣는 순간 하벨은 잠깐 스파크가 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선의 모습을 하던 세렌의 부리가 흐릿하게나마 칠해져 둥둥 뜬 모습에 하벨은 이름을 아는 것 역시 교감 중 하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힘이 강해진 건가?'
하벨은 새삼 의문이 들었다.
룬델이 말하기 꺼렸던 일, 이제 정령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령에게 직접 듣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하벨 티에라가 정령사가 되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 '열심히 노력했다'라는 말이 단번에 떠오르니까.
그래서 참 이상했다.
'교감하면 이렇게 바로 성장하는데? 왜 못 했던 거지? 룬델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았나?'
[뭐지?]
세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벨의 냄새가 더 좋아졌지만, 그래 봤자 하벨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안 돼. 룬델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너도 곱게 나가고 싶으면 당분간 얌전히 있으라고.]
세렌은 '흥'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닮은 돌을 만들어내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다시 돌아와 문을 닫아주었지만.
'그럼, 좀 살펴볼까?'
하벨은 편안히 누운 상태로 눈을 감았다.
일단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다.
'하벨 티에라. 만약 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뻐해라. 네 몸은 만약 방법을 찾으면 언제가 됐든 돌려주마.'
이건 자신이 하벨 티에라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용왕으로서 살아오며 하지 못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그리고 이건 자신의 바람이었다.
물론 맨입으로 한다는 건 아니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법칙은 어느 세상이든 마찬가지니 하벨 티에라가 원래 몸으로 돌아왔을 때, 육체가 단련되어 있든 뭐든 달라지면 좋지 않겠는가.
'봐, 벌써 교감에 성공하지 않았나? 이 몸의 힘이니라.'
하벨은 괜히 으쓱거렸다.
'그러니 내가 무얼 해도 원망하지 말거라.'
늘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책임감에서 이제야 벗어났다.
다만, 죽어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우스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용왕은 하늘과 바다, 특히 바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그 책임감은 매 순간 버겁고 힘겨울 뿐이었다.
하벨은 곧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겠는데?'
마치 어두운 길을 걸어가듯 하벨의 몸에는 이상한 불순물들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순환의 길에서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막혀버렸다.
이래서는 몸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이러니까 정령을 볼 수 없었지. 안타까운 놈 같으니라고.'
순환의 길은 이곳에서도 쓰이는 용어이며 자신이 아는 것과 거의 유사했다.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이곳에서는 주로 '마나'라는 걸 담는 모양이었다.
'방금 교감으로 순환의 길이 살짝 뚫렸는데도 이 모양이니.'
하벨은 뚫린 순환의 길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주 희미하나 물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물과 친밀감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데?'
하벨은 깊은 의문을 느꼈다.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근원이 물이라고요? 그런데 왜 물이 아픈 거예요?
'세계의 근원이 물… 이라고?'
갑자기 떠오른 사실에 하벨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과 친밀감이 높다는 건 다른 사람보다 물을 더 빨리, 정교하고 강하게 다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래?'
하벨은 혹시나 해 다시 물을 부려보려고 했지만, 온몸으로 거센 파도를 역행하듯 거대한 압박이 몰려왔다.
'역시 착각이 아니었어.'
억지로 움직인 만큼 땀이 흘러내렸다.
겨우 모아 엄지만 한 크기의 물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저 막힌 길을 뚫지 않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였다.
'…망할.'
하벨이 작게 중얼거리던 순간, 가슴 한편이 간질거렸다.
'……?'
하벨은 눈을 크게 떴다.
배 위에 조금 전까지 없던 무언가가 생겨났다.
하얀 털뭉치.
하지만 새끼손톱만 할 정도로 너무도 작고 작았다.
파아아앗!
갑자기 작은 랜턴에서 따스한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뭐지?'
하벨은 눈을 깜박거렸다.
대체 이 랜턴이 무슨 원리로 불이 나왔다 사라지는지 몰라도 저건 애초에 먼지가 아닌가.
꿈틀.
