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44화 (344/350)

제19편 백수거신(百手巨神)

다음 날, 이른 오전.

삼공자 측 진영, 군사부(軍師部).

멀리 동이 터오기 직전.

군사부의 조경수(造景樹)와 지붕 따위에 앉은 새들이 짹짹거리며, 실없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리는.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각.

“대공자가 사라졌다고?!”

당직(當直)을 서던 상급(上級) 군사 하나의 커다란 목소리에.

“•••헉?!”

“무, 뭔 일이야…‘?!”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졸고 있던 군사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 어났다.

“원각정의 안팎으로, 지금 시간 까지도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 었지 않나?!”

놀라서 일어난 군사들이 눈곱을 뗄 시간도 없이.

“그런데, 왜 대공자가 없어져?!”

상급 군사가 첩보(課報)부처의 전령에게 외치는 소리가 군사부를 뒤흔들었다.

“대공자가 사라졌다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잠기운이 전부 달아나는 순간이 었다.

“아니. 이게 뭔 소리래?”

“대공자 측은, 계파 발족 축하 연회 중인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주최자가 자취를 감추었 다고? 그냥, 원각정 안에 있는 것

아닌가?”

군사들의 술렁임을 뒤로하고, 첩 보부처 전령이 식은땀을 뻘뻘 홀리 며.

“저, 그것이….”

당직 상급 군사에게 고개를 조아 렸다.

“그저, 본가 내의 행적을 놓친 것이 아니라.”

“아니라?”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대공 자는 현 시각 기준으로. 아예, 낙양 (浴陽)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 입니다.”

그 청천벽력(靑天麗8) 같은 소 식에.

당직을 서던 상급 군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럴 리가…?!”

하필.

일이 터져도 자신이 당직일 때 터진단 말인가.

“대체 이게, 그 무슨…?”

잠시, 넋이 나가 있는 당직 상급 군사를 대신해서.

그의 휘하 군사들이 첩보부처의

전령에게 달려들어 다그치듯 물었 다.

“대공자가. 특급(特級)으로 분류 된 감시 대상이 본가를 나가버리다 니?!”

“첩보부처는 대체 뭘 하고 있던 것이오?!”

날벼락을 맞은 것은.

첩보부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낙양 밖으로 나갔다면, 틀림없 이 운행수단이 있었을 것이 아니 오?!”

잡아먹힐 듯이 구석으로 몰린 전 령이, 다급히 입을 놀렸다.

“대, 대공자는 자신의 마차인 철 갑요새(鐵甲要寒)를 통해, 낙양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되었소…!”

그가 한 마디를 답변하면, 사방 에서 두 마디, 세 마디가 쏟아졌다.

“철갑요새는 분명, 감시 중이었 지 않나?!”

“현장에서는 대체 뭘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전령이 급히 외쳤다.

“철갑요새는 평소처럼 정기 정비 를 마치고, 시험 주행 중이었소…! 현장에서 관측하기로는, 대공자의

수행 인원이라고는 전혀 타고 있지 도 않았단 말이오!”

“•••뭣이 어쩌고, 어째?!”

뒤늦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린, 당직 상 급 군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럼, 대공자가 홀몸으로 몰래 원각정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서. 어 떻게든 마차와 합류해 직접 몰아 낙양에서 나가기라도 했단 말인 가?!”

“아무런 전조가 없었단 말입니 다! 애초에…!”

멱살을 잡힌 전령이 켁켁거리며

외쳤다.

“애초에 대공자가 낙양을 빠져나 간 것 또한! 지금, 완전무장(完全武 裝)을 마친 대공자의 하녀단이 장 갑마차들을 타고 본가를 나가고 있 기에 뒤늦게라도 파악할 수 있었단 말입니다!”

“방향은?!”

전령의 멱살을 쥔 당직 상급 군 사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그 방향이 설마 북쪽은 아니겠 지?!”

제발.

단순한 외출이기만을 바라는 상

급 군사의 눈에, 전령이 고개를 급 히 젓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대, 대공자의 철갑요새는 북쪽 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X발…!”

당직 상급 군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 인가…?!’

좌우 대군사와 남궁혁천의 명령 에 따라.

그들, 군사부가 북부에 개입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던 것

이 어젯밤이었다.

‘그런데, 대공자는 벌써 북쪽으로 출발을 했다고…?!’

대공자가 당연히 움직이리라는 것은.

충분히 좌우 대군사의 예측 범주 안이었고, 당연히 거기에 따른 대 책도 수립 중이었지만.

문제는.

그 움직임이, 대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는 점이었다.

