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편 연(緣)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이름이…, 분명.”
우리 모용가의 가주인 아버지는 북부대장군(北部大將軍)답게, 늠름 하고, 듬직한 모습이었고.
비록, 꿈속에서라도.
그런 아버지의 정정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기뻤다.
“소현(BS賢)이라고 하더구나.”
“…소현.”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운 굴림이 있는 이름이라.
나는 몇 번이고 혼자 그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걱정할 것 없단다.”
그 모습을 오해한 것인지.
아버지께서 달래듯 말씀하셨다.
“내 오랜 벗인, 그 천하제일검(天 下第一劍)과 약 선녀님의 아들이 다.”
그러고는 옛날처럼, 그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대단히 총명(聽、明)하고, 마음이 착한 아이라고 하더구나. 다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아버지 의 손이 잠시 멈췄다.
“나 또한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 지만.”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이는 기구한 팔자(八字)를 타고 태어나, 깊은 사연(事緣)이 있 다고 하더구나.”
아버지께서 무릎을 꿇어, 몸을
굽히시곤.
“그래서 그 아이를 네 배필(配 四)로 데려오고자 하는 것이야.”
나와 시선을 맞추시며 당부하셨 다.
“그러니. 그 아이를 운정(雲情), 네가 지켜주도록 하여라.”
“연소현이라고 합니다.”
처음 본 그 아이는 새하얀 얼굴 에 깊은 눈을 하고 있었다.
“요즘 길림성(吉林省)에서 해동 국(海東國)과 북방민족의 충돌이 잦아졌다고 들었습니다.”
북부대장군인 아버지를 앞에 두 고서도.
그 아이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 고 제 할 말을 전부 했다.
“대장군께서는 북방민족들이 통 제를 더 벗어나기 전에.”
아이의 고사리처럼 작은 손이 척
척 하고 지도를 짚었다.
“선제적으로 그들을 다스리셔야 할 것입니다.”
“오호라.”
그 당찬 모습과 정확한 분석에.
“그 생각이 나와 같구나.”
아버지께선 감탄하시고는 나와 그 아이가 처음 만나는 자리라는 것도 잊고, 연신 대화를 나누시다 가.
“그래, 그렇구나.”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네게, 그를 위한 비책
(秘策)。] 있느냐?”
“네, 물론….”
무언가 말을 하려던 아이는.
안색이 그만 어두워지더니, 말을 아꼈다.
“•••죄송합니다.”
어째서인지.
그 깊은 사연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이는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어린 제가 무슨 비책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지금까지 아이의 한바탕 재롱을 구경하셨다 여겨 주
십시오.”
“재롱이라니? 아니다!”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더니, 그 아이에게 말했다.
“이미 거기까지 분석한 것만 해 도, 내 군사(軍師)들보다 훨씬 뛰어 나구나!”
아버지께선 내게 짓궂은 미소를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만약, 운정이 너를 신랑으로 데 려가지 않겠다 하면. 내가 너를 직 속 군사로 거두어 가야겠구나!”
내가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의 허리를 몰래 꼬집자.
“어이쿠야!”
아버지께서 엄살을 피우셨다.
“네 어머니를 닮아, 손이 날이 갈수록 매워지는구나!”
“아버지…!”
소란스러운 와중에서도.
나는 시선을 그 아이에게서 떼지 못했다.
그 아이는.
사람들과의 연을 멀리하듯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연하
게 쓴웃음을 짓는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너무나 덧없이 느껴져.
그 아이가 문득 날개를 펼쳐, 하 늘 저 멀리로.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내가 지켜주겠다고.
“•••가씨!”
꿈결에 어린 소현의 피리 소리를 듣던 운정을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아가씨!”
시비(侍總)가 자신을 흔들어 깨 우기도 전에.
눈을 번쩍 뜬 운정의 손에는.
이미, 검이 들려 있었다.
북부전쟁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로.
단 한 번도 머리맡에 검을 두지 않고 잤던 적이 없는 그녀였다.
“또 야율(恥律) 부족의 야습(夜 襲)인 것이냐?”
모용운정이 벌떡 침상에서 일어 나자.
한밤중에.
잠을 자면서도 벗지 않았던 가죽 갑주가 드러났다.
“그렇습니다!”
그녀의 시비는 너무나도 익숙한 동작으로 모용운정에게 철갑 갑주 를 입혀주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야율부족의 기마(희馬)가 우뭇
마을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시비는 갑주를 입히는 것도, 상 황을 설명하는 것도 능숙했다.
