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편 반선반마(半仙反魔)
과연, 제갈세가라고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 사람을 해하고, 그 들의 이익을 빼앗아.
원한을 쌓는 것을 가문의 업으로 삼은 이들답게.
만일을 대비해서.
맞은편에 앉는 이, 그러니까 혹 여나 모를 암살자를 죽이기 위해 설치된.
지향성 폭발 기관(機關)의 위력
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네놈이었구나.”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 는 장갑 지휘 마차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무엇 하고들 있나?!”
뜯겨나간 어깨를 붙잡은 제갈 대 군사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놈을 죽여라!”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전 에.
“흡…!”
이미.
마차의 지근거리에 있던 남궁세 가 출신 정예 무사(武士)들의 신형 이 미끄러지둣 움직이고 있었다.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진창이 되 어 버린 지면을 깃털처럼 디디고.
뽑아 들고 있던 검을 얼굴 앞에 세워 들어, 빗줄기를 산산이 부숴 버리며 돌진한 그들의 검이.
벼락처럼 마차를 꿰뚫었다.
탕!
마차에 붙은 화염을 흩고.
마차의 두꺼운 장갑을 찢어발기 며, 검 하나가 박혀 든 순간.
“하압…!”
“흐읍!”
기합과 함께.
타타타타타타탕!
뒤를 이어 날아든 무사들의 검이 연속적으로 마차를 꿰뚫어버렸다.
전후좌우(前後左右) 가릴 것 없 이.
모든 방위를 별도의 지시 없이도 단숨에 한 몸처럼 모두 꿰뚫어버리 는 모습에서.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훈련 을 함께했던 정예 무사들인지,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남궁가의 개들.”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 이상 마 차의 내부가 아니었다.
“검가(劍家)의 무복(武服)을 입고 검가의 재산과 식량을 축내면서도.”
금속이 끓어넘치는 것 같은 그 목소리만으로.
무사들은 기혈(氣血)이 역류(逆 流)하는 것을 느꼈다.
“정작 검가에 충성하지 않는 기
생충(寄生蟲) 같은 것들.”
스스로 점혈(點穴)을 통해.
뜯겨나간 어깨를 지혈(止血)하던 제갈 대군사의 노력이 헛되게.
푸화학!
“크아악-!”
진탕된 기혈 때문에, 그의 어깨 에서 새로 시뻘건 선혈(鮮血)이 쏟 아졌다.
“으, 음공(音功)이다!”
그가 기함하여 외쳤다.
“모두 내공으로 귀(耳)와 상단전 (上丹田)을 보호하라!”
그 지시에 반사적으로, 무사들이 내공을 끌어올려 내부를 보호했지 만.
“소용없다.”
앞서서, 몇 번이나.
수준 이상의 무인(武人)들이 내 공으로 마기가 담긴 음성(音聲)을 방어하는 것을 보았던 연소현이니.
“너희가 보호헤야 할 것은. 한낱 육신(肉身)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에 대한 개량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 죄악(罪惡)으로 가득 찬 영 흔일지니.”
제암진천경의 순수한 마기가 음 공의 묘(妙)에 실려, 단박에 무사들 의 뇌리(腦M)를 흔들고.
단전(丹田)을 진동시키더니, 세맥
(細脈)까지 들끓어 오르게 했다.
“커헉-!”
“큭니”
경지가 낮은 순으로, 입가에서 줄줄이 검게 죽은 피를 한 움큼씩 쏟으니.
“적은 위다!”
누군가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 개를 들었을 때는.
번쩍.
번개와 함께, 허공에 떠 있던 시 커먼 신형이.
소리도 없이, 공간을 가르는.
검은 낙뢰가 되어 지면에 내리꽂 혔다.
그 검은 벼락에 맞은 첫 번째 희
생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거인(巨人)이 구름 위에서 내려 찍은 천상(天上)의 철퇴(鐵趙)에 맞 은 이의 최후가 이러할까.
콰아앙!
가공할 경력에 주변의 지면이 한 순간에 밀려나며, 일점(一點)에 공 백(空白)이 생겨났고.
한낱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 은, 그대로 수천, 수만 조각의 육편 (肉片)이 되어 터져버렸다.
“이 무공은-?!”
아무리 출신이 남궁세가라 해도.
검가에 몸을 담았던 이들이 그 특징적인 무공을 어찌 알아보지 못 하겠는가.
“검악파산(劍括破山)의-?!”
그 무공을 알아본 이들의 눈이 찢어질 둣 커졌다.
검악파산(劍括破山),
독문무공(獨門武功).
초중검(超重劍), 파산경(破山勤).
“당황하지 마라!”
제갈 대군사의 비명과 같은 소리 가 좌중에 울려 퍼졌다.