‘대체…?!’

그 속도는, 삼공자 측 움직임에 대한.

대공자의 ‘대응’。] 아니라.

대공자의 삼공자 측에 대한 ‘선 제적 타격’이라 불러야 마땅할 정 도였으니.

“X발..!”

상급 군사가 상소리를 내뱉어 버 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공자는 정말로. 소문처럼 미래 를 보는 눈이라도 있다는 말인 가…?!’

자신들이 한 발이라도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되면.

어느새, 대공자는 두 발 앞서 있 었고.

어떻게든, 판을 뒤집을 기습적인 전략이 수립되었다 싶으면.

대공자는 이미, 판의 한가운데서 그들에게 조소를 보내고 있었으니.

“제기랄, 대공자아아…!”

밤을 꼬박 새웠기에 두 눈에 시 뻴겋게 섰던 핏발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그만하게.”

그런 상급 군사의 귓가에 늙수그

레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마 대군사님…!”

“케, 켁…!”

거의 질식당할 뻰한 첩보부의 전 령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에게 시선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실 쪽에서 북부에 신경을 쓰 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는, 설 마 했었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밤을 새웠기에 피로감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 사마 대군사가 혀를

찼다.

“이미, 황명(皇命)까지 받아내다 니.”

사마 대군사가 흐트러진 허연 백 발을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대공자가 우리보다 북방 문제에 서 먼저 움직이고 있었을 줄이 야....”

그 말에.

“화, 황명이라니요?”

얼어붙어 있던, 당직 상급 군사 가 정신을 차리고 人}마 대군사에게 물었다.

“무슨 황명 말입니까?”

“방금. 황도에서 들어온 정보일 세.”

상급 군사가 황급히, 사마 대군 사로부터 넘겨받은 쪽지를 펼쳐 읽 었다.

“•••황제 폐하가 일방적으로 대공 자에게 북방에 대한 전권 하사를 명했다는 것을 뒤늦게 밝혀.”

쪽지를 읽는 상급 군사의 목소리 도, 쪽지를 쥐고 있던 손도, 떨려왔 다.

“어전(御前)에서 대신(大臣)들이 크게 반발했다고…?”

쑤욱.

손 하나가 갑자기 뻗어와서, 상 급 군사가 읽던 쪽지를 뺏어갔다.

“누, 누구…?!”

상급 군사가 발칵 성질을 내려다 가,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제갈 대군사님…!”

선잠에서 방금 깬 듯한 제갈 대 군사가 말없이 쪽지를 읽어 내렸다.

내용을 모두 파악한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지만.

꾸깃.

힘줄이 곤두선 그의 하얀 손은 쪽지를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구겨버렸다.

“•••최악의 가정(假定)을 넘어서 버리다니.”

대공자가 보였던 움직임들이.

북방에 개입하기 위한, 이중 포 석(布石)들이 아닐까 하는.

자신의 불길한 예상이 맞아떨어 진 것도 모자라.

심지어, 대공자가 황제까지 이미 움직여 버린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

으니

“•••대공자가 현재.”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제갈 대군 사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상 단독으로 북방으로 향하 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사마 대군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제갈 대군사의 말을 받았다.

“아마도. 단독으로 움직여도 충 분히 개입할 요소들을 이미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겠지.”

만일.

대공자가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 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십중팔구(十中八九), 아니.”

제갈 대군사가 말을 고쳤다.

“열(十)이면 열(十). 분명히 그렇 겠지요.”

상대가 그 대공자라면.

혹시나, 만약에.

따위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래도.”

그런 제갈 대군사를 보며, 사마

대군사가 달래듯 입을 열었다.

“하루 차이지만. 대공자의 움직 임을 읽어내는 것에 성공한 걸세.”

그동안.

대공자는 언제나, 모두의 예상과 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 왔고.

좌우 대군사 또한 예외는 아니었 다.

“우리가 점차. 대공자의 사고(思 考) 속도에 적응하고 있다는 걸세.”

칩거가 끝난 이후.

대공자는 한 사람이라고는 믿어 지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수(手)를

반상(盤上)에 두고 있었고.

반대로 덕분에.

그들은 분석(分祈)에 분석을 거 듭할 수 있었다.

“다음번엔, 분명. 따라잡을 수 있 을 걸세.”

좌우 대군사가 따로 명을 하지도 않았지만.

“…대공자의 철갑요새가 이용하 는 가도(街道)를 예측해야 한다!”

“…하녀단에서 확보한 물자의 양 을 분석하면, 어디서 그들이 보급 •을 받을지 예측할 수 있다!”

