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편 함정(陷異)의 함정(橋葬)
번쩍.
낙뢰가 근처의 고목(古木)에 떨 어지자.
천지(天地)가 요동치는 듯한 천 둥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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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진흙탕 바닥에 몸을 던졌던
이들이 일어나며 서로 무어라 외쳐 댔지만.
삐이이이-.
지근거리에서 고막을 강타한 굉 음(©音)에, 이명(耳鳴)만이 머리를 뒤흔들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위험一!”
“-낙뢰一!”
“—피해야—!”
그 누구도, 그 와중에.
장갑 지휘 마차 안에 홀로 남은 제갈 대군사에게 신경을 쓸 수 있 는 이는 없었다.
낙양검가 기술의 총아(O兒)라 할 수 있는, 장갑 지휘 마차인 만 큼.
낙뢰의 굉음에 의한 충격은, 그
안에 탄 이들의 청각(聽覺)에 아무 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제갈 대군사의 눈에 비친 창밖의 필사적인 분투(奮H)는.
안과 밖의 세계를 갈라놓는 경계 가 되어.
그저 객석에서.
한낱 무언극(無言劇)에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演技)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들도 지금. 마차 안에 있는
나를 보면 같은 감정을 느낄까?’
그들은 결코.
지금 자신의 온몸에 돋아있는 소 름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얼려버 리는 듯한 한기(寒氣)도.
무엇 하나 느끼지 못하리라.
“…그렇군요.”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대공자님께선….”
짧은 순간.
생각의 정리를 마친, 제갈 대군 사가.
맞은편에 앉은, 대공자 연소현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셨군요.”
밖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이미 흠뻑 젖어버린 대공자는.
옷깃과 머리끝에서 물을 뚝뚝 홀 리면서도.
“차향(茶香)이 좋군.”
아무렇지도 않게 뒤로 편히 몸을 기대며, 제갈 대군사 앞에 놓여있 던 찻잔을 들더니.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음미 (除味)했다.
“차를 끓이기 위한 물을 따로 준 비했는가? 그 짧은 시간에 잘도 이 렇게까지 준비했군.”
대공자의 입가가 길게 휘어지며 조소를 만들어냈다.
“군사부는 아랫사람들을 너무 괴 롭히는 것이 아닌가?”
“대공자께선 일부러, 홀로 출발 하셨던 겁니다.”
제갈 대군사는 대공자가 딴소리 를 하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추 리를 이었다.
“자신을 미끼로 삼아, 미끼에 낚 여 섣불리 움직이는 우리 측의 전
력을. 국면(局面)이 본격적으로 펼 쳐지기도 전에, 깎아버리기 위해서 였겠지요.”
“좋은 추론(推論)일세. 하지만.”
대공자가 빙긋 웃더니, 비어버린 찻잔을 내려놓았다.
“정확히 하자면. 한낱 병력이 아 니라....”
차의 온기(溫氣)를 머금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은 따스했 다.
“나는 자네를 노린 걸세. 제갈 대군사.”
하지만, 제갈 대군사에게.
자신의 얼굴에 느껴질 정도로 가 까운 대공자의 숨결은.
저승차사의 차가운 입김과 같이 느껴졌다.
“•••제가.”
제갈 대군사는 필사적으로 자신 의 떨려오는 목소리를 내리누르며.
“•••영광스럽게도, 대공자님의 주 목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비치되어 있던 새 잔을 들어 찻 주전자를 기울였다.
그는 애써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 려 했지만.
차를 따르는 자신의 손끝까지 선 명하게 느껴지는 대공자의 시선에 는.
“이 젊고 경험 부족한 군사가, 어쩌다가 대공자님께 불필요한 관 심을 사고 말았던 것일까요?”
분명, 끈적한 살기(殺氣)가 담겨 있었다.
“자신을 너무 낮추는군, 제갈 대 군사.”
대공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갈 대군사에게서 잠시도 시선 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신 무림맹의 둘밖에 없 는 자랑스러운 대군사가 아닌가?”
평소라면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제갈 대군사는 가 능하다면 그 이름을 멀리 던져서, 버려 버리고 싶었다.
