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암진천경-343화 (343/350)

제18편 출진(出陣)

낙양검가, 원각정.

통제구역 (統制區域),

대회의장(大會議場).

“북방…, 말입니까?”

공동파의 대사부가 아연한 표정 으로 대공자 연소현에게 되물었다.

“그렇소.”

대공자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

였다.

“태상가주이신 아버지께서 강남 정벌을 통해, 가주로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업적을 세우셨듯이….”

회의장의 가장 높은 자리.

최상석(最上席)에 앉은 대공자가, 좌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본 대공자 또한, 마찬가지로.”

고요한 대회의장에 대공자의 목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손수 북방의 우환(憂患)에 철퇴 를 가하고, 혼란을 잠재워, 질서를 바로잡아….”

대공자의 눈길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자리에 배석(倍席)한 이들이 자 신도 모르게 자세를 더욱 똑바로 고쳤다.

“본가의 소가주(小家主) 자리는 이 대공자의 것임을. 만방(萬方)에 널리 떨쳐, 모두가 깨닫게 할 것이 오.”

소가주(小家主).

그 단어가 주는 묵직한 충격이 좌중에 내달렸다.

‘큰형님께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본인이 소가주가 되겠다

고 선언하셨다…!’

대공자의 우측에 앉은 사공자 연 비의 얼굴에,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구나…!’

얼마나, 자신이.

꿈에서, 생시에서, 수도 없이 그 리고, 또 그려왔던 순간이란 말인 가.

‘드디어, 주군께서….’

대공자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 던 염 장로의 눈에 잔잔한 파문(波 紋)이 일었으며.

‘흘홀,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대공자가 낙양검가를 이끄는 것을 볼 수 있겠구나…!’

연소현의 좌측에 앉아 있던 공량 이 치열(齒列)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외에도.

현월각주(보月閣主) 세아와 유각 풍문(有脚風聞) 연하응을 거쳐, 대 공자의 시녀장 정아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대공자 연소현의 행보

(行步)를 지켜봐 왔던 수많은 이들 이.

저마다 얼굴에 제각각의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대공자님.”

물론.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이들은, 갑자기 듣게 된 북방 소식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북방에 큰 문제가 있고. 대공자 께서 그것을 해결하신다면.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을 하다가 부담을 느낀 듯.

공동파 대사부의 목소리가 조심 스러워지자.

“말씀하신 것처럼, 소가주 자리 에 더없이 가까워지실 수 있겠지 만.”

점창파의 전 장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신 질문을 이었다.

“세외(世外)에서의 군사 행동입 니다. 황실의 허가 없이, 저질러도 될 만한 일이겠습니까?”

당당하게 질문을 끝내, 놓고도.

‘호, 혹시. 이걸로 대공자님의 심

기가 상하시진 않겠지…?’

대공자의 표정을 흘긋흘긋 살피 는 것이, 그다운 행동이라.

‘아, 제길. 좀 더 눈치를 볼 것을 그랬나?’

주변의 실소를 자아내던 와중.

“점창 장문이 충분히 타당한 문 제 제기를 했소.”

대공자 연소현이 고개를 끄덕이 자, 점창 전 장문인이 속으로 안도 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듣는 것이 나을 것이오.”

“•••직접, 말입니까?”

대공자의 대(大) 계획에 대해서,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던 이들의 얼 굴에 의문이 서렸다.

직접은 무슨 직접이란 말인가?

흐}지만.

그들의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그 표정은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은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교지(敎旨) 를 받들라!”

후문이 열리고,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벌떡 자리에 서 일어났을 때.

“황제 폐하의 교지를 받드나이 다!’’

대공자 연소현이 두 손을 모으더 니.

“만세만세만만세 (萬歲萬歲萬萬 歲)!”

무릎을 꿇고, 우렁찬 목소리로 선창(先唱)하자, 모두가 그 뒤를 따 라 외쳤다.

“만세만세만만세!”

부마도위(W馬都慰)는 위엄이 넘

치는 목소리로, 교지를 촤악하고 펼쳐 읽었다.

“낙양검가의 대공자 연소현은, 짐(眠)과 제국(帝國)의 가장 예리한 검(劍)이 되리니!”

황제의 권위를 대행하는 부마도 위의 목소리가.

“그에게 필요한 전권(全權)을 하 사하겠다!”

그 넓은 대회의장에 쩌렁쩌렁 울 려 퍼졌다.