“•••첩보부의 추격 보고는?!”

이른 새벽부터 깨어난 군사부는.

용광로 내부처럼 이글거리며 끓 어오르는 중이었다.

“우리 군사부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던 이공자 측의 강남사단(江 南私團)과는 다르네.”

자신들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무림 질서를 담당하여 유지했었던 역사가 있는 조직.

무림맹의 군사부였으니.

“삼공자께서는 지금쯤이면….”

사마 대군사가 벽에 걸린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남궁혁천 장로님의 연락 을 받고, 북방을 향해 출발을 하셨 을 것이고.”

그의 손이 삼공자의 출발 지점을 가리켰다.

“대공자보다 훨씬 북쪽에서 출발 하셨으니, 도착 또한 먼저 하실 것 이야.”

사마 대군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도 우리 쪽이 선수(先手)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제갈 대군사의 표정은 여전히 굳 어 있었고.

“게다가.”

사마 대군사는 그런 그에게 미소 를 지어 보였다.

“대공자의 정규 병력은, 장로원 의 허가를 받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니지 않은가?”

사마 대군사의 손이 지도 위에서 움직여, 화산(華山)과 무당(武當).

그리고 남궁세가(南宮世家)를 짚

었다.

“그대도 알고 있듯이. 이들이 대 공자의 병력보다, 먼저 북방에 도 달할 걸세. 그리고….”

그다음엔 지도에서 북방을 두드 렸다.

“애초에 북방이 본거지인 야율 (恥律) 부족은 움직인 지 한참 되 었으니….”

지도에서 손을 뗀 사마 대군사가 제갈 대군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 어 보였다.

“우리는 지금처럼. 대공자의 사 고 속도에 따라가는 일에만 집중하

면 되는 걸세.”

사마 대군사가 받아든 찻잔의 뚜 껑을 열어 차향을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덩치가 커질수록 움직임도 둔해 지는 법.”

그가 딱 잘라 말했다.

“대공자 또한 덩치가 커지고 있 는 만큼. 조직의 속도는, 시간이 흐 를수록 점차 더 느려질 수밖에 없 지.”

그것은.

수많은 조직들을 동시에 통제해 야 했던 구 무림맹 군사부 출신들

이 가장 잘 느꼈던 일이었으니.

“과연, 그렇습니다.”

주변에서 함께 듣고 있던 군사부 의 군사들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 다.

“수백(數百) 개의 팔과 수백 개 의 다리를 동시에 통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거기다가, 그 팔다리마다. 제각 기 생각하는 머리가 달려 있는 것 이 조직들이지요.”

“대공자가 기민하게 예측 밖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제까지는 그의 몸이 가

벼웠기 때문이지요.”

그때.

“•••그런데.”

제갈 대군사가 침묵을 깨고, 입 을 열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제갈 대군사의 표정은 굳어 있던 그대로였다.

“만약에, 대공자가 아직 사고의 속도를 전부 내고 있는 것이 아니 라면….”

햇빛을 등지고.

“지금까지, 대공자가 움직일 말

들이 부족했을 뿐이고.”

음울한 그림자를 뒤집어쓴 그의 얼굴이, 천천히 사마 대군사를 향 했다.

“그가 가진 조직들이 늘어날수 록. 덩치가 커질수록. 팔다리가 많 아질수록.”

제갈 대군사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지게 된다면.”

천재氏才)로 추앙받아, 젊은 나 이에 대군사의 위치까지 오른 이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애초에 그가 백 개의 팔다리를 능히 다스릴 수 있는 거신(巨神)으 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질문은 끝났지만.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사마 대군사 였다.

“자네도, 참.”

그가 껄껄 웃더니.

“상상력이 너무 뛰어난 것도, 이 럴 땐 문제로군. 속이 허(虛)해서

비관적인 사고가 드는 걸세.”

제갈 대군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직 이르지만, 조식(早食)이라 도 먹으러 가세나.”

평소라면.

제갈 대군사는, 자신보다 몇 배 의 경험을 쌓아온 人}마 대군사의 말을 따랐으리라.

“…아닙니다.”

“ 음?”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저는 지금이라도 북방으로 출발

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대공자에 비해 그리 늦게 도착하지 않으리라.

“제갈 형제….”

“뛰어난 이들이 항상 삼공자님을 보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제갈 대군사는 결의를 띤 눈빛으 로 말했다.

“이번만은 현장에서, 제가 직접. 대공자를 맞상대해야겠습니 다.”

그가 발걸음을 돌렸다.

“더 이상. 대공자에게 뒤처질 수 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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