“•••허명(虛名)입니다. 그리고 호 랑이가 없는 산에 여우가 주인 역 할을 하는 것뿐이기도 하지요.”
제갈 대군사는 자꾸만 빨라지려 는 자신의 말을 억누르며.
억지로 차를 한 모금 마셔, 대화 의 흐름을 늦추었다.
차는 이미 식어 차가웠다.
“무림맹의 몰락 이후. 자격올 갖 춘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 에.”
한 사람은 다른 이를 띄우려고 하고, 다른 이는 결사적으로 자신 을 낮추려 하고 있었다.
“이 한낱 백면서생(白面書生)이 가문의 위명을 빌어 발탁된 것뿐입 니다.”
밖에서 보면, 실소를 자아낼지도 모를 모습이었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생로(生路)를 찾아 생존하기 위 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런가…‘?”
시간을 벌기 위해.
제갈 대군사는 일부러,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자연스럽 게 입을 열어 수긍을 표하기까지 했다.
“그렇습니다.”
“•••흐음.”
대공자 연소현은 자신이 쥔 빈 찻잔을 툭툭하고 건드렸다.
그 툭툭, 작은 소리가.
제갈 대군사에게는 마차에 퍼부 어지는 거친 빗줄기 소리보다도.
간헐적으로 내리치는 벼락보다도 크게 들렸다.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르군.”
“그것은-.”
“몇 년 전.”
제갈 대군사가 뭐라 말을 늘어놓 기 전에, 이번에는 대공자 연소현 이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시에, 공석이던 대군사 자리 를 차지하려는 쟁쟁한 후보들이 가 득했지만. 그중에서 제갈가의 젊은 천재(天才)가 선정되었지.”
대공자 연소현이 손을 들어 제갈 대군사를 가리켰다.
“자네 말일세.”
“그렇습니다…!”
제갈 대군사가 대화의 맥을 잡으 려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나 불거 렸다.
“당시에 가문의 위명으로 자리를 차지했다는 논란으로, 크게 소란이 있었던-.”
“하지만.”
대공자 연소현은 그의 말이 이어 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많은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모 여 있던 당시의 최상층부에서는, 아무런 잡음(雜音)도 나오지 않았 다.”
“그건-!”
“이상한 일이지. 그때는 구 무림 맹의 조직들이 신 무림맹의 이름으 로 본가에 입성하기 전이었지.”
대공자 연소현이 자신의 말을 그 대로 이어나갔다.
“시대를 풍미했던 무림맹이 와해 된 이후에도 뭉쳐있을 정도로 권력 에 집중하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미심쩍은 인사에 대해 아무런 잡음 이 나오질 않다니…?”
있올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것은…!”
제갈 대군사는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것이, 자신의 식은땀인지.
천장에서 샌 빗물인지 구별도 하 지 못했다.
“전부, 제갈세가의 위명(障名)이 남달랐던 덕분에-.”
결사적으로 말을 이어 붙이려는 제갈 대군사의 입을 막는 것에는.
연소현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하(夏) 태상부인.”
번쩍.
밖에, 벼락이 내리치고.
제갈 대군사의 얼굴이 더없이 하 얗게 빛났다.
그것은, 벼락 탓인가.
아니면, 그의 얼굴에서 혈색(血 色)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인가.
“나의 누이동생인 삼공녀 연다은 과 사공녀 연다혜 쌍둥이의 어머니 말일세.”
“네 어머니인 소유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이 나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
어린 연소현이 들었었던.
하 태상부인의 마지막 말.
그 무더웠던 여름날.
마치 지금처럼.
소나기가 거칠게 퍼부은 다음.
하늘에 걸려 있던 찬란한 무지개 아래에서, 부패하고 있던 하 태상 부인의 창백한 시신.
그 냄새.
언제나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입 에 걸려 있던 그 미소는.
유난히도 힘겨워 보였었다.
“이런 시기에 물놀이를 즐기시다 니…. ”
“최상류 쪽에 폭우가 있었다더 군. 갑자기 불어난 물에 저 작은 나룻배가 버틸 리가 없지.”
“아니, 그런데. 호위 하나 없이, 홀로 나룻배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
셨다고…?”
“쉿. 조용히 하게.”
언제나 그렇듯.
연소현은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번쩍.