“놈은 그 대공자란 말이다!”
그에 따라.
“놈…!”
미친 파도처럼 출렁이는 지면에 서도, 자신의 발둥을 디디고 균형 을 잡아낸 무사 하나가.
동물 같은 감각으로 그 공백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죽어라-!”
남궁세가(南宮世家).
창궁무애검법 (蒼 W 無減劍法). 일장(一章), 암검쇄(巖劍碎).
바위를 부수고, 절벽을 꿰뚫는 남궁의 검.
그 남궁세가 비전(秘傳)의 검법 (劍法)이, 낙양검가의 문양이 선명 한 검으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검가의 검은 네놈들에게 허락되 지 않았다.”
부릅뜬 무사의 눈에.
빛살처럼 나아가던 자신의 검이.
그 검에 완전히 실려 백열(白熱) 하는 기운이.
까드드득!
상대의 새하얀 손끝이 자아낸 검 결지(劍諫指)와 만나.
그 끝부분부터 바스라지는 순간 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 무공은”?!’
오의 (與義).
동륜쌍뢰 (動輪雙題).
봉요격 (鳳激擊).
낙양검가의 장로원주.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그가 장로 원에서 펼쳤었던, 막대한 위력의 독문무공.
그것이 그가 생애에서 마지막으 로 본 광경이 되었다.
타앙-!
그의 눈에 더없이 확대된 검결지 가 그의 머리통을 꿰뚫어 터트리고 지나갔다.
푸화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를 잃은 몸에서 피가 치솟기도 전 에.
“합-!”
“흐읍-!”
자신들의 검이 마차에 박혀 들었 던 것을 역(逆)으로 이용해서.
무사 두 명이 발검술을 펼쳐냈 다.
남궁세가(南宮世家).
창궁무애검법 (蒼 W 無渡劍法).
삼장(三章), 발파(發破).
마치 명필(名筆)이 붓을 들어 한 호흡에 힘차게 일자(一字)를 그린 것처럼.
그들의 새하얀 검이 좌우에서 발 사되어, 떨어지던 빗방울과 함께 상대를 갈랐다.
따당!
“..r
자신들의 호흡이 한 몸처럼 맞았 던 것처럼.
자신들의 검이 수숫대처럼 부러 지는 소리 또한.
하나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부러진 검들이 허 공을 부유하는 허무한 광경을 확인 했던 순간.
양손으로 각각 취한 검결지가 그 들의 머리를 수확했다.
기혼참귀살(氣昏朝鬼殺).
차마고도의 수급수집가(首級苑集 家).
당가(唐家)의 혈풍차사(血風差 使), 당백(唐桶)의 쌍겸술(雙嫌術) 이 대공자 연소현의 양손 검결지로 펼쳐진 것이었다.
그들의 머리가 몸에서 예리하게 절단되어, 목에서 한 치쯤 떨어졌 을 때.
알아듣기 힘든 기합성과 함께, 다음 무사들이 도달했다.
네 명의 무사가 동서남북(東西南 北) 사방을 차단하고.
만자(FE字) 형태로 마치 소용돌 이처럼 짓쳐들어오는 고도(高度)의 합격진 (合擊陣).
그것은.
삼두육비(三頭大<)가 아닌 이상, 일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이었으 나.
“흐흐....”
쇳물이 끓는 나지막한 웃음소리 와 함께.
앞서 두 동강이 났던 두 무사의 검.
허공을 부유하던 그 검날들이, 순간.
기이한 궤적으로 꿈틀거리더니, 쏜살처럼 허공을 내달렸다.
“…크억!"
단말마가 짧게 울려 퍼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맥동하던 심장 과 함께 반신(半身)0] 베어져 나간 두 명의 무사가 즉사(卽死)하고.
카캉!
요란한 금속음과 함께 연소현의 양손 검결지에 튕겨 나간 검을, 급 히 다시 거둬들이던 남은 두 무사 는.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인중(人 中)에 구멍이 난 채 뒤로 넘어갔다.
“흐하하하하하!”
동료의 명을 거둬갔던 검날들이 돌아와 그들의 목숨 또한 가져가 버린 것이다.
“조심-!”
“이기어검 (以氣取劍)-!”
이어서 달려들던 이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지만.
적들의 예리한 선봉(先鐘)을 꺾 어버린 연소현에게는, 더 이상.
그들이 먼저 선공(先攻)을 취하 게 둘 생각이 없었으니.
광소(狂笑)를 뚝 그친 그의 입에
서 선고(宣告)가 떨어졌다.
“전부 죽어라.”
탈명귀검 독문검법(獨門劍法).
수라오음극(修羅五陰極).
오의 (與義).