“대공자 연소현은, 북방 영토의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우환(憂患、)을 제거하여, 제국의 위

엄(威嚴)과 기강(紀網)을 바로 세우 도록 하라!”

사실상, 북방에 대한 무제한적인 전권이 대공자 연소현에게 주어지 는 순간이었으니.

황제와 대공자의 관계를 모르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던 가운데.

“신(臣), 연소현!”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대공자의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즉시, 황제 폐하의 명(命)을 받 들겠나이다!”

잠시 후.

원각정, 귀빈실(貴賓室).

“후아-.”

쌍둥이 시녀 일령이 가져다준 냉

차(冷茶)를 단번에 전부 비워버린 부마도위가 길게 숨을 토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더이다.”

대공자 연소현이 그런 부마도위 에게 미소 지으며 농을 던졌다.

“한두 번 연습하신 솜씨가 아니 시던데, 몇 번이나 연습하셨소이 까‘?”

“어흠. 사실….”

부마도위가 부끄럽다는 듯이 코 를 긁적이며 웃어 보였다.

“황제 폐하의 교지를 전하는 중 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처음이라.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연습했

다오.”

대공자 연소현이 웃으며 말했다.

“하긴, 내용이 내용이었으니. 더 긴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은근히.

말 속에 뼈가 있었으니.

“•••그대의 말대로요, 대공자.”

침착한 안색올 되찾은 부마도위 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북방에서 황실의 권력이 바닥을 친다지만. 난데없이, 관직 (官職)도 없는 그대에게 ‘필요한 전

권’을 하사하시다니….”

사실상, 하사라고 하기보다는.

위임(委任)에 가까운 말이었으니.

“그런, 사례는 역사책에서도 드 물게 보았을 뿐이라오.”

그가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지어, 본인은. 이 교지를 받 은 적이 없었던 척을 할까 생각까 지 했었다오.”

어째서.

부마도위가 대공자를 비밀리에 관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

목이었다.

“하지만 결국, 전달하셨습니다.”

대공자의 말에 부마도위가 무겁 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랬소.”

그의 시선이 대공자를 향했다.

“•••내 그대를 충분히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꿰뚫는 듯한 시선에, 대부분이라 면 일단 눈을 피했을 터이지만.

대공자 연소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대가 이 난제(難題)를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인재(人才)라는 것 은 확신할 수 있었소.”

그렇게 말하던 부마도위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가 말을 고쳐 다시 입에 담았 다.

“그대라면, 이 난제를 푸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直感)이 들 었소이다.”

연소현은 부마도위의 시선의 깊 은 곳에서.

황제와 중원국을 향해 뜨겁게 타 오르는 그의 충의를 느낄 수 있었 다.

“부디. 마지막까지 황제 폐하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아주시오, 대공 자.”

“걱정하지 마시지요.”

연소현은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본인은, 예나 지금이나.”

하지만 확실하게 의지와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 최후의 최

후까지도. 황제 폐하의 곁에 남아, 친우(親友)이자 우방(友邦)。] 되어 드릴 것입니다.”

다시, 대회의장.

“•••허, 참.”

점창의 전 장문인이 혀를 내둘렀

다.

“대공자께서 더 큰 기회를 주겠 다고 하셨지만, 이렇게 딸리 그 기 회가 올 줄이야….”

그는 바로, 조금 전.

대공자와 공동파 대사부 간의 대 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공자께서는 각 문파에 더 큰 기회를 제공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 십니까?”

“물론.

어째서 그렇게 대공자가 쉽게 확 답을 했는지.

그 이유가 명료하게 밝혀지는 순 간이었다.

“•••혼란스러운 북방에서. 작은 싸움은 예사일 것이고, 국지전까지 도 볼 수 있을 것이겠지요.”

생각에 잠겨 있던 종남의 문주가 입을 열었다.

“공을 세울 기회는 차고 넘칠 것 이며, 심지어-.”

공동의 대사부가 말을 받았다.

“-심지어, 황제 폐하의 명을 받

들어 하는 일이니. 추후에 황실에 서 공적(功績)에 따른 포상이 따로 있을 겁니다.”

“호오, 과연…!”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 들에게서 의욕이 넘치는 것이 느껴 졌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가진바, 직함(職W)이야 어떻든.

“허허, 기대가 되는군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적 의 더운 피를 온몸에 끼얹고 숭리 를 만끽하는 것이.

그 본질인 자들.

즉, 무인(武人)들이었으니.