그들이 그간 어떤 세월을 살아왔 는지,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우뭇 마을이면, 친(親)중원국 성 향의 부족의 땅이로군…!”
모용운정이 거칠게 튼 자신의 입 술을 깨물었다.
야율 부족은 그 시커먼 야욕을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부디, 무운(武運)을…!”
시비의 배웅을 받으며.
모용운정이 탄 군마(軍馬)가 투 레질을 하며 달렸다.
“남길 말은?”
포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모용운정의 장검이 그대로 포로
의 목을 갈랐다.
스적-.
“커, 커헉…!”
일부러 반만 갈라놓은 목에서 피 거품이 끓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포로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그 모습을 강철 같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모용운정은 검을 거두고 는.
“대장군(大將軍) 대행.”
옆에서 그녀를 부르며 건네주는 장창(長槍)을, 한 손으로 받아 들고 는.
푸욱, 하고.
숨이 끊어진 포로의 몸을 꿰어 들고.
그대로 땅에 박아 세웠다.
그 충격에 반쯤 잘렸던 적의 수 급(首級)이 바닥에 떨어지자.
“퉤엣.”
그녀의 주변을 지키던 병졸(兵 卒)들이 그 머리에 침을 뱉어, 적의 명예를 깎아내렸다.
그렇게 떨어진 머리만 열몇 두 (頭) 라.
장창에 꿰어진 채 땅에 박힌 시 체는 수십에 이르렀으니.
흘러내린 피가 모여 초원을 따라 작은 개천을 이루었다.
약탈과 침략의 대가를 치르게 하 고, 경고를 보내기 위한 행동이었 다.
그러나.
전투가 훌륭히 승전(勝戰)으로
끝났지만, 환호성도 없었고.
고양된 아군의 사기(士氣)도 없 었다.
“저 안에…!”
문득.
모용운정의 시선이, 비명을 향해 움직였다.
“저 안에 우리 아이가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지금 들어가면 타 죽는다고!”
“물러나시오!”
병사들이 막아선 어미의 울부짖 음이 향하는 곳은.
게르(H;천막)들이 모여 있던 유 목(遊牧) 마을의 흔적이라.
그곳은 지독한 화염에 휩싸인 채 불타고 있었고.
“양들이…! 우리 가족의 양들이 전부…!”
“어째서 이리도 늦게 오신 것이 오?!”
가족과 재산을 잃은 유목 부족 백성들의 비통한 울음소리만이.
밤의 초원에 허무하게 울려 퍼지 고 있었다.
“•••오늘도 훌륭한 지휘였습니다.
대장군 대행.”
그녀의 직속 부관(直屬副官)이 칼을 집어넣고 다가오며, 작은 소 리로 그녀의 전공을 축하했지만.
“되었다.”
투구를 벗어든 모용운정은 부관 이 내민 천으로 대충 얼굴을 닦으 며 물었다.
“마을은 재건(再建)이 가능하겠 는가‘?”
그녀가 얼굴을 닦는 천이 금방 시텔겋게 변하는 것을 보며.
“•••어려울 겁니다.”
직속 부관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 다.
“마을을 지키려고 나섰던 젊은 전사(戰士)들은 모두 죽거나 끌려 갔습니다. 게다가 양과 말까지 대 부분 약탈을 당했으니….”
그는 나직한 소리로 혀를 찼다.
“그들의 아버지 부족도 거듭되는 약탈에, 그들을 지원해주지 못할 겁니다.”
우르르.
병력이 채 불길을 잡기도 전에.
기둥이 무너진 천막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백성들의 곡소리가 더욱 높아졌 다.
“…저들을 대장군부(大將軍部)의 부속(付屬) 마을에 받아들여라.”
“하지만 누님-!”
그녀의 부관이자, 친남동생인 그 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명령 (命令)이다.”
그녀는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섰 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달조차 비추지 않는 초원의 밤
o
지독하게도 춥고, 또 어두웠다.
대장군부.
군영 회의(軍營會議).
“•••부속 마을들의 수용(受容)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장군 하나가 모용운정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꺼냈다.
“그들에게 지급하는 식량을 감당 하기 위해서는, 이제 비상 군량(軍 »)마저 풀어야 할 지경입니다.”
“대장군 대행의 자비심이 깊은 것은 이제 백성들이 전부 알게 되 었으니.”
