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편 친정(親征)
낙양검가.
삼공자 진영, 군사부(軍師部).
“•••공동파(怪洞派)마저, 등을 돌 렸단 말인가?”
제갈 대군사의 백우선(白꺼扇)이 불쾌한 듯 파르르 떨려 오자.
“죄, 죄송합니다…!”
전력을 다해 달려와 소식을 전한
군사부 소속의 전령이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자네가 죄송할 것 없네.”
제갈 대군사의 분노가 애꿎은 전 령에게 향하지 않도록, 사마 대군 사가 그를 내보냈다.
“나가게. 나가서, 나머지 우리 휘 하의 세력 수장들이 왜 아직도 돌 아오지 않는지나 알아보게나.”
충성파 인물들은, 대공자의 거처 인 원각정을 빠져나오는 것까지는 확인되었지만.
그 이후로 종적이 묘연(香然)해 졌다.
“존명(尊命)!”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전령의 뒷 모습에서 눈을 뗀 제갈 대군사가.
“•••망할.”
이를 부득 갈았다.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소이까?”
삼공자의 가장 큰 후견인(後見 人)인 남궁혁천이 묻자, 사마 대군 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야 뻔하지요.”
사마 대군사의 주름진 손이 식어
버린 자신의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같이 간 문파의 수장들을 누구 하나 제대로 잡아 두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이 있어, 재빨리 돌아오 겠습니까?”
“겁쟁이 같은 놈들…!”
그러자, 제갈 대군사가 씹어 뱉 둣이 말을 받았다.
“놈들은. 어디선가 자기들끼리 대책 회의라도 하면서. 군사부의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을 겁 니다.”
삼공자 측이.
그 비대한 덩치에 비례하듯, 조
직의 질서가 엉망인 것은, 하루 이 틀 일이 아니었기에.
남궁혁천 또한 거기에서 흥미를 잃고 말을 돌렸다.
“•••이로써 우리는. 기존의 구파 (九派) 전체를 잃었군.”
점창(點蒼)이 선동을 하니, 종남 (線南)이 넘어가고.
사실상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보 았기에, 방치하다시피 했던 형산북 류(衡山北流)가 은근슬쩍 대공자의 손을 잡더니.
심지어, 공동(|睦洞)마저도 떠나 버렸다.
“하지만.”
장로 남궁혁천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총 전력에서 차 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았소이다.”
어차피 낙양검가의 속파(屬派)가 된 이후로 명맥(命脈)만을 간신히 유지하던 문파들이었다.
과거 구파라는 이름이 가지는 간 판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문파들 을 빼앗긴 점과.
그 과정이, 눈뜨고 코가 베였다 고 표현할 정도였기에.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뼈아프긴 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잃은 것보다. 우 리가 새로 얻은 것이 더 크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가.
중원국 전역(全域)을 표현한 전 략 지도 앞에 서서, 말들을 이리저 리 옮겼다.
“일단. 막강한 전력(戰方)을 보유 한 이들이 우리 측에 새로 가담했 고….”
그가 진영에 새로 배치한 말들의 깃발에는 화산(華山)과 무당(武當) 그리고 아미01我벼)의 글씨가 선명
했다.
“그들의 전력은 우리를 배반한 문파 전체를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이지.”
그의 말처럼.
그가 옮긴 화산과 무당 그리고 아미파의 말들은, 그들을 배반했기 에 빼 버린 말들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그리고. 안휘성(安M省)의 남궁 세가(南宮世家) 또한, 이제부터 전 력으로 우리를 도울 것이오.”
그가 또 검을 찬 한 움큼의 말들 을 자신들의 진영에 포함시켰다.
“우리 전력(戰;h)은 이걸로 충분 하고도 넘친다오. 그러니.”
그가 손을 쭉 뻗어.
전략 지도에서 북부(北部)를 가 리켰다.
“삼공자가 앞으로 활약할, 북방 영토에 대해서 말해 보시는 것이 어떻소이까?”
대공자에게 당한 오늘의 패배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 할 것이지만.
중원국은 넓고.
그들은 이미 새로운 기회를 잡았
다.
이미 지난 패배 따위를 곱씹을 이유 따윈 없었다.
“그렇군요.”
사마 대군사가 식어 버린 찻잔을 탁 하고 내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 나 그의 옆에 섰다.
“알려져 있기로. 얼마 전까지, 북 방 땅의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습 니다.”
“북부 전쟁(北部戰爭) 때문이었 지.”
“그렇습니다.”
과거 북방의 민족들은 거대한 하 나의 세력으로 뭉쳐, 전쟁에 임했 지만.
결국, 그들 또한 중원국과 마찬 가지로 전쟁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그 이후 정세가 혼란스러울 수밖 에 없었고.