오온조화(五혀造化).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러진 검날 하나가 부드럽게 무 사 하나의 검을 제압하여 사지(四
技)를 절단했고.
강능단유 (剛能斷柔).
다른 검날은 다른 무사의 검을 부수고 그 몸을 양단(兩端)해 버렸 다.
그리고.
그들이 단밀마와 함께 놓친 검이 허공에 다시 떠올라.
각자 다른 무리(武理)를 담아, 각 자 다른 적을 찢어발겨.
그다음의, 그리고 그다음의 적을
베어 넘기니.
목숨이 줄어들 때마다, 검이 늘 어나고.
검이 늘어나며, 단말마가 더 많 이 울려 퍼진다.
그것이 바로.
이기어검이라 불리는 초상검법 (超常劍法)의 극의(極意)였다.
“마, 말도….”
처음엔.
대공자가 자신을 단신(單身)으로 꼬드겨, 암살(暗殺)을 하러 온 것이 라 여겼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자리를 면하려 움직였고.
결국에 어떻게든.
자신이 마차에서 탈출하여, 무사 들이 움직인 시점에서.
자신에게로 숭기가 기울었다 판 단했다.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아니었다.
쏴아아아-.
이제는 검과 검결지가 부딪치는 소음도 없이.
비명을 지르던 무사들의 목소리 도 없이.
그저, 빗소리만 요란하게.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차가운 비를 맞는 시신 조각들에 서 더운 김이 피어올랐고.
하나도 남김없이 부러져버린 검 가의 문양이 새겨진 검들이.
시신마다 꽂혀.
그들의 비석(碑石)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이따금 치는 벼락이 그들의 명복 올 기리는 염불 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중원은?!”
제갈 대군사가 발작적으로 외치
는 소리가 고원에 외롭게 울려 퍼 졌다.
“중원은 아직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이빨로 뜯어 한 손 으로 쏘아 올렸던 신호탄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닥에는 이미.
그와 수하들이 쏘아 올렸던 신호 탄의 빈 껍질들로 수북했다.
대공자를 기습하여 죽이기 위해 그의 병력들은 넓은 범위에 걸쳐 전개 중이었고.
그들이 신호탄을 보고 다시 모이 기도 전에, 본진(本陣)이 궤멸해 버
린 것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이가 없으 니.
제갈 대군사가 급히 동원했던 수 십의 고수들이 전부 쓸모없어진 상 황이었다.
“빌어먹을…!”
그가 실혈(失血)로 인해 흐려지 는 시야를 무시하고, 남은 신호탄 을 상자에서 꺼내고 있을 때.
“이제 발악은 끝났나?”
그 기이한 목소리와 함께.
뚜벅, 뚜벅.
홀로 우뚝 서 있던 이가 천천히 다가오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 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또 하나의 신호탄을 물어뜯어 쏘 아 올렸지만.
삐이익-.
막대한 실혈에 급한 마음이 겹친 상태에서 쏘아 올린 신호탄은 옆으 로 기울었고, 결국 바닥에 처박혀 힘없이 빛을 내뿜었다.
저벅, 저벅.
인(燃) 성분이 든 신호탄이 발광 (發光)하여 다가오는 상대를 비추 었고.
“히익…‘?!”
하얀 가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누런 부적’들의 형상에서, 형언할 수 없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고.
“그, 그랬군! 대공자 네놈이…!”
그는 마기에 의해 지성이 엉킨 상태에서 간신히,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바로 그 암천존자(暗天尊者)라 는 마물(魔物)이었구나…!”
어째서, 대공자는 그리도 자신만 만하게 굴었던가.
그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보 였던 그 이해할 수 없는 여유의 이 유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니.”
하지만 뜻밖에도.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쓰여진 부
적들로 봉인(構印)된 하얀 가면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대공자 연소현이다.”
제갈 대군사는 마기 속에서 산 채로 우적우적 씹어 먹히는 그 순 간에도.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대공자 연소현이 천고의 마물, 제암진천경의 마기를 일부나마 온
전히 제 것으로 통제(統制)하기 시 작했다는 뜻이라는 것을.
연소현은 스스로 그 새로운 형태 를 이렇게 칭했다.
반선반마(半仙反魔).
연소현이 가면을 벗어 들자.
불길한 연기와 함께, 용도를 다 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한 부적들이 일시에 불타버렸다.
“곧 가겠소.”
북쪽에서부터 개어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가에서 가늘게 흐른 피를 닦은 연소현이 말했다.
“•••운정.”
그의 모습이 물러가는 구름의 그 림자에 녹듯이 사라지고.
“저쪽이다…!”
뒤늦게 도착한 제갈 대군사의 병 력에게 남겨진 것은.
그저, 천살성의 운명을 타고난 이가 남긴 참상(慘狀)의 현장뿐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