[•••이것이 대공자께서 말씀하셨 던, 우리 전쟁부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비책(秘策)인가.]

전쟁부의 검가무장(劍家武將)들 에 이르러서는,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몸을 움찔거리거나.

[확실히….]

[북방에서 우리 전쟁부가 활약을 펼치면, 장로원으로의 복귀도 충분 히 가능한 일이오.]

심지어 검을 뽑아 들고 날을 살

피는 이도 있었으니.

본능적으로 피 냄새를 맡은 그들 이,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병력을 동원하려면, 장로원의 동의가 있어야겠지만.”

“일단, 대공자께서 황명을 받았 지 않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의(熱意)에 차 올라, 일의 빠른 추진을 위한 열띤 토의를 벌이고 있었으니.

“그래도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 고, 절차를 지연시키기 위한 방해

공작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가장 빠르게 허가를 구하는 것은. 장로원을 우회하여, 최고운영회의의 명을 받는 것인 데….”

“그리고, 또 비용 문제는….”

대회의장으로 복귀한 대공자에 게.

“다들, 충분히 연회를 즐기고 있 는 모양이군.”

“대공자님…!”

그들이 득달같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달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질문 공세보다도.

“연비!”

“예, 큰형님! 하명(下命)하십시 오!”

연소현의 입이 열리고, 그 입에 서 추상같은 명이 떨어지는 것이 먼저였다.

“이제부터 네가 낙양의 책임자 다!”

연비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공자의 친정(親征).

그 빈자리는 사공자가 채운다는 지시였다.

“염 장로!”

“예, 주군.”

“그대에게 병력의 통솔(統率)을 맡기겠다!”

연소현의 명이 이어졌다.

“아군 병력은, 내공을 가진 무사 들로만 제한한다!”

염 장로 또한.

“충(忠)!”

사공자 연비와 마찬가지로.

서슴없이 무릎을 꿇어 연소현의 지시를 받들었다.

“부원주!”

“예! 대공자님!”

장로원의 부원주.

함 장로가 즉시 무릎을 꿇자, 그 의 머리 위로 연소현의 명이 떨어 졌다.

“수단과 방법 가릴 것 없다. 가 장 빠르게 병력 출정을 위한 허가 를 얻어 내라!”

부원주, 함 장로의 입가에 자신

감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연소현이 이미 장로원에서 기틀 을 확보해 놓았으니.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십(十) 할 이상 뽑아낼 수 있는 이상적인 상 황이었다.

“예! 맡겨 주시지요!”

그 대답이 끝나자마자, 연소현의 호명(呼名)이 이어졌다.

“전쟁부주(戰爭部主)!”

“부디 하명하십시오.”

노장(老將)이 군례(軍禮)를 갖추 자, 그에게도 연소현의 지시가 주

어졌다.

“보급 전반과 병력들의 준비. 그 리고 행정적인 절차 전반을 그대에 게 일임하겠소.”

어려운 과제.

하지만 그것이 전쟁부의 특기이 자, 존재 의의가 아니던가.

“받들겠습니다.”

전쟁부주의 입에서 즉시 대답이 튀어나왔다.

“홍독지주(紅毒期株)!”

“현월각주!”

연소현의 호명과 지시가 정신없

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쟁부주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 왔다.

[전쟁부주.]

그것은 다름 아닌.

정신없이 입으로 명을 내리고 있 는 대공자의 전음이었으니.

양의심공(兩儀心功)의 조화(造 化)에 당황하면서도, 전쟁부주가 충 실히 답을 했다.

[••예, 대공자님!]

[전쟁 자금 확보에 대한 문제는 검가전장에 방문해 보시오.]

연소현이 지시를 내리던 중에, 흘긋 전쟁부주를 바라보며 슬쩍 미 소를 지어 보였다.

[전장장과 호법일부장이 수사 중 압수한 연씨 혈족의 비자금으로 자 금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오.]

“......!”

슬슬, 연소현의 지시 사항이 끝 나가자.

“…대공자님!”

점창파의 전 장문인이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인선은, 어디까지나 대

공자님이 부재한 상황을 가정한 것 이 아닙니까? 아직 준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말씀하신 그 인선이 필요한지 는-.”

“아니.”

연소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내가 지금부터 당장 부재할 것 이니. 지금 필요한 인선이다.”

“예…‘?”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이들이, 점창의 전 장문인과 함께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대공자 연소현이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나는 지금 즉시, 허가가 필요 없는 최소한의 인원만 이끌고 먼저 출정할 것이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