그에 따라 전략 지도에는 형형색 색(形形色色)의 다른 깃발들을 든 부족들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마 대군사께서 ‘얼마 전까지’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지
금은 뭔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 군.”
“그렇습니다. 현재.”
人}마 대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율(邢律) 부족. 그들의 언어로 는 옐뤼라 불리는 부족이 주변의 부족들을 복속얘K屬)시키며 세력을 급속히 팽창하는 중입니다.”
사마 대군사가 좌우로 양손을 크 게 뻗어.
홑어져 있던 부족들의 병력을 한 군데로 뭉쳤다.
“。1율… 이라.”
장로 남궁혁천이 눈을 가늘게 뜨 고, 기억을 되짚었다.
“확실히. 과거 요Gi)나라를 일으 켰던 왕족(王族)의 후예들인가.”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초원을 떠도는 부족 들이 뭉치기 시작했다면.
역사에서 증명하듯, 답은 하나뿐 이었다.
“그들에게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 난 것인가…?”
“이율누주차(톄律滿珠避).”
사마 대군사는 중원국의 언어로
음차(音借)된 대족장(大族長)의 이 름을 입에 담았다.
“그들이 외경(良敬)을 담아 부르 기를….”
사마 대군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왕(恐王)’이라고 하더군요.”
잠시간의 침묵 후에.
장로 남궁혁천이 작게 조소했다.
“조악한 북부의 오랑캐들답게. 유치한 이름이군.”
“•••그렇습니다만. 이름은 몰라도, 그들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
다.”
남궁혁천이 침음(沈n今)을 흘렸다.
북부 전쟁에서 그 많은 피를 홀 리고도 배운 것이 없다면, 이 자리 엔 그가 있지 못했을 것이다.
“북방에서 얻은 최신 정보에 따 르면. 그들의 세력은 이제 북방의 대장군가(大將軍家), 모용세가(慕容 世家)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들이 대장군가의 힘을 넘어섰 다고…?”
사마 대군사는 대답 대신.
야율 부족의 깃발 아래 모인 말 들을 한 무더기 더 쌓아 보였고.
그 말들의 합은, 한눈에 보기에 도.
모용세가를 위시로 한, 친(親) 중 원국 성향 부족의 병력의 합보다도 많았다.
“•••그럼. 우리는.”
남궁혁천이 전략 지도를 내려다 보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삼공자를 앞세워, 대장군가인 모용세가를 도와서. 그 공왕이라는 자를 제거하고. 북방의 혼란을 잠 재워야겠군.”
하지만.
사마 대군사는 그의 예상과는 전 혀 다른 대답을 했다.
“아뇨. 아닙니다.”
“•••그렇다면?!”
남궁혁천이 고개를 번쩍 들자.
요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사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마 대군사와 눈이 마주쳤다.
“삼공자께서는 공왕을 도와 이율 부족이 북방을 통합하게 돕고….”
사마 대군사가 말을 하며 북방의 친 중원국 병력들을 손으로 천천히
밀어 넘어뜨렸다.
“북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강력 한 동맹(同盟)으로 두게 될 것입니 다.”
그가 마지막으로 넘어뜨린 것은.
북부대장군의 가문, 모용세가의 말이었다.
“•••확실히. 매력적인 전략이지 만.”
남궁혁천이 자신도 모르게 흐른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북부대장군 가문인 모용세가를 제거하다니, 그건….”
그가 좌우를 슬쩍 살피고는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현 황실에 대한 반역 행위로 규정될지도 모르오.”
그가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런 계획에, 다들 협력해 줄지 는-.”
“아니오.”
人}마 대군사가 남궁혁천의 말을 끊으며 빙긋 웃었다.
“야율 부족은 북부를 벗어날 생 각이 없습니다. 그들이, 공왕이 노
리는 것은. 새로운 북부대장군의 직위입니다.”
사마 대군사는 모용세가가 있던 자리에 야율 부족의 말을 옮겨 세 웠다.
“그들 또한 지난 전쟁을 잊지 않 았으니까요.”
부패하고 타락해, 나약해 빠졌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중원국과의 전 쟁 결과는.
그들에게도 큰 교훈으로 남았다.
“그들은 과거 모용세가처럼. 중 원국에 간섭받지 않는 자신들만의
북방을 만들고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새 북부대장군이 되 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야율 부족의 핵심 인물에게서 얻은, 귀한 내부 정보 이지요.”
역시나.
군사부와 손을 잡기로 한 자신의 결정은, 매우 훌륭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삼공자께선.”
남궁혁천의 시선을 받으며, 사마 대군사가 말을 이었다.