하벨이 불기도 전에 털뭉치가 움직였다.
'살… 아 있었나?'
얌얌.
얼떨떨함을 넘어 그 작은 것이 자신이 기껏 만든 물을 얄미울 만큼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하벨은 털뭉치를 쥐려고 손을 뻗자 털뭉치는 그대로 뒤로 움직였다.
'조그만 게 엄청 빠르네.'
하벨은 털뭉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코입이 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살아 있는 건 확실했다.
'이상하네.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지.'
하벨이 힘겹게 손을 짚어 상체를 일으키자 털뭉치는 데구루루 구르다 뭐가 재미있기라도 한 건지 털을 부르르 떨었다.
'정… 령인가? 그럴 리가.'
하벨은 조금 전 선의 형태를 했던 세렌을 떠올리다 턱을 매만졌다.
정말 정령이라면 저렇게 선명할 리가 없었으니.
하벨은 다시 털뭉치를 보았다.
'그렇다면 저건 뭐… 어디 갔지?'
열심히 눈동자를 돌리나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가뜩이나 조그마해 숨어버리면 찾기 어려웠다.
'이런. 이 눈으로 뭘 제대로 볼 수가 없네.'
난생처음 보는 생물체에 호기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아쉬움이 컸다.
하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은 나중에 자도 괜찮다.'
긴가민가했다.
'…아마도?'
하.
하벨은 걸음을 떼기도 전에 깊게 숨을 내뱉었다.
몸이 너무 무겁고, 얼굴이 조금 전부터 뜨거운 게 '열'이라고 부르는 아픔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걱정하지 마라, 하벨. 내, 몸을 돌려주기 전까지 소중히 하마.'
밤에는 많은 일이 일어나는 걸 알고 있었다.
암살자가 죽었으니 이를 보고할 사람이 있을 게 아닌가.
찾아야 했다.
* * *
조심스럽게 복도로 나가는 문을 열자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카샬과 시선이 마주쳤다.
"까, 깜짝이야!"
하벨은 진심으로 놀랐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도련님. 그건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불도 끄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떻게 물러갑니까?"
카샬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당연한 게 아닌가?'
"맞아. 잠이 안 와."
참 가벼운 자신의 대답에 하벨은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주둥아리는 아까부터 진짜.'
하벨은 자신의 입술을 몇 번 가볍게 두드렸다.
좀.
제발 좀 제대로 말하자.
"그럼 따뜻한 우유를 데워드…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내가?"
"예. 도련님이요."
하벨은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다시 카샬을 보았다.
"카샬이라고 했지?"
"장난하실 힘이 있으신 걸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지금 얼굴이 붉습니다. 얼른 주무시죠. 나중에 해열제를 드리겠습니다."
"나하고 일 하나 해볼래?"
"일이요……?"
카샬은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도련님께서는 일하는 걸 싫어하잖습니까. 음… 요 몇 달 전에 갑자기 달라지셨는데 오늘도 되게 이상하십니다."
"내가 하벨이 아니니까."
"또 그 소리이십니까?"
"알았어, 일단 됐어."
하벨은 지금 중요한 일부터 언급했다.
"오늘 암살자가 둘이나 나타났잖아?"
"알고 있습니다."
카샬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왜 이렇게 무능하지?"
하벨의 질책에 카샬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더 노력하겠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아니. 너 말고."
"예?"
"이 가문 말이야. 그… 정령사 가문이라는데 왜 이 몸 하나도 보호를 못 하는 거야?"
하벨의 질문에 카샬은 당황했다.
장난이 아니라 하벨 나름대로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벨의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는가.
'도련님의 기억에 문제가 생기셨나?'
카샬은 덜컥 겁이 났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이 가문에서 유일하게 정령의 보호를 받지 못하십니다."
"왜 그런 거야?"
"으음……."
차마 정령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소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인지 하벨이 달라졌으니.
"좋아."
하벨은 카샬의 반응에 이제는 확신했다.
'하벨 티에라는 정령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
이미 세렌을 통해 보지 않았던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암살자와 같은 편을 찾는 일이었다.