콰르릉.
다시 한번, 천둥벼락이 내리치고. 그 여운이 가시며, 두두두하고.
마차의 천장을 때리는 거친 소나 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 태상부인, 하씨 어머니의 사 망. 그것은-.”
동공이 더할 나위 없이 커진 제 갈 대군사의 귓가에.
연소현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고로 조작된 암살(暗 殺)이었지.”
연소현이 손가락으로 톡톡 찻잔 을 두드리는 속도는 일정했지만.
이상하게도.
제갈 대군사의 눈에는 점차 그것 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귀에는 소리가 커져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홍수(兒手)는 결국 찾지 못했었 지. 그 지시를 내린 혹막(黑幕) 또 한 못 찾았고.”
“그, 그것은 사고-.”
제갈 대군사가 뭐라 입을 열어 보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만들어
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공자의 휘 하로 구 무림맹의 세력이 집결하는 데 성공했고. 자네도 알다시피, 그 소란으로 하씨 어머니의 일은 흐지 부지되어 버렸어.”
대공자 연소현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지만, 제갈 대군사도.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다네.”
대공자 자신조차도.
그것을 미소라 여기지 않았다.
“하씨 어머니의 죽음으로. 결과 적으로 본가에서 영향력을 잃은, 하씨 가문의 사업은. 중원국 전역
에 걸쳐 크게 뒷걸음질 쳤고.” 타 타 트 =r, =n =r.
찻잔을 두드리는 소리.
“당시, 삼공자 측에서는 사이좋
게 그 빈자리를 나눠서 먹어치웠 지.”
비 한 방울 맞지 않았지만.
사시나무처럼 떨려오는 제갈 대 군사의 몸을 핥듯이, 연소현의 시 선이 홅었다.
“그대의 대군사 취임은 그 직후 의 일이었지.”
연소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모두가 이제, 그 일을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제갈 대군사의 신체에 소름이 돋 아났다.
“나는 그때부터. 한 번도. 그대에 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지.”
톡, 톡, 톡.
“나는 잊지 못했네.”
톡톡톡.
“제갈 대군사.”
연소현이 제갈 대군사를 불렀을 때.
정확히는.
‘제갈 대-’까지 불렀을 때, 연소 현의 얼굴로 제갈 대군사가 쥐고 있던 찻잔이 날아왔고.
“흡!”
‘군’이라는 말이 이어졌을 때, 연 소현의 손이 가볍게 날아오던 찻잔 을 박살 냈으며.
‘사’라고 끝맺음 지었을 때는.
허공에서 부스러지는 찻잔의 뒤 에서 제갈 대군사의 백우선(白#거 扇)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파팍!
연소현이 소매로 쳐낸 백우선이 마치 살아 있는 뱀 대가리처럼, 치 명적인 혈 자리를 연속적으로 노렸 으니.
제갈 대군사가 모두에게서 지금 까지 숨기고 있던 무공(武功)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 호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대종사(大宗師)라 불릴 만한 연 소현의 무공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 니.
우드드득!
백우선을 연속적으로 쳐내면서 스르륵 타고 올라간 연소현의 하얀 손이.
제갈 대군사의 팔목을 꺾고.
팔뚝을 부수고, 팔꿈치를 뒤틀어 버리고, 상완(上腺)을 박살 낸 다 음, 어깨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끄흑…!”
하지만.
‘애초에 이런 얕은수 따위가 통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제갈 대군사는 자신의 발치에 마 련된 작은 발판을 누르는 데 성공 했다.
찰칵.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자를 폭사 (暴死)시키기 위한, 제갈세가의 특 제 기관장치가 격발(擊發)했고.
콰쾅!
대공자가 앉아 있던 쪽의 마차
벽면이 통째로 사라졌지만.
연기와 분진 속에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대공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에서 전력으로 탈출한 제갈 대군사는.
“대공자다!”
찢겨나간 어깨를 붙잡고서, 성공 여부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외쳤다.
“여기 목표가 있다!”
차차차창!
제갈 대군사가 이끌고 왔던, 정 예 병력들이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드는 사이.
“역시, 그랬어.”
반파된 채로, 불이 붙어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마차로부 터,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네놈이었구나.”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는.
금속음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