“북부를 통합한 새 북부대장군의 막강한 지지와 함께.”
사마 대군사의 손이 황실을 향했 다.
“강력하게 재탄생한 북방의 눈치 를 볼 수밖에 없는 황실의 지지까 지도 받게 되시는 겁니다.”
사마 대군사가 중원국 황실의 말 을 손가락으로 짚고 천천히 흔들었 다.
“적어도. 현(現) 황제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대공자의 편올 드는 것은, 확실히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요.”
황실의 말을 혼드는 사마 대군사 의 손끝을 바라보며, 남궁혁천이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일에 말일세….”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조심스러 워졌다.
“그 공왕이라는 자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 중원국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면…?”
삼공자 측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 지리라.
“그렇다면, 어떨까요…?”
사마 대군사의 입가에 걸린 미소
가 한충 더 진해졌다.
“‘신생(新生) 제국’의 개국공신 (開國功臣)이 되는 것도. 제게는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남궁혁천의 눈가가 경련했다.
“후후.”
그리고.
웃음을 남기고 돌아선 사마 대군 사가 새로 손수 차를 끓여 내왔을 즈음.
“•••확실히.”
남궁혁천의 입가에는 사마 대군
사와 같은 종류의 미소가 걸려 있 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소.”
“그렇지요?”
히죽 하고.
두 노인이 서로를 향해 야망으로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북방에 전력을 투입하 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사마 대군사가 손가락 하나를 들 어 보였다.
“일단은 전쟁 자금의 확보이지
요.”
“그 부분은 우리 남궁가에게 맡 겨 주게.”
“절대,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것 은 아니지만. 남궁세가만으로는 조 금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지금 본가에 서 접촉 중이던 이들은, 이런 일이 라면 우리를 얼마든지 도울 터이 니.”
“호오...?”
사마 대군사의 눈에 기광(奇光) 이 흘렀다.
남궁세가는 화산과 무당 그리고
아미 이외에도 접촉하고 있는 세력 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우리 휘하이긴 하지만. 일단 검 가의 병력이기도 한 만큼. 병력을 동원하는 일에는 장로원(長老院)의 동의가 필요하겠지요.”
“장로원이라면 맡겨 주게.”
“과연. 든든하군요.”
군사부의 수장과 삼공자의 최대 후견인이 합의를 본 이상.
일의 추진은 기이할 정도로 순탄 하고 신속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 다.
“삼공자께서는 저희의 연락을 받 는 즉시, 북방으로 이동하실 것입 니다.”
“•••지금 삼공자의 위치가….”
“…우리가 대공자보다 훨씬 빠르 게 움직일 수 있는….”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 받던 와중에, 제갈 대군사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잠깐...! 이건…!”
남궁혁천과 사마 대군사의 시선 이 그에게로 향했다.
“제갈 형제?”
“무슨 일이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계 속해서 전략 지도의 대공자 진영만 바라보던 제갈 대군사였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가장 먼저, 자금이고. 그다음이 장로원의 동의 였습니다.”
남궁혁천과 사마 대군사가 서로 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은 방금 남궁 장로님과 이 노부가 했었던 것 같은데….”
“제갈 대군사.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제갈 대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공자는, 가장 먼저. 검가전장 의 전장장을 해임 위기에서 살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남궁혁천과 달리.
사마 대군사는 이미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공자는 장로원에서 자 신의 세력을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이쯤 되자.
남궁혁천 또한 얼굴이 굳어 갔 다.
“그다음으로는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 가던 검가의 전쟁부(戰爭部) 를 끌어들였고. 굳이 싸움에밖에 쓸모가 없는 우리 측의 구 (W) 구 파들까지도 끌어들였습니 다.”
제갈 대군사가 고개를 들고, 두 사람과 떨리는 시선을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새 낙양지사로는 자신의 사람을 앉히는 등, 낙양에 서의 지배권을 더없이 확고하게 확 보하고 있었습니다.”
“…대공자의 궁극적인 노림수는.”
상황을 깨달은 남궁혁천에게서 새어 나온 목소리는.
“북부로의 군사 개입이었다고?”
쉬어 버린 듯이 탁했다.
“그러고 보니….”
사마 대군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공자에게는 그 사공자가 있었 군요.”
사마 대군사는 사공자의 말을 들 어, 그를 낙양 중앙에 위치시켰다.
“사공자가 확보된 후방을 단단히 지키면서-.”
그리고 제갈 대군사가 대공자 연 소현의 말을 들어 옮기며, 말을 받 았다.
“대공자는 병력을 직접 이끌고, 북방에 친정(親征)을 할 계획이었 던 겁니다…!”
대공자 연소현의 깃발을 든 말 이.
북방 한가운데 놓였다.