군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장군의 뒤를 이었고.
“이제, 각 부족에게 다시 역할을 맡기는 것이….”
“병력의 피로 또한 한계를 넘어 가고 있습니다. 대책이 필요한 시
점….”
“부족들이 동맹에서 이탈함에 따 라, 새 병력의 수급 또한 어려운
하나가 어려움을 토로하자, 참고 있던 성토가 이어졌다.
그들, 하나하나가.
이 험한 북방 땅에서 백전연마 (百戰鍊磨)된 이들이었으니, 그들의 말이 단순히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북부 대장군 대행, 모용운정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모용세가의 추가적인 지 원은-?”
“불가 (不可) 하다.”
모용운정이 투구 아래에서 고개 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대장군부의 요청을 거절 했다.”
야율 부족에서 공왕(恐王)이 등 장한 이후, 모용세가는 내부에서부 터 사분오열(四分五製) 중이었다.
“…대장군 대행이자, 가주 대행 이신 아가씨의 말마저 무시해버리 다니.”
“가문 내에서도, 차라리 공왕과 협력하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 들었소.”
“모용가도 이제 미쳐 돌아가는군 요.”
“그들의 지원은 필요 없다.”
모용운정이 그들의 말을 끊었다.
“필요한 보급은 이전과 같이 전 쟁대상(戰爭大商), 동가휴에게 요청 하도록.”
“하지만, 대장군 대행.”
처음 말을 꺼냈었던 장군이 그녀 의 명에 우려를 표했다.
“그자는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 도 없는 상인입니다. 지금은 어째 서인지 순순히 협조를 하고 있지 만….”
다른 이들도 조심스럽게 경고했 다.
“언제 어떻게 그가 돌아서 버릴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상단에 의존성을 높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그만.”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북부 대장군이 직접 지목 한 대행이었으며.
가진바 능력을 이곳에 모인 모두 가 인정하는 이였으니.
“북부 전쟁상인 동가휴에 대해서 는 신뢰해도 된다.”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이견은 없 었지만.
회의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 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이가 있었다.
“••누님.”
그녀의 친동생이자 직속 부관인 모용호(慕容腺) 였다.
“동가휴, 그자는-.”
“그자는 낙양검가(浴陽劍家)의
대공자께서 직접 보내주신 인물이 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물론이지요.”
“대공자께서 그자를 신용해도 된 다고 하셨으니, 나는 그자를 신용 한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더냐?”
“•••그것이.”
모용호가 잠시 말을 입안에서 우 물거리다가, 어렵사리 꺼냈다.
“요즘, 이 먼 북방까지 대공자님
의 이름이 들려옵니다.”
“안 된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아챈 모용운 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모용호가 마지막까지 말을 이었 다.
“혹시, 검가의 대공자께. 추가적 인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타앙.
그녀가 내리친 책상에 금이 쩍하 고 갔다.
“내 몇 번이나 불가하다, 하지 않았더냐?!”
“누님….”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분께서 칩거를 끝내고 낙양검 가의 대공자로 살아가시기로 결정 을 내리신 이상, 혼약(婚約)은 없었 던 것이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전쟁상인 동가휴를 보 내주신 것만 해도, 그분께서는 의 리(義理) 이상을 해주신 것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북
방을 지켜야만 하고! 그분은 그분 의 가문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 가 터져 나왔다.
“나와 그분은 이제 아무런 관계 도 아니란 말이다!”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던 누님 의 격한 반응.
그녀의 마음을 느낀, 모용호가 고개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누님.”
모용호가 나가고.
홀로 남은 모용운정은 한숨과 함 께, 깊이 얼굴을 묻었다.
잠시 후.
그녀의 손이 서랍을 열자.
그 안에서는 서신이 하나 나왔 다.
동가휴를 통해, 대공자가 그녀에 게 보낸 서신이었다.
그녀가 그 손때 가득 묻은 서신 을 펼치자, 짧은 내용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내가 반드시, 그대를 돕겠소.’ 그녀의 거친 손이 그 서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만지작거렸다.
“•••피리 연주가 듣고 싶습니다.”
투구 사이로, 단단히 묶었던 머 리카락이 흘러 내려와.
그녀의 얼굴을 감추어주었다.
“뭐라고…?”
모용운정의 곁에 서 있던 모용호 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 뭐라고 지껄였소?”
“저런.”