손등에 새겨진 검은 달 무늬.
"따라와. 보니까, 검 좀 꽤 쓰는 듯한데."
"왜 새삼스레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카샬은 당황한 것도 잠시, 곧 으쓱거렸다.
"정말 처음이니까."
못 볼 걸 봤다는 듯 하벨은 문밖을 나서자마자 뒤돌아 문을 바라보았다.
"…아. 방어 마법이 파괴됐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도련님께서 잠이 드시면 가주님께 보고를 드리러 다시 가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파괴가 될 수 있는 거야?"
"아뇨. 어렵죠. 습격은 되게 흔했지만, 암살자가 여기까지 온 것도 처음이고 방어 마법이 부서진 것도 처음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가 고용한 암살자인 모양이네. 두 암살자 모두 검은 달 무늬가 있었으니까."
하벨의 대답에 카샬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카샬은 주머니에서 온도계를 꺼내 하벨의 귀에 가져대서는 버튼을 눌렀다.
삑.
삑.
삐비비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온도계에 나타난 체온을 보자 카샬은 안도했다.
"역시 열이 높았습니다."
"왜 안도하는 건데?"
하벨은 황당했다.
"머리를 쓰는 걸 싫어하시는 도련님께서 머리를 쓰셨다는 사실에 놀라웠거든요."
"하긴. 그건 좀 귀찮지."
하벨도 키득거렸다.
"그렇죠? 하지만 훌륭하십니다. 도련님 말씀대로 저도 막 지금까지 도련님을 노렸던 자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참입니다."
"이 방까지 오려면 두 번의 문을 더 거쳐야 해."
"맞습니다. 도련님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집 구조를 고쳤죠."
하벨은 잠깐 생각했다.
자신의 기억은 아니지만, 각 문에 4명의 기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문 앞에서 죽은 기사 2명을 포함하면 총 10명의 기사가 있었음에도 암살자가 들이닥쳤다.
"…게다가 현재 방 3개를 무작위로 사용하십니다."
카샬은 잠깐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확률은 1/3.
"다른 방을 살핀 결과 침입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사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몰랐다고?"
"…죄송합니다."
"정령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몸은 진짜 최악이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
"사실인데?"
하벨은 씩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카샬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의 뒤를 따랐다.
"기사들까지 죽었다는 건 습격일 테고, 이미 내부 정보를 흘러갔다는 거네. 하벨 티에라와 가까운 사람이면 이번 습격은 엄청 쉬울 텐데. 그렇지?"
"그렇다면 저도 있습니다."
자신도 의심하라는 카샬의 대범함에 하벨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의심하고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같이 갈 이유가 없잖은가.
"만약 배신자가 그 안에 있다면 그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지 않겠어?"
하벨은 복도 창문을 확인했다.
"제가 다 확인해봤습니다. 딱 하나가 열려 있더군요."
"거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네."
"맞습니다. 마법이라는 모든 가능성을 넘는 범주가 존재합니다."
"이 몸은 정령의 가호를 받지 못하니까?"
"예. 그래서 지난 습격들 역시 꼬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참입니다. 도련님 일에만 무능하죠. 아, 이 창문입니다."
카샬은 열려 있었다던 창문 앞에 섰다.
킁킁.
하벨은 창문 주변에 서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모르겠네.'
개 코보다 훨씬 좋은 후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이 몸으로는 무리인 듯했다.
카샬이 하벨의 행동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떤 장단으로 맞춰야 하나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카샬은 결국 방금 모습을 부정하려고 결정했는지 말을 돌렸다.
"도련님께서 지금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공범을 찾으러 가십니까?"
"맞아. 가벼운 산책이라고 생각하자고."
"저한테 맡기십시오."
"아니. 내 사냥감이라서."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살짝 휜 하벨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매서웠다.
"사냥감을 뺏기는 건 싫거든."
하벨은 입꼬리를 올리며 아래를 바라보자 제법 높았다.
몸을 빼려는 순간, 나무 밑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