야율 부족에 복속된 어느 부족의 족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장에서 오래 생활하시다 보 니, 귀가 안 좋아지신 모양입니다.”
그가 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본인은 공왕(恐王)의 사자(使者) 로서, 공왕 전하의 자비로 넘치는 제안을 제시해주는 것이오.”
“네놈…!”
사자의 시선이 모용호를 무시하 고, 상석에 앉은 모용운정을 향했 다.
“지금이라도. 공왕께 대장군직을 바치고, 무릎을 꿇으시오.”
그의 목소리가 좌중의 웅성거림 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 충성의 증거로 우리의 새 동 맹(同盟)인 낙양검가의 삼공자와 혼인(婚쌔)을 한다면.”
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모용세가의 이름이 이 북부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오.”
그의 시선이 좌중을 향했다.
“물론. 대장군부의 병력은 당연 히 모두 공왕께서 마땅히 거두어들 이시겠지만.”
“네놈…!”
모용호의 일갈(一陽)이 쩌렁쩌렁 하게 울려 퍼졌지만.
그가 아니라 누구더라도.
감히 공왕의 사자에게 검을 뽑을
수는 없었다.
“•••낙양검가의 삼공자가 야율 부 족을 방문했다더니.”
“동맹까지 성립되어버린 것인 가?”
묵직한 공기 속에서, 좌중의 인 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만이 넓은 공간에 점차 들끓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제안이오.”
“…하지만 이대로 싸워봤자, 숭 산이 없지 않은가?”
“이곳은 북부요. 공왕이 북부를 제압하고,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 친다는 시늉만 해도. 황실에서도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소.”
“그건 그렇지만….”
분개한 모용호가 모용운정을 돌 아보며 외쳤다.
“누님! 고려할 가치도 없는 제안 입니다!”
누이의 마음을 아는 동생의 말이 었다.
“단박에 거절하십시오! 우리 군 영의 모두는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을 것입니다!”
모용운정의 입은 굳게 다물린 채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서 신올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누님.”
안타까움에 모용호의 얼굴이 일 그러지고, 사자의 얼굴에 걸린 미 소는 진해졌다.
“•••나는.”
이윽고.
장고를 마친 그녀의 입이 열렸을 때.
그 눈에 서린 것은, 통한(痛恨)의 고통뿐.
“물론, 승낙이겠지요?”
공왕의 사자가 쉽게 이어지지 않 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결정하셔도 괜찮습니다.”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그동안, 더 많은 부족이 우리 야율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을 것 이고. 우리는 더 부강해질 것이니 말입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품속 서신을 만진 그
녀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2”
사자의 눈에 의아함이 걸렸다.
그녀의 손이 뻗어가는 곳에, 그 녀의 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 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모용세가의 가주 대행이 자, 황제 폐하께 북방의 수호를 명 받은 북부 대장군의 대행.”
검을 쥐고 일어선 그녀가 투구 아래에서 사자를 오연히 내려다보
며 말했다.
“왕을 참칭(쪄稱)하는 무뢰배와 내가 만날 곳은, 전장뿐이다.”
좌중에서 흘러나오는 탄식과 함 께.
“어리석다!”
대번에.
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그가 좌중을 향해 외쳤다.
“너희는 전장에 서 보기도 전에, 공왕께 무릎 꿇은 너희의 동맹 부 족에 의해 고립되어 전멸하게 될
것이야!”
그가 손을 들어 모용운정에게 삿 대질을 했다.
“그리고 네년은, 결국 그 자리에 서 끌려 내려와, 공왕님의 잠자리 수청이나 들-.”
그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천장이 박살 나며.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우지직!
공왕의 사자는 비명도 남기지 못 하고, 그 비대한 몸이 으스러져 즉 사해 버렸다.
“소식을 먼저 보낸다고 보냈지 만.”
낭랑한 목소리.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그 목소리 에, 모용운정의 두 눈이 커졌다.
“어째, 급한 마음에 달리다 보니. 본인이 서신보다 먼저 도착했구려.”
휑하니 뚫려버린 천장에서 드리 우는 햇살을 받으며.
검은 혹잠사 외투를 휘날리는 대 공자 연소현이.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오, 운정.”
Chapter 04.
천살성(天殺星), 종(終).
Chapter 05. 북벌 (北伐).
Dulce bellum inexpertis. 전쟁은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나
달콤하다.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Desiderius Erasmus,
1466.10.27-1536.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